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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글 2월 4주 주장원 발표

  • 작성자 김보영
  • 작성일 2014-02-26
  • 조회수 337

피자조각 - 조정치

해부실로 노숙자의 시체를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얼굴만으로 확인한 친구의 에피소드를 들며 주인공이 노숙자 속에서 제 아버지를 찾고 있는 듯한 암시가 등장합니다. 이 부분부터 몹시 흥미를 느끼며 지켜보았는데,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빠지더니 결말 없이 끝나네요. 아버지를 존경해서 의사가 되기로 했다는 여의사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에 비하면 흥미가 돋지 않고, 내 이야기만 허공으로 날아가버려요. 작가가 많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려 했는가 생각하려 해도 의사는 앞의 두 사람의 사연에 비해 이질감이 커요.

 

맛 - 어번

아마도 조류독감으로? 닭이나 오리를 폐사하는 현장 근처에서 한 남자가 곤달걀을 먹습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인데, 마치 제가 씹는 것처럼 그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셨네요. 그만큼 묘사가 좋습니다.

짧은 글이기는 하지만, 더 길게 갈 것 없이 한 걸음만 들어갔으면 하는 글이었어요. 아버지와 폐사하는 닭 혹은 오리와 곤달걀이 등장하고 아버지를 닮은 내가 있는데, 그 연결고리가 모호합니다.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할 때 그 이유를 조금만 언급해주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죽어가는 닭과 내 입안에서 터지는 달걀 어딘가에 그 지점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만 잘 모르겠군요. 작가가 곤달걀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대놓고 드러냈어도 곤란했겠지만, 이 소설의 경우에는 또 너무 숨겨서, 차칫 그냥 곤달걀 홍보 소설처럼 보이기도 해요.

 

나인 줄 알았는데 사실 내가 아니었던 - 부레

RORRIM이 뜻이 있나 싶어 검색해 보았어요. 거울을 거꾸로 쓴 것이었군요. 실제로도 거울의 거울상이라는 느낌으로 많이 쓰이는 듯합니다.

화자가 사랑한 것이 정말로 자신이었는지 혹은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 믿은 누군가였는지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것이 너무 없어서 소설답지 않아요. 이야기가 희미하면 최소한 감각적이기는 해야 하는데 떠오르는 이미지는 희미하고 문장에서는 같은 단어가 너무 많이 반복됩니다. 첫 R에서는 '비참함'이 지나치게 반복되고 O에서는 '닮았다'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다른 단어를 짓눌러버려요. '비참함'과 '닮음'을 강조하고 싶으셨다면 그 둘을 느낄 수 있는 많은 다른 것들을 끌어오시는 게 좋았을 거예요. 시적인 소설도 시보다는 훨씬 더 구체성을 요구합니다.

 

행복하니? - 아그첵

몇 년 전에 있었던 행복 전도사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군요.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자살을 한 아이러니한 사건을 시작으로, 그녀의 아들과 그녀가 구해 준 한 아이가 등장하면서 그녀의 죽음과 행복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보게 합니다.

좋은 소재와 주제입니다만 점수를 깎는 지점들이 있어요. 전도사의 아들이 자살을 꿈꾸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소설의 핵심이고 중심인데도, 문단이 나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너무 폭풍처럼 흘러갑니다.

‘행복을 곁에 둔 이는~’으로 시작하는 결말이 무엇보다 좋지 않았어요. 사실 그 부분만 지웠어도 이 소설의 평가는 훨씬 더 올라갔을 겁니다. 관객이 영화를 다 보고 자신만의 감정을 추스리며 일어나려 하는데 갑자기 감독이 무대로 올라오더니 이 영화의 주제는 이러이러하고 여러분은 이렇게 저렇게 사시라고 연설하는 것을 보는 기분입니다. 몰입에서 확 빠져나올 뿐만 아니라 어떤 좋은 말을 하든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이야기를 다 무너뜨리고 말아요.

