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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 작성자 그로잉
  • 작성일 2013-07-22
  • 조회수 542

번데기

‘번데기 사려~ 번데기 사려~’

어김없이 들리는 이 소리. 내가 정말 싫어하는 소리다. 학교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이 소리가 들리면 제곱근에 집중되어있는 나의 신경이 분산되어 이내 번데기에 몰리게 된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번데기를 파는 지 원. 번데기를 계속 생각하다보니 과학시간에 배웠던 변태가 생각난다. 그땐 변태라는 단어 하나에 까르르 웃는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음침하기 짝이 없는 학교에 음침한 표정만 하고 있는 음침한 남자아이들만 40명이 넘는 좁은 교실에서 음침한 선생님과 함께 몇 시간씩 수업만 하고 있는데 말이다.

순수했던 시적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고 있는데 내 책상에 그늘이 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위로 올려다보니 선생님께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설명을 하면 열심히 따라 적어야지 멍하니 그냥 앉아있으면 어떡하니? 너희들 이제 중 3이야. 이렇게 공부하면 고등학교 못가.”

또 시작 됐다. 지금 열심히 연설을 하고 계신 저 분은 이 현미 쌤이다. 수학 담당이신데,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구에 있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하면서 모든 것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고 매시간 연설하는 쌤이다. 그러나 이런 연설을 한다고 정작 수업진도를 나가는 시간은 적다. 우리들 사이에서 ‘이 마리아’ 라고 통하는데 너무 자신의 종교에 빠진 나머지 학교에 와서 종교를 전파하고 다니신다. 더군다나 선생님이 처음 수업을 하실 때 자신을 ‘이 마리아’ 라고 부르라고 하신 바 있다. 처음으로 저 선생님이 우리에게 해 준말은 자신의 세례명과 종교이야기다. 내가 무교라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저렇게 종교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가르치기는 또 얼마나 못 가르치는지, 그냥 교과서만 죽 읽고 지나간다. 그래서 내 친구는 ‘이 마리아 앞에서 선생을 논하지 말라.’ 라는 격언까지 남겼다. 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 수학책 표지에 적어 뒀다. 나중에 걸리면 끝장이겠지만 아직까진 안 걸렸으니까, 뭐.

“5,4,3,2,1,0,땡!”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종이 울렸다.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다. 나는 아무리 시계를 봐도 잘 못 맞추겠던데 말이다. 그래도 이 마리아 쌤의 연설이 끝나게 되어 다행이다. 과학 시간이 7교시라서 이 마리아 샘이 나가기도 전에 우리는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이 마리아 쌤은 불쌍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나가버렸다. 아무도 자신의 연설을 듣지 않고 있었다는 게 증명됐는데 화도 내지 않고 도리어 동정하는 표정을 짓다니, 저 샘도 참 대단했다. 하긴, 남중에 다니는 여 샘이라면 대단하지 않으면 안 되긴 했다. 얼굴이 못생긴 샘이라면 더욱 더.

“인사하자.”

우리 담임은 늙은 할아버지 인데 7교시가 끝난 뒤 정확하게 3분 뒤에 와서 30초 만에 종례를 끝냈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서 종례시간에 알려주어야 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고 종례시간 때는 인사만 한다. 그 덕분에 우리 반은 언제나 1등으로 마친다. 그러다 보니 이내 우리는 담임만 들어오면 인사만 하고 교실을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담임도 어느새 교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는 말은 ‘인사하자’가 되어 버렸다. 내가 정말 담임은 잘 만난 것 같다.

“최민석, 오늘 시간 있냐?”

이렇게 묻는 애는 친구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친구, 김석민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김창식이 같이 왔는데, 둘은 우리 반 공식 남남 커플이다. 둘은 아무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애를 써 봐도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담임은 쿨하게 저 둘을 짝으로 붙여놓았다.

“우리 오늘 만난 지 22일 되는 날이거든.”

“그래서 뭐 어쩌라고?”

“투투데이 몰라? 우리가 투투데이를 맞이하여 파티를 열었는데 초대해주겠다고. 장소는 PC방! 빨리 가서 투투데이 기념 롤 한판 어때?”

“너희들 끼리 가서 하면 되지 왜 날 끌어 들이냐?”

“에이, 왜 그래? 니가 있어야 게임이 되지. 그러지 말고 우리 빨리 가자.”

“오늘 시간 없으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너희들 끼리 가라.”

