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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 작성자 파아
  • 작성일 2010-12-18
  • 조회수 172

 

 

삼촌의 헌책방은 언제나 좋다. 낡은 책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냄새는 이로 말할 수 없이 포근하다. 누가 보기나 할까 싶은 한자로 가득한 세로줄 책부터, 시대를 아우르는 세계명작전집까지, 삼촌의 책방은 손때 묻은 시간을 품는다. 여기선 괴테도, 스탕달도, 기형도도 나와 함께 숨 쉰다.

순이야, 오늘은 일 하지 말고 집에 가봐라. 책가방을 내려놓는 나를 보며 삼촌이 말했다. 난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삼촌을 쳐다보았다.

“왜, 일 안 시키고 용돈 안줄라 하지?”

삼촌은 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얼른 가보기나 해라. 니 할매, 분명 진구 없어졌다고 난리일 텐데 옆집 아줌마가 또 뭐라고 하면 어쩌노.”

진구는 우리집 진돗개다. 사흘 전에 사라졌다.

나는 것도 그러네, 하며 책가방을 다시 올려 멨다. 삼촌은 먼지 쌓인 신문더미에서 신문 하나를 건져 올렸다. 신문을 요란하게 펄럭거리며 말했다.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나.”

지겨웠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래로 이런 질문은 수도 없이 들었다. 꼭 공부 열심히 하니, 잘하고 있니, 하는 질문을 듣기 위해 중학교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냥 그렇지 뭐.”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요즘은 착하게 살래도 똑똑해야 되는 세상이야. 멍청하면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다가 나쁜놈 되는 거야.”

“여튼, 우리 집 사람들은 잔소리가 너무 많아. 알았다니까.”

삼촌은 고개를 다시 신문으로 돌렸다. 아성일보라는 커다란 글씨 아래로 12월 3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세상은 봄인데 신문은 겨울이었다. 삼촌의 취미는 지난 신문을 보고 또 보며 같은 일로 분노하는 것이었다. 나는 세월이 이끼처럼 끼인 낡은 미닫이 문을 밀어냈다. 문을 나서자 문 뒤로 세상 참 흉흉하네, 하는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 앞에 다다르자 뻥이요! 하는 뻥튀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녹색 원통에서 펑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눈 같은 뻥튀기가 기다란 봉지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봉지에 미처 담기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 오르는 것들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코 묻은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나도 모르게 강냉이가 가득 담긴 봉지를 야무지게 묶는 뻥튀기 아저씨의 손에 눈이 갔다. 아저씨는 묶은 봉지를 벽에 세우더니, 다시 바구니에 담긴 쌀알을 통 안에 부어넣고 손잡이를 힘차게 돌렸다. 다시 한 번 뻥이요! 하는 목소리와 함께 펑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튀어 오르는 강냉이가 이번엔 할머니의 복실하고 허연 머리카락을 생각나게 했다. 아, 할머니. 큰일이었다. 나는 책가방 끈을 꼭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너덜너덜한 운동화가 벗겨질랑 말랑 절구질을 했다. 

집은 금방이었다. 차오르는 숨을 뒤로하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짙푸른 철문을 열고 외쳤다.

“할머니!”

내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루 너머 안방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쟁이여! 전쟁이여! 전쟁!”

가방을 마루에 벗어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장롱 앞에서 귀를 막고 소리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전쟁 아녀요. 뻥튀기 소리예요, 할머니.”

할머니는 여전히 귀를 막고 있었다. 꽃으로 수놓아진 잿빛 조끼가 어깨 위로 떨렸다.

할머니는 커다란 소리만 나면 전쟁은 안 된다며 소리치셨다. 할머니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으신 분이셨다. 삼촌은 우리가 할머니를 이해해야한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전쟁 이후 평생 발을 절다 가셨다. 삼촌은 절름발이었던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할아버지는 돈도 못 벌었고, 삼촌을 놀림거리로 만들었다고 했다.

“저 순이예요, 할머니. 전쟁은 없어요.”

나는 할머니를 껴안았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전쟁은 안뎌, 전쟁은 안뎌. 싸우지마, 응?”

“알아요, 할머니. 저번 달에두 말씀하셨잖아요.”

