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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교사 윤 씨의 아침

  • 작성자 DONTPANIC
  • 작성일 2010-01-04
  • 조회수 474

 늦겠네.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본 윤 씨에게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윤 씨는 잠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 바로 옷을 입기 시작한다. 그는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치고, 우유를 마시고, 세수를 하고, 뜬 머리에 물을 묻히고, 신발을 신고 총알같이 집을 나선다.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도 덥다. 윤 씨는 슈퍼에서 작은 빵 하나를 사고 에어컨이 고장 난 자기 차에 탄다. 창문을 열고 달리니 물에 젖은 옷깃이 시원하다. 회색 조의 흐린 하늘 아래에선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아무래도 좋게 봐줄 수가 없다. 돈 벌어 빨간 벽돌집으로 이사 가야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건물 외벽이 생생하게 빨간 집으로 말이야. 윤 씨는 도시로 전근 오기 전 그런 벽돌집에 살았다.


주차장엔 차가 가득하다. 그는 항상 이때 지각을 실감한다. 교무실로 가는 길에 그는 각 반에서 조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생들과 일일이 인사를 한다. 교무실에서 윤 씨가 온 걸 알아차린 김 선생이 웃으며 외친다. 어, 선생님. 오늘도 늦으셨네요! 아, 예. 자리에 앉은 윤 씨의 얼굴은 좀 일그러져 있다. 뭐 좋다고 싱글벙글하는 거야. 험담꾼 안 선생은 저 김 선생과 깊이 알아봐야 좋을 거 없다고 했다. 요즘 들어서야 그때 흘려들은 그 말이 백번 옳았음을 알았다.


종이 친다. 윤 씨는 김 선생과 같이 올라가지 않기 위해 기다렸다는 듯 윤리 교과서를 들고 교무실을 빠져나간다. 문 바로 옆이 자리인 김 선생은 책을 챙기는 중이다. 어, 윤 선생님. 같이 올라가시죠. 아뇨, 아뇨. 오늘 수업할 내용이 많아서 일찍 올라가야 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되는데. 수업이 길게 되면. 아시죠? 애들이. 윤 씨는 책상에서 무언가를 찾는 김 선생을 두고 교무실을 빠져나간다.


윤 씨가 교실에 들어서자 왁자하던 아이들이 서둘러 앉는다. 반장이 일어서 경례한다. 흐린 날씨로 창문에 햇빛이 안 들어온다. 엎드려 자거나, 몸을 굽히고 힘없이 앉아있는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아 윤 씨도 절로 힘이 빠진다. 오늘 수업 어디부터니? 윤 씨가 묻는다. 205페이지 15줄이요. 반장이 대답한다. 그래, 8번 김준현, 읽어. 맨 앞의 아이가 책을 뒤적인다. 그러다가 윤 씨를 보고 말한다. 어디 읽어야 하죠? 얼빠진 소리에 몇몇이 소리죽여 웃는다. 짝이 손가락으로 어디부터 읽어야 하는지 찍어준다. 여기. 어, 알았어.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많아 조용하다. 옆 반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책을 읽는다. 둘째로… 것은, 자기와 … 먼저 고려하는 연고주의, … 등이다. 읽는 목소리가 힘없다. 윤 씨는 그 힘없는 목소리가 맘에 안 든다. 읽는 거에 비해 에어컨이 너무 시끄러워서 에어컨을 꺼야겠는데? 그러자 읽는 소리가 커진다. 아이들이 웃는다. 윤 씨는 커진 목소리가 아직 석연하지 않다. 교실 공기가 교무실에 비해 텁텁한 게 괜히 불쾌해서 그렇다. 윤 씨는 학생이 읽는 부분을 눈으로 따라간다. 천장 형광등은 다 켜져 있는데 교실은 밝은 것 같지가 않다. 준현이란 학생이 한 단락을 다 읽자 윤 씨가 수업한다. 수업할 맛이 안 난다. 자는 녀석이 많아서인가. 그뿐이 아닌 것 같다. 교실에 햇빛이 좀 들어왔으면. 그는 우중충한 하늘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정부패, 연고주의와 파벌주의, 계층 간, 지역 간 분열이 오늘 수업 내용인데 날씨와 잘 어울린다. 확실히 문제다.