그 말만 던져놓고 난 빨리 교실을 나왔다. 아무리 내 친구 라고는 하지만 게이들과는 같은 장소에 못 있을 것 같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남자들의 소굴에서 3년을 지내더니 미친 애들이 좀 많다. 그래서 게이 커플이 좀 있다, 아니 많다. 걔들 옆에 있으면 나까지 물들까봐 무서워진다. 더군다나 일주일에 한번, 학원을 아무데도 안가는 이 금쪽같은 수요일을 게이 녀석들과 함께 보낼 순 없다. 롤을 못 한 것은 좀 아쉽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지 뭐.

빠른 걸음으로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컴퓨터를 켜는 일이였다. 그리고 나는 곧장 한글 2007 을 켜서 내가 쓰던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 쓰는 건 똑같은데 공부는 왜 그렇게 싫어하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소설쓰기와 공부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공부는 일방적으로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기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들이 공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행동들은 정성을 다해서 별 쓸모  없는 지식들을 주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다르다. 소설을 쓰는 것은 내가 직접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소설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 슬픔,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다. 비록 이때까지 내가 쓴 몇 안 된 소설들은 인터넷 소설 쓰기 카페 아이들 몇몇이랑 부모님과 문학 공모 심사위원들 몇 명밖엔 없지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판타지 분야다. 나는 이때까지 추리 소설만 고집해서 쓰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판타지 분야를 택했다. 추리 소설을 쓸 땐, 판타지 분야가 정말 쉬어 보였는데, 막상 써보니 쉬운 것이 아니었다. 뭔가 참신한 아이디어가 잘 생각나지 않아서 한 장도 다 못 쓰고 턱턱 막히는 경우가 다분했다. 창의성을 키우는 활동을 좀 해야겠다.

오늘은 1장 반 정도를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가서 기분이 좋았는데 이내 또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구상하려고 스케치북과 볼펜을 들고 생각나는 것을 아무거나 끼적이고 있었다.

“야, 최민석!”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서 잠시 멍 하니 있다가, 그제야 등이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엄마의 기습 공격이었다.

“너 또 소설 쓰고 앉아 있지?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정말. 너 지금 중3이야, 어쩌려고 이래? 인문계는 가야 될 것 아니야! 오늘 같이 시간 남는 날 그 뭐냐, 그 스스로 학습 좀 하면 어디 덧나? 너 땜에 엄마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정말!”

나는 재빨리 컴퓨터 왼쪽 상단의 저장 버튼을 누르고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조용히 가방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방금 맞은 등이 따끔 거렸다. 엄마가 날 째려봐서 그런지 보통보다 더 따끔한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 수학책을 꺼내 미지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이상한 나라에 다녀왔던 앨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각종 수학 기호가 똘똘 뭉쳐 날 따돌리는 기분. 모든 아이들이 수학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면 이세상의 왕따는 없어 질 것이다.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데,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수학책을 옆으로 제쳐두고 얼른 아이디어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무리수의 세계에서 헤매던 주인공이 피타고라스를 만나 수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밝혀내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러나 곧 50점 안팎을 넘나드는 내 수학성적을 기억해 나고는 그 페이지를 그냥 찢어 버렸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수학 성적 때문이 아니라 쓸 시간이 없어서라고 스스로 변명했다. 비참해 지지 않으려고 그런 말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 보니 더 비참해 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다시 미지의 세계에 빠질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한번 샌 생각은 좀처럼 다시 모아지지 않았다.

“야, 최민석!”

“아, 왜?”

“아니다.”

그러고는 엄마는 다시 자기 시작했다. 남의 생각은 뚝 끊어 놓고는 다시 잘 자는 엄마를 보자 괜히 심술이 났다. 우리 엄마는 항상 그랬다. 한참 잘 자다가 문득 깨어나면 항상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안 잔다는 것을 확인 하고 엄마는 다시 잔다. 엄마는 내가 자거나, 공부하거나, 그 둘 중 하나만 하는 줄 아나보다. 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착한 아들이니까 엄마가 원하는 대로 그 두 가지만 해야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나는 조용히 수학책을 덮어 놓고 잠의 세계로 빠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지의 세계보단 잠의 세계가 훨씬 더 달콤하다는 것이다.

“야 최민석, 야 일어나!”