“안뎌. 다른 건 다 되두 전쟁은 안뎌. 싸우지마. 싸우면 안뎌. 싸우면, 천국 못가. 싸우면 벌 받어. 천국 가야지, 천국.”

할머니는 아이처럼 매달렸다. 작은 몸을 웅크리니 더 작아보였다.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할머니, 전쟁이 그렇게 무서워요?”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세상이 지옥도가 뎌.”

할머니의 움푹 패인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 지옥도를 봤제.”

할머니의 깊고 탁한 눈은 나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눈 안에 가득 담고 있는 것은 할머니 말마따나 지옥도였다. 난 지옥도에 대해 잘 몰랐지마는 틀림 없었다. 할머니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덩달아 손을 꼭 쥐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까슬까슬 했다. 전쟁은 할머니의 삶을 온전치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 전쟁은 할머니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나에게도, 삼촌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말이다.

할머니는 붙들고 있던 손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순이야. 우리 진구는 어디 갔니.”

시작이다. 할머니가 진구를 찾지 않을 리 없었다.

“진구, 진구 어딨니. 순이야 진구 좀 찾아와라. 진구가 요즘 밥을 잘 안줘서 집을 나간 것 같어. 평소엔 말 잘 듣던 착한 놈인데. 그냥 나갈 리가 없지. 밥 줄테니 어여 들어오라고 해라.”

할머니는 진구가 집을 나간 이래로 계속 진구를 찾았다. 잊었나 싶으면 또 찾고, 잊었나 싶으면 또 찾았다.

“순이야. 우리 진구 어딨니.”

“할머니, 찾아올게요. 집에서 꼼짝 말고 있으셔야 되요.”

“그래, 진구랑 같이 올라구?”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이자 할머니도 웃었다. 할머니꽃이 피었다.

나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창문을 꼭꼭 닫았다. 잠금장치까지 꼼꼼히 확인 했다. 그런다고 뻥튀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었지만 이렇게 하는 편이 안심이 됐다. 올록볼록 무늬가 있는 창문 너머로 보는 밖은 뿌옇게 물결쳤다.

“할머니, 무서운 소리가 나도 전쟁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순이야”

“네.”

“순이야, 진구는 어디 갔니?”

“찾아올게요. 지금 찾으러 가려구요.”

마루에 앉아 구겨진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신발 안으로 무언가가 따꼼거렸다. 신발을 벗어 탈탈 털었다. 조그만 돌멩이가 발 옆으로 또르르 굴렀다. 삐뚤빼뚤 모난 돌멩이가 꼭 할머니 같았다. 할머니나 삼촌의 말을 들어보면 할머니는 둥글게 살아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로 그랬다. 세상에 이는 바람에 깎이고 깎여 삐뚤빼뚤 해진 할머니는 이제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었다. 저 건너 뻥튀기 기계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녹색 철통에 매달려 있다. 할머니는 아마 곧 다시 전쟁이 났다며 방 한구석에서 귀를 막을 것이다.


“진구 보셨어요? 누렇고 커다란 갠데 눈망울이 투명해요.”

동네 골목골목을 돌며 진구를 찾았다. 아이들에게도 묻고, 지나가던 경찰아저씨한테도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사실 아무도 모르리란 걸 알고 있었다. 4일 전에도, 3일 전에도, 그제도 아무도 몰랐다. 구멍가게 아줌마는 아직도 못 찾았느냐며 걱정을 했다.

“할머니, 난리 안 피우시디?”

“그냥 찾기만 하세요.”

아줌마는 얼른 찾았으면 좋겠네, 하며 내 손에 초코바 하나를 쥐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제 초코바였다. 이런 아줌마가 아니었는데, 이상했다. 오늘은 삼촌도 그렇고, 구멍가게 아줌마도 그렇고 모두 내게 착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은 날인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노란색이 선명한 초코바 껍질을 벗기며 구멍가게 밖으로 나왔다. 구멍가게를 나오자 구멍가게 아줌마 아들인 성식이도 따라 나왔다.

“넌 아직 교복도 안 벗었냐?”

성식이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자 꼬질꼬질한 난닝구를 입은 성식이가 보였다. 무릎에는 시꺼먼 때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교복대신 난닝구 차려입은 게 뭐가 자랑이라고 유세람. 왜 따라 나와서 시비냐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눌러 참았다. 진구에 대해 물어야 했다.