종이 친다. 이다음 업무가 주변 중학교로 우리 학교 홍보하러 가는 거였지. 윤 씨는 생각한다. 어디 중학교였더라. 죽은 지 산 지 알 수 없게 자던 아이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왜 수업이 안 끝나느냐며 웅성거린다. 잠만 자다 깨서 하는 소리가 저렇다니. 윤 씨는 그들이 마음에 안 든다. 5분여, 윤 씨는 수업을 끝내고 나간다. 닫고 나가는 문 사이로 누군가 내뱉은 욕설이 나지막하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기분이 나쁘다. 중학교에선 수업을 5분 늦게 끝냈다고 욕하는 학생이 없을 것이다. 윤 씨는 갑자기 빨리 여길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교무실에서 자료를 챙기고 떠나는 윤 씨에게 한 선생이 말을 건다. OO 중학교 가시죠? 거기 아이들이 사납다던데. 사나워 봤자 고등학생보다 더하겠습니까. 그 선생이 웃는다. 그건 그래요. 잘 갔다 오세요. 윤 씨는 대충 인사하고 빠져나온다.

그 중학교는 벽돌건물이다. 비가 앞유리에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운동장에서 체육 하는 학생들 모습이 보인다. 윤 씨는 차를 멈추고 정문 옆에 서 있는 학교 약도를 본다. 강당. 왼쪽. 윤 씨는 차를 몰아간다. 주차하고 강당으로 걸어간다. 윤 씨는 강당에서 한 선생에게 PPT를 담은 CD를 건네고 원고를 다시 읽는다. 1년에 S대 10명, 전통 있는 학교인 만큼 장학제도가 발달했고 능력 있는 선배들이 많아 선후배 간의 밀어주기, 끌어주기가 잘 된다. 윤 씨는 멈칫한다. 오늘 1교시 수업내용이랑……. 같았다. 윤 씨는 속으로 허허 웃는다. 아이들이 점점 모인다. 작은 중학교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많아 윤 씨는 살짝 긴장한다. 직접 말하는 시간은 10분밖에 안 되니 긴장 말자. 영상자료를 많이 준비해둔 게 다행이군. 설명은 금방 끝났다. 질문 있는 학생? 한 학생이 손을 든다. 눈이 장난기로 반짝거린다. 예, 말해봐요. 어 그 학교에 대한 질문은 아니고요. 저희 도덕 시간에 혈연, 지연, 학연으로 밀어주는 건 타파해야 한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그걸 조장하는 것 같은데요. 난데없이 번개가 친다. 윤 씨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가 난처하다. 음, 제가 말한 내용은, 그러니까. 홍보할 때는 유창하던 윤 씨의 말문이 막힌다. 2, 3초간의 정적 후 윤 씨는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어, 제가 말씀드린 건 선배들이 자신의 후배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데도 다른 사람들은 제치고 후배를 쓴다는 게 아니고요. 능력이 비슷할 때 먼저 기회를 준다, 아니면 능력 있는 후배를 동창회에서 보면 기용하곤 한다. 그런 말입니다. 아까부터 조용하지는 않던 강당이지만, 갑자기 윤 씨는 아이들이 떠드는 말의 내용이 모두 자신을 욕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는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해 서두른다. 그럼 다른 질문 있나요? 더는 질문이 없다. 그에게  질문한 학생은 시무룩해진다. 윤 씨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연단에서 내려온다. 학생들이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할 차례가 남아있는데 그가 내려오자 다른 선생님들은 당황한 눈치다. 윤 씨는 중학교 선생들이 당황한 모습조차 자신을 비웃는 모습으로 보인다. 다시 올라가 인사를 받을 수는 없다. 윤 씨는 CD를 돌려받고 주차장으로 가 서둘러 차에 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윤 씨는 질문한 학생이 원망스럽다.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우리 학교엔 선후배 간의 그런 관계가 전혀 없다고 말해줘야하나. 윤 씨는 자책하다 문득 느낀다. 내가 그래도 아직 윤리 교사로서 양심이 살아있구나. 윤 씨의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이 부끄러운 상황에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에 윤 씨는 다시 기분이 나빠진다. 윤 씨는 눈을 감고 만다.

그런데 선생님. 혹시 제가 이번 문학캠프에서 이야기 분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비평&감상글 게시판에서 운 좋게 주장원을 받아 이번 문학캠프에 참가하려했는데 1개 장르 수상자는 해당 장르의 분반만 선택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박안수 선생님이 좋게 봐주셔서 비평&감상에서 주장원을 받았으나 제 관심, 흥미는 소설 분야에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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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불

    아,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군요. 이 문제는 캠프에 와서 상의해도 되겠네요.

    • 2010-01-09 15:15:47
    초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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