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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게이

  • 작성자 질리지않아
  • 작성일 2011-03-24
  • 조회수 683

옆집 게이

진풍경이다. 401호와 402에 동시에 짐이 들어가는 진짜 진풍경이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맞추고 온 듯 2004년 4월 4일에 두 집 다 이삿짐이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터지는 일이다. 원래 이 고층 빌딩은 4층에 사람이 안 들어오기로 유명하다. 무슨 저주가 들렸는지 아니면 원래 터가 안 좋은지 4층만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저주를 깨고 오늘 401호와 402호가 꽉 차게 되었다.

401호] 삭발한 머리에 뽀얀 피부를 가진 남자, 뿔테안경을 끼고 흰 고급스러운 잠옷을 입은 남자, 코가 높고 입술이 도톰해서 매력적인 남자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김정하다. 중소기업의 사장직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오전에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깊은 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소리’다. 평소 잠귀가 과도하게 밝은 정하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벌떡 일어난다. 그래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여름에 파리와 모기들이다. 그들은 자는 사람들의 귀를 습격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하의 귀를 습격한 것은 미세한 신음이다. 그 소리는 당연히 정하의 소심한 달팽이관을 울렸고 정하의 몸은 자연적으로 반응하여 일어난다. 정하는 일어나자마자 인상을 짓지도 않고 몸서리를 치지도 않고 우선 소리를 듣는다. 그 미세한 신음의 출신지가 어딘지 확인한다. 정하는 안 그래도 쫑긋한 귀를 더욱 쫑긋 세운다. 소리가 옆집에서 난다. 옆집에서부터 들려온다. 이건 정확히 남자의 소리다. 아파서 흘리는 신음도 아니고 무거운 것을 들며 흘리는 신음도 아니다. 이건 분명히 쾌락을 즐기는 남자의 소리다. 그런데 소리가 한 명은 아니다. 남자 두 명의 소리다.

“설마?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이?”

정하가 불쾌한 얼굴을 하고 이탈리아에서 산 최고급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는다. 그러나 최고급 이탈리아산 귀마개도 옆집 남자의 신음을 잠재울 수 없는지 그 소리가 계속 귀에서 맴돈다. 결국 정하가 방의 불을 켠다. 귀마개를 뺀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402호] 덥수룩한 머리에 얼굴이 시커멓게 탄 남자, 한겨울인데 반소매 티셔츠에 팬티 한 장 걸친 남자, 눈이 크고 얼굴이 작아 매력적인 남자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유민하이다. 중소기업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그는 오전에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깊은 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소리’다. 평소 공사장에서 ‘소리’에 시달리는 민하는 일상에서 아주 작은 소리에도 성질을 내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그 주변에는 과묵하고 무거운 친구들뿐이다. 이번에 민하의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은 미세한 신음이다. 그 소리는 당연히 민하의 다혈질 달팽이관을 울렸고 민하의 성격을 폭파시켰다. 민하는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해를 한다. 그러면서 소리의 출신지가 어딘지 확인하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이 더 찌그러진다. 소리가 옆집에서 난다. 옆집에서부터 들려온다. 이건 정확히 남자의 신음이다. 병원에서 주사 맞을 때나는 신음도 아니고 공사장에서 철근을 어깨에 짊어질 때 나는 소리도 아니다. 이건 분명히 쾌락을 즐기는 남자의 소리다. 그런데 한 명의 남자 소리가 아니다. 두 명의 남자의 소리다.

“설마! 옆집에 이사 온 그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민하가 불쾌한 얼굴을 하고 공사장에서 주운 고무마개로 귀를 틀어막는다. 그러나 재질이 안 좋아 그런지 소리가 계속 들리는 듯하다. 결국 민하가 방의 불을 켠다. 고무마개를 뺀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진풍경이다. 401호와 402가 동시에 열린다. 그리고 서로 다른 복장의 남자가 나온다. 401호에서는 멋진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오고 402호에서는 아주 편한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나온다. 두 남자는 동시에 서로 쳐다본다. 서로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정하가 먼저 말을 꺼낸다.

“저기요. 밤중에는 조용히 좀 합시다.”

민하도 자신에 성격에 딱 맞는 어조로 반박한다.

