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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학시간

  • 작성자 옥겸
  • 작성일 2014-08-01
  • 조회수 237

 

“어이쿠, 깜빡 잠이 들었지 뭐야… ….”

수업시간에 20분이나 늦은 김 선생이 다급하게 앞문을 열고 들어온다. 김 선생은 송골송골 땀이 맺힌 주름진 목덜미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민망한 듯 웃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출현이 반갑지가 않다. 저마다 몹시 아쉬워하는 눈치다. 심지어 중간에 앉은 검정색 단발머리 여학생은 대놓고 심통이 난 표정이다. 김 선생이 들어오자마자 수다를 멈추고 책상 위로 엎어져 버리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저 맨 구석에 앉아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담요를 뒤집어쓰고 세상모르게 잠을 청하는 아이와, 저기 저 창가 뒷자리 쪽에 연예인 버금가는 메이크업을 하는 여자애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아 ○○ 어학원이라 적힌 영어문제집을 쫓기듯 다급하게 풀고 있는 저 아이는 김 선생이 교실에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 한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김 선생은 방금 전 민망한 듯 지어보였던 웃음이 도리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무언가 회의감 같은 것이 꽉 쥔 그의 낡은 문학Ⅱ 교과서를 관통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깊게 한숨짓게 만든다. 그것도 꽤나 농도가 짙은, 그런 한숨 말이다.

“자, 자, 다들 일어나고. 지난 시간에 난쏘공 어디까지 했더라…. 어이 거기, 연우야. 네 옆에 앉은 애 누구지? 짝꿍이 자면 네가 잘 챙겨서 깨워줘야지….”

그의 말에 비몽사몽 하던 연우의 얼굴이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사람의 얼굴 마냥 일순간 일그러진다. 심술이 난 연우는 짝꿍을 깨우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김 선생은 그런 연우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난 마음보다는 통심한 마음이 훨씬 앞선다. 그래도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아 버린다. 그것은 그가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긴 신종 버릇 같은 것이었다. 요즘 들어 학교에서만큼은 그저 장님이 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그였다.

“어디까지 했었는지 아무도 모르니? 가만 있자… 그럼 일단 78페이지를 펴보자.”

아이들은 제각기 한숨을 쉬거나 눈살을 마구 찌푸리는 등의 행동으로써 저마다의 의사를 표현했다. 요란하게 파마머리를 한 저 여학생이 조그맣게 읊조린 것이 어떤 말이었는지 교직 생활 30년차인 김 선생이 모를 리 만무했다. 하지만 김 선생은 한 번만 더 장님이 되자고 생각한다. 그의 삶과 언제나 함께였기에 지금은 너덜너덜하게 낡아버린 문학교과서처럼, 이미 너무나도 쇠퇴해버린 그였다. 김 선생은 힘없이 출석부를 펼친다.

“오늘이… 8일 이네. 8번 소진이? 78페이지 소제목부터 읽어보자.”

“선생님, 소진이 오늘 학교 안 왔어요.”

“그래? 그럼 18번인 지수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읽어보자.”

“선생님, 18번 원래 학교 안 나와요.”

“… ….”

김 선생은 자욱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칙칙한 체크무늬의 손수건으로 주름진 이마를 닦는다.

“그래 그럼… 그냥 1번이 일어나서 읽어보도록 하자.”

“… ….”

“1번도 없어? 가만 있자… 다연이? 다연이 안 나왔어?”

“선생님, 다연이 지금 자는데… ….”

반장아이가 김 선생과 눈을 맞추며 멋쩍은 듯 웃어 보인다. 김 선생은 잠시 할 말을 잇지 못한다. 꼴깍꼴깍 넘어가는 마른 침과 줄줄 흐르는 식은땀이 그를 괴롭게 한다.

“그럼… 선생님이 읽을 테니 졸지 말고 집중을…. 오늘은 난쏘공 중에서도 <뫼비우스의 띠> 부분을 할 차례다. 지난 시간에는 <우주여행> 부분을 했지?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듯이 난쏘공은 열두 편으로 된 연작소설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비록 수업시간에는 시간이 없어 다 다룰 순 없겠지만 시간이 되면 집에서 한 번 전문을 읽어보고… ….”

김 선생 만큼이나 아이들도 저마다의 괴로움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김 선생은 꽁꽁 얼어버려 홀로 정지되어 버린 동태의 눈을 아이들에게서 보았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비효율적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비통한 일이었다. 김 선생은 절망 속에서 책을 읽었다.

“끝으로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자던 아이들마저 벌떡 일어나 물소 떼 마냥 급식 실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하루아침에 강도에게 전 재산을 빼앗긴 쇠약한 노인이 된 기분으로 텅 빈 교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그가 문학을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기에 선생이 되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문학이 아닌 만족스러운 점수의 문학시험지를 훨씬 더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교실에 남은 건 친구 없어 뵈는 여학생 하나와 김 선생 자신, 그리고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먼지뿐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끝으로 모든 게 못할 짓이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아 참, 오늘 급식이 스파게티였지… ….”

쓰디 쓴 한 마디를 남기며 돌아선 김 선생의 손에서, 낡은 책의 무게를 견딜만한 힘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옥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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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겸
  • 201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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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겸
  • 201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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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겸
  •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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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짧은 이야기 안에 중년의 문학 선생님의 비애가 느껴집니다. 많이 공감가는 내용이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포착해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는 옥겸님의 능력에 감탄합니다. 높은 문학 점수만이 전부인 아이들. 입시에 의한 경쟁 때문에 생긴 병리현싱 중에 하나입니다. 문학을 내 삶의 일부가 아닌 숱한 시험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불편한 진실. 교실에 흔한 풍경입니다. 이 소설은 학생들의 불량스러운 태도만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병리 현상을 일으킨 사회의 단면을 한 선생님의 씁쓸함과 함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고 나서 흑소(검은 웃음)를 지을 수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옥겸님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기대됩니다.

    • 2014-08-03 21:01:3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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