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3년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15-01-18
  • 조회수 921

이천, 십일

그가 처음 글을 쓰겠다고 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이름은, 그는 밝히는 걸 꺼려할 것 같아서 그가 요즘 쓰는 자신의 소설 등장인물들한테 잘 부여하는 이름인 ‘은후’로 부르기로 했다. 사실 나는 그의 본명을 밝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더군다나 이젠 그와 친구도 아니건만, 어쨌거나 4년 동안 이어온 친구이니 최소한의 매너를 지키는 거라고 여긴다. 은후. 글쟁이 은후. 소설가가 꿈인 은후. 음, 그의 본명보다야 덜 일반적이고 더 멋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속삭이듯 은후를 부르고 있자니 입술이 자꾸만 위 아래로 오므려졌다가, ‘은’을 뒤늦게 발음하려고 옆으로 째진다. 그래, 익숙해지겠지.

2011년. 내가 일산이란 동네에 처음 이사 온 날이고, 처음 교복을 입었던 날이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다 떨어져나갔고, 나 혼자 외딴 중학교에 배정을 받아 입학식 때도,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학년 2반 교실에 앉아있을 때도, 멀뚱멀뚱 새 담임선생님의 이름과 얼굴을 물렁한 뇌에 새기느라 정면으로 돌아간 목만 뻐근하다. 복도 창문에는 엄마와 누나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손을 흔든다. 다른 가족들도 주위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 것 같았지만, 복도에는 엄마와 누나밖에 없었다.

5분 후. 교복 복장과 앞으로 수업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입학식인 오늘 역시 6교시 정상수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얘기가 차례로 오고 간 뒤 다시 창문을 본다. 여전히 엄마와 누나가 저희들끼리 나를 힐끗거리면서 소곤거린다. 그때서는, 선생님과 몇몇 애들의 눈길이 조금씩 복도 쪽으로 끌리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 밑으로 핸드폰을 꺼내 빨리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감히 첫 날 첫 대면부터 그러기가 두려워, 몸만 옴짝달싹이며 쭈뼛거렸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린다. 초등학교 6년 동안의 익숙한 멜로디가 아닌, 좀 더 경쾌하고 우렁찬 종소리가 긴장으로 경직된 내 몸을 더 낯설게 만든다. 담임선생님이 나가고, 설마 엄마와 누나하고 입학식 때부터 마주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창문을 돌아봤다.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그대로 교무실로 갔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제 이 학교에 내가 아는 사람이 없는 거구나 하는 걱정과 불안에 침도 말랐다. 그리고 대부분이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보러 복도로 나간 교실을 보면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먼저 말 걸어. 남들이 걸기 전에. 그래야 적극적이고 또 친구도 많이 사귀지.

그러나 아이들은 꼭 저마다의 세계에 장벽을 두르고 갇힌 듯 보였다. 낯선 이방인이 다가와 커다란 성문 앞에 멈춰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일진 같이 보이는 몇몇 애들도 섞여있는 것이, 여간 불안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1교시가 오기를 교과서만 접었다 폈다 하며 기다리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낯선 느낌에 홱 고개를 돌렸다.

너 어느 초 나왔어?

은후였다. 두꺼운 안경알에 가린 작은 눈이 날 향해 있었고, 뭉게뭉게 붙은 볼살이 입술 모양 따라 실룩거렸다. 코는 동그랬고, 키는 나보다 십 몇 센티 더 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난 이사 왔어. 대전에서. 너는?

나돈데. 다른 애들은 다 장촌초 나왔더라.

멋쩍은 웃음, 입학식에 맞춰 이사 온 나와 은후였다.

그가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된 건 중간고사가 지난 뒤였다.

나 초등학교 때 올백도 몇 번 맞아봤어.

은후가 핸드폰 저편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중간고사가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그래? 실컷 기대해볼게.

최소한 너보다는 잘 봐야 하지 않겠니.

뭐래. 나 학원 간다, 끊어.

그래.

그리고 일주일 뒤 시험을 치렀고, 나는 평균 90, 은후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의기양양한 물음에 대답대신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그건 옥스퍼드대 문양이 그려진 필기노트였다. 나는 그것을 건네받고 펼쳐보았다. 검은 잉크 펜으로 어느 한 칸도 낭비하지 않고 빼곡히 적어놓은 노트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까지도 마침표로 맺고 있었다.

이게 뭔데?

소설.

웬 소설? 너 소설 써?

응.

제목이 뭔데?

은후는 머뭇거렸다. 나는 제목이 뭐냐고 물었고, 그러면서 그 아이가 내민,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 소설은 내가 본 그의 첫 작품이었지만, 분명 그 전에 많은 글들이 있었으리라는 걸, 그때는 짐작치 못했다. 그때는 그저 시험공부하기 싫어서 휘갈겨 쓴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소설을 너무 못 썼다는 것도 것이겠지만, 그냥, 시험 직후라서 그랬나.

뭐냐니까?

채근하는 내 물음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세이몬.

그 ‘오세이몬’이란 글을 학교가 파하고 도서관에 가서 읽기 시작했다. 옆에서 은후는 해리포터 4권 양장합본을 들고 와 팔을 긁적이며 뒤적거렸다. 나는 첫 문단을 빠르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무서운 기세로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는 태양의 빛이 화성의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뚫고 지나쳤다. 테르코 왕국의 제왕궁의 창문을 소리 없이 통과하며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비추는 방에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악이 탄생하고 있었다.

첫 문단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우후죽순 진을 치더니 이내 스토리조차 창밖 저 너머로 달아나버렸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나조차도 이게 잘 쓴 건지, 못 쓴 건지는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노트의 페이지 수는 총 70페이지였고, 나는 한 시간 만에 다 읽은 뒤 물었다.

오세이몬, 이거, 다 쓴 거야?

응? 아니, 아직 이야기 한참 남았는데.

나는 뭐라고 말을 해줄까, 생각하며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는 내게 평을, 자기 소설의 첫 독자의 감상평을 요구하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재미없다고, 내가 이때까지 봤던 그 어느 소설보다도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뒤따라 나오는 그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재밌는데? 근데 왜 시험기간에 썼냐?

그때 스토리가 생각난 걸 어떡해.

더 쓸 거야?

응. 재밌다며. 그리고 쓰고 싶은 장면들도 되게 많거든. 네가 본 것보다 더 재밌을 걸.

많이 써. 언제쯤 또 보여줄 건데?

나는 학원 시간을 확인하며 대꾸했다.

음....... 지금 가자마자 바로 또 쓸 거니까, 한 다음 주? 아님 이번 주 주말.

그렇게 빨리 쓴다고?

그렇게 빨리 쓰니까 스토리가 이상하지. 나는 생각했다.

응. 왜?

아니. 그냥, 너무 빨리 쓰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일주일 뒤 은후는 다시 오세이몬을 들고 왔고, 나는 학원 시간에 맞춰 다 읽고는 또 물었다.

이제 끝이야?

마지막 줄에 찍혀있는 마침표가 끝이 아님을, 뻔히 알려주고 있는데도 나는 물었다.

아니, 아직 많이 남았어.

글 쓰는 애. 김은후. 놀라운 건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첫 1년 동안은 반 몇몇 애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그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솔직히, 그렇게 눈에 띄는 것도 없었던 것이, 국어시간에도 국어 선생님이 한 번도 칭찬한 걸 본 적이 없었고 또 어디 글짓기 대회나 교내 백일장에서 입상도 안 했기 때문에. 그가 글을 쓴다는 건 나만 알고 있었고, 일주일 마다 바뀌는 다른 색의 옥스퍼드 노트가 항상 아침시간,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펼쳐져 검은 잉크를 마신다는 것도 나만 알고 있었다.

사실, 은후와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게임 때문이었다. 메이플 스토리. 에반이란 캐릭터가 나오고, 빅뱅 대 업데이트가 예고되면서 우리는 한층 더 마우스와 키보드로, 캐릭터들로 친해졌다. 단축수업이나 주말 같은 날이면 PC방에 가서 죽치고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게임을 했다. 오늘은 레벨을 몇 올릴 거야! 서로가 서로에게 다짐하면서. 마치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오늘은 몇 문제 풀 거야! 다짐하는 것처럼. 다른 것이 있다면, 수학 문제집은 대개 목표치를 이루지 못해도 별 상관없었지만, 게임은 기어코 목표한 레벨에 도달해내고야 말았다. 그때만큼은 은후가 글을 쓴다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글과 게임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서 그런 것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평생 글이라곤 일기, 독후감, 반성문이 전부였으니까. 시나 소설 따위를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밤 9시에 PC방에서 나와 편의점에서 산 코카콜라를 들고 홀짝이면서, 그가 말했더랬다.

나중에 내 소설 출판되면 너 살 거지?

그래. 꼭 사줄게.

친구라고 할인 안 해줄 거야. 정가 다 주고 사.

알았다니까. 내가 엄청 홍보해줄게. 가족한테, 친구들한테, 선생님들한테.

언제 나올 줄 알고 ‘선생님들’한테까지 해?

학생 때 나오지 말란 법 있어?

내가 치켜세워주자 은후는 빙그레, 웃음을 표했다.

그래. 꼭, 꼭 선생님한테도 해. 아, 그리고.

그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딴 애들한테는 나 글 쓴다는 거 말하지 마, 알았지?

5월이 막바지에 이르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A조 청소당번이었고, 은후는 청소당번이 아니었는데도 자기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끼적이고 있었다. 등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글을 쓰느라 옆으로 살짝 휜 척추가 회색 조끼로 드러나는 등만 봐도.

쓰레받기를 방패처럼, 빗자루를 칼처럼 든 채, 나는 더 이상 해치울 적이 없는지 전장을 휘 둘러보는 장수처럼 교실 전체를 돌아다녔다. 청소당번 세 명이 PC방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나는 다른 애 한 명과 함께 반 전체를 청소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번 주 남은 나흘 동안 그 도망친 세 명에게 시키겠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시간이 늦어져도 상관없었다.

3분단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그 도망친 청소당번 셋이 어느 틈엔가 와서 내게 묻고 있었다. 나는 그 애들의 물음에 은후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뒷모습은 그대로였다.

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자신이 글 쓴다는 걸 알리지 말라는 은후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애들은 선생님이 오나 안 오나 눈치를 보며 은후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나는 빗자루를 든 채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 이렇게 다섯 명이서 자주 놀곤 했기 때문에 굳이 얘네들한테도 숨겨야 하나, 싶었지만 주인이 하지 말라니 하지 말을 수밖에. 뒤에서 왁! 하는 외침에 은후는 깜짝 놀라 얼른 노트를 책상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청소도구함을 정리했다.

그들의 말소리가 빈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뭐 하냐?

뭘 그렇게 써? 숙제해?

그 애들의 물음에 은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서둘러 가방을 챙긴다.

하지만 깐죽거리기 좋아하는 한 애의 손은 이미 책상 속으로 그보다 먼저 손을 뻗었다.

어, 소설이네? 니 소설 쓰냐?

야, 나 읽어봐도 되지?

내놔! 아직 다 쓰지도 않은 거라고.

은후는 노트를 홱 뺏어들어 가방 속에 넣고는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그는 청소도구함 문을 닫는 나를 흘겨보고는 교실을 그대로 나서버렸다.

왜 자신이 글 쓰는 걸 알려줬느냐는 말투였다. 나는 모른다고만 대답했고, 걔들이 그냥 몰래 다가가서 훔쳐본 것뿐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네가 못 가게 말렸어야지, 병신아!

그러면 오히려 왜 그러는 지 더 알고 싶어 했을걸.

나는 은후가 왜 글 쓰는 걸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은 지를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떠냐고. 물론 잘 못쓴 글이니까, 자신을 ‘매 글만 쓰고 공부는 안 하는 찐따’라고 보게 될까봐 그런 것도 있겠지, 라고 짐작은 했었다. 분명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쉬는 시간엔 책밖에 안 읽으며 축구나 농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애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글 쓰는 게 뭐 어때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소설 쓰는 걸 남들한테 알려주거나 보여주거나 안 그래?

너한테 보여주잖아.

나한테 만이지, 그건.

우리는 신호등을 밟고 대화역으로 이어지는 폭이 넓은 샛길로 들어섰다.

왜 보여주기 싫은데? 알면 좀 어때? 네가 무슨 오덕이냐.

엄마가 알게 되잖아.

엄마가 알면 안 돼?

글 쓰는 거 엄청 싫어한다고. 계속 공부하라고 한다니까.

둘 다 하면 되잖아.

은후는 길에 떨어진 솔방울을 발끝으로 툭툭 쳐댔다.

같이 하고 있거든? 그런데 쓰지 말라잖아! 차라리 게임을 하거나 PC방을 가라고 하면서.

그거였던가?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엄마의 귀에 들어가게 될까봐, 그래서 그런 것이었나. 하지만, 그러면 왜, 나한테 보여준 거지? 나는 아무 말을 않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지하철 입구에 다다랐다. 은후는 왼쪽으로 빠져나가 버스를 타러 갔다. 평소에 말하던 바이, 도 오늘은 하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왜 은후네 엄마는 글 쓰는 걸 싫어하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걔네 엄마를 본 적은 없었다. 아직 5월 말이고, 더군다나 은후가 반장이거나 해서 반장엄마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은후의 말투로만 들어선 공부만 시키고 다른 건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그런 것 같았다. 걔네 엄마는 걔 소설을 읽어봤을까. 그런데 솔직히, 예술 쪽으로 뭐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난리치던 애들 중에 실제로 1년도 안 가 다시 영어, 수학 학원으로 출퇴근 하는 애들이 대다수였다. 왜냐하면 대개는 재능이 없고, 또 그냥 첫 눈에 반한 것처럼 잠시 좋아했다가 곧 식고 마는 거니까. 은후도 그런 앤지 모르지. 딱히, 내가 봤던 걔 소설로만 봐선 재능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취미로 쓰는 건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걔네 엄마도, 은후가 그렇게 잠깐 좋아하는 일회성이라는 거라고 짐작해서, 소설 쓸 시간에 공부나 차라리 게임을 하라고 하는 걸까. 어쨌거나, 확신하는 건 딱 하나였다.