“그쪽도 만만치 않던데!”

4층이 서늘해진다. 401호 남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402호 남자가 더 불쾌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401호 남자] “오늘 기분으로 내가 쏜다!”

사장인 정하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혁신적인 신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구매가 월등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사원들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즐거워한다. 회사가 오랜만에 불이 일찍 꺼진다. 사원들이 빠른 발로 회식자리로 향한다. 시끌벅적한 무리가 삼겹살집으로 들어간다. 다들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영역표시를 한다. 삼겹살집이 회사 사람들로 꽉 찬다. 정하는 삼겹살 집 내부에 자리한 꽤 큰 방에 들어간다. 같이 따라 들어온 사람은 경쟁 회사의 사장인 병식이다. 그들은 경쟁자이면서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야! 이 자식아! 너희 회사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니야?”

병식이 두꺼운 입술로 투덜거린다. 정하는 병식의 술잔을 술로 채워준다.

“야! 네가 그러면 내가 어쩌니? 너희 회사도 잘 나가잖아!”

“뭔 소리여! 이건! 이젠 너희 회사랑 경쟁상대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다! 부끄러워!”

“뭔 소리여! 이건! 그쪽도 심심치 않게 내 뒤통수치잖아!”

병식과 정하가 크게 한 판 웃는다. 그러나 병식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병식은 요즈음 아내와의 합의이혼 문제로 머리를 끓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따로 사냐?”

“어쩔 수 없지. 참 웃기지도 않는다. 자기가 바람을 피워놓고 이혼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 아니니?”

병식이 허탈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술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402호 남자] “오늘 기분으로 내가 쏜다!”

공사판의 가장 선임 김갑수가 후임들에게 선포한다. 눈이 슬퍼 보이는 게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데 즐거운 얼굴을 하는 걸 보면 술로서 슬픔을 달래려는 것 같다. 후임들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즐거워한다. 오랜만에 공사장의 소리가 일찍 사라진다. 후임들이 빠른 발로 회식 자리로 향한다. 몇 명 안 되는 무리가 포장마차로 들어간다. 무리가 한 테이블에 영역 표시를 하고 둘러앉는다. 선임인 갑수가 술을 시키고 후임들이 안주를 여러 가지를 시킨다. 대대손손으로 이어져 포장마차답게 테이블 위에 술 세 병과 여러 가지 안주가 빠르게 세팅된다. 모두가 술잔을 든다. 그러면 선임이 포장마차가 날아가도록 외친다.

“위하여!”

후임들이 선임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외친다.

“위하여!”

선임과 후임 할 거 없이 술잔에 있는 술을 한 번에 목으로 턴다. 그 후로는 당연히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풀며 술잔을 비운다. 술이 약한 후임들이 하나둘씩 포장마차를 빠져나간다. 그러나 술이 일반인보다 여섯 배는 센 갑수와 그에 맞먹는 직계 후임인 민하가 포장마차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갑수님! 진실을 말해 봅시다.”

“무슨 진실?”

“술자리를 주선한 이유가 뭐예요? 돈 안 쓰시는 분이?”

그래, 참 이해 안 되는 행동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부인과 자식들 때문에 술 못 산다던 갑수가 술을 샀다니 오늘이 만우절이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뭔 소리여! 이건! 내가 또 얼마나 안 샀다고?”

“뭔 소리여! 이건! 만나면 내가 매일 냈던 것 같은데!”

갑수와 민하가 크게 한 판 웃는다. 그러나 갑수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갑수는 요즈음 아내와의 끊임없는 부부싸움 때문일 것이다.

“또 싸우셨구만!”

