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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지식

  • 작성자 청색별
  • 작성일 2010-07-22
  • 조회수 162

잔인한 지식

 

 

 

 작은 돔 안에서 하얀 생물체가 필사적으로 벽을 긁고 있다. 숨구멍을 찾으려는 듯 작은 코를 급하게 벌름거리며 사방을 둘러싼 유리벽에 얼굴을 갔다 대고 있다. 작은 돔의 뚜껑이 잠시 열리더니 둘 셋의 동료들이 더 들어온다. 더 좁아진 돔 안에서는 숨구멍을 찾기 위해 치열한 자리다툼을 하지만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허파를 가득 메운 독한 마취냄새는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이윽고 마지막 생존자가 눈을 감는다. 밑에는 의식이 사라져 가는 동료들의 식어가는 몸들이 있다. 마지막 생존자가 동료의 몸을 베고 눕는다. 모든 이들이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벌름거리던 작은 코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잔인하게도 이 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돔이 열린다. 생존자는...... 없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옆의 몇 명은 입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열린 돔 안으로 혀를 내밀고 죽은 하얀 생물체가 보인다. 순식간에 숨통을 갉아먹은 검은 냄새로 채 감지 못한 붉은 눈이 우리를 보고 있다. 초점도 생명도 남기지 않고 그저 붉게 충혈 되어 있다. 그러나 알아차린 이들은 없다. 우리는 모두 하얀 생명체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저들은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 잠시 눈을 내리 깔았다. 더 이상 생명력 없는 저 눈들이 보고 싶지 않다. 내리깐 눈에 글자가 들어온다.

 -....... 가능한 한 고통을 덜 주고 신속하게 처리 .......

  앞뒤에 글이 더 있었지만 읽고 싶지가 않다. 속이 메스껍다. 돔 안의 하얀 생물체들은 곧 우리들이 준비한 콜크판에 놓여진다. 냄새가 옮는다며 수술용 흰 장갑을 나눠준다. 모두가 장갑을 낀다. 장갑을 통해 하얀 시체의 온기가 전해져 온다. 온몸에 돋은 소름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핀셋과 가위를 든다. 하얀 생물체를 죽인 것도 모자라 도륙을 내려 한다. 하얀 시체를 콜크판에 고정시킨다. 긴 침은 하얀 시체의 네 발바닥을 통과해 콜크판에 박힌다. 이제 하얀 시체는 사지가 벌려진 체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까발려야 한다. 뱃가죽을 늘려 가위로 서걱서걱 자른다. 하얀 시체의 뱃가죽은 마치 종이장처럼 잘린다. 교단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장기를 손상되지 않게 자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배를 가른 뒤 하얀 시체의 장기들을 핀셋으로 휘젓는다. 어느 누구 하나 그 장기들이 생명체의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 모두가 잊었다. 돔 안에서 살기위해 유리벽을 긁어대던 하얀 생물체의 발바닥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분리시킨 장기는 하나씩 사진을 찍는다. 과정이 끝난 몇은 하얀 시체의 장기들을 헤집으며 장난을 친다. 교단에서 들려오는 말에 따라 모든 장기들을 하얀 시체의 뱃가죽에 넣어준다. 하얀 시체는 자신의 망가진 장기들을 뱃가죽 속에 감춘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아 화단으로 가져간다. 삽으로 땅을 판다. 비가 와서 축축해진 땅속에 하얀 시체들이 묻힌다. 삽을 든 몇 명은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흙을 덮는다. 비가 더 세차게 쏟아진다. 피범벅이 된 수술용 장갑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콜크판과 가위, 핀셋을 씻는다. 피비린내가 여기저기서 진동한다. 피를 다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는다. 장갑을 꼈음에도 손에 냄새가 옮아있다. 한동안은 따라다닐 것 같다. 교단에서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하얀 시체의 장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들이 낯에 익다. 책에서 보았던 것들과 매우 비슷하다. 책 속의 사진들도 이렇게 찍혀졌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보다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정확하고 철저하게 관찰하도록 하며 ....... 장난을 쳐서는 안된다.

  또 다른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런 사진이 있는 책들을 어릴 적부터 읽어왔다. 책속의 사진과 내용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럼에도 책속의 빈 종이를 사진과 글로 채워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교단에서 가르치고 있는 저 학문을 배우다 보면 하얀 시체가 왜 저런 운명을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물체와 생물체가 아닌 것들이 왜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이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것을 알고 난 다음엔?

 

 순간 모든 생각이 멈춰진다. 책을 채워가는 것은 우리의 욕심일 뿐이다. 욕심을 채운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아니, 그 욕심을 다 채울 날이 오긴 하는 것인지가 더 막막하다. 우리의 이런 생각에 흙속에는 또 다른 하얀 시체가 묻히고 있다.

 

 “이 학문을 배우려는 동기가 무엇이죠?”

“어릴 때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물새를 보았습니다. 그 때부터 물새가 왜 죽어야 했는지가 궁금했죠. 환경오염에 관해 조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왜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 해결의 열쇠는 바로 이 학문이라고 판단했고 그 때문에 이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 궁금증 해결을 위해 하얀 생물체는 저렇게 죽어야 했나요?”

“그건 .......”

“그 이기적인 궁금증으로 하얀 생물체는 죽기 위해 인공적으로 태어나야만 하는 잔인한 운명을 가져야 하나요?”

“.......”

“왜 대답을 하지 못하죠?”

 

 

 저 물음엔 아직도 답할 수 없다. 우리는 빈 종이에 사진과 글을 끊임없이 채워나간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무엇인가를 알아내고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이기적인 생각으로 하얀 생물체가 왜 저러한 운명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혼란스럽다.

 

 하얀 생물체를 죽이던 날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글귀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실험에 앞서 제공된 실험동물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고 임한다.

-동물을 치사시킬 때는 가능한 한 고통을 덜 주고 신속하게 처리한다.

-보다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정확하고 철저하게 관찰하도록 하며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실험과 무관한 행동을 하거나 장난을 쳐서는 안된다.

 

 

  나는 생물학을 배우고 있다.

 

 

청색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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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색별
  • 201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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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색별
  •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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