걔네 엄마는 걔가 쓴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으리라는 것. 아마, 엄마가 보여 달라고 해도 그는 싫다고 했을 것이다. 보기도 전부터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누가 보여주고 싶을까.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오늘은 학원이 없는 날이지만, 내일 영어 숙제가 한참 밀려있어서 얼른 끝내야 했다.

나는 서둘러 아파트 계단을 올라갔다.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중1이지만, 아직 초등학생 티를 못 벗은 때지만, 나름 교복이 주는 압박감과 뻣뻣함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자습시간에 ‘자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시험 본다는 영어단어 70개를 외우느라 미친듯이 속삭이듯 단어를 중얼거렸고, 은후는 역시나 앞에서 등을 굽히고는 내게 보여줄 소설을 쓰기 바빴다. 아닌가. 굳이 내게 소설을 보여주지 않는다 해도, 은후는 그 자세 그대로 언제나 글을 쓸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점심시간이 15분 남았다는 것에 탄력을 받아 마지막 남은 10개를 재빨리 외워버렸다.

그때였다. 분단과 분단 사이를 거닐던 국어선생이 다가와 은후에게서 뭔가를 집어들었다. 글 쓰는 노트려니, 했는데 책이었다. <반지의 제왕>이었다. 1권. 반지원정대. 수련회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가 세트로 사줬는데 3년 째 안 읽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이 기억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단어장을 덮으며 책을 살피는 국어선생을 지켜보았다.

국어선생은 다시 책을 내려놓고는 흘리는 말을 내뱉었다.

판타지는 그만 읽고, 청소년 소설이나 교과서 작품 좀 읽어라.

딴에는 위한답시고 한 얘기겠지만, 다른 애들한테도 그렇게 들렸겠지만, 나는 은후가 그 말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국어시간이 끝나고, 음악실로 내려가면서 은후가 기다렸다는 양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판타지는 읽으면 안 돼? 왜? 대체 왜? 그리고 이게 무슨 그런 어린 애들 동화인줄 아나, 반지의 제왕이야, 반지의 제왕이라고. 모든 현대문학의 위대한 고전. 응? 아무도 이런 작품은 못 써. 세계 어느 누구도, 몇 백 년이 지나도 진짜 하나 나올까 말까라고. 특히 우리나라는 말야. 저런 인간들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데 나오겠냐. 작가가 언어를 다 창조하고, 오크나 엘프, 이런 것들도 다 여기서 나온 거야. 모든 판타지 세계관의 시초라고. 너도 메이플 하잖아, 메이플에도 안 나오냐? 엘프 나오고, 오크 나오고. 그렇게 영향을 많이 끼친 작품이라고.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저 여자는. 재수 없어. 그냥 교과서 작품이나 죽 읊어대는 녹음기지. 녹음기. 청소년 소설? 시발, 그건 완전히 무슨 어른들이 교복 입고 학교 떠돌아다니면서 학생들 흉내 내는 거잖아. 지나 실컷 읽으라고 해.

나는 장래희망이 래퍼인 애가 내 친구였나, 의심될 정도로 귀가 멍멍해졌다. 무슨 말을 저렇게 속사포처럼 말하지. 음악실 문은 열려 있고, 이미 애들 대부분이 미리 와서 앉아 떠들고 있었다. 나는 벽 쪽에 붙은 자리에 앉았다. 은후는 옆에 따라 앉으면서 끊임없이 떠들고 있었다. 이제는 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런 작품이 써질 수 없는지 설명하느라 얼굴이 벌겠다. 사방 떠드는 목소리에 여자애들이 핸드폰으로 튼 빅뱅의 'Tonight' 이 흘러들었다. 나는 대충 장단맞춰주면서 나도 반지의 제왕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러니. 나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어떤 작품이길래 국어가 한 마디 했다고 수 천 마디를 하는 거냐.

수업시작 멜로디가 앞문으로 음악선생을 들여보냈다.

그녀는 선생이 온 줄도 모르고 여전히 투나잇을 따라 부르며 고갯짓을 하는 여자애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더니, 허리에 한 손 짚고 한 마디 했다.

야, 너. 저번 시간에 들은 음악이 비발디의 사계야, 아니면 슈베르트의 송어야? 대답 못하면 그 핸드폰 압수할 거다. 빨리 대답해.

여자애들은 금방 수그러들었고, 동시에 후렴구로 들어가던 노래도 움츠러든다.

그 노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음악선생은 그때서야 얼굴을 펴고 베토벤의 운명을 재생했다. 이번엔 여자애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름방학동안 이십일 간의 자기주도학습,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그와 비슷한 공부 캠프를 갔었다. 그곳에서의 20일은 정말이지 끔찍해서 안달이었다. 7시 기상. 7시 반 아침. 9시부터 11시. 고등학교 과정 영어 수업. 11시 1시는 점심. 1시부터 3시까지는 수학. 그리고 그 이후로 자습이 간간이 섞여 있고 저녁 먹은 뒤 과학수업이 있었다. 주말에는 체육수업을 했는데, 축구나 농구, 배드민턴, 탁구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골라 두 시간 동안 자유롭게 하면 되었다. 사실 커리큘럼만 보면 나쁘지 않다.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은후와 달랐다. 꼭 은후만이 아니더라도, 그냥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캠프를 하고 나와서 느낀 건 극심한 상대적 빈곤이었다. 뭐 그리 비싼 것들이 많은지. 헤드폰, 이어폰, 노트북, 옷, 신발, 가방....... 걸어 다니는 명품 가게였다. 여자애들보다도 남자애들이 더.

어느 날, 자습을 하고 있는데 단어를 몰라 잠시 전자사전을 빌려 달라 했다. 내가 좀 자주 빌리자 그 애는 별 뜻 없이 말했다. 그거 너 가질래? 나 하나 더 있거든. 그거 좀 오래 쓰던 거라서 니 단어 찾아볼 거면 그냥 가져.

나는 거절했지만, 그가 백만 원을 넘나드는 전자사전을 꺼내는 걸 봤고, 얼떨결에 집에 돌아올 때도 그것은 가방 속에 있었다. 전자사전을 그냥 주는 아이라니. 그들은 걸핏하면 자신이 갖다온 해외여행 얘기를 쉼 없이 풀어놓았고, 어디 브랜드가 좋다느니, 헤드폰은 최소 100만원은 되어야 음질이 좋다느니, 나는 끼어들 수조차 없는 얘기들을 줄줄이 늘어뜨렸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단어 테스트나 쪽지시험, 일주일 마다 있는 주일시험을 보고 나면은 항상 저희들끼리 점수 갖고 열변을 토했다. 어떤 애는 채점을 하다가 뒤에 앉은 애가 ‘어? 이거 맞았다! 아싸!’ 하고 말하자 ‘내가 맞춘 것도 아닌데 왜 소릴 지르고 지랄이야!’ 이러질 않나. 하나 같이, 교수대 위에 놓인 탁자에 앉은 학생들 같았다. 똑같은 책상과 의자이지만, 목에는 밧줄이 걸려있고 발판은 언제든지 아래로 푹 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형당하지 않기 위해 영 점 몇 점에 희비가 교차했다. 감정, 그들에겐 감정이 없었다. 우리 학교 애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 감정. 그리고 은후에게서 볼 수 있는 확고한 자기 생각과 고집, 배려, 친구의 정. 그들은 시시때때로 선생들이 말하는 것에 따라 칠락팔락이었다. 수학 선생이 이러이러한 책을 읽어라, 하면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바로 내려놓고 선생이 일러준 책 제목을 바로 받아 적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해서 집 근처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그 책을 구해다 달라 한다.

한 마디로 나는 질렸던 것이다. 은후가, 은후의 그 뒤죽박죽 괴상망측한 판타지 소설이 보고 싶어졌다. 사실은 평소에 공부도 못하는 그가 그리 친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같이 영화보고 밥 먹으며, 다른 남자애들처럼 몰려 노는 건 아니지만, 잘 놀았다. 그런데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지난 후에 나는 그가,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내가 그렸던 애처럼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은후가 수학 쪽지시험 점수 미달로 남아서 재시험을 보고 있을 때, 은후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공부도 못해. 글도 잘 못 써. 운동도 못 해. 사교성이 좋다거나 활발하지도 않아. 게임도 잘 못해. 친구라고 하기엔, 어느 것 하나 잘난 게 없었다. 난 그래도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농구도 좀 할 줄 알고, 게임도 잘하는데. 성격은 그와 비슷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너무 떨어지는 애랑 친하게 된 건 아닌지.

은후는 그때 재시험을 통과하고 와서 이번 주 분 소설을 내밀었다.

그러나 캠프에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자기자만에 휩싸인 그 생각을 철저히 깨 부서뜨렸다. 말도 안 되는, 내가 병신이었지. 나는 일부러 강남터미널에서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 아무나 가져가라고 하지, 뭐. 그리고 엄마한테 전자사전을 사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캠프에서 오는 날 PC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7시에.

PC방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앞에 은후가 서있었다. 손에 무얼 든 채로. 나는 멀리서도 그것이 분명 소설 노트이며, 내가 캠프에 다녀올 동안 보지 못했던 20일 치 소설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내게 캠프에 대한 얘기들이 이리저리 오간다. 어떤 애가 노트북을 그냥 줬는데, 그 얘기도 했다. 빈정 상하고 거기 애들은 좀....... 나랑 안 맞아. 꼭 재벌집 애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서 공부하는 것 같거든. 네가 나랑 제일 잘 맞다. 근데 뭐, 비싼 것들을 가지고 다닌다 해서 그런 게 아니야. 네가 나한테 차를 사줘도 난 너랑 제일 잘 맞아. 걔들은....... 뭐라고 해야 되지, 음.......

싸가지?

응,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가.

나와 은후는 킥킥대며 PC방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뒤에서 그가 노트로 나를 찔렀다.

자. 이거. 노트 바꿨어. 다른 걸로.

알았어, 잠깐만. 두 자리 있어요?

나는 알바에게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고, 옆에서 은후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나 이거 3부작으로 쓸 거야. 오세이몬, 오펠리아스, 또....... 나머지 제목은 네가 정해줘라. 3대 이야기야. 왕국 3대 이야기.

좀 이따가. 아, 너 내 아이디로 핫타임 받아줬어?

2시 30분에 1분간 접속해 있으면 주는 아이템을 말하는 것이었다. 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키보드 옆에 노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선 말을 이었다.

제목 뭐로 하면 좋겠냐니까?

기다려 봐. 이거부터 확인하고.

나는 최대한 빨리 게임에 접속해 아이템을 확인했고, 상자에서 어떤 아이템들이 나왔는지를 지켜보며 탄성을 내지르다가 욕을 뱉었다. 은후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느 마을에서 만나자, 거기서 파티를 맺어 어디에서 같이 파티사냥을 하자, 어떤 퀘스트를 깨러 다니자, 는 말만 20일 동안 묵어있던 쉰내처럼 폴폴 풍겼다.

은후도 어느 순간엔 내 말 따라 같이 게임을 하기 바빴다.

3000원을 넣고 10시까지 게임을 했다. 그 사이사이에 들리는 은후의 자기 소설과 관련된 말들은, 캠프에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와 달리 거짓말처럼 게임 소리에 묻혀버렸다. 나는 컴퓨터를 종료하고 은후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내가 그때서야 노트를 집고 보기 시작하자, 은후는 못마땅했던 표정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그러나 내가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서 노트를 다시 건네주자 그는 의아한 얼굴로 왜 다 안 읽으냐고 물었다.

솔직히, 이제 갈수록 재미가 없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 너무 졸려, 피곤해.

재미없어?

재밌긴 한데, 좀.......

왜?

스토리가 이상해.

그러자 은후는 계단 중턱에서 걸음을 멈췄다. 노트를 든 그의 얼굴에 드리운 화를, 가로등 불빛이 붉은 빛을 덧씌웠다.

너 뭐냐? 왜 진작 말을 안 해줘?

뭐가? 내가 뭐?

갑작스런 그의 반응에 졸음이 확 달아나버렸다. 은후의 볼살이 입술 모양대로 일그러져있다. 평소 송충이, 라고 놀렸던 진한 눈썹이 눈꺼풀을 아래로 밀어낸 얼굴.

여태까지 그러면 재미없는데 재미있다고, 몇 달 내내 보여주는 거 읽으면서 말한 거야? 제대로 읽은 건 맞아? 그냥 어쩔 수 없이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재미있다고 한 거냐고.

갑자기 왜 이래, 그땐 재밌었어. 근데 지금은 좀 피곤하고 그래선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말이야. 확대해석 하지 마.