갑수가 허탈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술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진풍경이다. 아파트로 두 대의 차량이 동시에 입장한다. 한 대는 최고급 검은색 SUV 차량이고, 한 대는 그냥 하얀색 중형차다. 어쨌든 두 대의 차량은 비슷한 속력으로 주행하여 주차장 남은 자리에 주차한다. 그것도 두 대가 나란히 붙어서 주차가 됐다. 두 대의 차량의 운적석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두 명의 사람이 각각의 차량에서 내린다. 검은색 고급 SUV에서 내린 사람은 당연히 정하다. 정하는 보조석으로 가서 술에 취한 병식을 끌고 나온다. 그냥 흰색 중형차에서는 민하가 나와 정하와 똑같이 보조석 문을 열어 갑수를 끌어내린다. 둘은 술 취한 사람을 끌고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아니 넷이 동시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덜컹덜컹 대며 아슬아슬하게 지하 1층으로 내려왔다. 진하와 민하는 동시에 헛기침하며 엘리베이터에 자신이 끌고 온 사람을 데리고 들어간다. 엘리베이터가 낑낑거리며 4명의 남자를 4층에 데려다 준다. 참으로 참을성 있고 성격 좋은 엘리베이터가 아닐 수 없다. 정하와 병식은 401호 앞에 선다. 민하와 갑수는 402호 앞에 선다. 정하와 만수가 서로 째려본다. 정하가 민하를 위아래로 훑는다.

‘저 녀석 기어이 남자를 데리고 왔구만.’

민하도 정하를 위아래로 훑는다.

“저 녀석 기어이 남자를 데리고 왔구만.”

둘이 각자 데리고 온 사람을 끌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닫히는 문소리가 굉장히 신경질적이다.

401호] 정하는 무거운 병식의 몸을 침대 위에 버리듯 내려놓는다. 병식은 마치 송장처럼 침대에 쓰러진다. 정하는 일단 병식의 불편해 보이는 겉옷과 구두를 벗겨주고, 잠을 자는 중 부러질 수 있는 안경을 얼굴에서 떼어준다. 그때 옆집에서 남자의 신음이 또 들려온다. 갑자기 병식의 옷을 벗겨주던 정하의 얼굴이 붉어진다.

“젠장! 저 옆집 새끼가!”

정하가 손부채 질을 하며 욕실로 들어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자기 전 양치를 하고 세안을 하고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정하가 욕실 안에서 천천히 옷을 한 벌씩 벗는다. 그런데 욕실 안에서도 옆집 소리가 들린다. 아니, 욕실이라서 더욱 울린다. 정하의 얼굴이 전보다 더 달아올랐다.

“아니! 진짜 저 옆집 새끼가!”

정하가 교양 있는 성격을 터뜨리며 잠자고 있던 수도꼭지를 세운다. 물줄기가 세차게 흩어져 나온다. 그러나 소리는 멈출 줄 모른다. 아니, 소리는 더 격렬해졌다. 정하가 이제는 포기한 듯 수도꼭지를 내리고 욕실을 나온다. 그리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 귀를 묻는다. 자꾸 옆의 병식이 신경 쓰인다. 매일 같이 술을 먹으며 그의 진상이란 진상을 다 보며 살아왔다. 그의 진상은 술만 먹으면 혼자 말을 하며 어디에서나 졸며 옷을 벗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병식이 자꾸 옷을 벗으니 정하의 얼굴 온도는 자꾸 올라간다. 곧 있으면 정하가 열병으로 죽을 것 같다.

“젠장! 저 옆집 새끼!”

402호] 민하가 무거운 갑수의 몸을 침대 위에 버리듯 내려놓는다. 갑수는 요동치며 침대에 쓰러진다. 민하는 일단 갑수가 걸치고 있는 무거운 작업복과 작업용 구두를 벗겨주고, 바지에서 주머니에서 천원으로 가득 찬 지갑과 바탕화면으로 아내의 사진이 깔린 휴대전화를 빼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때, 옆집에서 남자의 신음이 또 들려온다. 갑자기 갑수의 드레스 셔츠를 벗겨주던 민하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젠장! 저 옆집 새끼가!”

민하가 심호흡을 하며 이불을 덮는다. 술을 먹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곧바로 잠들어버리는 민하이지만 오늘만은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민하가 이불 속에서 천천히 옷을 벗는다. 온몸이 뜨거운 게 왠지 한약을 지어 먹은 기분이다. 그런데 소리의 강도가 더욱 강해진다. 민하가 먹은 술에 포장마차 주인이 몰래 한약을 넣은 게 분명했다. 민하는 온몸에 너무 열이 올라 이불을 벗어난다.

“젠장! 저 옆집 새끼가!”

민하가 문을 열고 밖을 나간다. 그리고 401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온 몸에 있던 열기가 바깥 공기를 맞으니 조금씩 빠져나감을 느낀다.