엄마의 소리가 내 귓구멍 속에 들어왔다. 수업시간에 들리는 선생님의 자장가 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6시 반이였다. 엄마가 고등학생인 누나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항상 일찍 깨운다. 도움 되는 일은 일체 하지 않는 정말 대단한 누나다. 나는 눈을 뜨지도 않고 자기에 앉아서 밥을 우겨 넣었다. 그건 날 보고 누나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이러는 게 누구 때문인데. 나는 반찬이나 국은 본 척도 하지 않은 채 얼른 침대에 가서 다시 누었다. 학교 가는 것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한 삼십 분 쯤 남았다. 저렇게 잠이 많아서 어쩌려고 그러냐는 잔소리는 거대한 이불 벽이 물리쳐 주었다. 나는 곧 다시 잠의 세계로 돌아갔다.

현실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삼십 분 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삼십 초는 눈 깜빡 할 사이에 지나갔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욕실로 가서 찬물로 짧은 머리를 대충 씻었다. 짧은 머리는 싫어하지만 그래도 장점을 꼽자면 금방 씻을 수 있다는 거였다. 머리를 감고 난 뒤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다른 손으로는 양치질을 했다. 원래 남자들은 멀티플레이가 안되는데 신기 하게도 나는 아주 잘 되었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쟁에서 많은 경력을 쌓아서 인 것 같다. 나는 3분 양치질보단 3초 양치질에 더 가까운 양치질을 하고 초스피드 세수를 했다. 엄마는 이렇게 대충 씻어도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 없다며 축복받은 얼굴이라고도 했다.

다행히 책가방은 어제 저녁에 챙겨 놓아서 집에서 좀 더 빨리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덜 말라서 촉촉한 머릿결을 뒤로 하고 엄마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뒤, 열심히 자전거 바퀴를 돌렸다. 걸어가도 될 만한 거리지만 오늘 같이 바쁠 땐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다. 물론 걸어가는 날 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날이 더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열심히 자전거 폐달을 밟은 끝에 교문이 닫히기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한 선생님이 여전히 앞에 서서 복장 불량 학생들을 잡고 있었다. 그 선생님을 자세히 보니 이 마리아 쌤 이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마리아 쌤은 몰아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단 한명의 복장불량학생을 놓치지 않고 일주일간 남아서 청소를 하게 하는 쌤이었다. 내방 청소도 겨우겨우 하는데 일주일간 남아서 학교 청소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나는 교문에 들어가기 전에 내 모습을 점검했다. 물기가 다 마르진 않았지만 길지 않은 머리. 줄이지 않은 교복. 왼쪽 가슴에 달려있는 파랑색 명찰. 오른쪽 손에 들고 있는 신발주머니와 주머니에 쑤셔 박혀있는 자전거 통학증, 자전거 핸들에 걸려있는 헬멧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점검이 다 된 나는 당당하게 교문을 향해 전진했다. 내가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교문은 잠겨 버렸다. 일초의 차이로 들어갈 수 없게 된 몇 아이들의 신음소리를 뒤로 하고 난 이 마리아 샘 옆을 지나갔다. 내 모습은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 불안했다.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반으로 들어가 버린 처라 아이들 사이에 숨어서 들어 갈 수도 없었다. 물러 숨어서 가 봤자. 이 마리아 샘은 다 찾아낼게 뻔하지만. 나는 빠른 걸음으로 이 마리아 샘은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날 평소보다 더 자세히 보는 것 같았다. 내 몸을 스캔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공항 검색대에 오른 물건들이 생각났다. 그 물건들도 나랑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마리아 샘 옆을 지나자마자 나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 했지만  2차 관문이 남았다. 교문이 닫히는 시간은 8시 15분 5분n안에 5층까지 뛰어 올라가서 자리에 앉아야지만 2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이 마리아 샘 때문에 괜히 쫄 아서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다. 2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왠지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한 번에 두 계단씩 올라갔다. 5층까지 이렇게 올라가다가는 다리에 알이 베길 것 같았다. 뭐 더 배길 알도 없지만 말이다. 나는 인간이 낼 수 없는 초스피드로 5층까지 올라갔다. 아마 우사인 볼트와 계단 빨리 올라가기 시합을 했다면 내가 이겼을 것이다. 5층까지 빠르게 올라갔는데도 반은 마냥 멀게만 느껴졌다. 내 반은 3학년 1반이라서 복도 반대편까지 뛰어 가야 한다. 나는 전력질주를 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마침 조례하러 가시는 한자 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쌤한테 잘못 걸리면 끝장이다. 일단 걸리면 빗자루로 1대는 기본이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1대만 맞아도 멍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전려질주를 하는 걸 포기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한자 샘이 바로 우리 옆 반이라 반에 들어 갈 때까지 쌤 눈치를 보면서 경보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운이 안 좋은지 원.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반으로 향하고 있데 문득 게시판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공고

제 7회 청소년 문학 경연 대회

접수기한: 5월 1일~5월 20일

분야“ 소설, 기행문 (1편 이상) 시 (3편 이상). 길이 제한 없음.