“내 맘이다. 우리 진구 못 봤냐.”

“못 봤지. 야, 그런데 니네 할머니 치매라드마.”

성식이가 우리 할머니 흉내를 냈다. 저 자식은 틈만 나면 시비였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팔을 발발 떨면서 순이야, 순이야를 외쳐댔다. 화가 났다. 니네 아버지는 창고에서 도박판 벌이는 거 모를 줄 아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분에 못 이겨 달려가 가랑이 사이를 발로 차버렸다. 성식이는 인상을 잔뜩 쓰고 팔짝팔짝 뛰어대며 종이마냥 온몸을 구겼다.

‘싸우면 안 된다.’

왜 이 순간에 할머니 목소리가 맴도는 건지. 성식이는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이내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성식이는 계집애가 왜 이렇게 기가 세! 하고 소리쳤다. 성식이가 그래뵈도 힘은 장사였다. 이게 아닌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미안해.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나는 살금살금 뒷걸음질 치다 이내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렸다. 동네 풍경이 눈 앞으로 아름아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진구가 있을까 싶어 옆을 살피며 달렸지만 뒤는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다리가 후달려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한참을 돌아다녔다. 해가 벌써 서쪽 저편에 떠있었다. 옆동네까지 갔지만 진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본 사람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커다란 개를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삼촌의 헌책방이 근처였다. 치진 몸을 이끌고 삼촌의 헌책방에 갔다. 내 몸은 누더기 같았다.

“삼촌아, 내 왔다.”

목에서 쉰소리가 났다.

“집에 갔다 왔나.”

삼촌은 커다란 사다리 위에서 책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사다리에서도 책장에서도 먼지가 폴폴 날렸다.

“엉, 진구 찾으러 나왔는데 도저히 못 찾겠네.”

“할매는 어때?”

“난리지, 뭐. 금방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아직 진구도 못 찾았는데.”

삼촌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끼고 있던 목장갑을 빼고 손가락으로 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가기 전에 그, 거기. 니 발 옆쪽에 쌓여있는 책 더미 보이지. 그 책 더미 묶은 노란 끈 좀 풀어주고 가라.”

가까워서 쉬려고 왔는데, 역시나 일을 시켰다. 삼촌은 툭하면 일을 시켰다. 차라리 집에나 갈 껄, 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한숨을 내리쉬고 발 옆을 바라보았다. 노란 플라스틱 끈으로 묶인 커다란 책 더미가 있었다. 족히 60권은 될 것 같았다. 삼촌은 다리를 탈탈거리며 내게 힘들면 말하라고 했다. 저 위에 올라서있는 삼촌의 모습을 보자니 오기가 생겼다. 구부정하게 앉아 플라스틱 끈을 손으로 잡았다.

노란 끈은 생각보다 잘 움직이지 않았다. 딱딱한 플라스틱 끈을 계속 쥐고 있자니 손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끈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섰다. 그러자 책 더미가 힘에 이끌려 오른쪽으로 살짝 끌렸다. 책 더미 아래로 뭔가가 함께 끌리는 걸 느꼈다. 뭔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온 힘을 다해 책 더미를 밀어내자 붉은색 끈 천이 살짝 보였다. 그 끝을 잡고 죽 잡아 당겼다. 책 더미 아래로 붉은 끈이 잔뜩 더럽혀진 채 질질 끌려 나왔다. 거덜 난 천 위에는 검정색 볼펜으로 진구라고 여러 번 쓰인 자국이 있었다. 글씨가 흐려질 때마다 내가 꾹꾹 눌러쓴 글씨였다. 의심할 여지없는 진구 목걸이였다. 진구 목걸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머릿속으로 바람개비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가슴은 쿵쾅쿵쾅 난리를 피웠다. 냉정을 찾기 위해 눈을 감았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삼촌, 진구 어디 있는지 아나.”

“참 뜬금없다. 내가 알겠나.”

삼촌은 꿈쩍도 안했다.

“왜 여기 진구 목걸이가 있나.”

삼촌은 탈탈거리던 발을 멈췄다.