“저기요! 저기요!”

밤에 무례인 줄은 알지만 진정 무례를 범하고 있는 건 옆집이기에 민하는 당당하게 두드린다. 그러나 답이 없다. 답이 없는 게 당연하다. 둘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문을 열어줄 리가 없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남녀커플이라면 더 두드려서라도 문을 열게 하였을 것인데 이번은 남녀가 아니라서 민하는 바로 포기하고 402호로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가며 말을 흐린다.

“젠장! 저 옆집 새끼!”

401호 남자] “아! 머리야!”

정하가 두통으로 머리를 싸맨다. 어제 술로 머리를 너무 적시고 소리로 귀를 너무 귀찮게 했나 보다. 정하가 후회를 한다. 지금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정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어제는 돈은 돈대로 다 쓰고 즐겁게 웃었으면서 오늘은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어제 일을 후회한다는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김비서가 회장실을 들어온다. 어제 일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말끔한 얼굴로 회장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물론 어제 회식은 정하가 제안한 것이지만 그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김비서였다. 어제 정하가 퇴근을 하기 1시간 전 김비서는 회장실을 들어와 회식해야만 하는 이유를 서술했다. 당시 서류를 검토하는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정하는 그냥 ‘알겠다’라고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요즈음 회사의 재정 상태가 신제품 때문에 많이 좋아졌지만, 중소기업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정하의 그 대답은 김비서의 싼 입을 통해 일파만파 회사에 퍼졌고 정하는 맘에 들지 않지만 괜찮은 척하며 한턱냈던 것이다.

“그래. 김비서는 괜찮아 보이네? 난 절대 안 괜찮은데?”

정하가 입으로는 농담조로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진실을 말한다. 김비서가 사장의 기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씁쓸하게 웃는다.

“하하! 사장님! 그럼 아스피린이라도 드릴까요?”

정하가 목으로는 꺼억꺼억 웃으면서 눈으로는 살금살금 김비서를 살기 있게 쳐다봤다. 김비서가 눈을 바닥으로 깐다.

“됐고! 나 잠 좀 자고 올 거야. 그때까지 회사가 말썽 좀 부리지 말게 해줘.”

“예!”

정하가 회장실을 벗어난다. 그리고는 쓸쓸히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402호 남자] “아! 머리야!”

갑수 선배가 두통으로 머리를 자해한다. 어제 술로 머리를 너무 적시고 안주로 속을 너무 매스껍게 했나 보다. 갑수가 후회를 한다. 지금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갑수는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어제 아내의 일로 충동적으로 지금까지 힘들게 번 돈을 쓰고 지금에 와서야 구역질을 해대는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민하가 옆으로 와서 유자차를 건네준다. 그도 어제 고생을 꽤 했는지 얼굴이 아주 핼쑥하다.

“미안! 어제 나 때문에!”

갑수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유자차를 홀짝거리며 마신다. 민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다. 하지만 그도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닐 거다. 어제 옆방의 신음 때문에 잠을 한숨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형 덕분에 어제 잘 마셨는데요.”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뇌 속에 가득 찬 술 냄새가 갑수를 찌른다. 갑수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굵고 갈라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댄다. 민하가 갑수를 걱정 여린 얼굴로 쳐다본다.

“괜찮아요? 약이라도 드릴까요?”

“아니야! 됐어!”

“아닌 게 아니신 거 같은데? 제가 집이 가장 가까우니까 갔다 다시 올게요!”

“됐다니까!”

갑수가 저지한다. 그러나 민하가 공사장을 벗어난다. 그의 뒷모습에서 성급함이 느껴진다.

“아! 아! 아!”

격렬하고 야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남자의 소리가 정하의 귀를 자극한다. 정하가 눈살을 찌푸린다. 기껏 쉬려고 집에 왔건만 또 이놈의 소리가 문제다. 어쩔 수 없이 정하가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401호를 나간다. 그리고 402호 앞에 선다.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속에서부터 끓어서 올라온다. 손이 저절로 402호를 세차게 두드린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그 속에서 민하가 나온다. 정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등장하는 민하를 보고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간다. 그리곤 다짜고짜 민하의 멱살을 잡는다.