접수: 인터넷 접수.loveliterature@naver.com

대상 : 현재 대한민국 중, 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

장르 : 시, 시조, 단편소설, 수필, 아동문학(동시, 동화)

작품주제 : 자유롭게 선택

○ 시상내용 / 장르별 각 1명

- 당선 4명 상장 및 부상(60만원)

- 당선 1명 상장 및 부상(60만원)

○ 당선작 발표 및 시상 : 8월중 개인 통보

○ 주의사항

- 학생은 학생증 사본이나 재학증명서와 선생님 추천서를,

학생이 아닌 청소년은 주민등록증을 복사하여 첨부할 것

(단, 주민번호 뒷자리는 가려도 됨)

- 표절되었거나 타 기관에 2중으로 작품을 응모하였거나 이미 다른 단체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 작품일 경우에는 당선 이후라도 상을 취소함.

(수상이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민사상 법적 책임은 본인 및 지도교사에게 있음)

- 제출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음

- 원고 표지에는 아래 내용을 첨부하여 제출할 것

공고 앞에서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가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지각에 유독 민감한 담임이 잔소리를 할 때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기만 했다. 내 머릿속은 오직 문학 경연대회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내 육체는 담임 앞에서 혼나고 있지만, 내 영혼은 어느새 빠져 나가 문한 경연대회 공고 앞에서 공고를 열심히 뜯어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선생을 무시한 파렴치한 학생이 되어서 1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담임이 할아버지라 그런지 벌주는 방법도 옛날식이다.

옛날 같으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우울해 했겠지만 나는 지금 그럴 시간이 없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 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지조차 몰랐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문학 경연대회에 관한 것 밖에 없었다. 내가 취미로 써 놓은 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공모전에 내기는 다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새로 소설을 한편 쓰기로 결정했다. 2주 정도 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지체 없이 바로 수학 노트를 꺼내 뒷장을 쭉 찢고 소재를 정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미리 정해놓은 소재가 몇 개 있어서 일이 좀 수월했다. 수첩에다가 기록해 놓은 소재들을 찢은 공책에 적고 그것을 좀 더 부풀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소재들이 몇 개 있었다. 청소년 실종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과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 2개가 눈에 들어왔다. 추리소설은 내가 즐겨 쓰던 거라 한층 쉬울 것 같고, 후자 건 내가 요즘 엄마랑 많이 싸워서 내 이야기를 쓰면 될 것 같았다. 나는 뭘 쓰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게이 두 명이 나에게 다가 왔다.

“야, 너 뭐하냐?”

“그래, 너 어제 우리 투투데이도 안 챙겨 주더니, 너무한 거 아니야?”

“시끄럽다, 게이들아. 오늘은 이 형님이 바쁘시단다.”

석민이가 내 책상에 있던 종이 쪼가리를 채갔다.

“야, 너 또 소설 쓰냐? 전에 쓰던 거 하나 있었잖아. 그거 다 썼어?”

“아니, 그건 나중에 쓰고 공모전 나갈 걸로 하나 다시 쓰게.”

“공모전?”

그럼 그렇지. 얘들이 그 공모전 공고를 봤을 리가 없다.

“어, 왜 게시판에 있었잖아.”

“그런가, 그럼 너 샘한테는 말 했어?”

창식이의 말에 난 순간 멍 했다.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재학증명서와 선생님 추천서를 첨부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께 공모전에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하긴 그게 필요 없으면 굳이 학교에서 공고를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담당 선생님이 누구지? 담임한테 가야되나?

나는 갑자기 신들린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와 교무실로 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공모전 신청을 할 생각이었다. 대책 없는 저 게이들도 좀 피할 겸 해서 말이다. 뒤에서 게이들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난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유리창 밖으로 문 바로 옆자리인 담임 자리에 담임이 앉아 있는 걸 확인하고 문을 여는 순간 담임이 날 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간고사 시험 출제 기간은 교무실 출입 금지다.”