“그게 왜 거깄나. 잘 모르겠는데.”

삼촌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는 삼촌이 있는 사다리 아래로 갔다.

“삼촌, 뭐 알고 있지. 진구, 우리 진구 어딨나.”

삼촌은 말이 없었다. 뭐든 척척 잘 대답하던 삼촌이 조용할 때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나는 삼촌을 가만히 바라봤다. 침묵을 지키던 삼촌이 고개를 푹 내리쉬며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래, 다 알만한 나이지.”

삼촌은 시끄럽게 울고 있는 라디오를 끄며 말했다.

“돈이 없어서 팔아버렸다.”

“어디로?”

“성식이네 창고에서 개싸움 시켰다.”

말문이 막혔다. 이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삼촌, 말이 되나. 거짓말이라고 해줘. 응?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돈이 없는데 우짜노. 다 너랑 할매 살리자고 하는 일이다.”

삼촌이 괴물처럼 낯설게 보였다. 피부며 머리카락이며 부글부글 곤두선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 앞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진구를 파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개싸움이라니, 그럴 순 없었다. 진구는 친구였고, 식구였다.

“할머니가 싸우면 안 된댔어. 천국 못 간댔어. 벌 받는댔어.”

“천국은 없어.”

삼촌은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는 천국 간다 카든데. 그럼 할머니는 어떡해.”

“지금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야지.”

삼촌은 내 쪽으로 다가와 진구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천국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야해.”

“이게 최선이야?

삼촌은 다시 말이 없었다. 뜸을 드리더니 왼쪽 눈썹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일단 살아야 뭐가 되도 되지 않겠나.”

“그냥 살기만 하면 돼?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일단 살고 봐야 사람답게 사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내도 말이다. 사람답게 살겠다고,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몇 년간 짱돌 던져봤다. 그래서 좀 살기 좋은 세상 되어가나 싶었는데 무너지는 건 또 한순간이드마. 세상은 자꾸만 거꾸로 돌고 돈은 없다. 그럼 내가 어째야 했나.”

삼촌의 그런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런 모습도 처음이었다. 삼촌은 진심으로 괴로워했다.

이 사실을 들으면 할머니는 분명 울 것이다. 누구보다도 진구를 좋아했던 우리 할머니는 분명.

“울거야. 할머니는 분명 울거야.”

“그 노인네는 금방 또 잊어 버릴거야.”

그래도 당분간은 울 것이다. 할머니는 눈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치매에 걸리고 나선 자주 울었다. 울면 눈물이 빠져 잔뜩 쪼그라지지만 다음 날이면 금방 또 눈물로 가득 찼다.

헌책방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래서. 진구 죽었어?”

삼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다 묻었나.”

“저 뒷산에 묻었다. 로타리 가는 길 반대 쪽으로 가면 있는 소나무 터에.”

등을 돌려 신발을 고쳐 신었다. 갈거가. 삼촌이 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모든 걸 행하고 숨긴 삼촌이 미웠다.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천근이었다. 앞으로 내딛는 걸음이 무거웠다. 발이 마치 코끼리 발 같았다.


뒷산은 말이 뒷산이었지 거의 언덕이었다. 그래도 이맘때 만개하는 유채꽃은 자랑할 만 했다. 유채밭은 깊고 커다랬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 할 때면 언제나 이 곳으로 왔었다. 어른이 누워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깊었다. 

나는 흩날리는 유채밭 사이를 걸어 올라갔다. 가는 길에 유채꽃 한줌을 꺾었다. 유채향이 코 끝으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소나무 터에 오르자 정말 오목하게 올라온 작은 무덤이 있었다. 묘비도 그 무엇도 없었지만 대신 하얀 나비가 무덤 위에 앉아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자 나비가 저 하늘 위로 날아갔다. 고개를 들어 나비가 날아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벌써 붉게 물들고 있었다.

