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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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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1-03-30
  • 조회수 611

하, 하하. 하하.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밝고 아름답게 웃는지. 아니다, 누구나 알 수 있다. 누구나 나의 밝고 아름다운 웃음 속에 아픔과 슬픔이 서려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단,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엄마가 그립다. 세상에 엄마가 없는 사람도, 부모가 없는 사람도, 가족이 없는 사람도, 가족이 아니더라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그런 사람들 수도 없이 많은데, 항상 이럴 때면 나 혼자 왜 이렇게 아픈 걸까. 억울하다. 화난다. 이렇고 앉아 있지. 쿡.

어쩌면 나 혼자 슬퍼지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혼난 후 잠을 자면서 울 때 일부러 엄마가 자기 슬픈 거 알아주면 좋겠어서 슬쩍 눈물을 안 닦는 것처럼.

난 너무 너무 외롭고 아픈 아이인데, 표현만 하면 누구나 나를 안아주고 감싸줄 텐데, 일부러, 어린 아이처럼 나 혼자 아픈 척 하려고, 누군가 알게 되면 더 원망하려고.

 

그러다 만난 사람이 권현승, 내가 원하던 나를 사랑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차가운 녀석이 나한테 어벙하게 위로해 주는 게 그냥 좋았다. 권현승은 알아주는 좀 잘나가는 남자애였는데 엄청 차갑고 잘생기기로 유명했다. 근데 강당에서 혼자 엄마 기일에 울고 있던 나를 어설프게 어벙하게 위로해주던 권현승.

하, 남자라고는 아빠 밖에 몰랐던 내가 그런 녀석한테 눈을 뜨다니. 내가 생각한 내 모습과는 좀 다른데 지금 나는 더 밝게 웃는다. 물론 그 웃음의 반 보다 조금 더 많이는 가식일 것이고 그리고 아주 조금은 그 녀석 때문이 아닐까.

 

학교는 훌쩍 지나갔다. 그냥 교실 의자에 찌그려 앉아 지겹고 잘하는 애들만 바라보는 선생님은 싸그리 싹싹 무시해버리고 그냥 자리에 앉아 그 유명한 멍 때리기를 하고 있으면 된다. 너무나도 간단한 건데, 왜 남자 애들은 괜한 반항심으로 선생님께 대꾸를 하는 걸까.

여자 애들한테 먹히는 그 잘생긴 얼굴로 선생님 꼬시게? 큭.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난 정말로 이렇지 않았는데, 난 정말로 착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그런 너무나도 평범한 여자 아이였는데. 아빠가 사업에 미치지만 않았더라면.

난 너무 아빠가 좋은데, 아빠는 왜 나한테서 멀어질까. 할머니는 나보고 내 동생처럼 미국으로 건너뛰든지, 아니면 입 닫고 조용히 살면서 아빠를 괴롭히지 말란다. 아빠는 정말로 우울해 보이는데, 사업? 그래. 그 사업이라는 쓰레기 때문에 아빠는 너무 지쳐 보이는데. 그 쓰레기 때문에 엄마를 잃고 동생은 가 버렸고 나는 가식에 휩싸인 아이가 되었는데. 왜 아빠는 할머니는 돈, 돈, 돈에 계속 매이는 걸까. 언젠가 아빠가 그랬다. 나는 돈을 번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돈은 중요하다고. 돈은 소중하다고. 킥. 아빠, 나도 알아요. 나도 정말 잘 알아요. 그 돈 때문에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셨으니까.

 

하, 어느새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예쁘게 떨어진다. 나 원래 학교에서 운 적 없는데, 몰래 운적은 있어도 이렇게 32명 앞에서 대놓고 운적은 처음이네. 선생님 당황하셨나보다. 친구들은 더더욱 당황했나보다. 웃음 빼면 시체인 내가 울고 있으니까? 아니면 내가 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니까? 근데 한 명은 당황을 안 했다. 권현승. 아니다. 당황을 너무 많이 해서 얼굴이 굳어버린 거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보건실로 가라고 하시고 나는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내 뒤로 나오는 권현승.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너, 또 우냐?”

