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 안녕을 고한다.
- 작성자 제난
- 작성일 201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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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좀, 안녕을 고한다.
예전엔 아니... 예전이라 그러니 마치 내가 선사시대 이전 사람이라도 된 것 같으니.. 그래. 내가 어렸을 적엔 누가 뭐라 그래도 거의 강박관념 비스무리하게 항상 신발을 벗어 맨발로 다녔다. 덕분에 놀이터나 학교 체육시간에 신발과 양말을 잃어버리기 부지기수. 내가 그 때 잃어버린 신발들로 신발가게 두 개는 족히 차릴 거라며 우리 엄마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신다. 두 개는 절대 못 차린다. 잘 해봐야 한 개 반?
엄마는 그런 내게 늘 신발 괴물이 잡아갈 거라고 말하셨다. 지금 와서야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넘버 투라는 것을 알지만 그땐 그 말이 꽤나 무서웠었나 보다. 그래도 난 신발은 안 신었다. 양말정도?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도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맨발. 뜨겁고 또 때론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거닐다 깨진 유리조각 파편에 발을 베였다. 그게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파상풍이 와서 새끼발가락을 절단하게 될 줄이야.
엄마는 그 일로 노발대발 이셨고 결국 난 신발 괴물이 아닌 엄마 괴물로 인해서 신발이란 것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근데 이게 웃기는 것이. 아무리 사람들이 편하다는 신발을 신어도 나는 이놈의 이질감을 느껴 미쳐버리겠다는 거다. 몸은 가뿐한데 발 두 짝이 감옥에 갇혀버려 옴짝달싹 못 하는 내 웃긴 모습에 진짜 이건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했다만 그래도 다시 신발을 버리고 거리를 거닐다간 엄마에게 암살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생각하지 않을 수밖엔 없었다. 이 부분은 결코 구라 넘버 쓰리가 아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 될 무렵부터 나와 함께한 무좀이란 땔 레야 땔 수 없는 이 녀석은 군대를 나와 사회에 막 들어가는 무렵인 지금 이 시점까지도 나를 따라다니고 있단 것이다.
벅벅벅... 발가락이 답답하다. 손으로 최대한 만져주고는 있는데 수박 겉핥기다 구두를 아무리 만져봐야 발은 시원하지가 않다.
“아이씨...”
“뭐? 지금 내 욕 한 거야? 민준씨?”
....... 네? 고개를 쓰윽 올렸다. 아아.. 젠장. 히스테리 노처녀 이 부장이다. 오늘도 하이힐 굽이 내 키만 하다. 이 부장은 안경 너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 아니 꼬나본다. 도대체 왜 내가 당신 욕을 했다고 생각하는 지 50자 원고지 10매 내외로 서술해서 내일까지 가져다주겠어? 하지만 차마 난 그럴 짬이 아님으로.
"예? 그럴 리가요. 그냥 발가락이 좀 간지러워서요..."
이 부장님은 '흠, 그래?' 라는 표정으로 날 싹 한 번 보고는 고개를 홱 돌려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아 놔.. 설마 무좀 있다고 찍힌 건 아니겠지? 괜한 걱정을 하며, 업무 보고서를 계속 작성하던 찰나에 아니 사실은 저 번에 조 뭐시기 씨가 커피에 설탕을 세 개 넣어서 이 부장에게 찍혔던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에 이 부장이 날 부른다. 무좀들이 울부짖는 기분이다.
"네? 왜 그러십니까. 부장님."
"그러십니까가 아니라 부르셨습니까? 죠."
"....아.. 예.."
별걸 다 트집 잡고.. 제트아이 랄 이야.......
"왜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다른 게 아니라 오늘 김 팀장이 연주에 다녀오기로 했었는데 아파서 결근이에요. 대신 다녀와 줄 수 있겠어요?"
"... 아.. 네! 당연 하죠."
찍혔다. 무좀 때문에.
재수 지랄 맞다 생각하고 컴퓨터를 적당히 처리한 뒤.. 정확히는 몰래 듣던 라디오를 종료 시킨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회사 차키를 받아 차에 올랐다. 뭐... 회사 차래봐야 회사 로고와 이름이 양옆과 앞뒤에 큼지막하게 쓰인 봉고일 뿐이지만 시동을 걸자 이 녀석도 내가 싫은 지 아님 제가 싫은지 툴툴 거린다.
“그래도 넌 나보단 낳다. 무좀 있다고 상사한테 찍히진 않지 않냐.”
뭐라는 거야.. 정신병이 오려하나 봉고랑 말을 다하고
그나저나 오늘따라 발이 더 가렵다. 하긴 누가 자신이 지적받는 걸 좋아 하겠는가. 발을 긁느라 봉고가 가다가 섰다가를 반복한다. 안되겠다 싶어 차를 잠시 세우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피가 날 때 까지 벅벅 긁어댔다.