텅 빈 무덤 위에 돌멩이 여섯 개를 주워 작은 탑을 쌓았다. 오는 길에 딴 유채꽃을 무덤 위에 올려놓고 두 손 모아 합장했다. 무서웠겠다, 그치. 진구야, 눈치 못 채서 미안해. 눈물이 안 나서 또 미안해. 쪼그려 앉아 무덤을 쓰다듬었다. 무덤에 온기가 맴돌았다. 손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진구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삼촌 말대로 천국이 없다면, 진구를 싸움터로 몰아간 삼촌은 뭐가 되는 것일까? 눈치 채지 못하고 진구를 싸움터로 보내버린 나는 또 무엇일까. 진구는 최선을 다했지만 죽었다. 우리가 진구를 죽였다. 

진구 주위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솔잎 틈새로 풀잎 틈새로 밤이 잔잔히 깔렸다. 다시 올게, 진구야. 마지막 인사를 하며 진구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진구의 무덤이 아주 작아 보였다. 실제로도 작았다. 이 볼록 솟은 작은 무덤을 누군가의 무덤이라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무덤 앞에 진구 무덤이라고 손가락으로 크게 새겼다. 흙이 패여 글씨를 이루었다. 아마 하루도 안가 바람에, 누군가의 발자국에 사라지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시 새기고 또 다시 새기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유채밭은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금빛으로 빛났다.  바람 따라 노랗게 물결쳤다. 유채꽃은 한들한들 춤을 췄다. 황홀했다. 그 광경만으로도 취할 것만 같았다. 천국이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진구가 저 곳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길 내내 유채꽃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집 문 앞에 서자 유채꽃은 흩어 사라졌다. 대양과 같이 짙은 시퍼런 문이 나를 집어 삼킬 것처럼 노려봤다. 갈등이 되기 시작했다. 할머니에게 진구에 대해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말하지 않을 것. 말하지 않아도 문제지만 말하면 더 문제였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문 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성식이었다. 성식이는 발그레한 얼굴로 뒷통수를 긁적였다. 징그럽게 왜 저러지. 복수하러 온건가가 싶어 나는 팔을 위로 치켜세웠다.

“성식이, 니가 여기 웬일이고.”

성식이는 여전히 벌개진 얼굴로 몸을 베베 거렸다.

“니가 진구 찾길래, 내가 혹시나 하고 아빠한테 물어봤지. 얼마 전에 우리 집 창고에서 죽은 개가 있었거든. 근데 그 개가, 진구더라고. 그래서 알려주러 왔는데, 넌 없고 할머니만 계셔서 할머니한테 말해드렸어.”

성식이 자식은 인생이 내 걸림돌이다. 다시 한번 성식이의 가랑이를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오늘만큼 성식이가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할머니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성식이를 한번 째리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머니는 태연히 벽을 보고 앉아계셨다. 울지도 않으셨다. 걱정이 됐다. 언제 갑자기 울며 소리칠지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는 시한폭탄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저 고요히 벽만 바라보고 계셨다.

“순이야, 싸우면 안 된다.”

나는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네, 할머니.” 

“니 애미꼴 난다.”

“엄마가 어때서요.”

“죽었다. 살겠다고 몸팔고 발품팔고 몸부림치다 죽었다. 그 보다 더 나쁠 수가 있냐. 싸우면, 너도 니 엄마 같이 살아야 혀.”

엄마는 죽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죽었다. 삼촌은 엄마가 하늘나라 별님이 된 것이라고 했다. 하늘나라 왕님인 아빠가 데려간 것이라고. 너무 예뻐서 지구별에는 오래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난 아빠얼굴을 몰랐다. 엄마도 내 아빠얼굴을 몰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할머니.”

“알게 될거야, 다. 넌 꼭 행복혀야해. 나도, 니 애미도 이렇게 살았지만, 넌 행복혀야해.”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시는 건 처음이었다. 가끔 알 수 없는 말을 하시곤 했지만, 엄마 이야기도 행복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할머니 자신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말이다. 그제 밤에 진구가 내한테 인사를 하러 왔었는데, 봤니?”

할머니는 꿈꾸듯이 말했다.

“진구가 너무 어여쁘게 웃길래, 나도 활짝 웃고 말았지. 꼭 껴안았더니 너에게 가서 입을 맞추고는 저기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봤니?”

할머니는 세월이 지나가 깊게 파인 주름 위로 활짝 웃으셨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보지 못했지만, 끄덕여야 될 것 같았다.

“할머니.”

내가 말했다.

“응.”

“진구는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다독이며 말했다.

