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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글 8월 4주 주장원 발표

  • 작성자 김보영
  • 작성일 2013-08-26
  • 조회수 474

당신의 뿌리 - 질무

인간의 식물화에 대한 소설은 간혹 보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표현된 글은 처음 보았어요. 화자를 바꾸어보는 것으로 평이할 수 있는 상황을 낯설게 만들고, 직접적인 표현을 써서 감흥을 흐리는 대신 '식물에만 붙어 있는' 생물들의 움직임을 통해 상황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군요. 전개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단락에서 훌륭한 이야기로 탈바꿈합니다.

화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어요. 공교롭게도 제가 화자가 누구라는 댓글을 보고 말았네요. 보지 않았으면 알 수 있었을까 고민은 되네요. 막연하게나마 느꼈을지도 모르고, 뭔가 환상적인 다른 존재로 바꿔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그것대로 재미가 있었겠지요.

 

자유가 피어오를 때 - 구순덕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소하면서도 잔인하고 폭력적인 연쇄고리를 잘 표현하셨습니다. 겨우 골프장갑 하나 얻기 위해 인간의 가치를 지근지근 짓밟으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승리를 얻어낸 행복감에 들뜨는 모습을 보며 숨이 막히는 듯합니다.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시대와 나라의 풍경이군요.

이 소설에서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가 다 빠졌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제목부터요.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는 것이 좋아요. 작가가 깊은 통찰력으로 독자가 거의 짚어낼 수 없는 지점을 짚어낸다면 모를까요. 독자에게 맡긴다면 소설의 해석은 무궁무진하고 풍요로워지지만, 작가가 해 버리면 하나밖에 남지 않습니다.

해석과 설명을 하고 싶은 유혹은 저 자신도 늘 경험합니다만 그래도 참는 게 언제나 좋아요. 하지 않아도 결국 작가의 생각은 들어가게 되고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참으로 답답하고 슬펐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벌레 - yelret

누가 써도 어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지만 당사자들조차도 극복할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들입니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고민한 것보다 더 들어가거나, 조금이라도 다른 면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참으로 어려운 소재입니다.

아기를 뱃속의 벌레로 표현함으로써,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소녀의 공포와 혐오감, 고통을 잘 표현하셨습니다. 끔찍하지만 현실적입니다.

그에 비해 대화는 다소 겉돕니다. 어머니와 상담사는 실제로 소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겠지요. 그렇다면 소설에 등장한 대화는 두 사람이 했던 말 중에서 가장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친(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말일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하는 말은 '금방 괜찮아져' 뿐입니다. 그 말이 소녀의 인상에 남았을 정도라면 그밖에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명색이 상담사라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좋은 답일 필요는 없지만 작가 자신만의, 이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답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술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소녀의 안도감은 이른 감이 있습니다.

 

겨울의 뒷모습 - 스피커

소설이 비현실적인 까닭은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앞뒤가 맞는 일어나기 때문이죠.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연적이고 앞뒤가 없죠. 소설에는 일종의 편집이 들어가죠.

가난한 피자배달부가 배달을 나갔다가 우연히 팁을 받아서 동생에게 피자를 사주는 일은, 현실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또 기쁜 일이지만 소설적이지는 않아요. 주인공의 고민이 주인공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우연으로 풀어졌으니까요. 

독자는 피자배달부가 아니고 작가도 어쩌면 아닐 수 있지만, 화자는 피자배달부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인에게는 낯선 상황이 피자배달부에게는 훨씬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일 거예요. 피자배달부는 눈과 비오는 날에 힘들어하거나 팁에 당황하기보다는, 폭우 속에서도 잘 달리는 요령이라든가 팁을 잘 받아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거고 어쩌면 이미 전문가일 거예요. 그런 면을 잘 보여준다면 소설에 훨씬 현실감이 생길 거예요.

소소한 온도의 차이로, 따듯함과 차가움의 묘사로 피자배달부와 피자를 소비하는 사람의 괴리감을 묘사하신 점이 좋았어요.

 

나는 럭비를 해야 했다 - 곰팡

자각몽 안에서의 삶, 드림워킹을 하는 사람, 그 사람에 대한 팬클럽, 꿈과 현실의 이중의 삶, 꿈 속에서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는 것,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하려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단지 복잡한 문장이 작가의 좋은 이야기를 가로막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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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떠올랐다 저문, 대스타였던 디스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패션 잡지를 읽고 있었다.>

복문이 많고 문장이 길어요. 한국어는 서술어가 뒤에 나와요. 영어는 서술어가 앞에 등장하고 나머지가 뒤에 붙기 때문에 문장이 길어져도 상관없습니다만,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죠. 그래서 문장이 너무 길어지면 읽기 힘들어져요.