 

메르헨 - 꽁보리

순수한 어린 아이가 나를 환상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다소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가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이기에 좀 더 감각적이었으면 하는 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시선은 3인칭처럼 나를 바라봅니다. 처음 전화통화에서 내 목소리만 들릴 때부터 그래요. 주인공이 이야기의 주체라면 남의 이야기가 먼저 들릴 텐데 말이죠. 길을 걸을 때에도 주변보다는 주인공이 보이고, 환상의 세계에서도 주인공의 몸에 감기는 연미복이 가장 감각적으로 보입니다. 시선이 주인공에게만 집중되는데다가 멀기까지 해서, 환상의 세계에 들어간 뒤에도 그 세계를 거의 보지 못했어요.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단어는 소설의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작가가 보여준 풍경을 보며 독자가 아름답고 우아한 느낌을 받았다면 충분히 독자는 잠시 환상의 세계에 다녀온 기쁨에 젖었을 거예요.

병원에 있는 형의 역할이 없는 면도 아쉬운 면이고, 환상의 세계로 드나드는 아이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알아낸 것이 겨우 이름 정도였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데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좀 더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

한 걸음이 조금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한 걸음뿐이라

 

주 장원은 어번님의 ‘맛’으로 선정합니다.

 

*

  

여러분이 누구에 관해 글 쓰건 그 사람이 되세요. 누군가에 관해 쓰지 말아요. 누군가로서 글을 쓰세요.

: 데릭 젠슨, ‘네 멋대로 써라’ 중에서.

 

 

김보영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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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글 마지막 인사

  저는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원래 작년에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그만두게 될 예정이었는데, 제가 여러분 졸업하시는 것도 보고, 글틴캠프도 가고 싶다고 우겨서 좀 더 있었습니다. 부족하나마 작은 문학의 날 행사로 몇 분 뵙고 가서 기쁘네요. 그간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참으로 좋은 글 많이 보았고, 많이 감동받고 마음아파하기도 했고, 미래의 좋은 작가님들 많이 만나 뵈었습니다.   시작할 때도 제가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가르치셨고, 스스로 성장해가셨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평을 받는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에 차지 않으실 때도 있으셨을 텐데, 늘 어른스럽게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학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 자신의 길을 가야 하지요. 또한 자신의 답을 믿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답을 존중하며 가야 하지요. 저는 제 생각과 원칙으로 임했지만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새 선생님이 오시면 저와는 또 다른 생각과 원칙으로 평을 하시리라 생각하며, 그것은 또 다른 형태로 여러분의 글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글쓰기는 꼭 작가가 되기 위해서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에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든 계속 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작은 문학의 날에 했던 저작권 이야기에서 추가 : : 짧은 시간이라 사실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말했듯이 아이디어는 저작권을 갖지 않고, 아이디어는 서로 오가는 것이고 서로 닮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아이디어가 비슷하다고 작품을 버리거나, 비슷하다며 비난하는 일은 다른 의미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중요해서 저작권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문화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기본 바탕이라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재생산된다는 것을 믿고, 흔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자신의 진실로 대하며 만들어가세요. 그래서... 아이디어에는 저작권이 없고 표현에는 저작권이 있지만, 사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요. 그래서 표절을 판단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러므로 그때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글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밖에,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쓴 작품은 저작권이 없답니다. 이를테면 게임 회사에서 만든 게임 시나리오나 그림은 회사의 것이지요. 강의나 비평을 위한 인용 역시 허용되고, 법전도 저작권이 없지요. 죽은 지 70년 된 사람의 작품은 저작권이 풀리고요. 그래서 신데렐라나 셜록, 홍길동의 콘텐츠를 우리가 이용할 수 있지요. 그 외의 예외들이 있습니다. 저는 진짜 전문가는 아니니, ^^ 제게 들은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조금 더 알아보세요. 대학에 가신 분들은 청강해볼

  • 김보영
  • 2016-03-01
* 이야기글 2월 월장원 발표

2월의 월장원 후보는 프레티나 – 투또우 Live Forever – 투또우 난생의 기원 – 노송휘 내 친구 로빈울새 – 쐐기벌레 입니다. * 내 친구 로빈울새 – 쐐기벌레 프레티나 – 투또우 두 작품이 특히 좋았어요. 제 월장원 평이 없는 것은, 월장원까지만 와도 저로서는 명확한 논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선택하는 작품이 좋다는 것은 늘 확신해요. 하지만 떨어뜨리는 작품이 좋지 않은 건 아니죠. 모든 공모전이 또 그러하지 않은가 합니다. * 프레티나 – 투또우 를 2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축하드립니다.