아아~ 시원해라. 얼마 만에 느껴보는 두 발의 자유인가. 뭐 정확히 말하면 집에서 나와 회사에서 이 부장님에게 찍혀서 나오기까지 채 2시간도 안됐으니까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밖에서 양말까지 벗어보기란.. 고2때 제주도에서 팬티 하나 달랑 입고 수영 했던 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 후 오랜 시간 꽤나 바쁘게 살았으니 말이다.
피나는 발은 쉬지 않고 엑셀을 밟았고 나는 거의 날아서 연주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많은 신호등 덕분에 1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 같다.
차에서 내려, 연주 지점으로 딱 들어가는 순간 아차! 싶었다. 양말이랑 신발을 안 신고 내렸다. 다시 가서 신고 올까도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볼일을 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라서 근교라고는 하지만 근교라기엔 너무 시골에 가까운 촌, 연주. 우리 회사 지점이 이곳에 만들어진 건 회장님에 지병을 낳게 하기 위하여서라는 설도 있다. 뭐, 사장이란 분이 아프건 말건 내 알바는 또 아니지만.
맨발로 프런트 데스크 앞으로 다가가자 웬 경비병이 날 막아선다. 아마 내가 미친놈인줄 알았나 보다. 난 그저 신발을 신지 않았을 뿐이야 아 물론 정장에 맨발이라니 웃기게 보이긴 하겠지만 그게 아니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오늘 해야 할 일이 무려 고장 난 Tv 본사로 옮기기 라는 걸 알아냈다.. 참나. 고작 그런 거 시키려고 나 같은 고급 인력을.. 아무튼.
직원분이 대강 그려준 정말 대강의 약도를 따라서 연주 참 부리 마을로 계속 들어갔다. 연주 행정구역 개편 때 새로 생긴 마을인데 하도 대강해서 마치 새 부리처럼 생긴 삼각형에 다 포함되지 못한 땅. 또 이 땅은 애매하게 그린벨트에 묶인 모양이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난 그냥 Tv를 옮기면 된다. 아니 정확히는 온갖 비위를 맞추며 고치는 것 보다 하나 사는 게 백번 났다며 구라 쳐야 한다.
어른에 세상이 이런 것일 줄 알았다면 학교 다닐 때에 사기 치는 법이나 배워둘 걸 그랬다.
"마을.. 초입에 놀이터.. 놀이터.. 놀이터가~,, 아! 있다."
약도가 개발새발이여서 그러지 부정확하진 않은가 보다. 그나저나 마을 초입에 놀이터라니 참 구성 좋은 거 같다. 마침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고 있고, 한 여자 분이 모두 총괄하는 걸로 봐서는 어린이 집에서 놀러 나온 게 아닌가 싶네. 그래.. 어린 나이에는 저렇게 맨발로 뛰어놀아야 한다. 뭐 선생님도 맨발이긴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왠지 모를 흐뭇함을 뒤로하고, 다시 약도를 따라 마을 이장님 댁으로 갔다. 그리고.. 아나 썅! 이 약도 진짜 못 써먹겠네!
약도에 약간의 도움을 받고 거의 내 직감으로 찍다시피 해서 이장님 댁을 찾았다. 잡고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훨씬 좋았겠다만 이 동네는 인적이 너무 드물다.
"저기~ 계세요?“
"... 어이. 뭔 일 났슈?"
하하.. 구수한 사투리에 정감이 절로 간다.
“예 ab사에서 나왔습니다. 고장 난 Tv AS 기사가 본사로 가져가야 한다고 하셨다는데요.”
“아~ 그 짝이 그 짝이요? 아무튼 쪼매 기다리쇼.”
네? 뭐 그쪽이 그쪽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장님은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 마을 방송을 시작했다. 아니 잠깐만... Tv를 달라고! 왜 방송을 시작하는 건데 설마 그게 고장 났다는 건 아니겠지? 아님 방송을 이제 Tv로 시작한다거나....... 온갖 생각을 다하다가 결국
"에.. 에.. 김 선생님. 선생님은 요 티비 고치러 온 사람 있능께 이짝으로 궁디짝에 불이나도록 뛰어오쇼."
아니 뭐.. 궁둥짝에 불이 나도록 뛰어오진 않으셔도.. 하하하.. 나는 감사하다고 이장님께 말하고는 이장님 댁 앞에서 이장님과 함께 김 선생님이란 분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고장 난 Tv는 이장님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김 선생님이란 분이 가지고 계시다.
"아! 저 짝에 오네. 김 선생님! 부리나케 오랑께 서울 양반들이 얼마나 바쁜데."
"아니에요. 전 별로 안 바쁩니다. 하하."