“당신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어!”

“무슨 말이야? 이 사람아?”

민하도 정하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흥분한다. 민하도 그동안 쌓아온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너 나 놀리는 거지?”

“그건 너지! 너 동성애자 맞지?”

“게이는 너지! 너희 집에서 소리 엄청나거든!”

순간 정하와 민하가 멈칫한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다. 둘 다 똑같이 소리가 난다니?

“그쪽에서도 소리 나요?”

정하는 그제야 민하의 멱살을 놓는다. 민하가 흥분했던 몸을 이완시킨다.

“예. 그럼 이건········.”

“뭔가 이상해요. 그럼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거죠?”

둘은 당황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인다. 지금까지 알던 사실이 거짓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그럼! 혹시 그쪽에 벽 좀 부술 수 있는 거 있나요?”

“예. 제가 공사장 인부라서 그런 장비는 집에 몇 개 있긴 한데요? 그건 왜?”

“그럼 저의 집 벽 좀 부셔주세요. 그쪽은 전세라서 안 되겠지만 전 저의 집이니까 가능해요. 소리가 나는 이유가 왠지 벽에 있는 거 같아요.”

“과연 그럴까요?”

“그럼 어떻게 해요? 뭐라도 해봐야죠! 그쪽이 벽을 부수는 동안 저는 경비 아저씨한테 좀 물어보고 올게요.”

정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민하가 402호에 들어가 여러 가지 공구를 들고 401호에 들어간다.

정하가 경비실로 투벅투벅 들어간다. 경비가 손톱깎이로 손톱을 성의 없게 잘라내고 있다. 덕분에 하늘 위로 튄 손톱이 정하의 이마 위에 안착한다.

“경비 아저씨!”

안 그래도 소리문제 때문에 집을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인데 경비가 속을 뒤집는다. 경비가 화들짝 놀라며 정하를 쳐다본다.

“무슨 일인겨! 401호 도련님 아녀?”

“아니 그게! 소리가 나요! 남자 신음 같은데요? 옆집은 아니래요. 그래서 지금 벽을 뚫고 있는데········ 분명히 벽에 뭐 있죠? 아! 그러고 보니 왜 4층에는 사람을 잘 안 받아줬죠? 제가 들어오려고 할 때도 분명히 반대 한 걸로 아는데?”

경비가 침묵한다. 정하가 기말고사 정답이 궁금한 중학생의 표정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정하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무언가 머리 위로 떨어진 느낌이다. 어지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바닥으로 쓰러졌고 눈앞의 빛이 점점 사라진다.

“아········아저씨!”

정하가 경비의 발목을 무의식중에 잡는다. 두껍고 거칠거칠하다.

민하가 열성적으로 벽을 뚫는다. 가루가 흩날리고 시멘트 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때 벽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 시체다. 남자의 시체다. 한 손에는 녹음기를 쥐고 있고,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있는 남자의 시체다. 민하가 경악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뒤통수를 강하게 친 느낌이 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민하가 그대로 쓰러진다.

민하가 선로 앞에 서 있다. 누군가 민하의 왼손과 선로를 수갑으로 연결해 놓았다. 움직이지 못한다. 그 때 엄청난 경적과 함께 열차가 달려온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부들부들 떨린다. 열차가 거침없이 질주한다. 열차의 운전석에 아파트 경비 복을 입은 사내가 쾌활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민하가 경기를 일으키며 눈을 뜬다. 눈앞에는 꿈속에서 봤던 열차 운전석에 경비가 똑같이 웃고 있다. 섬뜩하다.

“누구세요!”

민하가 몸을 움직이려고 마구 애를 쓴다. 하지만 선로에 수갑으로 연결한 왼손처럼 두 팔이 뒤로 묶이고 두 다리가 밧줄로 꽁꽁 묶여 움직일 수가 없다.

“누구긴!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이지?”

“모든 비밀?”

벽에서 나온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있고 정하가 그 시체 가까이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 민하가 갑작스레 겁을 엄청 집어 먹어버렸다.