아니긴 뭐가 아냐. 너 오늘도 내 말 싹 다 무시했잖아. 2주 넘게 내 소설 읽어주는 사람한테 보여주려고 기껏 썼는데. 3부작이라고, 그래서 3권 제목은 뭐로 하면 좋겠냐고도 계속 물어봤는데 넌 내가 자기가 캠프 가서 공부할 때 대신 게임 아이템 받아줬나, 안 받아줬나 그거에만 관심 있고. 너 평소에도 그러잖아. 학교 끝나고 같이 뭐 좀 사먹자고 하면 학원 늦었다고 저만치 먼저 가버리고. 나는 너 청소당번일 때 십 분이고 삼십 분이고 계속 기다려주는데 너는 내가 청소할 때 기다려 달라고 하면 그냥 먼저 가버리고. 그게 친구냐? 네가 그래서 걔들도 뒷담 까는 거야. 공부만 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이기주의적인 새끼.

그리고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소설이 들어있는 노트와 함께 그도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계단 위에서 가만히, 그의 말을 곱씹으며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려 하다가 그만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나는 집으로 뛰다시피 움직였다. 지금 들은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든 간에 밖에서, 계단에서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샤워를 하면서 의미를 알아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유리창처럼 머릿속에도 뜨거운 수증기 김이 꽉꽉 들어찬 것 같았다. 뇌도 수증기 때문에 숨이 막히고 앞이 안 보여 안 돌아가는구나. 김이 서린 안경 렌즈를 뜨거운 물에 문질러 닦으며 다시 써본다. 욕실 안에 내 뇌에서 조금씩 새는 김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까 걔가 무슨 말을 했더라. 기억도 잘 안 났다. 뜨거운 물에 벌게질 때까지 피부를 녹이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8월 18일. 내일 모레면 개학이었다. 그리고 2학기였다. 학교에서 입학식 날 나눠 준 달력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불현듯 깨달은 것처럼 머리를 홱 치켜든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그리고 이제야 직독직해가 이루어졌다. 영어 독해 지문을 볼 때보다 해석은 더 더뎠다. 내 주위를 뿌옇게 감싸고 있던 김이 허공에 사위었다. 둥싯거리는 몸을 애써 자제하며 나는 서서히 드러나는 그 의미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게 그런 뜻이었나. 때려 맞힌 영단어 뜻이 전혀 다른 뜻임을 확인할 때 놀라는 것처럼.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갖가지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로 고동색 책상 결을 손으로 매만졌다. 은후의 손은 언제나 검은 잉크 자국으로 번져 있었다. 핏줄 따라 잉크가 핏자국처럼 번져있었다.

손에 잉크 묻으면 엄청 안 좋대.

왜? 어차피 씻는데.

근데 넌 한 시간만 지나도 온통 손이 잉크덩어리잖아.

그런가.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캠프에서 돌아와서 피곤했을 뿐이고, 소설을 안 볼 용의도 없었으며 그저 20일 간의 이상한 여행을 어서 잊고 싶은 마음에 게임을 한 게 다였다. 그런데 은후는 그걸 갖고 뭐라 화를 내며, 거기다 다른 애들 말까지 섞어가며 내게 소리쳤다.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이제껏’이라고 해봤자 겨우 여섯 달이지만. 시간은 9시였고, 여전히 숙제가 밀려있었고 국어학원에서 읽어오라고 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엿 같은 책도 읽어야 했지만, 그냥 바로 잤다.

오늘 따라 잠이 더 잘 왔다. 베개는 가시가 돋아났는지 거칠었고.

개학 전 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냈다.

개학날. 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미리 와 있는 은후 앞에 앉았다. 그는 이제 노트 대신 반지의 제왕 6권, ‘왕의 귀환-2’에 눈을 처박고 있었다. 담임선생이 오고, 애들이 속속들이 3주간 창문 빛줄기에 따뜻하게 데워진 자기 의자를 찾는다. 내 자리가 어디였지? 그건 바뀌기 전 자리고. 너 4분단이었잖아. 자리를 잘못 앉은 아이들이 서로 뒤바꾸고 돌아다니고, 개학 첫 날 아침 시간이 어수선했다. 그러나 나와 은후는 자릴 바꿀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자기 자리가 어딘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담임선생이 방학들 잘 보냈느냐며, 다 살집이 제법 붙었다며 다이어트를 한다고 당당하게 공언했던 아이를 흘겨봤다. 자잘한 웃음들이 학교에 굳은 몸을 풀지만, 나는 여전히 굳은 상태였다. 뒤에 앉은 은후가 점점 신경 쓰였다. 갑자기 뒤에서 욕설을 지껄일 것만 같았다. 아니면 나 몰래 다른 애들한테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거나. 그런 생각들이 점점 두개골을 깡깡 두드리다가, 나는 어느 순간 쓰라린 자기혐오에 빠진다. 왜 그런 생각들 밖에 안 나는 거지. 왜 은후가 저러고 나는 뭘 잘못한 건지, 어떻게 해야 예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어떻게 잘못 될까봐, 그것을 신경 쓰기 바빴던 것이다.

하루 종일 서로가 서로를 외면했다. 은후는 2학기가 되면서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급식당번을 맡았다. 그러면 점심시간에 매일 같이 내려가던 도서관을 같이 내려갈 수 없을 터였다. 같이 급식당번 하자, 는 말도 없이. 자꾸 무언과 외면으로 엊그제 계단에서의 화를 내 마음 속에서 그는 더 부풀리는 듯했다. 한순간 나도 짜증이 솟쳤다. 아니, 그깟 소설 하나 가지고 왜 저 난리인 거지. 그게 그렇게 난리 칠 건가.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앞뒷문이 동시에 열리며 선생도, 애들도 부리나케 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이 없었기에 급식차가 급식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왔었다. 그리고 급식차는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애들이 이미 줄 서느라 서로 치이는 광경은 2학기가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나는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교실에 왔다. 그러다가 뭔가 할 일이 있었던 것처럼 다시 교실에서 나가 또 화장실로 가 이번엔 소변을 눈다. 한참동안 결벽증 걸린 애 마냥 손을 씻다가, 거울로 기다리는 뒷사람이 학년부장인 것을 알고 바로 나왔다.

배식은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은후는 성격이 셋 다 왈가닥인 여자애들 틈에 껴서 국을 퍼주었다. 키가 멀뚱히 높아 국자를 푸기 위해 구부리는 그의 등이 새우처럼 휘었다. 나도 배가 고프다 못해 굶어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가 주는 국을 받기도 싫었고 마주치기도 싫었다.

할 수 없이 도서관에 가서 뭐 빌릴 책 없나, 급식당번들이 밥을 먹을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다시 3층 교실로 올라와 급식차에 다가섰다. 그리곤 밥을 덜고, 국을 푸고 얼마 안 남은 닭강정을 몇 개 집어왔다. 여자애가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남자애에게 ‘내 책상에 국물 흘리지 마!’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그 여자애가 앉은 자리는 내 자리였다. 나는 앉을 곳이 없나 휘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계모임이라도 하듯 빙 모여 앉아 빈틈이라곤 없었다.

밥을 늦게 먹고, 15분 정도 점심시간이 남았을 때 나는 도서관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은후를 봤는데 같이 급식당번을 하는 여자애들이 그의 노트를 들고 읽고 있었다. 아직 내가 읽지 못한 부분, 오세이몬의 스승 일라이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부터 이번 주 분량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아이들이 그 소설 노트를 갖고 있었다. 옆에서 은후는 여전히 반지의 제왕 대신 <수능 필독서 70 단편>을 읽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800번대 책장을 피해 다른 책장으로 갔다. 그리고선 책장이 겹겹이 에워싸 빛을 차단하고 서 있는 곳에서 가만히 책과 책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잘못한 걸까. 이건 여자친구와의 다툼도 아니었다. 똑같아 보이지만 형태와 양상 자체가 달랐다. 이곳, 경기도 고양시 일산이라는 낯선 동네에 와서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였다. 친구와의 싸움.

나는 너한테 밖에 소설 썼다고 한 적 없고, 그 글도 너한테만 보여줬어. 그리고 네가 캠프 가니까 그동안 썼고. 나는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왜 너는, 너한테만 보여주고 있는 내 소설에 그렇게 무관심하고 벌레 보듯 하지? 재미없는데, 재미없는데 어쩔 수 없이 이미 이번 1학년 때 나랑 친해졌으니까 재미있다고 하면서, 내 글에 장단 맞춰주는 거 아냐? 재수 없어. 이기적인 놈.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뒤에서 욕하지. 넌 까여도 싸. 병신 찐따 새끼.

그 말을 해석하면 대충, 이런 식일까. 아, 빼먹었다, ‘공부만 하는 놈.’

나는 책장 사이에서 다시 나왔다. 종 치기 1분 전이었다. 은후가 항상 읽고 있는 책들은 모두 자기가 직접 산 것들이었다. 그래서 도서관 불을 끄고 책 정리를 시작하는 도서부원들의 “읽은 책 제자리에 갖다놔 주세요!”라는 말을 아랑곳 않고 도서관을 나섰다. 그러나 오늘은, 책 표지에 바코드가 찍혀 있었다. 은후는 잠시 800번대 책장 사이로 사라졌다가, 여전히 노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읽고 있는 여자애들을 따라 나왔다. 오로지 나만 읽고 있었던 그 소설이 남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개학날은 화요일이었고, 나는 목요일까지의 사흘을 수업과 숙제, 침묵 속에 내려놓았다.

이따금씩 생각했다. 이래서 내가 초등학교 때도 3년 동안 왕따를 당한 건 아닌지.

그리고 점점 더 침울해졌다. 7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에 14년의 짧은 장면들이 뇌에 선명한 필름자국을 남겼다. 금요일이 내 생일이라는 것에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같이 기브 앤 테이크로 선물을 주자는, 5월 달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를 보러 갔을 때 했던 말이. 걘 선물을 줄까. 누가 보면 싸운 여친 기다리는 줄 알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것보다도 심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단순히 커플들 사이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참 일찍도 말이다.

메이플도 하지 않았다. 파티사냥을 같이 할, 퀘스트를 같이 깰 친구가 없었다. 그냥 자버렸다.

금요일, 빗방울이 창문에 좌표를 찍던 금요일이었다. 등교할 때부터 하늘은 잿빛 구름 뭉치들을 빗속에 슬쩍 떨어뜨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엄마는 오늘은 학원을 빠지고 빕스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러나 점심은 나 혼자 먹어야 했다. 생일날에. 생일 아침에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내 고개를 45도 정도 기울인 채 다녔다.

3교시 쉬는 시간이었다. 이제 점심시간인 줄 알고 있던 몇몇 애들이 이제 3교시 지났어, 라는 말에 실망하고 짜증을 내고선 학교 앞 슈퍼로 몰래 빠져나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나는 다음 교시가 국어 조별 토론 수행평가라는 걸 알고는 앞이 아득해졌다. 수행평가 예고는 이미 방학 전에 했었고, 조도 그때 다 짰는데 은후와 같은 조였으니까. 은후와 마주치는 것도 걱정되는 동시에 수행평가 점수도 걱정되었다.

둘 다 망치는 거 아냐.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토론 주제와 각종 논거가 적힌 프린트를 보려고 책상 속에 손을 집어넣는데 두꺼운 책 모서리가 만져졌다. 그건 책이었다. 소설이었다. 무려 이만오천 원이나 하는, 호빗 일러스트 양장본이었다. 나는 책을 펼쳐보았고, 안의 붉은 면지에 검은 잉크펜의 날 선 필체가 몇 줄 적혀 있었다. 생일 축하하며, 이거 읽고 반지의 제왕도 꼭 읽어보라고. 끝에는 은후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국어선생이 오자 책상을 조 형식으로 옮겼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나는 이번 주 청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교실을 나섰다. 은후에게 할 말이 있어서였다. 아침시간에 낸 핸드폰을 가지고 성큼성큼 복도를 가로질러가는 은후를 따라, 나는 어느 정도 거리 유지를 하면서 따라갔다. 각 반들도 막 종례를 하는 시점이었다. 애들 틈에 섞여 은후를 놓칠까봐 나는 걸음을 더 빨리했다. 그는 이어폰을 꽂고, 가느다랗고 긴 다리를 휘휘 바닥에 내젓고 있었다.

벌써 1층이었고, 중앙현관에서 그는 신발을 갈아 신고 교정을 따라 몇 걸음 떨어져갔다. 나는 서둘러 신발을 바꿔 신고 속도를 높였다. 우리 반이 제일 일찍 끝나서 그런지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된 후문에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조용히, 그리고 부지런히 뒤를 쫓았다. 역으로 향하는 길목엔 어쩌다 가끔 열리는 장이 천막을 치고 들어서있었다. 그가 알아챌까봐 나는 은근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는 사과할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다. 원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캠프에서 돌아오면서, 네가 얼마나 좋은 친구였는지를 깨닫고 그 사실을 좋아했는데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 그의 소설마저 다른 사람 손에, 친구의 시선마저 다른 아이의 눈에 가게 만들었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생각했던 것들. 그를 가끔 깔보고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력한 애, 로 쳐다봤던 행동들까지도 모두 담아서 말이다. 어쨌거나 그는 친구였다. 자기 딴엔 기껏 열심히 써서 남에게 보여줬는데, 친구에게 보여줬는데 무시당한 것 같을 수도 있었다.

나는 발을 바싹 따라붙어 어깨를 탁탁 쳤다. 은후는 오른쪽 이어폰을 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보았다. 별로 놀라는 표정 같지는 않았다. 그 표정에선 읽을 수 있었다. 네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다는 것을. 나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그러나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일 개봉하는 헝거게임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헝거게임?

그가 반문했다. 내가 걸어오면서 생각하고 예상했던 모든 생각들이 서서히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다음 주 개봉 아냐?