언제 들어도 관심 없다는 투의 무뚝뚝한 말투는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2주 뒤에 지필고사가 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바짝 얼어 있는 나에게 담임은 밖으로 나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쓸 때 없이 긴장해서 담임이 밖으로 나오자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담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공모전에 나갈려고요.”

“공모전?”

“네, 저 게시판에 걸려 있던 거요.”

“지필고사가 2주 뒨데 괜찮겠냐?”

정곡을 찌르는 담임의 말에 난 대답을 못하였다. 사실 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우리 엄마는 성적에 민감한 편이다. 무리한 요구는 하시지 않으시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신다. 그런데 지금 공모전에 나가게 되면 성적이 떨어질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까먹고 있었던 중간고사 때문에 나는 한참동안 멍을 때리고 있었다. 담임도 당황한 나의 얼굴을 읽으셨는지 가만히 기다려 주셨다. 담임의 배려 덕분에 나는 곧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가게 해 주세요.”

난 내가 내린 결정을 얼른 말하고 마음속으로 제발 담임이 허락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역시 내가 존경하는 무관심의 지존, 담임이었다. 담임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신청서는 종례 할 때 주겠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선생님들의 아지트이 교무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마터면 못 나갈 뻔 했다. 이미 내 머릿속은 소설생각으로 가득 차있는데 여기서 그만두라고 하셨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째 뜬 나에겐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엄마한테 들키지 않고 공모전에 참가하기!

공모전에 나가는데 허락을 맡아 놓고도 어떻게 엄마한테 들키지 않고 소설을 쓸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한참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적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내 눈앞에 닥쳐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반으로 들어갔다.

끔찍하게도 다음은 이 마리아 샘 시간이었다. 내가 거듭 강조하지만, 이 샘은 절대 만만한 샘이 아니다. 다른 선생님이 그냥 폭탄이라면, 이 샘은 우주를 날려버릴 만한 핵폭탄이다. 이 마리아 샘은 1반부터 6반 까지만 수업을 들어가는 데, 뒷반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 욕을 하면서 재잘거리면 난 그냥 조용히 옆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이 마리아 샘 수업을 듣는 아이들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푹 쉬었다. 뒤늦게 자리에 앉은 내 짝꿍도 다음 시간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고, 내 친구 게이들은 대놓고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아줌마 샘이 막 나가는 남중의 학생을 이렇게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주 일 것이다.

아이들이 절망의 도가니에 빠져 있을 때 마리아 샘은 뒷문으로 당당히 들어왔다. 실장의 차렷, 경례 소리에 우리는 혼이 빠져있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 마리아 샘은 들어오시자 말자 날 찾았다.

“여기 최민석이 누구고?”

“전데요.”

“니가 최민석이가. 니가 공모전에 나간다고? 시험이 이주 전인데 뭔 짓을 하는 거야?”

나는 공모전에 나가는 일을 ‘짓’으로 평가하는 이 마리아 쌤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쌤은 인상을 쓰는 내 얼굴에 신경을 쓰지도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 지금 뭐가 뭔지도 모르고 희희낙락거리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공부가 젤 쉬워.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농사 지어봐서 알잖아. 내가 다 해봤다니까? 한여름에 밭에 나가서 고추 따는데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고추가 내 키보다 더 높아. 공기도 안 통하는 답답한 데서 몇 시간이고 계속 서서 일하면 땀이 온몸을 적신 다니까? 내가 그거 안 할라고 공부했잖아요.”

언뜻 듣기에 새겨들을 만한 좋은 이야기지만 우리는 저 이야기를 열 번도 넘게 들었다. 들어오는 시간마다 반복 재생되는 저 이야기에 진절머리가 난다. 아마 그 뒤에 이야기는 자신의 부모님들의 교육 방침에 대한 이야기고 그 뒷이야기는 자기가 학창시절에 돈 많아 과외로 공부해서 항상 1등 하던 부잣집아이를 자신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 꺾을 수 없었다던 이야기 일 것이다.