“5년 전이었나? 이 아파트의 설립과 함께 동성애자 한 명이 이사를 왔어. 이 4층에 말이야. 그런데 그놈이 들어오고서부터 소문이 퍼지는 거야. 저 아파트는 동성애자 거다. 뭐 이런 소문 있잖아! 거짓인 줄 알면서도 믿게 되는 그런 소문 말이야! 그런데 이 아파트 세우신 분이 엄청난 야심가라 그 소문을 참고 있을 수만 없었지.”

“그래서 죽였다?”

민하가 적의가 가득 찬 눈으로 경비를 째려본다. 경비의 손에는 시커먼 연장이 무섭게 들려 있다. 곡괭이다.

“당연하지. 이 아파트 사람들이 왜 5년 동안 안 바뀐 줄 알아? 다 위대하신 설립자 덕분이시지. 곧 있으면 이와 똑같은 아파트가 옆에 생길 거야. 또한, 공소시효도 끝날 거고! 그러니까! 비밀을 알았으니까 사라지라고!”

곡괭이가 민하에게로 달려든다. 꿈속에서 봤던 열차다. 아니, 어쩌면 열차보다 무서운 것이다.

‘꽝!’

순간 전쟁이 난 줄 알았다. 경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동안 쉬지 못했던 숨을 한 번에 몰아서 내보낸다. 정하가 총을 들고 있다. 시체가 꽉 쥐고 있던 총이다. 정하가 힘겨운지 픽 쓰러져버린다. 경찰들이 401호에 들어온다. 알 수 없는 진풍경이다.

‘짱그랑!’

어디선가 얼핏 들으면 유리가 깨졌다고 가정할 수 있을 정도의 효과음이 술집에 울려 퍼진다. 쾌활한 웃음이 터지는 소리다.

“축하해요.”

“예?”

“퇴원하신 거요.”

민하와 정하가 서로 보고 웃음을 짓는다. 사건은 해결됐다. 총으로 인해 약간 부상을 당한 경비는 살해 혐의로, 아파트 사람들은 범죄 은닉죄로, 그리고 아파트 설립자는 살인교사 죄로 검사에게 넘겨졌다. 그야말로 해피 엔드다.

“그런데요. 정하씨!”

“왜요?”

“숨기지 마요.”

“예?”

“동성애자인 거 숨기지 말라고요.”

정하가 침을 꼴깍 한 번 크게 넘긴다. 술집에 둘밖에 없는 듯 술집이 고요하다.

“민하씨! 재미없어요! 장난 그만 해요.”

“아뇨! 알고 있어요. 정하씨 집에서 사진 봤어요. 그 시체·······정하씨 애인 맞죠? 그리고 아파트 설립자 정하씨 아버지고요. 경비가 아파트 설립자의 야심으로 그랬다지만 그런 소문은 있지도 않았어요. 정하씨 아버지는 정하씨가 애인이 있다는 걸 알고 없애버리신 거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정하씨가 동성애자라는 걸 믿고 싶지 않으신 거죠.”

“민하씨 똑똑하시네요.”

정하가 보름달을 닮은 백열등을 응시한다. 그리고 혼자 말을 하듯 말을 이어간다.

“맞아요. 갑작스레 그가 사라진 뒤 설마 설마 했어요. 설마 아빠가 알아버린 걸까. 설마 내 애인이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을까. 그런 의문을 들고 애인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갔는데 아버지의 아파트가 나오더라고요. 그때까지 믿고 싶지 않았어요. 매일 밤 그의 신음을 들으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설마가 잔인하게 현실과 만나더군요.”

정하의 고개가 테이블과 만난다. 보름달을 닮은 백열등이 점점 그 빛을 잃는다. 술잔이 비추던 정하의 모습이 사라지고 어느새 정하의 애인 얼굴이 둥둥 떠있다.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진다.