역시 어설픈 위로. 아니야, 위로가 아니야. 목소리가 무섭다. 화내는 걸까.

“울지 마. 하, 울지 마. 난 너 하나 때문에 태어난 사람이니까 울지 말라고.”

순간 당황했다. 뭐야. 뭐야. 난 너 하나 때문에 태어난 사람? 그럼 네가 날 좋아한다는 소리냐? 큭. 꿈 깨라. 이 놈아.

“저기, 네가 날 좋”

말을 하는데 갑자기 현승이의 어깨에서 너무나도 눈부셔서 바라볼 수도 없는 아름다운 날개가 나왔다. 그리고 그 날개로 내 눈물을 가려주는 현승이. 하, 뭐야. 나 이딴 환상이나 하는 여자였나?

“나, 너 좋아해. 근데 좋아하면 안돼. 왠 줄 아냐? 난 천사거든.”

“구라 하지 마.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그, 그 날개 하나로 내가 믿을 줄 알어?”

그 때였다. 내가 날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게 아니라 매달려 있었다는 게 올바른 표현이겠지. 현승이가 하늘을 날았고 나는 걔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중이다.

“야! 그래, 그래! 너 천사야! 그니까 내려줘. 너무 무섭다고!”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여기는 복도였는데 왜 갑자기 하늘이 나타났지? 우리 학교 복도에는 창문이 없는데. 그리고 뻔 하니 안에는 학생들과 선생님이 계시는데.

 

신비롭다. 꿈일까 하고 눈을 꾹 감았다 떠 보니 이상한 집 안. 하, 나 지금 진짜 꿈 꾸는 건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다시 눈을 꾹 감았다 떠 보니 여기는 처음 보는 학생들이 가득 찬 교실. 하, 도대체 이건 또 뭐야.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뜨니 다시 하늘.

“신기하냐? 여기가 네 존이다.”

뭔 소리야. 게임 할 때 쓰는 그런 존 말하는 건가? 그런데 왜 난 생각 밖에 못한다냐. 말은 안 하나? 설마 게임 속에 그런 주인공이 된 건 아니겠지.

“아, 아아. 뭐, 야.”

다행이다. 말은 할 수 있다. 아까까지는 안 됬었는데 참 특이하다.

“뭐긴, 네 존이라니까. 구경해. 편히 놀고. 참고로 여기는 바다다. 네가 숨 쉴 수 있는 건 내가나 눠준 호흡 때문이지. 고맙지 않냐? 내가 너 그냥 하늘로 끌고 올라가고 싶었는데 그냥한 번 봐줬어. 넌 조금 불쌍하거든. 눈동자가, 내가 말했잖아. 난 널 좋아한다고.”

그게 그거랑 뭔 상관이냐.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니까 난 바다에 있고, 존이라는 곳에 갇혀있으며 말하기가 불편하고 아는 애들 한 명도 없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엥? 내가 왜! 내가 왜! 억울하다.

“억울하냐? 네가 그렇게 이틀만 살면 내가 너만 왜 이런 곳에 갇혀 있는지 얘기 해줄게.”

한숨을 쉬어야 하나, 안도의 웃음을 지어야 하나. 잘 모르겠어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틀, 애매모호한 날짜구만. 이틀 동안은 너무 괴로웠다. 권현승 녀석을 원망하며 밤에는 몰래 울었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눈치를 실실 살피며 힘들었다. 이틀이 지나고 그 녀석을 만나기 위해 하늘로 갔다. 눈을 두 번 감았다 뜨자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야, 권현승! 너 이제 말해! 네가 왜 이러는데? 힘들어! 힘들다고. 다시 돌려놔!”

“힘드냐? 괴롭냐? 아프냐? 짜증나냐?”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입 아프게 뭘 자꾸 물어봐?!”

“그럼 여태까지는 어떻게 살았는데, 그렇게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짜증나는데 여태까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는데!?”

나보다 더 화를 내는 현승이. 지금이랑 여태까지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데 저렇게 화를 내지? 내가 뭐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왜 저러지. 왜 저러지.