걸음을 멈추고 나와 은후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 앞에 서 있었다.

개봉일 당겨졌어. 토요일로.

그래, 그럼 뭐....... 네가 예매해. 몇 시 건지 나한테 문자로 알려줘. 나는 대화도서관 가야 돼서. 바이.

은후는 예매하라고 해놓고는 도서관에 가야된다며 다른 길로 빠졌다.

나는 대화역 쪽으로 길을 잡고 걸으면서, 내가 방금 사과를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놀자고 한 것인지를 가만히 생각해봤다. 막 도착하는 72번 버스에 올라타며 내가 뭘 한 건지를 깨달았다. 그냥 놀자고 한 것이다, 내일. 이번 주 토요일에. 그때 계단 위에서의 일은 어느 새 우리 둘 다, 잊기로 한 것인지 더 이상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 맞다. 그걸 말하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하고 나는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못 봤던 오세이몬, 내일 만날 때 가져다줘. 읽게.

헝거게임을 봤다. 집에 돌아와서 원작을 서점에서 사려다가, 그만뒀다.

대신 호빗을 펼쳐들고 침대 위에 기대앉았다.

바르드가 용 스마우그를 무찌르고, 소린이 이성을 되찾고 다섯군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마침내 빌보가 고향 샤이어로 돌아왔을 즈음엔, 중간고사가 찾아왔다.

빌보의 조카인 프로도가 반지의 사자의 임무를 띠고 원정대와 함께 엘론드의 깊은골에서 떠날 때 즈음엔, 나무들이 몸을 털며 사방에 가을을 뿌려댔다. 운동회였다.

암흑의 성문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프로도가 빌보처럼 다시 샤이어로 돌아와 마저 책을 집필하고 있을 즈음엔, 은후의 오세이몬도 태양 완하구에 사는 악의 마법사 쿠로디스에게 대항하기 위해 화성을 떠났다. 합창대회 연습으로 분주한 틈에서도, 틈만 나면 은후는 그 클라이맥스 장면을 맺기 위해 정신없이 손을 놀렸다.

그는 화장실에 같이 다녀오면서 말했다.

학교에 가져올 노트북이 있었으면 좋겠어. 뭐, 가져와도 걸려서 빼앗기겠지만. 네가 안 읽어주면 진작 그냥 집에 가서만 컴퓨터로 썼을 걸.

나 말고도 있잖아.

나는 도서관에서의 그 여자애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 걔네들?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로맨스 소설인줄 알았대.

뒤늦게 교실로 들어오는 남자애들은 아까 내린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천, 십이

방학 동안은 은후와 꽤 많이 만났다. 도서관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맛난 음식점들도 가고. PC방은 당연히 빼놓을 수 없겠지. 종업식을 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리 두려워한다는 중2를 불과 하루 앞두고 있었다. 오늘은 3월 1일, 일요일. 삼일절이 금요일이면 제일 좋은데 말이다. 아니면 월요일이거나. 걱정도 되는 한 편, 이제 8년째인 학교인 만큼 감각에 돋아있던 모서리들이 많이 뭉툭해져 있었다. 이제 2학년. 2학년은 또 1학년처럼 빨리 지나갈 것이고, 3학년은 더 빨리 지나가겠지.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는 더 빨리 지나간다는데.

2학년 때는 은후와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새 담임선생님은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과학선생이고, 간간이 사투리 억양이 배어있는 게 뭔가 수업이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팍팍 풍겼다. 반 아이들은 그저 서글서글했고, 무난했다. 나는 개학날 6반에서 나와 학부모지원실과 5반을 사이에 두고 있는 4반으로 향했다. 거기서도 은후는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인지 보려 했으나, 그가 일어서는 바람에 몸에 가려져버렸다. 은후는 날 발견하고는 바로 복도로 나왔다. 그러고서 은후는 1층 좀 돌아다니자며 계단을 내려갔다.

완전 날라리 애들이 무더기로 들어왔어.

날라리 애들? 누군데?

막 입학식을 마친 1학년 애들이 선생님을 따라 줄지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틈으로 빠져나가면서 물었다.

있어, 유명한 애들. 아침부터 장난 아니게 떠들고 지랄 떤다니까.

나는 우리 반은 그나마 무난한 것 같다고 말해줬다.

3월은, 탐색전이다. 헝거게임에서, 메이즈 러너에서 같은 공간에 서로 모르는 아이들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 그러나 우리 반은 그냥저냥, 평화로운 것 같은데 2학년 4반이 문제였다. 3월 둘째 주에선가는 유리창이 깨지더니, 3월 20일 쯤에 키 큰 전학생이 오고 나서는 더 요란해졌다. 4반에서 떠드는 소리가 5반을 넘어, 학부모지원실을 넘어 우리 반까지 드나들었다. 걸핏하면 수업 하던 선생이 나가 4반 애들한테 조용히 좀 해라, 소리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정확히 10분. 그마저도 시간이 갈수록 효과가 미미해졌다. 중간고사 기간에 돌입한 4월 첫 주에는 4반 애 한 명과 1반 애 한명이 복도에서 맞짱 아닌 맞짱을 떴다. 누구 하나 불러올 생각을 안 해서,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하러 올라오던 선생이 발견하곤 교무실로 끌고 갔다. 구경하는 애들 틈에 은후는 없었다. 어서 자기 반으로 돌아가 수업 준비해, 라는 선생의 외침에 돌아가며 슬쩍 4반을 내다보면 은후는 싸움구경 하느라 텅 빈 교실에서도 혼자 글을 쓰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가 1권 오세이몬은 끝날 것이라 했었다.

종례가 가장 늦게 끝나는 반은 4반. 가장 빨리 끝나는 반은 7반 또는 우리 반이라서 나는 은후를 매일 반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은 반장이 피자를 쏘는 바람에 파티를 하느라 늦게 끝났다. 복도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나, 살펴보는데 은후가 없었다. 마침 그의 소설에 관해 얘기해줄 것이 있었는데. 그 순간에, 빈 맞은편 교실 앞에 자기 담임선생과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은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4반 담임은 언제나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다. 우리 반 담임과 나이가 비슷한데도 언제나 피곤해보였고, 신경이 날카로웠다. 그런 자기 담임과 얘기를 나누는 은후의 얼굴 역시 자못 심각하다. 나는 조금 떨어진 신발장에 떨어져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자리 좀 바꿔주세요. 걔가 자꾸 뒤에서 툭툭 건드리고, 집적이고, 시비 건다니까요. 짜증나 죽겠어요, 매일.

알았다. 그런데 자리 바꾼 지 일주일도 안 됐잖아. 잘 지낼 순 없을 것 같니?

끊임없이 뒤에서 놀리고, 다른 애들한테 비웃음거리로 만드는데 어떻게 잘 지내고 계속 지내요! 저 내일부턴 그렇게 못 있어요. 자리를 바꿔주시던가, 학교 안 나올래요.

대체 뭐라고 그러는데? 막 놀려? 욕하고?

교복을 입은 은후의 모습이 한순간 유치원생으로 작아져 보였다.

소설 쓰는 시체, 비듬 많은 글 쓰는 애, 시비에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찐따병신, 여자애처럼 운동도 안 좋아하고 글만 쓰는 고자년. 이라고요. 엄청 다양해요.

나는 순간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신발주머니를 쥔 그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대화역으로 같이 오면서 그가 말했다.

그런 새끼는 잠재적 사회악이야, 바로 처단해야 돼.

험악한 어투에 나는 짐짓, 놀라는 척 했다.

뭘 그렇게까지.

네가 한 번 당해봐라, 이것보다 더 심한 욕 나오지! 씨발년, 지는 존나 할 줄 아는 게 뭐야? 남이나 괴롭히고, 수업시간에 장난만 치고 쌤 무시해서 담임쌤이나 울게 만들고. 공부도 나보다 못하는데다가 체육시간에도 그냥, 바람 잡으면서 공 쫓아다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밖에 없어. 안 그러냐? 어? 맞다, 너 나랑 같은 반 아니지. 그래도 말이야, 걔는 아예 학교에서 퇴출시켜야 돼. 지도 똑같이 당하거나 완전히 격리시켜야 된다고.

한 번 흥분하면 뭐라고 끼어들 틈을 완전히 막고 뭉텅뭉텅 내뱉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반엔 그런 애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은후는 체육시간이 가장 싫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축구를 배우는데, 드리블도 못하고 슛골도 못 하니 같이 하는 조 애들이 만날 짜증만 내고 ‘이것도 못하냐, 병신.’ 이러면서 무시한다고. 자기네 반 애들이 다 그 ‘사회에서 처단해야 하는 아이’ 랑 똑같은 것 같다고. 올해는 재수에 옴 붙었다고 말이다.

축구나 농구는 진짜 싫다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거기다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실수하면 욕먹고, 못하면 못하는대로 욕먹고. 이것도 못하냐면서, 게임할 땐 아예 자신을 수비나 골키퍼로 밀어 넣고 신경도 안 쓴다는 것이었다. 다른 조와 경기를 할 때 누가 골이라도 넣으면 자신은 하이파이브도 안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은후는 혼잣말 하듯 말했다.

내가 소설 써서 그런가? 글 쓰고 책만 읽어서 그런가?

나는 가만히 있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 반 애들은 욕하지 않던데.

응? 내가 글만 써서 그런 가봐. 근데 나도 초딩 때는 축구도 하고 막 그랬어. 이사 오고 그러면서 안 한 거지. 잘 못하니까 끼워주지도 않고. 하루 종일 수업 안 할 때면 글이나 책만 붙들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애. 미친, 지들이 언제 내 소설 읽어봤어? 읽어보지도 않고 뒤에서 재미없네 못 쓰네 지랄들이야. 너는?

그런 것 같진 않은데....... 그냥, 걔네들 자체가 이상한 거 아냐?

또 다른 애들하곤 잘 지낸다고. 나 빼고 30명이 저희들끼리만 모여 노는 것 같단 말이야. 반톡도 반장이 나 초대 안 해줬으면 못 들어갔을걸. 씨발, 엿 먹으라 해. 다 좆같다고.

그리고선 지나가는 말로,

그래서 엄마가 소설 쓰지 말라고 했나봐. 특히 학교에서.

하며 침울해진다. 나는 지하철 입구로 내려가는 그에게 바이, 하며 정류장에 섰다.

그의 엄마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학교에서 소설 쓰는 거량 그거랑 뭔 상관이라고.

그걸 생각하느라 버스 하날 놓치고 말았다.

벌써 6월이 봄옷을 사람들 몸에서 벗겨냈다. 교실에선 애들이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성화인 통에, 햇빛은 대기를 뜨겁게 달구며 느지막이 학교 교실 안에 기어들어왔다. 한동안 은후의 소설을 보지 않았다. 자신이 쓴 오세이몬 소설을 출판사에다 투고하느라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물론 더 큰 이유는 기말고사 때문이겠지만.

방학할 때까지 그의 소설을 보지 못했다. 가끔 국어시간에 쓴 글을 볼 수는 있었지만. 국어쌤이 칭찬했다며 자랑스레 내게 작문한 글을 보여주곤 했다. 확실히, 작년 보다는 글이 많이 나아진 게 보였다.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글’ 자체가.

밖에서 줄넘기 3000개를 하고 들어와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줄기를 온 몸에 맞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내게는 글 쓰는 친구가 있다. 그 생각은 점차 흐물흐물해지면서 뇌 안에서 퍼질러졌다. 그러면서 학교생활을 건드리고, 삶을 건드리고, 일상생활을 건드리고, 인간관계에 스며들었다. 글 쓰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일까? 물론 다른 애들은 그런 애들이 거의 없을 것이었지만. 글 쓰는 애가 내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나한테 보여주는 애가 있다는 것.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물음 하나만을 붙잡고 아래로 내려뜨리다가 떠오른 생각 하나. 그러고 보면, 걔 글 쓴지 벌써 1년 반 넘었네. 예전에, 예술 한답시고 하는 애들 중에 몇 개월도 못가 그만두는 애들이 대부분이더라, 했었는데. 벌써 1년 반.

어쩌면, 은후는 1년 반 동안 자기 꿈에 선을 그리고 색을 입힌 건지도 몰랐다.

샤워기를 끄고 수건으로 몸을 구석구석 닦아내며 내게 물었다.

나는 뭘 했지. 학원은 빼고.

은후가 학교에 안 왔다. 왜지? 괴롭혀서 그런가? 하지만 이제 4반은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과 앉을 수 있도록 자율로 바뀌었고, 복도에서 담임선생에게 이야기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그에게서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 나는 왜 안 온 건지 4반 애한테 물어봤지만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애들 몇 붙잡고 물어봐서야 간신히 알 수 있었다.

걔,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데?

병원? 입원? 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온 문자를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나 아침에 맹장수술 했어ㅋㅋㅋ 병문안 올 수 있으면 와.

학원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지만, 오늘은 몸살 때문에 못 간다고 하고 대화역 근처에 있는 백병원에 갔다. 아픈 건 걘데 말이다.

처음으로 학원에 빠졌다.

맹장수술을 했다는 은후는 말을 할 때마다 가끔씩 얼굴을 찌푸리며 오른쪽 아랫배를 감싸 쥐었다.

많이 아파? 그냥 배 아픈 게 더 심한 건가?

급성맹장이었어, 나. 갑자기 아랫배가 칼로 헤집는 것 같이 아픈 거 있지.

그렇구나.

염증이 심해서 일주일 정도 입원해 있어야 된대.