질리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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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

사월이면 네가 온다고 했는데. 이삭 끝이 단단해지고 가장 향긋한 봉오리 향내가 날 때. 분명히 약속했는데. 네가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닌데. 약속대로라면 세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손톱을 자꾸 뜯게 돼. 냉장고를 열고 멍하니 아스파라거스만 바라봐. 물을 담은 플라스틱 통에 딱딱하게 서 있는 초록색 기둥을. 이럴 거면 왜 그렇게 보관해두라 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돼. 사월 안에 오지 않을 거면. 살짝 데친 후에 랩에 둘둘 싸서 냉동보관 하라고 했으면 좋잖아. 진작 그랬으면 기다리지도 않았을 텐데.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데. 네가 오면 오랜만이야 하고 냉동고에서 랩에 싼 아스파라거스를 꺼냈을 텐데. 조리하기 어려운 식재료야. 아스라파거스는. 내가 필러로 아스파라거스 껍질을 벗기려 할 때마다 너는 내 손을 멈추게 했잖아. 그렇게 다루는 거 아니라고. 끝과 봉우리가 가장 맛있는 거니까 아래쪽 반 정도만 필러로 껍질을 벗기고 밑동에서 일 센티미터는 잘라내고 껍질을 벗기는 거라고. 사실 이 말이 이해가 안 돼. 나는 아스파라거스 껍질을 몽땅 벗겨 그 속을 알고 싶은데. 조리시간에 따라 씹히는 느낌도 다르고 맛도 다른 게 아스파라거스라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너의 부재가 느껴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곤 했어. 너는 나를 잠시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 올려둔 거라고. 네가 씹히는 게 하나도 없는 무른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싶은 거라고.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했어. 네가 그 말을 했을 때 바로, 나는 아스파라거스를 데치고, 랩에 싸서 냉동고에 넣어야 했어. “잠시 시간을 갖자. 4월 안에 돌아올게.” 다시는 녹지 않게, 최악에 온도로 꽁꽁 얼렸어야 했어. 꺼내면 다시 녹을 수 있으니까, 냉동고는 못 열게 자물쇠로 잠가 놓았어야 했어. 근데 나는 바보같이 네 말을 믿어버린 거야. 돌아올 거라는 네 말. 물을 담은 플라스틱 통에 넣어둔 아스파라거스가 흔들려. 냉장고 안에 바람이 부나? 눈이 시큰거려. 냉기를 너무 쇘나?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정성스레 하루에 한 번 물을 갈아줬는데. 네 봉우리가 단단해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한 시간밖에 안 남았어.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 거야. 가만히 앉아 이것만 보는데도. 째깍째깍 너무 잘 가. 조금만 있으면 5월이네. 그럼 너는 약속을 안 지킨 거고. 너를 나를 진짜 배신한 거네. 5월이면 나도 아스파라거스를 버릴래. 아스파라거스는 4월이 가장 맛있으니까. 너 없이 필러를 사용하는 것도, 오일을 두르고 팬에 올리는 것도, 자신 없으니까. 하루에 한 번 물 갈아주기 싫으니까. 싱싱하게 기다리기 싫으니까. 나도 잔인하게 시들어 버린 후에 새롭게 피어나고 싶으니까. 생장점 순 끝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좋다고, 네가 한 번 경고했던 내용이 이제야 생각나네. 플라스틱 통을 꺼내 초록색 기둥을 살펴보니 생장점 순이 벌어져 있어. 아, 그래서 네가 나를 떠난 거네. 아·······. 너를 사랑하는 동안 생

  • 질리지않아
  • 2012-09-28
내일

아파트를 나가면 바로 보이는. 분리수거함 앞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겨울에 보면 눈이 쌓여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쓰레기봉투들. 하얗게 잘 포장된. 꼭 크리스마스 날 산타할아버지가 건네줄 선물처럼. 하지만 가까이 가면 눈을 돌리게 되고 코를 틀어막게 되는. 그런 것들이 심장 한구석에 피라미드처럼 쌓이면 나는 설거지를 하게 된다. 그래, 분명히 그러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수도꼭지를 위로 올리고 물이 나오면 아버지가 때를 밀기 전에 탕에 들어가 몸을 불리는 것처럼 접시들을 대야에 담아놓으면 되는 것이다. 몇 분 후에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접시를 하나 들어 그것의 원형도 찾아볼 수 없게 거품만 잔뜩 묻히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수도꼭지를 위로 올려 그것의 원형을 찾도록 빡빡 거품을 씻겨주면 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목욕하는 것처럼 똑같이. “쨍그랑!” 하지만 오늘은 매일 밤 오는 쓰레기청소부가 분리수거함 앞을 그냥 지나쳤는지. 혹은 그것들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착각해선지. 마음 한구석 속 쓰레기가 그대로다. 검지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거품이 가득 찬 밥공기 안에 거품이 붉게 터진다. 누군가를 향한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이틀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심장 속에서 붉게 터져 오른다. 아프다. 심하게. 4. 항상 나의 성적에 붙는 숫자. “한성아. 너 성적 좀 올려야 하지 않겠니?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전교 4등·········.높은 등수이긴 하지만············.” “알아요. 선생님·········.” “이번이 마지막 시험인 거 알지?” “예.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 가 봐.” 선생님의 부름에 끌려가듯이 간 교무실에서 나왔을 땐 놀이공원에 고장 나서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는 기분을 느낀다. 조명은 무슨 일인지 다 소등되어 있다. 유일하게 빛나는 곳은 내가 남아서 공부할 교실이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다. 간신히 한 손으로 창가에 기대서 걷는다. 터벌터벌. 걸음은 내가 옮기는 것이 아니다. 옮겨지는 것이다. “이봐! 유씨! 무슨 일이야? 안색이 왜 이리 안 좋아?” 창명이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얹는다. 나보다 등수 높은 자식········. 혼곤한 정신이 맑게 트인다. “어····&m