  • 김보영
  • 2016-03-01
* 이야기글 2월 4주 우수작 발표

잠자리 대가리 - 탈퇴 회원 (이름이 바뀐 걸까요, 아니면 탈퇴하신 걸까요.) 글을 많이 안 써보신 분이 아니면 나이가 많이 어린 분 같습니다. 귀엽게 보기에는 무서운 글이네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한다 해도 논리가 없다면 의미를 갖기 어려워요. 일부러 비현실적으로 썼다는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곳에는 많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올라와요. 그것으로 점수를 깎지 않고요. 문장과 전개가 초보자 티가 많이 나서, 하직 뭐라 평가하기에는 이른 단계입니다. 지금 뭘 듣든 잘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전반적인 연습이 많이 필요하니 집에서 많이 써 보세요.   친환경 캠프 - 탈퇴 회원 스마트폰이 없으면 이만한 재난이 일어나는군요. 앞 소설보다는 재미있게 보았어요. 이게 대체 어디까지 가려 그러나, 하면서. 글은 어린데 역시 귀엽게 보기에는 너무 무섭네요. 간혹 요새 어린 분들은 최초의 아이폰이 생겨난 지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스마트폰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가 지대하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보면서 지금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공기와 같은 물건일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쓰레기 먹는 카멜레온 – 맞봄 문장이나 전개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편이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어요. 쓰레기를 먹는 카멜레온이라면 확실히 사람도 먹을 것 같아요. 환경을 보호하려면 그게 제일이겠지요. 인간만 없다면 환경이 살아나는 건 순식간이라고 하지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은, 방사능으로 가득하기는 해도, 단지 인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고 하지요. 사실 쓰레기를 먹는 생물이라면 있어요. 미생물이라고... 단지 현대문명은 소독으로 그들을 척살하고, 그들의 활동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쓰레기를 내놓지요. 오염물질을 더 빨리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을 만드는 연구와, 미생물에게 더 쉽게 분해되는 물건을 만드는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단지 경제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다보니 그 분야의 투자가 필요에 비해 적지요.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을 먹고 죽어가는 새나 거북의 이야기가 많고도 많지요. 어쩌면 상상하신대로 언젠가는 그들을 먹고 사는 동물도 생겨날지 모르겠어요.   내 친구 로빈울새 – 쐐기벌레 오랜만에 다시 읽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전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이 자체로 다시 읽었어요. 거칠고 산만한 면들이 안정되고, 솟구치는 감정도 다듬어지고,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슬픔을 관조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외롭고 슬픈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우정을 나눕니다. 로빈의 대화는 짧고도 간단하지만 화자가 위로를 받았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화자는 마지막 만남에서 로빈의 자살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넘어가버렸고... 그를 돕지 못했다는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 능력 -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으로 로빈을 구원합니다. 그 구원이 로빈 뿐 아니라 자신의 구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같은

  • 김보영
  • 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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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이런....좀 더 노력할게요

    • 2014-03-04 05:07:0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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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영

      네, 기대하겠습니다. 실은 저는 여전히 '노숙자 속에서 아버지를 찾는' 뒷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2014-03-04 22:38:24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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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걱정하던 대로 초점 조절 실패가 큰 실수 인 것 같아요;; 환상의 세계가 진짜인지 아닌지, 어떤 곳이었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었는데.. 많은 반성을 가져오는 글이었습니다. 평 감사합니다.

    • 2014-02-26 12:29:5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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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영

      환상의 세계가 감각적이었으면 좋았으리라는 것은 하나의 예시죠. ^^ 어느 부분이든 중요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 2014-02-27 02:39:59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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