듣고 또 듣고 또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소설을 구상하던 공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쉬는 시간에 했던 제재 선택을 계속했다. 시간이 별로 없고 중간고사도 준비해야 하기도 해서 써 놨던 것을 수정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중간 중간 자투리 시간과 이 마리아 샘의 시간을 활용하면 소설을 완성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길이 제한이 없으니까 짧지만 속이 꽉 찬 소설을 쓰면 되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나는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엄마에게 편지로 나타내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주제를 선택하고 지체 없이 이야기 구상에 들어갔다.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선택해서 살을 붙이면 될 것 같았다. 끝에는 그 편지를 본 엄마가 아이에게 답장하는 이야기도 몇 가지 적기로 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는 이야기 구상에 몰두 했다. 나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소설 쓰기의 과정 자체를 즐겼기 때문에 구상하는 시간조차도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이 마리아 샘의 목소리는 내 귀에서 튕겨 나간 지 오래다. 그래서 당연히, 이 마리아 샘이 나에게 오는 것도 몰랐고 게이들이 나에게 신호를 주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마리아 샘의 기습 아닌 기습 공격을 받았을 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샘은 내 옆으로 와서 내가 쓰던 공책을 획 낚아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시험 2주 남겨 놓고 공모전 나간다는 것에서 모자라서 이젠 수업시간에 소설을 쓰나? 이건 압수다. 그리고 너희 부모님께도 전화 하는 줄 알아라. 어디 선생님이 수업하는 데 대놓고 딴 짓을 해. 그것도 45분 내내.”

하루 종일 머리가 띵했다. 그 뒤에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이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한 것 같기도 한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얼이 빠진 채로 수업 듣고 필기하고 밥 먹고 또 수업 듣고.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담임이 1분 종례를 다 마치고 나를 불렀을 때, 그제 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른 담임을 쳐다보자 담임은 나보고 복도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현미 선생님께 얘기 다 들었다. 45분 내내 뭘 적기에 필기하는 줄 알고 칭찬해주려고 갔더니 소설을 쓰고 있었다고 하시더구나.”

담임의 냉랭한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재학증명서와 선생님 추천서를 받기는 그른 것 같았다.

“이현미 선생님이 직접 부모님께 전화 드린다고 하시더구나. 어째 뜬 여기 재학증명서와 추천서. 너의 선택을 존중해서 주는 거란다. 부모님과 얘기하서 나갈지 안 나갈지 결정하도록 해라.”

담임이 추천서랑 재학증명서를 내밀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번 공모전에 못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추천서랑 재학증명서를 받다니, 일단 반은 성공한 셈이 아닌가! 나는 담임이 다시 가져갈까 싶어서 그것을 낚아채듯 받고는 90도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난 담임을 신처럼 받들기로 결정했다. 이제 담임이 뭐라 하든지 난 시키는 데로 다 할 거라고 마음먹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추천서를 들려다 보며 걸어가고 있는데 이 마리아 쌤을 만났다.

“야, 니 뭐하노?”

“집에 가는 데요.”

“니, 엄마께 전화 해 놨다. 그렇게 알고 내일까지 반성문 한 장 써와.”

이 마리아의 말이 내 기쁜 마음에 재를 뿌렸다. 추천서랑 재학 증명서를 받아 너무 기쁜 나머지 이 마리아 쌤이 엄마한테 전화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용납 못하는 건 성적이 내려가는 것뿐만 아니라 선생님께 지적 받는 것이다. 그런 엄마가 이 마리아 샘의 전화를 받았다면 엄마는 정말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내 발걸음이 멈췄다. 엄마랑 또 한바탕 싸워야 할 것 같았다. 잘못하면 공모전에 다시 못 나가게 될 지도 몰랐다.

나는 한걸음, 한걸음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내 스스로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이 여겼다. 하필 오늘 우리 엄마가 쉬는 날이라 집에서 내가 오기를 벼르고 있을 건데 말이다. 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내 마음도 모른 채 우리 아파트는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의 살기가 여기까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안 들어가고 노숙자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차서 5층 버튼을 눌렀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내 귀에는 소파 한 중간에 앉아 있는 엄마의 귀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소리로 들렸다. 나는 조용히 들어오는 걸 포기했다. 나는 현관에서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잘못을 할수록 당당해야 덜 혼난다는 나만의 법칙이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냉담했다.

“너 이리 앉아 봐!”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엄마와 마주보고 앉았다.

“학교 선생님한테 문자가 왔더라. 수업시간에 소설을 쓰고 있었다고.”