  • 질리지않아
  • 2011-12-31
설원 속 자동차 한 대

하얀 무덤. 모두가 그곳을 그렇게 불렀다. 아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그곳에 들어가겠다고 유난을 떨며 도전을 해도 결과는 ‘실종’이란 두 글자만 남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 유난을 떨며 도전을 하겠다는 사람이 어느 순간 되어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황금! 그 설원 속 어느 동굴에는 황금이 있다는 지질학자들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주장이 언론과 TV에 처음 전파됐을 때 그곳을 향한 도전의식을 품지 않은 국민은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일단 이 같은 국민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에 정부가 사전답사를 하고 여행허가를 내릴지 혹은 금지할지 정하겠다는 거였다. 당연히 몇몇은 반대했다. 여행을 가는 것은 국민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 정부가 황금을 노린다고 질책하는 반대파들이 목소리를 크게 냈다. 하지만 찬성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찬성파는 위험지역을 가기 전 정부가 확인하는 건 필수라고 목소리를 크게 냈다. 결국 정부는 소규모의 탐험 조직을 그곳에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실종’이었다. 그 이후 정부는 몇 차례 더 그곳에 군인이나 이름이 알려진 탐험대를 보냈지만 결말은 항상 같았다. 그 이후 그곳은 속세에 의해 ‘하얀 무덤’이라 칭해졌다. 엄청나게 의외이지만 정부는 그곳을 여행 안전 지역으로 분류하고 여행을 허락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다. 어쨌든 정부의 여행 허락은 일반 사람의 마음속에 ‘황금주의’의 불꽃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실종’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일어났다. ‘유난을 떨며 도전하겠다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었다. 한 달에 실종자가 10명 안이면 적은 것이었다. 나도 어느 순간 ‘유난을 떨며 도전하겠다는 사람’이 돼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나오는 실종자 중의 한 명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회색빛으로 멍든 하늘, 지겹지도 않은지 끊임없이 내리는 눈, 그리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덮인 땅과 극한의 추위. 그 모든 게 그곳에 있다. ‘무덤’이라 할 만하다. 난 지금 이런 고통을 삼 일째 버티고 있다. 삼 일 전, 나는 자동차 지붕 위에 얹혀져 있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단지, 난 사흘 전 황금을 찾다 길을 잃었고 추위의 고통을 버티다 못해 쓰러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일어난 장소는 자동차 지붕 위였다. 물론 수많은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설원 위에 이 자동차는 왜 정차된 것일까. 나는 왜 쓰러져있었던 장소에서 눈을 안 뜨고 이런 자동차 지붕 위에 얹혀 있게 된 걸까. 내 짐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질문들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살아남는 것! 물론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황금이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이곳은 황금을 탐낼 곳이 되지 못한다. 속세가 '무덤'이라 칭한 이유가 있었다. 사흘 동안은 그럭저럭 살

  • 질리지않아
  • 20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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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반전이 좀 뜬금없는것 같긴 하지만 쉽게 몰입할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장님이 회장님이 되셨나요?

    • 2011-03-27 23:22: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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