그래? 심심하겠다.

내일부턴 다른 소설 쓸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잉크 때문에 구불구불 파도가 인 노트를 내밀었다. 앞표지에는 오세이몬-7권. 이라 적혀 있었고, 그게 마지막 이야기라고 했다.

이만한 책으로 환산하면 몇 페이지 정도 될까?

내가 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물었다.

글쎄, 한 500페이지 정도?

와, 많이도 썼다. 1년 반 넘게 쓴 거잖아.

집에 가서 그것만 썼으니까. 하루 분량이 이십 쪽 정도였다. 신국판 크기로.

신국판? 어쨌든, 진짜 많이 썼다. 출판사는 어떻게 됐어?

다 퇴짜지, 뭐.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자신이 쓴 소설을 출판사에 투고했다 죄다 퇴짜 맞은 그의 얼굴에, 낯선 씁쓸함이 일렁였다.

이제 그럼 뭐 쓸 거야?

어젯밤에 진짜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었거든.

내가 묻자 원후는 눈을 핏빛 빛내며 말을 꺼냈다.

근데 쓰면 알려줄게. 아직 완전히 정리가 안 돼서.

그리곤 그걸 얼른 써야 한다며 나를 재빨리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무슨 소실이기에.

몇 날 며칠 동안을, 그 ‘기막힌 아이디어로 쓴 소설’을 쓴다. 그의 손엔 언제나 노트가 들려 있고, 때론 교탁 밑에서 가져온 A4용지에 낙서하듯 구상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뭐 빌려달라고 하면 사물함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다시 노트 앞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방학식에 놀자고 해도 뭐 하나 사먹고 바로 가봐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 소설 때문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닭갈비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며 재미없기만 해봐, 하면서 담당 편집자처럼 굴었다.

중학교의 두 번째 여름방학은 잊어버리고 수도꼭지 틀어놓은 양 흘러가버렸다.

개학날이 또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 원후는 그 소설을 완성했다고 했다. 근 한 달 만에, 대충 350쪽 분량이라 했다. 나는 개학식 날 보여 달라 했고, 그는 밝은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대꾸했다.

인후가, 글 쓰는 친구가 쓴 글을 보고 꼭 예약주문 한 책 기다리듯 설레는 건 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친구의 소설이 어떨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기다려졌다.

그걸 스프링으로 A5크기로 제본해서 그는 내게 건넸다. 아빠한테 제본 좀 해달라고 해서 역 근처 제본 집에서 해왔다고 말했다. 나는 신기했다. 스프링으로 묶은 소설. 수학문제 풀던 펜을 내려놓고 그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읽었다. 그가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듯이.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그와 함께 집을 가면서 나는 말했다.

소설 한 편 잘 읽었다, 김 작가야.

제목이 무엇이었느냐고? 글쎄, 별로 밝히고 싶진 않다. 나중에, 그 작품 얘길 꺼내는 것조차 은후는 매우매우 싫어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그는 그게 ‘전자책’이어서 싫다, 고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내가 그 얘기를 꺼낼라 치면 그 얘긴 꺼내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전혀 잘 쓴 작품도 아닌데 꼴에 잘난 척 하는 것처럼 출판해서 싫다고 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건 진짜 ‘소설’이었다. 사실 내가 그 전 작품, 오세이몬을 계속 봐와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지금 보면 완전히 여러 판타지 소설을 짜깁기해 소설을 흉내 낸 글 나부랭이....... 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준한다. 어쨌거나 나로 하여금 은후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설이다. 사실 제목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내용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거기에도 오세이몬이 나왔다. 전혀 다른 인물로, 완전한 악의 인물로.

어느 날 은후가 전화를 걸어왔다. 학원 쉬는 시간이어서 나는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나 책 출판하게 됐어!

뭐? 진짜? 어떻게?

전자책으로 말이야, 출판하게 됐다니까. 방금 거기랑 연락했어. 계약서는 메일로 보내준대. 대박, 완전 대박이지 않냐?

헐, 이건 진짜 대박이네. 근데 왜 종이책으로는 안 해?

그건 경과를 좀 보고 결정하겠대. 어쨌든 야, 대단한 거지!

은후는 느닷없이 자신이 쓴 그 ‘기막힌 아이디어를 쓴 소설’의 출간을 알렸다. 나는 정말 기뻤고, 2년 동안 글 쓴 세월이 결실을 맺는다는, 그런 아득하면서도 포근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는 책이 출간 될 때까지, 그리고 되고 나서도 계속 카카오스토리에 그와 관련된 것을 올렸다. 계약서 인증샷, 표지 시안 투표, 세계관 지도, 가격 책정....... 지금 생각해보면 한낱 전자책일 뿐이었지만, 그때 그는, 그리고 우리는 뭐 그렇게 대단했는지 난리법석도 아니었다. 담임선생은 물론이고 국어선생, 그리고 아는 선생마다 그와 카카오스토리 친구를 맺은 애들은 알리기 바빴다. 심지어 뒤에서 계속 괴롭혔다던 그 애마저도 책이 나오면 사서 보겠다고 했더랬다. 그렇게, 그의 그 소설 하나로 2학년의 겨울이 다시 찾아왔고,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책이 출간되었다.

가격은 3500원. 나는 당연히 사서 봤다.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어린애가 연습한 수채화 작품처럼 그림이 엉성했다. 제목 서체도 기본 글꼴에 있는 ‘HY크리스탈M’이었다. 저자 소개는 그럴 듯했다. 어디에서 태어나 무슨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어느 중학교에 재학 중이다....... 그는 판타지 문학상에 목을 맸다. 겨울방학 동안엔 무슨 글을 쓸 거냐고 물었더니, 이미 자연쟁탈전 2권은 써 놔서 출판사로 넘기기만 하면 되고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준비한다고, 거기에서 최우수상을 타서 출판한 학생이 두 명이나 있다고 한다. ‘레기온의 눈’과 ‘류화선원전’ 수상작품 출판사는 자신이 사랑해마지않는 해리포터 출판사인 문학수첩. 그걸 내게 보여주며 자신도 상을 탈거라고 선언하듯 외쳤다.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그걸 한다고?

청소년 부문이 따로 있어. 초등, 중등 부문. 거기 할 거야. 2학년 때는 기횔 놓쳐서 못 했는데, 이번엔 해야지. 그래서 최우수상까지 꼭, 꼭 탈거야. 그러면 아마 깨닫게 되겠지, 엄마 아빠도. 내가 재능이 있다는 걸.

그래서 겨울방학 때는 별로 은후와 논 기억이 없다. 2학년 때 새로 사귄 친구들과 간간이 즉석 약속을 가져 PC방에 가는 정도. 뭘 하고 있느냐, 문자를 보내면 대개 세 개의 형태의 답이 왔다.

글 쓰고 있음.

공부 중.

자려고. 왜?

그의 겨울방학 동안의 삶은 저 세 마디로 단축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가 먼저 문자를 보내온 적이 있었는데, 그건 링크를 게재한 것으로 2013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공고 기사였다. 뒤에는 ‘ㅎ’이 남발해있었다.

드디어 공고 떴음!! 빨리 마저 써야지ㅋㅋㅎㅎㅎㅎㅎㅎ

나는 문자를 닫았다.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은후가 너무 글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하나의 삶의 여지도 남김없이 오로지 글 속이라는 우물에만 빠져, 다른 일에는 그저 우물이 보여주는 둥근 하늘만큼만 관심을 가졌다. 서운한, 그런 기분 보다는 왠지 걱정이 들었다. 이러다가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나는 은후가 없는 PC방으로 10번 째 발걸음을 옮겼다.

이천, 십삼

3월 달에도 같은 반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반과 반 사이의 거리도 더 멀어졌다. 나는 1반, 은후는 7반. 3월 3일 개학일에 나는 고등학교를 알아봤다. 특목고, 인문계, 특성화계, 그리고 예술고. 예술고? 거기에 문예창작학과가 있다는 사실은 나는 처음 알았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그를 만나며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 말해주었다. 예고에도 문예창작과가 있더라.

진짜? 어디에?

전국 딱 두 곳이던데? 고양예고하고 안양예고.

헐, 그러면 여기에도 있다는 소리잖아. 나 거기 가면 좋겠네, 그럼.

그래서 알려주는 거야.

너는 고등학교 어디 갈 건데?

몰라. 성적 봐서....... 국제고나, 아님 인문계. 특목고는 힘들어. 내가 바닥 깔아줄걸, 가면.

나는 예고 가고 싶다.

온종일 그의 얼굴에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가 적혀있었다.

예고. 그때 괜히 알려준 듯싶었다. 차라리 몰랐던 게 그에겐 훨씬 나았을 지도 모른다.

은후는 갈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 3학년 초기에, 밝고 활달하게 지내며 친구를 사귀기 바쁠 시절에 그의 얼굴은 점점,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어둠으로 침잠한다. 매 시간, 매 날, 매 일주일....... 뭔 일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이 옴짝달싹 거리다 이내 뒤통수를 내보였다.

왜 저럴까.

그 소설은 잘 팔리느냐고 물어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뭐지.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였다. 아, 어느 장소인지는 기억난다. 언제나 그랬듯 학교 도서관이었다. 800번대 책장 사이에 은후와 내가 서 있었다. 무슨 시간이었지. 점심시간은 아니었다. 그때는 조용했으니까. 아마 학교가 끝난, 5시쯤이었던 것 같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듯, 말듯하다가 이내 빠르게 말을 꺼내 풀풀 허공에 날려버렸다.

거의 이주 내 싸웠어.

누구랑?

엄마랑. 아빠랑.

왜? 나는 책장의 책을 만지작거렸다.

예고 때문에. 예고 때문에.......

예술고?

그렇게 되묻는 내 말에 불안감이 깊게 배어 있었다. 내가 걱정하던 것, 아니, 나 자신이 뭘 걱정하는 지도 모른 채 걱정하던 ‘것’. 그것이 지금 은후의 혀를 통해 내 귓구멍에 줄을 잇고 쉼 없이 도착했다.

솔직히 처음엔 말도 잘 못 꺼냈어.

그는 괜히 해리포터를 뺐다, 넣었다, 반지의 제왕을 뺐다, 펼쳐들었다 넣기를 반복했다.

왜냐하면 엄마아빠는 내가 중1때부터 글 쓰는 걸 안 좋아했으니까. 무슨 글이든 간에. 괜히 그거에 빠져들지 말라고 했어. 내가 왜냐고 물으니, 잘못하면 막 자기 세계 안에 갇혀서 폐인 된다고, 친구들하고도 제대로 못 놀고 못 사귈 수도 있다더라. 소설가는 돈도 못 벌고 굶어죽는 직업이라고도. 그래도 나는 썼어, 너한테 보여줬던 것처럼. 엄마 어느 순간 방을 열고 내가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엄청 화냈단 말이야. 그런 거 할 시간에 어서 공부를 하라고. 공부가 지겨워서 그러면 게임이이라도 한 판 하라고. 나는 이게 게임하는 거라 했지. 왜냐하면 이게 재미있으니까. 안 그래? 어쨌거나 그렇게 우여곡절 막 오다가 작년엔, 전자책도 냈잖아? 그거 갖고 또 한참 싸웠어. 어쨌거나 그건 내 작품이 출간되는 거였으니까 싸우든 말든 그냥 보호자 서명으로 끝이 났지만, 그런데 이번 건 아니야. 내가 예고에 가겠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거든? 그래서 생각해보겠대. 엄마는 평소에 문창과 안 좋아했어. 싫어했다고. 수준을 떠나서 나와서 할 일도 없고, 오로지 ‘소설가’ 하나만 바라보고 가는 외길 4년, 아니 어쩌면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틈 날 때마다 말했지. 문창과 나온 작가들 중에 유명한 작가들이 더 많더라, 신경숙도 있고, 조경란도 있다고........ 편혜영도 서울예대 문창과를 나왔다고.

며칠이 그냥 휙휙 지나갔어. 나는 무슨 선거투표일 앞둔 사람처럼 계속 홍보하고 유세했지. 아빠가 말하더라. 그 비싼 입학금과 등록금은 어떡할 거냐고. 지금 집안에 그러한 사정이 없다, 여유가 없다는 말을 들었어. 그래서 나는 장학금 제도도 있다고, 고양예고 거기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장원 타면 장학금도 준다고, 했지. 그런데 묻더라.

너 1등 할 수 있어? 할 자신 있냐고.

나는 바로 대답 못하고 있다가, 자신 없는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며 타면 어쩔 거냐고 반문했는데 그래도 아빠는 아무 말 안 하더라. 언제지, 그게. 어젠가. 엄마가 말했어. 못 보내준다고. 그리고 대학 안 갈 거냐고 갑자기 물어서, 뭔 말인가 했더니, 어떻게 예고 등록금이랑 대학교 등록금 둘을 다 대주겠느냐는 말이었어. 알바라도 하겠다고 했더니 택도 없는 소리, 하면서 왜 고등학교를 벌써 그런 식으로 다녀야 하느냐고 해. 뭐 어때. 라고 하니까 막 갑자기, 갑자기 울면서 말하는 거야. 이렇게 집안이 어려운데, 너 하나만 키워도 이렇게 힘든데, 네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면서 그쪽으로 나가면 어쩌느냐고 하더라. 그래도 나는 예고 문창과 가겠다고, 소리 질렀어. 인문계 가봤자 배울 게 아무 것도 없을 것 같고, 글 쓰는 애들도 아무도 없이 나 혼자라서 완전히 외톨이 3년 될 거라고 말했지.