 

이 문장은 전체를 다 읽지 않으면 '나는 그때 떠올랐다.' '저문.' '대스타였던 디스맨.' '디스맨이 주인공.'으로 읽어나가게 돼요. 무슨 말인지 헷갈려요. 좀 더 간결하게 나눠 주세요.

-> 나는 디스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패션 잡지를 읽고 있었다. 디스맨은 떠올랐다 저문 대스타였다.

-> 나는 그때 패션 잡지를 읽고 있었다. 디스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잡지다. 디스맨은 떠올랐다 저문 대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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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에세이 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참담한 기분을 포식했다. 눈은 비었고 헛된 상념으로 꽉 채운 머리는 도대체가 쓸모가 없다고 느끼는 자기 혐오의 찰나를 말이다.>

한자가 많아요. 한자가 많으면 문장이 딱딱하고 어려워져요. 한자는 바꿀 수 있으면 우리말로 바꾸는 편이 좋아요. 그리고 형용사+명사를 많이 쓰면 주어가 뒤로 밀려서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들어요. 명사는 바꿀 수 있다면 동사로 바꾸어 주세요.

* 참담한 기분을 포식했다 -> 참담한 기분이었다. -> 참담했다.
* 자기 혐오의 찰나를 말이다 -> 자기 혐오를 느꼈다. ->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 싫어졌다.

'눈은 비었고'도 전달력을 떨어트리는 표현입니다. 이 문장의 화자는 '나'죠. 그런데 내가 내 눈을 볼 수 있나요?

 

예전에 쓰신 글을 보았는데 그 글의 문장이 훨씬 좋아요. 좋은 문장을 고민하다가 더 무너뜨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길게 썼지만 역설적으로 할 말이 간단했기에 길게 썼어요. 이 정도만 고려해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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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장원은 질무님의 '당신의 뿌리'로 선정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김보영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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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글 마지막 인사

  저는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원래 작년에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그만두게 될 예정이었는데, 제가 여러분 졸업하시는 것도 보고, 글틴캠프도 가고 싶다고 우겨서 좀 더 있었습니다. 부족하나마 작은 문학의 날 행사로 몇 분 뵙고 가서 기쁘네요. 그간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참으로 좋은 글 많이 보았고, 많이 감동받고 마음아파하기도 했고, 미래의 좋은 작가님들 많이 만나 뵈었습니다.   시작할 때도 제가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가르치셨고, 스스로 성장해가셨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평을 받는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에 차지 않으실 때도 있으셨을 텐데, 늘 어른스럽게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학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 자신의 길을 가야 하지요. 또한 자신의 답을 믿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답을 존중하며 가야 하지요. 저는 제 생각과 원칙으로 임했지만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새 선생님이 오시면 저와는 또 다른 생각과 원칙으로 평을 하시리라 생각하며, 그것은 또 다른 형태로 여러분의 글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글쓰기는 꼭 작가가 되기 위해서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에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든 계속 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작은 문학의 날에 했던 저작권 이야기에서 추가 : : 짧은 시간이라 사실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말했듯이 아이디어는 저작권을 갖지 않고, 아이디어는 서로 오가는 것이고 서로 닮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아이디어가 비슷하다고 작품을 버리거나, 비슷하다며 비난하는 일은 다른 의미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중요해서 저작권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문화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기본 바탕이라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재생산된다는 것을 믿고, 흔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자신의 진실로 대하며 만들어가세요. 그래서... 아이디어에는 저작권이 없고 표현에는 저작권이 있지만, 사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요. 그래서 표절을 판단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러므로 그때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글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밖에,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쓴 작품은 저작권이 없답니다. 이를테면 게임 회사에서 만든 게임 시나리오나 그림은 회사의 것이지요. 강의나 비평을 위한 인용 역시 허용되고, 법전도 저작권이 없지요. 죽은 지 70년 된 사람의 작품은 저작권이 풀리고요. 그래서 신데렐라나 셜록, 홍길동의 콘텐츠를 우리가 이용할 수 있지요. 그 외의 예외들이 있습니다. 저는 진짜 전문가는 아니니, ^^ 제게 들은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조금 더 알아보세요. 대학에 가신 분들은 청강해볼

  • 김보영
  • 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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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영
  • 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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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영
  • 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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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래서 지웠는데 보고 마셨군요....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더. 고맙습니다.

    • 2013-08-27 01:06:1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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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영

      질무님 글을 계속 볼 수 있겠군요. 좋은 글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 2013-08-28 12:11:07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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