왠지 슬퍼지는데... 슬픔을 뒤로 한 채 김 선생님을 바라보자 그 분은 마을 초입에서 봤던 그 맨발에 여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여전한 맨발이셨고.
천천히 다가오시는 데.. 참 아름답다고도 생각 될 무렵.
"아따 고우셔라잉. 어떤교? 우리 마을 보배여 보배."
"...아.. 네..."
그 무드를 빡 깨는 거친 사투리가 저 분 입에서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아름답다는 생각은 취소되었다.
"에이. 김 선생님요 여짝이 거짝이요. 데리고 가가 욕보쇼."
음..? 욕보라는 말 힘든 상황을 위로하는 말 아냐?.. 그럼 내가 힘든 상황이라 이 말인가? 아무튼 이장님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셨고 밖에는 나와 김 선생님만 남게 되었다. 하아.. 거 티비 한 번 옮기기 힘드네.
"이쪽으로 오세요."
어라? 사투리가 아니네.
"연주 분 아니세요?"
"아, 네 서울에 살다가 5년 전에 내려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아름답다고 한 말 취소한 거 또 취소. 울퉁불퉁한 흙길을 지나서.. 아아.. 흙길을 맨발로 밞아 본 것이 언제더냐 기뻐 날 뛰고 싶지만 여자 앞이라 차마 참고. 암튼 그 흙길을 지나서 마침내 키즈 하우스라는 곳에 당도할 무렵. 키즈 하우스 위에는 다 벗겨진 페인트로 사랑의 고아원 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어린이 집만 운영하는 건 아닌가 보다.
“아 저기.. 마을 초입에 있던 아이들 고아인가요?”
“아.. 네 다는 아니구요. 몇 명은 맞아요. 예전에 이 동네에 살인마가 갓난 아이들을 빼놓고는 싹... 다... 그래서요.."
“.... 아 그렇구나..”
젠장! 괜히 말했다! 괜히 무거워진 분위기 때문에 어색하다 못해 긴장감 까지 돈다. 그럼 이 쯤에서 조크!
"분명 그 살인마는 신발을 신고 있었을 거 에요! 하하."
"... 네 아마 그럴 거 에요."
이유는 다르지만 김 선생님과 나 둘 다 맨발인 상황이었기에 웃자고 던진 얘긴데 김 선생님은 꽤나 진지하시다... 아 이런.. 유머집을 하나 사다가 읽어야 되나..
키즈 하우스 겸 사랑의 고아원으로 들어가자 조그마한 Tv 한 대가 보인다....... 한 100년은 되어 보이는 저런 고대 유물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우와! 놀라울 따름이다
"우와! 테레비 엄청 오래 된 거네요?"
"네. 아마 사랑의 고아원 때부터 쓴 거니까 50년 정도 됐을 거 에요."
저걸 고친다니. 차라리 로보트 태권V를 만드는 게 빠르겠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피더니 김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신다.
"저기.. 못 고칠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지구상에 있는 고물상 다 뒤져봐야 고칠 수 있는 부품 하나 찾을까 말까 할 겁니다. 하지만 말이라도 친절하게
"네, 아니요. 하하.. 다만 고치는데 애 좀 먹겠네요. 부품이 없어서. 아마 오래 걸릴 텐데 괜찮으세요?"
"...아, 저기.. 뭐.. 얼마정도 걸릴까요?"
흠..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정도 도는 데 약 60일 잡구요. 찾는 시간 플러스 알파해서. 흠.. 지구가 끝날 때 쯤 에는 고칠 수 있을 겁니다. 타임머신이 발명되면 그 보다 빠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역시 말은 친절하게.
"저기.. 진짜 오래 걸릴 겁니다. 진짜. 지이이이인 짜요. 차라리 하나 사시죠. 그게 빠를 텐데요."
"..아.. 네..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돈이 여의치가 않아서."
“어린이 집 수익이 별로 안 좋은 가 봐요?”
“..네.. 저기.. 어린이 집이긴 한데 좀...”
하긴..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 지원으로 겨 겨우 먹고 사는 고아원 아니 어린이 집 같은데 새 Tv 장만할 돈이 어디 있겠냐. 요즘 진짜 시세 장난 아닌데. 중고 장물이야 뭐.. 하아 그것도 꽤 비싸구나. 다른 고아원은 아니 어린이 집은 어떻게든 잘 싸바싸바 해서 회사에서 지원도 팍팍 받던데. 도무지 김 선생님은 싸바싸바에 능할 거 같지 않다.
"흠.. 알겠습니다. 일단 고쳐보려 노력은 하겠습니다. 만 아마 정말 오래 걸릴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왠지 의기소침해진 것 같은 김 선생님을 보며,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 그 조그마한 Tv를 들고 차까지 들고 가는데 마을 밖으로 김 선생님이 계속 따라 나오셨다.