“그 샘이 좀 이상한 샘이야. 솔직히 수업시간 내내 잔소리만 하지 가르쳐 주는 건 한 개도 없다고. 차라리 인강 듣는 게 더 낳겠다.”

나는 억울하다는 말투로 엄마에게 이 마리아 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갔다. 수학 담담 샘인데 아주 이상하다고. 매일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고.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잔소리 뿐이었다.

“그래도 들어! 아무리 이상하다고 한들 너보다 더 많이 아시는 분이셔! 수업 안 듣고 이상한 짓 하고 있으면 시험은 어떻게 칠 건데? 당장 그 짓 멈춰라. 한 번만 더 이상한 짓 하다가 걸렸다가는 죽을 줄 알아!”

엄마는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수업시간에 다시는 ‘그 이상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원했다. 하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난 ‘이상한 짓’을 한 적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잔소리 좀 들어도 참으려고 그랬다.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한건 누가 뭐래도 잘못이다. 선생님이 이 마리아든 아니든 그건 상관있지 않다. 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이상한 짓’으로 치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이 그리고 또 계속되는 공부가 내 숨통을 막으며 다가오고 있는데 유일하게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소설을 썼던 그 시간뿐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서 미칠 것 같은데 유일하게 지겹지 않았던 것은 소설뿐이었다. 엄만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 단 1초 만에 ‘이상한 짓’ 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속삭이듯 엄마에게 말했다.

“이상한 짓 아니야.”

“뭐?”

“이상한 짓 아니야. 이상한 짓 아니라고! 엄마가 뭔데 그렇게 말해? 엄마가 내 심정을 알아? 엄마가 언제 한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 본 적 있었어?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물어 본 적 있었어? 엄마 나한테 공부만 하라고 그러지. 내가 무슨 공부하는 기계야?”

“야. 너 왜 그래?”

“이상한 짓?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이상한 짓이야? 숨통 막혀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숨 셔 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해? 공부? 나도 잘하고 싶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내가 즐겨하는 일이 공부하는 거면 얼마나 좋아.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아니잖아. 엄마가 성적 떨어 졌다고 잔소리 할서 정말 짜증나서 미칠 것 같을 때 난 그거 다 잊으려고, 다 툭툭 털고 일어나려고 이상한 짓이나 하고 다녔어. 정말 미안한데, 난 그냥 이상한 짓이나 하고 살련다.”

날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몰라.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한 건 내 잘못이니까.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생각할 지도 몰라. 게이들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놀려대겠지. 하지만 참을 수 없어. 이상한 짓이라니.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엄마와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꽤 미안한 표정이었다. 내가 소설 쓰는데 투자한 열정을 아시니까. 그래도 우린 서로 사과하지 않았다. 엄마가 사과해 버리면 내가 잘못한 것들은 사라지니까 그러시는걸 알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나는 게이들의 방해를 뚫고 쉬는 시간 마다 소설을 썼고, 집에서도 학원가기전 소중한 30분을 투자해 기한 내 소설을 다 썼고, 공모전에 냈다 .후련했다.

시간이 지났다. 그 공모전 글은 워낙에 빠르게 쓴 거라 상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난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달라진 건 있다. 이 마리아 쌤은 점점 더 싫어졌고 담임 쌤은 점점 더 쿨해졌고, 난 엄마 앞에선 절대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8월이 되었고, 나에겐 전화가 왔다.

“청소년 문학경연 대회에 참가 하셨죠? 당선 되셨습니다.”

“네?”

“자세한 내용은 문자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문자를 확인했고, 나중에 상을 받았다. 당선이 된 내 작품을 보고 우는 엄마를 보고 비로소 난 정신을 차렸다.

 

 

제목: 엄마에게 (최민석)

1

엄마! 나 엄마 아들이야. 이렇게 편지 쓰는 거 처음이다, 그지?

요새 우리 자주 싸우는 것 같지 않아? 나 어릴 땐 엄마가 날 정말 귀여워 해 줬는데. 엄만 기억 안 나지? 근데 요즘 엄만 내가하는 건 다 싫어하는 것 같아. 엄마가 날 한번 째려보면 나 무서워. 내가 또 뭐 잘못했나, 싶어.

차라리 내가 자라나지 않았으면. 내가 계속 어린아이로 있었으면 엄만 계속 날 귀여워 해줬겠죠?