“어디로든 안 갔겠나. 싸움 없는 곳으로.”

“그게 어딘데.”

“천국 아이가, 천국.”

천국.

“할매. 진구는 기도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천국에 가.”

“길 잃은 어린 양 정도는 구해주지 않겠나. 그게 신 아니가.”

할머니는 신을 믿었다.

“신 본적 있나. 신이 도대체 누군데.”

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 얼굴을 가만히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싸우면 안돼.”

“알았대두, 할매.”

할머니는 내 얼굴을 한동안 쓰다듬으시더니, 손을 무릎에 얹고 구부정하게 일어서며 말했다.

“순이야, 메주 좀 가지고 와봐라. 메주 참 예쁘게 잘 말랐다. 우리 이걸로 된장찌개 해묵자. 응?”

“응.”


그날 밤 꿈에서 할아버지가 나왔다. 난 할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했고, 저 멀리 있었지만 할아버지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할아버지는 발을 하나도 절지 않았다. 물빛 저고리를 입고 흐르는 구름 너머로 이곳을 바라보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계셨다. 난 할아버지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만 봤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할머니는 없어졌다. 우리는 할머니를 찾고 또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에 귀신이 붙었다고 속닥거렸다. 누군가 하나씩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구멍가게 아줌마는 이번에도 초코바를 건넸다. 나는 받지 않았다. 아줌마의 초코바는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를 찾은 것은 일주일 후였다. 할머니는 진구를 묻은 뒷산에 있었다. 할머니가 발견된 곳은 깊고 깊은 유채밭이었다. 소미상회 아저씨가 발견했다. 소미상회 아저씨는 우연히 할머니를 발견했다고 했다. 나와 삼촌이 가장 먼저 뒤진 곳이 뒷산이었는데, 왜 우리는 찾지 못했을까. 삼촌은 홀려서 그래, 라고 했다. 혹시나 해서 뒤지긴 뒤졌지만 거길 어떻게 다 뒤져. 설마 거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세상 참 흉흉해. 어떻게 노인네는 거길 들어갈 생각을 했대. 삼촌은 무슨 일만 있으면 세상이 흉흉해서라고 했다. 이상하긴 이상했다. 왜 할머니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단지 우리가 할머니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일 뿐일까.

할머니의 다리가 부러진 걸로 보아 진구를 보러 갔다가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죽었거나 굶어죽었을 거라는 말이 많았다. 난 진구를 보고 내려오며 보았던 눈부신 금빛 유채밭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정도면 오래 사셨지. 누구도 그리 놀라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울지 않는 사람들의 몫까지 모두 울었다. 이번만큼은 나도 눈물로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할머니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시간은 갔다. 산 사람은 어쨌든 살아갔다. 유채밭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찬란하게 황금 빛으로 여물어 갔다. 나는 여전히 삼촌 책방에서 일을 거들었다. 금요일인 오늘은 책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노란색 플라스틱 끈으로 묶인 어마어마한 책 더미를 정리해야 했다. 이번엔 다행히도 내가 끈을 풀 필요는 없었다.

책을 정리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다가 낯익은 제목을 발견했다. <천국의 열쇠>라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에이. 제이. 크로닌이라고 적혀있었다. 천국. 오랜만이 듣는 이름이다.

“삼촌. 천국은 없다했지만, 왠지 할매는 천국 갔을 거 같애.”

삼촌은 신문을 넘기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기도도 안하는 노인네가 천국을 어떻게 가.”

“어린양 구해주는 게 신이랬어.

“신은 없어.”

삼촌은 무슨 철학가라도 되는 듯이 말했다.

“삼촌이 무슨 니체가. 어째 알아.”

“신이 있다면, 노인네가 말하는 그런 전쟁 같은 거 날 리가 없었지.”

그렇다면, 신이 있는 세상은 전쟁이 없을까? 삼촌은 다시 촤락거리며 신문을 요란하게 넘겼다. 이내 삼촌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개자식들이 세상 막돌리네. 아쭈. 이봐라, 이봐. 저기 저 바다 건너에서는 또 대포질이다.”

할머니는 갔고 세상은 여전히 싸웠다. 내게 싸우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

'싸우면 안된다.'

내 가슴 속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맴 울린다.

 

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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