“너 바보지. 지금 이 존이니, 하늘이니 뭐시기 하는 거 다 구라야. 바로 니 모습이야. 살짝 사람이랑 하늘, 그리고 존이라는 말 몇 가지만 끼워넣은 거지. 네가 이틀동안 너무 괴로워하던 그 네가 바로 평소에 너라고!”

순간 띵 하고 머리가 울렸다. 난 지금 뭘하고 있는 걸까. 난 왜 이러고 있었을까. 난!!! 왜

내가 아닌 채로 이렇게 괴롭게 살아왔을까.

 

그 순간 난 현실로 돌아왔다. 그 뒤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현승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엄마나 엄마가 시킨 사람이 현승이의 몸에 잠시 들어왔었나 보다. 정작 현승이는 기억 못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난, 현승이 말고 난 말이다. 지금 잘 살고 있다. 쿡. 매일 실실 웃고 친구들에게 좋은 소리만 하던 그 유예인 말고, 잘 웃지만 화내고 울 줄도 알고, 친구들 앞에서 충고도 하고, 친구들에게 팔짱도 먼저 끼는 그런! 진짜 유예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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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하울거리는 따스한 낮이다. 이 시간은 내겐 아주 편안하고 안전한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위험한 학교를 빠져나가야 한다. 가방이라기 보다는 내 짐들을 챙기고 교실 문 밖을 나선다. “어이, 하늘천! 어디 가냐? 좀 있다 음악선생님 오시는데.” “신경 꺼.” “음악선생님께는 네가 정신병원으로 갔다고 이야기 드릴게.” 유일하게 내가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저 남자 아이는 김승민. 물론 내가 걱정되서 말을 거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그냥 나를 놀리려고, 재미있으려고 하는 말일 것이다. 뒤에서 남자아이들이며 여자아이들이며 내가 돌았다는 듯 손가락을 머리 옆에서 빙글빙글 거리는 것이 창문으로 비쳐 어렴풋이 보인다. “천하늘. 어디 가는 거니? 손에 든 것들은 뭐야? 이사라도 가니?” 오늘 같은 날은 순탄할 줄 알았는데 무척 재수가 없다. 하필 음악선생님에게 걸리다니. 나를 보며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행 청소년이니, 가출한 학생이니 떠들어댈 것이 분명하다. 한 번 음악선생님을 째려보고는 교문 밖으로 성급히 뛰어나왔다. 다행이 나를 안 쫓아온 것 같다. 음악 선생님도 여느 아이들과 같이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겠지. 운동장은 텅 비어있다. 이 시간은 어느 반도 체육을 하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지켜보는 눈은 아주 많다. 항상 이 시간에 학교를 나가기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교무실의 선생님 두 분까지 나를 동정하거나 비웃는 눈으로 구경을 하고 있다. “어디 가?” 아무 생각 없이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신은형이라는 여자 아이가 갑자기 말을 건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런 표정은 처음 본단듯이 더 깜짝 놀랜다. “내가 여기 있는 줄 몰랐구나. 생각에 되게 깊게 잠겨있었나봐.” 신은형이 내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 아이의 눈을 쳐다 볼수가 없었다.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신은형과 나 사이에 흘렀다. “너, 눈에 되게 무서운 것이 담겨있는 것 같아.” 가려는데 신은형이 이런 말을 하자, 순간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이 아이가 내 눈을 읽은 걸까.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무슨 말이야. 무서운 거라니.” “그냥, 그냥 난 사람 눈을 잘 보거든. 근데 네 눈에는 네가 지금 매우 두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눈이 막 흔들리잖아. 그리고 그 눈동자 안엔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어.” 그 아이가 두렵지는 않았다. 그냥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안다는게 오히려 더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보다 더 심한 따돌림을 당할 것이다. 난 내 동생과 함께 입양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집을 나가시고 아빠는 돌아가셨다. 우리는 고아가 되었고 아무도 나와 동생을 받아주지 않자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7살쯤 어떤 부부가 나와 내 동생을 같이 데리고 갔다. 정말 우리한테 잘해 주었는데 아저씨가 직

  • 201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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