은후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나는 정신을 빼놓고 그의 말을 듣다가 책을 떨어뜨렸다.

그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러나 입술을 꽉 깨문 상태에서 떨어진 책을 펼쳐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를 읽기 시작했다. J.K.롤링. 조앤 롤링은 1965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나 엑세터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

그게 다야. 그렇게 계속 싸웠어.

나는 예고에 그런 과가 있다, 는 걸 알려준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왜 그런 건 괜히 알려줘 갖고. 물론, 누구나 글 쓰는 친구가 있다면 알려주겠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은후의 집이 어떤지를 모르는 나로서는. 나는 뭔가 말하려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이 다시 움찔거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안 갈 거야.

그가 해리포터를 제자리에 꽂았다.

안 갈 거라고. 예고 안 갈 거야. 안 가면 뭐 글 못 쓰나?

그는 원래 그렇게 다짐이라도 했다는 듯, 단호하게 힘을 실었다.

나는 화장실로 먼저 가버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가방도 들고서.

그는 빠르게 회복해나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족과 함께 파주출판단지에서 열린 파주 북소리 행사도 갔다 오고, 같이 중고책도 엄청 샀다고 했다. 나는 그의 문자를 받고 문제집을 덮었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해리포터 비밀의 방 1권을 집었다. 은후와 문자를 한 후에는 전에 하던 것을 멈추고 책을 읽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별이 박힌 파란 배경 앞에서 웃고 있는 롤링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한테도 은후처럼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루는 다시 똑같이 흘러갔다.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마감은 4월 30일.

그런데 은후는 기존 500페이지나 써버린 ‘인간을 탄생시킨 자들’을 내버리고 다시 쓰겠다고 내게 선언했다. 자기가 봐도 뭔 이야기인지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곤 지하철 입구에서 고백하듯 말했다.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그와 비슷한 소재가 이미 나와 있어서라고. 그러면서 쓴 약을 여러 모금 삼킨 것처럼 쓴웃음이 눈가에 잡혔다.

4월 5일이다. 반에서 해리포터 마지막 권을 읽고 있는데 은후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우리도 막 수업이 끝난 참이라 아직 음악선생이 교실에서 나가지도 않은 참이었다. 앞문을 열어젖히고 그가 내 책상께로 달려와 허겁지겁 말을 쏟아냈다.

“야, 우리 독서토론부 들자! 응? 너 아직 동아리 안 정했지? 나랑 같이 독서토론부 들어가자, 응? 제발, 제발.”

나는 당황한 채로 물었다.

“갑자기 왜? 난 아직 생각 중인데.”

“거기 담당쌤이 국어쌤이거든.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일이학년 때처럼 지내지 말고 국어쌤이랑도 친해져야겠다고. 그럼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 국어쌤이 담당하는 동아리에 들어가는 거지! 안 그래? 나 혼자 들어가긴 좀 그래, 너도 책 좋아하니까 같이 들어가자.”

나는 과학이나 영어토론부 쪽으로 관심이 있던 차였다. 하지만 은후의 완강한 부탁에 나는 독서토론부에 들어가겠다고 말해버렸다. 나는 그냥 독서토론부에서 책이나 읽고 토론이나 하는 건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첫 모임은 도서관에 딸린 학습실이었다. 널찍한 화이트보드 칠판에 빔 프로젝트, 그리고 둥근 탁자들이 형형색색의 의자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시설이 제일 좋았는데, 그래서 은후와 함께 처음 먼저 갔을 때 들어오길 잘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점점 기존 동아리 애들의 얼굴을 대면하면 할수록 나는 손거스러미 뜯는데 집중하며 선생이 뭘 말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더구나, 국어선생도 내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툭하면 머리를 오른쪽으로 비딱 기울인 채 다리를 꼬고 앉아서 말하는 선생은,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높은 콧대, 적갈색의 머리칼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렸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는 날 잠시 응시하더니 말했다.

“어, 승준이도 왔네? 은후 따라서 온 건가? 학원 때문에 바빠서 이런 거 못할 줄 알았는데....... 왔네.”

그 말에 독서토론부 애들도 나를 힐끔거리더니 이내 지들끼리 속닥거리며 떠들었다. 은후는 자신을 글 쓰는 애라고 소개하는 국어선생을 좋아라, 반한 것처럼 쳐다봤다. 그는 대산청소년문학상에 출품할 작품을 국어선생에게 곧 보여주고 추천서를 받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국어선생하고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을 거라고. 나는 약간의 거북함을 느끼며 그녀가 짜주는 조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조에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리고 그때부터 싫어하던 여자애도 있었다. 양쪽으로 죽 찢어진 눈매에 핏기 없는 피부, 그리고 넓게 펑퍼짐한 얼굴에 뒤로는 머리를 꽁지 묶고 다니던 여자애. 인상은 사나웠고, 공부는 잘했으며 재수 없었다.

은후는 앞으로 일주일마다 읽고 토론할 책 목록을 보며 연신 싱글거리면서 받아 적기 바빴고, 나는 끝나고 은후에게 책 목록 좀 알려달라고 할 참으로 가만히 손 놓고 국어선생의 손짓, 그리고 그걸 받아 적는 애들을 쳐다보았다.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독서토론부는 뭐 그리 모임이 많은지. 툭하면 부장이란, 도도하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여자애가 와서 오늘은 어디어디서 모일 거야, 일러주고 또 앞발과 뒷발을 거의 부딪치다시피 하며 제 반으로 가버렸다. 뭐 그리 바쁜지. 독서토론부는 매주 월요일에 만났는데, 책을 다 읽고 온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읽고 오지 않아서 다른 애들이 토론 용지를 받고 토론을 할 동안 책을 읽고 있어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짜증이 났다.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이 끓어서 넘치는 주전자 물처럼 마구 김을 뿜었다. 토론도 안 좋아하고, 책도 그냥저냥 그런데, 왜 들어왔지.

은후를 곁눈질했다.

그는 애들과 활발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무슨 책 갖고 토론하는 거지. 그러다가 내가 지금 그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뭐 대단한 것처럼 기억났다. ‘백설공주는 왜 문을 열고 나갔을까’라는 제목의 인문학 책. 익히 알려진 동화들을 갖다가 현대 시각으로 풀이해서 학생들의 관점으로 읽어낸 책, 이라고 뒤표지 소개에 적혀 있다. 그러나 재미없었다. 대체 이걸 왜 읽는지. 이거 갖고 토론할게 무에 그리 많은 건지. 그들은,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토론 용지에 다른 조원들의 의견을 적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멀뚱히 응시하다가 국어선생의 시선이 느껴지면,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려 책장을 넘겼다.

은후는 독서토론부에 있어서, 국어선생과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일은 흘러갔다. 은후는 5월 말에 대산청소년문학상 추천서를 마감날에 급히 받아 그날 소인 날짜로 우체국 택배로 보내면서, 보여준 지가 언젠데 지금 추천서를 써주느냐며 국어선생을 원망했다. 그러면서 사복을 입고 엄마가 갖다 준 짐 가방을 멘 채, 학교 앞 운동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경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은 독서토론부 MT가는 날이었다. 경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못 간다고 했다.

가기 싫었다. 가봤자, 나는 또 그들이 토론하거나 이야기할 때 혼자 책이나 뒤적거리며 읽고 있을 것 같았다. 겨울방학 때부터 느껴지던 은후와의 거리감이 처음으로 현실에 와 닿았다. 그 거리는 운동장에서 빠르게 떠나는 버스만큼이나 멀어졌다. 나는 교정에서 돌아서 하던 교실청소를 마저 하러 계단에 발을 디뎠다.

은후에게 문자는 별로 오지 않았다. MT에서 그는 줄곧 심심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뭐 그리 자기들끼리 얘기할 게 많은지 심심하다고 칭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PC방에 있었고, LOL이라는 게임에 빠져서 문자를 보지 못했다.

문자를 본 것은 그가 경주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재밌었냐?

아침시간에 우리 반으로 온 은후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이 조금 침체된 상태였다.

아니. 별로. 토론은커녕 거기서 한 거 그냥 경주 둘러보고 영화 한 번 보고 끝이야. 친한 애들도 없어서 별로 재미도 없었고. 너도 가지, 그러면 재밌었을 텐데.

야, 나 거기 갔으면 학교도 못 나왔을 걸, 몸살 심해져서.

나는 몸살 때문에 못 간다고 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별로였어.

내일 PC방이나 갈래?

못 가, 내일 대회 있어, 백일장. 예선 통과했거든.

진짜? 뭐? 조선일보 그거?

그건 떨어졌어.

그는 곧 말을 이었다.

마로니에 청소년 백일장. 목동으로 가야 돼. 예선 통과한 거 국어쌤한테 말했지, 막 축하해주더라고. 왜냐면 예선작품도 보여줬었거든. 꼭 상 타고 오래. 부담 갖지는 말고.

좋겠네.

너는 뭐 아무 말도 없냐?

꼭 상 타 갖고 와서 얼굴 좀 펴라.

나는 다시 책에 집중했다.

일은 빠르게 터졌다. 여름방학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서.

나는 여름방학 때 또 과학영재캠프 같은, 그런 얼토당토않은 캠프에 갈 뻔했지만 다행히 학교 보충을 핑계로 피할 수 있었다. 그 보충수업에서 국어선생을 여전히 볼 수 있었는데, 그 선생은 뭐랄까, 수업 중에 종종 정치적 성향을 띤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그래서 박정희는 잘한 게 아무 것도 없어. 그 시절이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었으니까. 반면에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보면, 그 셋은 너무나도 다르지........

그녀가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간에, 나는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말들은 그냥 흘려듣고 그녀가 던져주는 시험 문제 미끼만 덥석 물었다. 사실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신문에서 보수니 진보니 종일 떠들어봤자 그게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엄마 아빠는 그냥 때 되면 투표하고, 이번엔 누가 당선 됐네, 하고 끝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나 누나는 달랐다. 바로 작년에 임용고시에 한 번에 합격해서 역사교사가 된 그녀는, 교사는 그래선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돼. 그거 선언도 한다니까? 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습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이니까. 누구의 정권이 되었든 어쨌거나 그 순간 그 정부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그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들의 세금을 먹고 사니까. 생각해봐. 만약에 진보적 성향의 사람이 보수적 성향의 교사에게 자신의 돈으로 월급을 주기 싫다고 하면 어쩔 거야. 물론 이건 예를 들어서 그냥 한 소리지만,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돼. 그런 발언은 함부로 하는 게 아냐.

그리고 은후도 누나와 같은 생각을 내보였다. 국어선생 이야기만 나오면 칭찬하고 좋아하기 바쁘던 그가 처음으로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나를 따라 정류장까지 오면서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들에겐 장단점이 있어.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과보다는 실이 많지. 비판하려면 다 비판하든가, 칭찬하려면 다 칭찬해야 돼. 당연히 ‘인간’ 자체로 좋아할 수도 있지, 아니면 그냥 그의 행동이 모두 좋다던가. 어쨌거나 그건 지극히 주관적인 거잖아. 공적으로 수업하는 자리인데, 왜 국어 쌤이 그런 말을 했지. 더군다나 우리가 벌써부터 그런 정치관을 가질 필요도 없는데. 지금은 객관성을 가지고 봐야 하니까.

나는 그런 거에 관심 없다고 하고는, 피식 웃으며 버스에 탔다. 원후는 가끔, 진지해질 때면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잠시 국어선생에 대한 그의 연모와 정이 조금씩 삐걱거릴 무렵, 노래방이나 가자고 만난 내게 그는 기가 막히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2학년 때 체육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이후로 거의 처음이었다. 그는 이제 국어선생을 국어 쌤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 여자’, ‘강유건’이라 이름을 불렀다.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이랬다. 8월 초에, 전태일 청소년 문학상에 보낼 작품을 그 애의 호칭대로, 강유 경에게 봐달라고 했었다. 메일로 봐주실 수 있느냐고. 정중히 물었고, 강유경은 알겠다고 하며 ‘^^’까지 붙여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SMS로 장문의 메시지가 왔더라는 것이었다.

뭐라는 줄 알아? 나 진짜, 이렇게 어이없었던 적 진짜 없었어. 개어이 털려. 아니, 갑자기 이러더라니까. 네가 뭘 봐달라는지 모르겠고, 그리고 넌 예의가 없다고 말이야. 보통 작품을 봐달라고 할 때 어디 어느 부분 좀 봐주세요, 내용이나 구성, 인물, 문장 좀 봐주세요, 이러는데 너는 그냥 던져놓기만 하고. 마치 내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하는구나. 여기서 완전히 진짜,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지. 나는 일부러 여기, 저기 봐달라고 안 한 거야. 오히려 그런 거 하면 더 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그냥 진짜 소설 읽듯 그렇게 읽어주기를 바란 거라고. 그런데 그러는 거 아냐. 또 뭐라는 줄 알아? 막, 내가 대산 청소년 그거 추천서나 다른 대회 추천서, 그런 것들 해주는 걸 당연한 걸로 여기고 있다는 거야. 한 마디로 나는 버릇없고 선생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무턱대고 싸가지 없게 들이미는 미친놈이 됐지. 그리고 더 어이없었던 건, 내가 ‘감사함’을 느낄 줄 모른다는 거야. 그래놓고선 예의가 없대. 내가 예의가 없는 진 나도 잘 몰라. 막 자기가 ‘난 예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어떻게 하고 또 아냐고. 그런데 난 그 여자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 적은 없어. 감사함을 느낄 줄 모른다고? 나는 언제나 감사하다고 했고, 말을 하든 안 하든 매번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 만날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수업시간에도 국어 시간엔 절대 안 졸고 열심히 수업 들었는데. 그런데 이 여자가 그러잖아. 내가 예의도 없고, 선생님을 개떡으로 알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파렴치한 패륜아로 몰고 가고 있잖아. 씨발년.

