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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Cask
  • 작성일 2013-11-21
  • 조회수 524

 

 

그는 영원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한낮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교외의 국도 중앙선 끝에 그가 엎어져 있었다. 좌측 백미러로 쓰러진 그를 보았다. 가속 페달을 밟을수록 껌처럼 바닥에 붙어 미동도 하지 않는 그가 더 빠르게 작아져갔다.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다. 다시 차를 돌려 그가 엎어진 자리로 갔다. 쓰러진 그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까이 갈수록, 소년 같은 작은 몸이 작게 헐떡이는 게 보였다. 일어서라고 말해도 일어설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를 들쳐 업었다. 그의 몸 어디에선가 흐르는 땀과 피가 내 셔츠를 적셔 피부에 달라붙게 만들었다. 그가 가쁘게 내쉬는 숨이 기분 나쁜 비린내를 풍기며 목덜미에 닿았다. 뒷좌석의 문을 열어 그를 밀쳐 넣었다. 창에 머리를 부딪힌 그가 윽,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가 차를 출발했다. 시동과 함께 차 앞쪽 천장에 달린 후면경으로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가 울고 있었다.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의 얼굴 근육이 씰룩거릴 때 마다 얼굴 피부위에서 굳어버린 피가 부스러졌다. 뺨을 적시는 눈물은 그런 핏자국을 지워냈다. 나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꽤 멀리까지 왔는지 교외의 국도는 앞으로 나아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하늘이 누런빛으로 탁했다. 아침 뉴스에서 기상캐스터가 황사경보가 발령되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날도 황사가 심했다. 학기 초에 선생이 정해주는 학교 청소구역 담당으로 교실청소대신 화단관리를 맡았다. 나와 그가 함께였다. 비록 같은 반이 되어본 것은 고등학교에 올라 와서부터라도,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여태껏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었다. 화단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면서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가 말이 없었다. 나는 흙 묻은 손으로 잡초를 뽑는 그를 보며 중학교 때 보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중학생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그때 성장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작은 키와 손발을 볼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보면 어린왕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단을 가꾸는 그의 모습이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에서 장미를 기르는 모습 같았다. 평소에도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그에게 반 아이들이 다가가는 것을 꺼려했다. 아무도, 그가 길게 말하거나 크게 소리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화단관리를 하기위해 운동장 구석으로 가는데 화단 안에서 줄기가 꺾이고 꽃잎이 짓이겨진 위로 쓰러진 그를 보았다. 그 주위로 짓궂은 표정으로 그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입고 있던 품이 큰 교복에 흙이 묻어 더러워졌다. 너 얘 뭔 줄 아냐?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얜 남자가 아냐. 여자랑 다를 게 없어. 고자새끼거든.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뒤돌아서서 운동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이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회피하고 싶었다. 어린왕자의 모욕을 지켜보는 것보다도 그가 그런 신체적 결함이 있다는 것 때문에 역겨웠다. 하지 마, 하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건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에 내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서울시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서울시’ 라는 표지판이 멀리서 누렇게 빛나고 있었다. 뒷 자석에 앉아있는 그는 고요했다. 나는 조수석 앞 서랍을 뒤져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꺼내 카오디오 테이프 재생기 안에 넣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쇼팽의 녹턴이었다. 누런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먹구름이 몰리기 시작했다. 점점 시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녹턴이 흘렀지만 차 안의 좁은 공간 속 상황은 견디기 싫을 만큼 조용했다. 의도치 않게, 충동 때문인지 내가 먼저 적막을 깼다.

누나랑은 어떻게 만났냐.

일하다가.

너도 피아노 치냐?

작곡해.

어떤 장르?

저런 거.

그가 카오디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여전한 그의 단답형 답변에 나는 말을 멈추었다. 설령, 가족들이 찬성해서 그가 내 매형이 된다고 할지라도, 저런 단답적인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창 밖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너 무시 했던 거 기억 나냐?

어.

그때 미안했어.

그것보단 지금 상황에 더 미안해해야지.

…….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어.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내가 잠든 새에 순식간에 모든 게 어그러지기 시작했어.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녹턴 말야. 저게 고요해보여도 되게 복잡해. 음표나 박자나, 강약세기나. 너나 나도 마찬가지야. 선 길이가 길든 짧든, 그런 게 다 모여야 면이 되고 입체가 되는 거지.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차 안이 덥게 느껴졌다. 후면경 속 그는 창 밖에 시선을 두고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서 내려주면 되냐. 내가 묻자 그가 여기서 제일 가까운 근처 역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마침 멀지않은 곳에 역이 있었다. 나는 역 입구 쪽으로 차를 몰아 그를 내려주었다. 그의 얼굴과 옷은 내가 구둣발로 밟아 찢어진 상처에서 흐른 피로 난장이 되어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구경하듯 쳐다보며 수근 거렸다. 점점 그가 멀어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비에 젖은 나뭇잎 하나가 차 앞유리에 달라붙었다. 푸른 잎맥이 보였다. 잎맥의 선은 길고 또 짧기도 했다. 갑자기 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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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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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sk
  • 201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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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와... 그냥 이 말밖에 나오지 않네요. '대박'

    • 2013-12-03 19:09:4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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