"아니, 저기 들어가셔도 되는데."
"그래도 배웅을 해 드려야죠. 고마우신 분인데."
"아.. 하하.. 아닙니다. 제가 뭘."
"아니에요. 차가 저건가 봐요?"
"아, 네."
그렇게 김 선생님에 배웅을 받고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내 이 Tv를 꼭 고치고 말리라 는 사명감에 붙잡혀 서울로 날았다. 1시간 거리를 20분 만에 갔으니 진짜 빨리 갔다. 발이 가벼운 느낌이랄까? 아.. 나 지금 진짜로 발이 가볍구나.
양말은 주머니에 구겨 넣고 그 만큼이나 신발을 구겨 신고서 내 자리로 돌아와 휴식할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복잡하다. 에잇! 부장님도 안 계신데 라디오나 들어야겠다. 마침 점심이라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스피커로 들어야지.
"왔으면 보고를 해야지."
"?,,...! 아! 네!"
저 마귀할멈은 밥도 안 처 먹나?... 난 또 찍힐까봐 재빨리 Tv를 들고 이 부장님 자리로 갔다.
"그건 뭔가?"
"아, 네.. 고장 난 Tv입니다. 이거 본사에 가지고 와서 고치는 게 부른 이유였습니다."
"........"
이 부장님은 한참동안 Tv를 노려보더니 오랜 만에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그게 안 좋은 방향으로. 갑자기 인상을 확 구기더니 나한테 따지듯 내뱉는다.
"아니, 생각이 있는 거야? 그걸 어떻게 고쳐. 봤으면 다른 상품을 추천하고 사게 하는 게 간 이유겠지 정말 그걸 여기까지 가져와서 고치려고 했다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그거 당장 내다버려!"
....... 한참동안 괜찮았던 발가락이 또 간지러워진다. 아까 맨발로 거닐었던 터라 묻었던 흙의 영양분이 아마 다 날아갔나 보다. 한 쪽 발을 구두에서 빼고 다른 쪽 발을 벅벅 긁고 있자니 폭주한 기관차 마냥 내뱉던 이 부장님이 잠깐 멈춘다. 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가.
"아니! 지금 듣고 있는 거야! 그거 당장 내다 버리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 씨 발이 간지러워서."
난 일부러 붙여서 말했다. 그리고 다시 이 부장님을 바라보니 또 오랜만에 보는 표정 변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면 일명 멍 때리기 표정이라고도 하지.
"뭐라고! 지금 나한테 욕 한 거야!?"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냥 발이 간지럽다고요. 하늘같은 부장님한테. 근데. 하늘같은 부장님한테 감히 한마디만 하겠는데 하늘같은 부장님보다 높은 게 하늘같은 손님이거든요. 그런 손님이 은총이라도 베풀어서 저한테 의무를 주셨는데 그걸 내다버리라니 그건 아니죠."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뭐야!?"
"아니 그럴 리가요. 어디 감히 하늘같은 부장님한테... 그냥 약간의 어드바이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가 보다 하나 둘 자리로 돌아왔고 모두들 나와 부장님에 언쟁을 청취하고 있었다. 예전에 누가 그랬지 아마? 싸움 청취가 제일가는 라디오라고. 아.. 그런 말은 없나?
"하! 참 나! 어이가 없어서! 당장! 지금 당장 시말서 써서 제출해!"
"네, 그러죠."
그걸로 모든 상황은 종결 나는 듯 했다. 사람들은 약간은 예상됐던 결말에 하나 둘 고개를 돌렸다만 이제 곧 내가 식스센스 이후에 최강의 반전으로 그들에게 찾아가리라.
나는 펜을 대충 이리저리 굴려서 글을 적어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봉투에는 크게 '사직서'라고 썼다. 한문으로 썼다면 더 있어 보였겠지만 왠지 모를 희열에 손마저 떨려서 도저히 한자를 쓸 수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뭐, 뭐야? 이건?"
"시말서 겸 사직서입니다. 더 이상 더러.. 아니 발 간지러워서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뭐라고? 야! 야! 임마!"
나는 그냥 그대로 내 노트북과 차 키, 아끼던 만년 쓸 수 있다는 연필만 챙긴 채 회사에서 나와 백화점 가전 매장으로가 345 만원짜리 Tv를 사고 다시 연주로 향했다. 그리고 아차!. 오랜만에... 또 신발을 잃어버렸다.
뭐.. 이제 안 신고 다닐 거니까 연주로 간다는 생각만으로 발의 가려움증이 싸악 가시는 것 같다. 하아.. 무좀! 이제 네 녀석에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난 진짜 맨발의 청춘이나 되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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