나는 그때 은후가 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몇 번 욕을 내뱉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때는 최대한 그의 기분에 맞춰 반응했다.

쌤이 좀 심했네.

헐, 그건 말도 안 된다. 네가 예의가 없다고? 그러면 다른 싸가지 없는 날라리 애들은 뭐냐? 어이없네.

이젠 작품 보여주지 마.

내가 옆에서 보더라도 너 국어쌤한테 되게 잘했는데.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뭐 할 때마다 감사하다고 하고, 그랬는데.

노래방에서도, 서로 아무리 노래를 미친 듯 질러대도 그 우울한 장막을 걷어내진 못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믿는 사람이, 사실은 자신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고 안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패배한 얼굴을.

그래서 어쩔 거야?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물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번호 지웠어. 스팸처리 했고, 카톡도 차단했어. 이젠 그년이랑 연락할 일 없어.

2학기 때 어쩌려고?

수업 무시할 거야. 마주쳐도 인사 안 할 거야.

온전하게 붙어 있을 줄 알았던 국어선생에 대한 그의 마음이, 알고 보니 아슬아슬 테이프로 이어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개학이 되자마자 무참히 파편을 흩날렸다.

개학한 뒤에, 그는 독서토론부에 가지 않았다. 월요일만 되도 나밖에 없었으며, 나도 점점 빠지기 일쑤였다. 부장이 와서 이번에는 꼭 오라고 해도 나는 무시했다. 내게 하자고 하던 사람이 빠지고, 나도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내가 왜 가나. 라는 심정이었다. 내가 쉬는시간에 은후에게 갔을 때, 전 시간이 은후였으면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왜?

더러운 거 봤으니까 세수해야지.

상대를 따르고, 좋아하던 마음이 이렇게 180도 뒤바뀔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도서관에서 600번대 쪽을 다니며 심리학책을 뒤적일 정도였다. 나보고 친해져야 한다면서 같이 독서토론부 하자고 할 땐 언제고. 나는 여태까지 사람의 감정은 느리게, 그리고 단계를 밟아 변한다고 생각했다. 밀당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꼭 그런 건만은 아니라는 걸 은후는 알려주었다. 사람 마음과 감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 난 그릇이라고. 그릇이 깨질 조짐을 보이다가 깨지는 건 아니잖으냐, 고 그는 반문했다.

넌 엄마가 설거지하다가 그릇 깨뜨릴 때 ‘어, 그릇 깨지려고 한다!’라고 한 적 있어?

평범한 일상이 다시 온 건 중간고사가 지난 뒤였다. 그는 여전히 국어선생을 외면했고, 독서토론부에 나가지 않았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부장도 오지 않았다. 은후는 마구 백일장과 공모전에 나가기 바빴다. 마로니에 백일장에서, 처음 나간 백일장에 상을 탄 이후로 그는 자신감이 붙은 듯 보였다. 그러나 떨어질 때도 많았기에, 일주일은 기분이 좋아보였고 일주일은 우울했다. 국어선생과 사이가 틀어질 때보다 그는 더욱더 대회에 집착하다시피 했다. 자신의 작품을 봐줄, 글 실력을 보고 평가해줄 이들은 대회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국어선생의 첨삭이나 조언 따위는 필요 없다고, 일언지하에 내 물음을 잘라버렸다. 그냥 내가 써서 오로지 내 실력으로만 인정받을 거라고.

그리고 상을 타왔다.

반 아이들은 그때서야 은후가 ‘글을 쓰는 애’라는 걸 알았고, 인정했다. 쟤는 글 잘써. 막 상 받고 오잖아. 그러나 나는 그가 상을 받아올 때마다, 기뻐할 때마다 걱정되었다. 상 탈 때 기쁜 만큼이나 떨어졌을 때의 실망감과 좌절도 클 것이기 때문에.

국어쌤이 뭐라고 안 해? 축하한다고?

학교로 온 상장을 받았던 날, 내가 은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투로 말했다.

참 나, 그 여자가 왜? 걘 관심도 없어. 나도 관심 없고. 내가 상 받았다는 건 알겠지. 다른 쌤들이 말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그런 여자 축하 같은 거 전혀 받고 싶지 않아.

그래도 막 너 좋아하고 따랐잖아.

그러자 은후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그런 인간인 줄 알았냐? 속은 거지.

11월 하순이었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던 때. 패딩과 야상의 계절이 돌아온 그때. 집에 돌아오다가, 그는 한차례 국어선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집으로 가던 중이었기에 나는 밖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며 학부모상주실 안에 있는 그를 기다렸고, 문 가까이 가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 은후가 나왔고, 국어선생이 나왔다.

국어선생은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너네 독서토론부 쫑파티 안 올 거야?

나는 그저 우물쭈물 웃으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안했다.

은후는 옆에서 고개를 비스듬히 내리깔고는,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꼭 와라. 은후도 올 거지? 또 삐져서 안 오는 거 아냐?

은후는 말이 없었다. 응시하던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무슨 말을 들었을까.

안녕히 계세요.

인사는 나만 했다.

밖으로 나오면서, 고개를 들고 앞을 멍하니 바라보며 걷던 은후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야.

왜?

내가 어떤 친구 같아?

갑자기 뭐래, 중2병 걸린 것처럼.

그러나 그의 얼굴은, 그 위에 애써 감추려는 웃음 뒤로는, 날카로운 칼끝으로 파헤쳐진 그의 인격과 감정과 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무슨 말을 했느냐고, 그 여자가.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야. 내가 어떤 사람 같아?

몰라. 그건 네 여친한테나 물어봐. 태어는 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막, 애들한테 막 대하는 애 같냐?

나는 그가 또 걸음을 멈출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계속 지하철 입구 쪽으로 똑같은 보폭으로 움직였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데 그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까 강유경이 뭐라고 나한테 지랄한 줄 아냐?

뭐라고 했는데?

교원평가 있잖아. 개학하고 한 거.

응.

그거 갖고 나 의심하더라.

의심할 게 뭐가 있어?

자기가 교원평가 결과를 받았는데, 거기에 험담이 써있었다는 거야. 막 자뻑이 심하시네요, 수업 좀 제대로 하세요, 잡소리 좀 하지 말고. 그렇게 쓴 애가 있다는데, 그게 나 아니냐고 막 의심해. 너 교원평가에 뭐라고 썼느냐고, 몇 달 전 건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했더니, 막, 그러는 거야, 이건 딱 봐도 나라고. 진짜 너 쓴 적 없느냐고, 거짓말 하는 거 아니냐고.

한동안 침묵이 전화선을 휘감았다. 나는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이렇게 좆같았던 적이 없었어.

말도 안 돼, 네가 쓰지도 않았다는데 왜 의심을 하고 넘겨짚지?

그게 다가 아냐. 막 내가 쓴 동아리 1년 동안 한 감상문을 보여주면서, 막 니 글에는 악의가 배어있고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그런 투로 들린다고, 막, 음........

그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그걸 오해와 설움의 울음소리를 애써 삼키는 것으로 들렸다.

내가, 내가 저번에 새벽 12시 넘어서 동아리에서 연극 보러 갖다온 거를 좀 비판식으로 썼었어....... 비판식으로. 너무 늦었다, 앞으로는 그런 활동이 조금 일찍 자제되고, 선생님이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 문자나 전화로 부모님들께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썼는데, 나를 무시하냐고 대뜸 묻더라.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개선방안을 말하는 건데 왜 항상 곡해해서 듣냐고 했어. 뭐라는 줄 알아? 여름방학에 자기가 보낸 그 문자 때문에 네가 이렇게 쓴 건 아닐까, 중간에 사과를 했는데도 얘가 아직 그게 남아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 날이 기억났다. 이화여대에 연극을 보러 갔던 날. 학교가 끝나고, 국어선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8시 박씨전 연극을 보러 갔고, 그게 끝나고서 새벽 12시에 간식을 사준답시고 김가네에 들어갔으며,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집으로 왔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한테 양쪽에서 엄청 깨졌고, 왜 그 선생은 우리한테 말 한 마디 없냐며, 12시에 애들이 간식 사달라고 했다고 음식점 가는 게 제정신이냐며 성토했다. 사실, 은후가 말한 것보다도 그때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일산에서 출발할 때 남자애들만 차에 다 태울 수는 없다고, 비까지 엄청 퍼붓는데 사람은 세 명인데 우산은 두 개 주면서, 버스 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서 여자애들하고 같이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고 해놓고는, 전화로 우리를 똥개훈련 시켰던 것도. 편의점 앞에서 기다려. 아니, 거기 김밥천국 앞에서 기다려. 거기 문 닫았어? 그러면 거기 옷 가게. 아니다, 슈퍼 앞에서....... 그리고는 우리와 정작 만나서 한다고 하는 소리가, ‘옛날에 쌤이 중학교 2학년 애들이랑 수학여행 갔을 때, 어떤 애가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를 사는 거야. 자기 먹는 줄 알았는데 날 주더라고. 오시느라 고생 많았다고. 아, 그냥 그렇다고.’ 장난 식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그때 대부분 남자애들은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여자애들이나 끼룩끼룩 대며 쳐 웃었지.

그러면서, 나한테, 막 나중에 소설가 될 거 아니냐고 하면서 글 쓰는 애가 그렇게 행동하면 이문열 같은 작가가 된다고 하는 거야. 어이없었지. 아니, 왜 지 정치성향하고 다르다고, 이문열이 보수라고 이문열 같은 쓰레기 작가가 된다고 하는 거지? 여름방학 때 문자 얘기도 또 꺼냈어. 너는 정말 그런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지솔이는 원서 쓰러 왔을 때 그런 마음이 느껴졌거든? 그런데 넌 그게 없어. 그래서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느냐, 나는 언제나 선생님이 감사했고 또 존경스러웠다고 말했어. 그래도 아니래. 그러면서 교원평가 결과를 뽑아갖고 와서는 정말 네가 쓴 거 아니냐고, 이 동아리 마무리 감상문을 보면 딱 너다, 라고 또 의심하는 거야. 진짜....... 그건 수치였어. 수치스러웠고. 취조당하는 느낌, 살인누명 쓰고 취조실에서 형사한테 자백하라고 취조당하는 거랑 뭐가 달라. 그래서 내가 절대 아니라고 막 했더니 너는 여전히 짜증만 내고 신경질만 부리고 있다면서, 말 막더라.

전화를 끊었을 때, 나는 30분 째 교복과 야상을 그대로 입은 채 방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문 밖에서 엄마가 간식 사왔으니까 먹으라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흘려들으며, 그가 한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그는, 울었다. 마지막에 끓는 울음을 간신히 억누르는 불안정한 이성의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하루종일 책도 읽지 않았다.

숙제도 안 했다.

가만히 은후와 국어선생을 생각했다.

의심. 의심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신뢰와 애정을 잃었다는 말이 된다. 은후는 의심받았고, 끝까지 의심받았다. 교원평가에 자신의 험담을 쓴 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국어선생은 그 범인으로 은후를 지목했고, 나는 은후가 우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친구가 운다. 실연당한 것도 아닌데, 전국대회에서 떨어진 것도 아닌데, 운다. 친구가 운다. 사람이 우는 모습은 대개 걸핏하면 우는 여자애들에게서 많이 봐왔다. 엄마가 운 것을 본 적은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였고, 아빠가 운 것은 누나가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일시적인, 그리고 기쁨이 밴 슬픔이었다. 그러니 처음이었다. 누군가 ‘진짜’ 슬퍼서 운 것을 본 것은. 자신이 믿고 따르던 자에게 의심 받고 막말을 듣고 인격을 모욕당해서, 그래서 더 슬픈 울음은. 나도 그런 적이 있을까, 그러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운 다는 게 뭔지를 본 셈이었다.

거의 들리지도 않았지만, 희미했지만, 전화가 끊어지는 그 사이에 들려오던 불투명한 흐느낌. 나는 지금에서야 은후를 이해했다. 이해하기에 한참 걸린 그런 울음이었다.

내가 글 써서 그런 가봐. 내가 글 쓰는 애라서, 그래서 조금 더 친하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날 막 대하고, 글 쓰는 자는 그래선 안 돼, 라면서 규정지으면서 할 말 못할 말 다 하나봐. 시발....... 왜 난 이 모양 이 꼴이지. 이게 다 그놈의 글 때문이야. 내가 글만 안 썼어도 국어선생이랑 친해져야 한다고 거기에 들어갈 일도 없었을 텐데. 예고 때문에 엄마아빠랑 싸울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나 이제 글 안 쓸 거야, 라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웠다. 3년 동안 바라보고 지켜왔던 누군가의 꿈이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나는 보기 싫었고, 감히 볼 수도 없었다.

다행히 그의 입에서는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아무 선생한테도 글 안 보여줄 거야. 부탁도 안 할 거라고. 꼭 추천서가 필요할 때만 보여줄 거야.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어. 그리고 대회 때문에 어차피 글 보여줄 것도 없으니까. 그냥, 나 혼자만. 나 혼자만 쓸 거라고. 너한테도 보여줄 건 없어. 남들이 내 글 타령, 핑계 대면서 이것저것 요구하고 시비 거는 것도 지쳤어.