엄마, 내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1시쯤에 번데기 장수가 우리 학교에 와. 그래서 ‘번데기 사려~’ 만 골백번은 더 외친다? 수업시간에 집중안하고 무슨 생각 하냐고 혼내지만 말고 일단 좀 들어봐요.

번데기는 계속 잠만 자. 지켜보는 어른 나비가 아무리 답답해해도 그냥 잠만 자. 그러고 나서 때가 되면 잠에서 깨어나고 아름다운 나비가 돼. 그런데 잠만 깬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 단단한 껍질은 깨부수고 나와야 진정한 나비가 되잖아? 근데, 껍질을 깨는 과정에서 누가 도와주기면 나비는 죽고 말아. 날개에 힘이 붙지 않아서래. 신기하죠?

나도 번데기가 되고 싶어. 잠만 자는 것 같지만 나비가 되기 위해 힘을 기르는 번데기. 도움 없이 스스로 성공하는 번데기 말이야. 그러니까 지켜봐줘요. 못마땅해도 그냥 지켜봐줘요. 힘을 기르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해줘요.

엄만 나보고 항상 말하지? 엄마가 더 오래 살았으니까 더 편한 길로 인도해 주겠다고. 나만 따라오라고.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엄마가 없어지면 어떡해? 날개에 힘이 없는 번데기처럼 되어버리면 난 어떡해요?

약속할게요. 우리 학교 앞에서 팔려나가는 번데기처럼 되지는 않을게요. 그 전에 엄마한테 도움을 청할게. 그러니까 그때까진 응원 좀 해줘. 충분히 힘을 비축해서 단단한 껍질을 뚫고 성공할 수 있도록, 내 옆에서 응원해줘요.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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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험을 망쳤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정말, 어쩌다보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시험을 쳤고 거짓말처럼 15번을 풀고 있을 때 종이 쳤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2학년의 첫 시험은 끝이 났다. 시험이 끝난 학교는 썰렁했다. 친구도, 선생님도 모두 시험이 끝나고 찾아온 황금 휴일을 을 맞으러 학교를 떠나 집으로, 휴가지로, 시내로 나갔겠지. 하지만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언제부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놓쳐버렸는지. 하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엔 풀다만 수학 문제들이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였다. 시험 결과를 묻는 독촉 전화겠지. 내 핸드폰 화면에서 ‘엄마’라는 글씨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 벨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받았다. 시험결과를 묻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난 그냥 그 자리에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란 존재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물이 수증기가 되어 사라지듯이, 그렇게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조용한 전화너머의 나의 상태를 알아 챈 것일까,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행이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어쩌다 나는 시험을 망쳐버린 걸까? 어쩌다 나는 문제를 번 까지 풀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다 나는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것일까? 그러다 문득 나와 같은 점수를 맞고는 저번보다 올랐다고 좋아하던 내 짝꿍이 생각났다. 그 아이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다르게 만든 것일까? 언제부터 나는 이 점수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을까? 그 아이는 나와 초, 중, 고를 같이 나온 10년 지기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10년 째 알고지낸 친구이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그 아이를 ‘비교상대’로 두지 않은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말하자면 나의 비교상대에서 탈락한 것이다. 중학교를 거치면서 나와 그 아이의 차이는 두드러졌다. 나는 주로 맨 앞줄, 그 아이는 주로 맨 뒷줄에서 수업을 들었다. 나는 주로 학원에 있었고, 그 아이는 주로 시내에 있었다. 나는 주로 공부이야기를, 그 아이는 주로 영화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10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먹한 것은 당연한 일 이였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친구였다. 공부벌레, 전교1등, 엘리트, 계산기, 천재. 나를 따라다니던 별명 중에서는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진저’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 아이다. 얼굴이 까매서 영화 ‘슈렉’에 나오는 생강빵과 피부색이 같다는 이유였다. 내가 가진 별명 중에 가장 아끼는 별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나의 성적과 관련되지 않은 별명이었다. 정말 나를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그 별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집에 와서도 괜히 실실 웃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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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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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내

    어색한 수식어가 붙은 문장이 없어요. 정직한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요. 주인공과 엄마와의 관계가 좀더 드러나면서 갈등이 명확했다면 마지막 편지가 주는 감동도 더 크지 않았을까요?

    • 2013-07-28 23:00:05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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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MH

      끝에 좀 급하게 마무리 했나봐요 충고 감사합니다!!

      • 2013-08-02 16:40:17
      B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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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