그는 걸음을 멈췄다.

엄마아빠도 항상 그랬어.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책도 읽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고. 친구들도, 너 글 잘 쓰니까 이것 좀 대신 써줘, 봐줘, 그것도 못 써? 이러고. 나 책 읽을 건데 추천 좀, 해서 추천해주면 아 그거별로야, 읽었던 거야, 딴 거 읽을래, 아냐 이게 재밌겠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도. 그 여자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글 쓰는 사람이....... 그딴 거 다 필요 없어. 글은 글이야. 그거 갖고 나 평가하는 거, 좆같다고. 지들이나 돌아보라 그래, 다 엿 먹으라고. 내가 그래서 처음에, 중 1때 처음 글쓰기 시작했을 때 그런 거야. 난 남들이 아는 거 싫어. 이제 와서 어쩔 순 없지만, 그거 갖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거. 그래서 엄마도 학교에서 글 쓰지 말라고 했나봐. 너는 그냥 대충 쓴 건데, 아무런 의도 없이 쓴 건데, 그게 왜곡되고 와전되어서 결국 너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고. 아, 내가 왜 이런 얘길 하고 있지. 너하고만 있으면 만날 이 얘기밖에 안 한다니까. 너도 지겹겠다, 글 쓰는 애가 친구라서. 나 같으면 징글징글해서 일찌감치 딴 애랑 놀았을 텐데.

나는 그냥 피식 웃으며 듣고만 있었다.

너도 그냥 다른 애들이랑 똑같애. 글 쓰는 게 뭐 특별한 거냐.

그래, 특별한 게 아닌데 사람들은 그런다니까. 내가 중 1때 너 캠프 돌아왔을 때 화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지. 그땐 글 쓰는 게, 막 엄청 아무나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글 쓰는 친구가 있었던 적 있느냐, 소설 써서 보여주는 애가 나밖에 더 있느냐, 얼마나 쓰기 힘든 줄 아느냐, 네가 한 번 써봐라. 소설 쓰는 게 힘든 건 맞아. 그런데 그게 아무나 하는 일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의식이 내 뒤통수 갈긴 거지, 뭐. 망할. 그래도 글은 쓸 거야.

우리는 고기뷔페로 들어가 앉았다. 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고, 이제 중학교 마지막 방학식을 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굽는 고기를 집어먹으면서 그의 말을 되뇌고 있었다. 그래도 글은 쓸 거야.

지금도

3년 동안 글 쓰는 애를 보면서, 그리고 다른 고등학교로 가서도 죽 그와 어울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중 1때, 나는 과연 얘가 언제까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계산하기 바빴는데 이젠 그런 것이 무의미해졌다. 고등학생, 때의 그의 이야기를 하기는 아직 설익었다. 중학교 3년을 이해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는 자의, 글을 쓰는 학생의 기쁨과 슬픔 등 모든 감정들을 나는 생생히 지켜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꾸준히 고정이었다. J.K 롤링, 다음엔 스티븐 킹, 신경숙.......

내가 은후의 소설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한다. 모든 것이 설익고 어설펐던 소설이, 점차 이불을 걷어내고 기지개를 펴면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씻고 옷을 입으면서 마침내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 때, 그때도 기억한다. 내가 교복을 처음 입었을 때의 이천 십일 년부터 교복 입기가 지겨워진 이천 십삼 년까지, 고작 3년간의 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지금도 은후는 글을 쓰고 있다.

---------------------

분량이 주체할 수 없이 길어졌군요..

문단 들여쓰기를 하고 저장을 했는데 저장이 안 되네요..? 왜 이러죠ㅋㅋ

탈퇴 회원
탈퇴 회원

추천 콘텐츠

19시 45분 즈음

 초기 인물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렬한 눈빛이다. 카메라가 영혼을 앗아간다는 미신이 만연했기 때문에, 그 즈음의 일반인 모델은 하나같이 강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눈을 통해 왕래하는 영혼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의 구멍을 메웠다. 신념, 공포, 분노, 혹은 순수한 동경 따위로. 그런 의미에서 K의 눈은 낡아빠진 싸구려에 가까웠다. 아직 과학이 진리를 대신하기 전, 미신이 미신으로 불리지 않던 시대를 살아가는 듯, K의 눈은 기묘한 생명으로 불탔다. 그녀는 분명 이성보다 심장을 우선하리라. 촬영자로 하여금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눈이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삼각대를 세웠다. 카메라의 노출값과 함께 호흡을 가다듬었다. 갑갑한 교복 넥타이를 연신 긁어대며, K의 알몸에게 렌즈를 겨눴다. 석고상처럼 바스라지는 신체, 그 위로 수놓아진 푸른색 멍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응시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녀가 진심 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시퍼런 눈을 치켜뜬채 나를 바라보는 것도.  K와 나는 방과후 빈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양 팔에 아로 새겨진 멍자국이 염증처럼 부풀어오르는 탓에, 종일 묶어뒀던 팔토시를 막 벗어던진 참이었다. 나는 선생과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에서 불어터진 흉터를 말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처가 덧나고 함부로 엉겨붙기 때문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그거, 얻어 맞은거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채 호흡을 삼키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적막이 감도는 교실에서 K의 시선을 눈치챈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뿐 차마 할 말을 고르지 못 했다. 담홍색 저녁 노을을 받은 하얀 피부가 꼭 석고상처럼 눈부시다. 교실 뒷문에서 꼿꼿이 펼쳐진 척추가 아름답다. 따위의 사고를 반추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K가 먼저 입을 열기까지,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어.”  다만 그런 대치상황을 넘어 날아온 K의 한마디는 너무나도 뜻밖의 물건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노라 고백했다. 죄값을 치르는 건 두렵기 때문에 내일 자살을 할 것이라며, 초연한 어투로 속삭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해를 필요로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 내가 반사적으로 움켜쥔 DSLR을 검지로 쓸어올렸다. 슬쩍, 미소지었다.   나에게 처음 카메라를 건네주던 날, 아버지는 말했다. 사람의 눈동자도 카메라처럼 풍경을 담아둘 수 있다고. 잠깐 빛을 응시한 다음 눈을 감으면 눈꺼풀 속에 그 잔향이, 불꽃이, 똑똑히 보이잖아. 이게 바로 그 증거야. 보호안경 너머로 용접 불꽃을 튀기며 그는 곧잘 떠들었다. 삭으로 뜬 달처럼 희미하게 웃었다. 그 무렵의 나를 사진으로 이끈 매력적인 미소였다. 꼭 지금처럼, 체념 한방울 섞이지 않은 강인한 미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는 양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금방 실감할 수 있었다. K는 꼭 술을 마시지 않은 아버지처럼 따뜻했다.  “그러니까 내 영정사진을 찍어줘. 너, 사진 찍는거지?”  그날부로 나는

  • 탈퇴 회원
  • 2022-11-02
보이지 않는

 남자는 늑대였다. 손바닥만한 핏덩이로 태어난 그에게는 입술 대신 주둥이가 있었다. 남자의 어미는 탯줄도 채 자르지 않고 그 모습을 긴밀히 살폈다. 길게 뻗은 주둥이, 옹골찬 회색 눈동자, 전신을 덮은 이중 모피, 남자에게 인간 다운 신체 부위는 온전히 돋아난 다섯 손가락이 전부였다. 그 꼴이 영락없이 괴물이었기에, 남자는 버려졌다. 가문의 안위를 위해서였다.   바야흐로 이단 심판관이 악마와 마녀를 때려잡던 시기였다. 가축이 죽고, 곡식이 마르는 건 전부 악마의 소행이라고, 교회는 말했다. 달리 탓할 대상이 없어,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숲속에서 홀몸으로 지내는 여성은 화형, 기형아를 출산한 일가는 몸이 찢어졌다. 단, 귀족은 예외였다. 그들은 단두대 아래서 목이 잘렸다.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버려지다시피 했지만, 남자는 부모가 기요틴 아래 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열일곱이 되는 나이에 몰래 성을 빠져나와 무법지를 거닐었다. 힘들지는 않았다. 남자는 금방 자랐다. 성을 빠져나왔을 때, 그의 신장은 이미 2m 가까이 되었다. 단단하게 솟은 송곳니는 돌을 부술 만큼 강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 버려진 저택에 둥지를 틀었다.  "저곳에는 용이 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몸을 붙인 폐 저택에 관한 소문이 돌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용이 몸을 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이제 30년 가까이 삶을 영위한 남자는 더는 아무것도 먹고 마실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수를 핥았다. 자기 직전, 저택 주류 창고에 남아있는 위스키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걸로 족했다. 덩치는 점점 커져,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됐다. 하지만 남자는 늑대였다. 괴물이었지만, 용은 아니었다. 폐허에 버려진 정장을 손질하여 입고, 혀를 굴릴 때, 보다 고풍스러운 단어를 벼렸다. 마을의 처녀를 납치하거나, 황금을 탐하지 않았다. 다섯 손가락 달린 괴물은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누구보다 인간성을 갖춘 영혼이, 기사가 그의 심장을 꿰뚫어주길 바랐다. 남자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인간에게 죽어야 했다.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남자는 결론 내렸다.  폐허는 나름대로 지낼 만했다. 가구에 남아있는 문양으로 추측해 볼 때, 몰락 귀족의 저택인 것 같았다. 정장, 거대한 거울, 마찬가지로 거대한 시계.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은 모두 폐허에 남았다. 남자는 그들을 입었다. 버려진 것들을 입었다. 편안했다. 몸을 옥죄는 정장 안에서 남자는 편안할 수 있었다. 시계의 먼지를 털고 기름칠을 했다. 거울 역시 관리하긴 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닦아도 비치지 않았으니까. 본인 만큼은 절대로.  남자는 저택의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처음 그 앞에 섰을 때 깨친 사실이었다. 세상을 담은 조각은, 남자를 제외한 모두를 비췄다. 이따금 비를 피해 들어오는 올빼미, 토끼, 여우를 비췄다. 잘 정돈된 정장을 비췄다. 출처 모를 와인과 위스키 역시 그곳에 담겼건만, 남자는

  • 탈퇴 회원
  • 2022-09-29
꽃비

할머니는 소녀의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 쭉 이어진 벚나무의 행렬에 양 뺨을 살짝 붉혔다. 여든에 가까워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었지만 초봄의 내음 앞에서 그녀는 소녀가 되었다. 두 눈을 활짝 열고서 가만가만 떨어지는 꽃비를 응시했다. 노인답지 않은 풍부한 생기가 그 표정에 깃들어 있었다. 엄마는 종종 ‘어머니가 너무 늙으셔서 그래’하며 한숨을 내쉬곤 했으나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늙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지금껏 놓쳐온 과거를 향해서. “너희 아빠랑 요양원 좀 알아보고 올 테니까 오늘만 할머니랑 둘이 있어.” 그 말과 함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고삼이 된 너를 배려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슬픔이나 연민 대신 피로가 묻어나오는 한숨이었다. 최근 들어 엄마와 아빠는 자주 그런 한숨을 토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응, 그래, 괜찮아. 짧은 세 마디로 둘을 배웅했다. 부모님의 한숨을 닮아 무거운 미소를 지었다. 시선을 돌려, 거실 탁자에 주저앉은 할머니와 눈을 맞췄다. 머리도, 눈도, 뇌도, 새하얗게 질려버린 노인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째서 우리의 몸은 이렇게 쪼그라들고 마는 걸까요.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나는 창문에 기댄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올렸다. 거슬거슬한 촉감이 검지 손가락을 타고 전신에 감겼다. 젊음이 빠져나간 노인의 육체였다. 내 검지 손가락의 촉감이, 세월을 뚫고 올라온 그녀의 주름이, 그 사실을 열성적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뇌는 그 사실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며 몸을 웅크렸다. 시간이 흐른다는, 스스로가 늙어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저는 솔직히 말해서 어른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그 시간에 맞춰 자신이 점점 깎여나가는 것도 모두 당연한 거라고 다들 이야기했잖아요.” 그런 건 당연하다고 잘난 듯이 말하는 주제에, 어째서 기어코 어제를 돌아보는 걸까.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허공을 향해 말했다. 어제, 수업을 시작하기 직전 담임이 내뱉은 중얼거림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슬프다고 말했다. 우리 때가 참 좋을 때라고 말했다. 그 시간이 지나가 버린 지금은 그저 슬프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서 저녁 열 한시에 독서실을 빠져나오는 일상은 빈말로라도 그리워할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맨 앞자리에서 담임의 눈꺼풀이 미묘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그는 그때 과연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할머니, 꽃이 그렇게 좋아요?” 나는 그리 묻고서, 잠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간고사가 마무리되면 벚꽃도 지겠지. 문득 그 사실을 실감했다. 평소라면 햇빛 아래서 벚꽃을 볼 일이 없는 탓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집을 나와 해가 떨어지고서 돌아오는 나날에

  • 탈퇴 회원
  • 2022-09-2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144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혹평을 받을까 두려워 아직까지 한 번도 남에게 소설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도 본 적 없고, 친구들도 본 적 없고, 선생님들도 본 적 없고, 오직 제가 저만을 위해서 쓴 글이죠. 그래도 글을 쓴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보니, 겪지 않은 일인데도 글을 읽으며 공감이 갔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해도 튀지 않는데, 유독 글쓰는 사람은 신기하게 보더라구요. 읽으면서 놀랐던 건 배경이 되는 학교가 저희 학교였다는 거. 장촌초 얘기부터 설마, 했는데 72 버스 보고 맞구나, 했네요.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ㅎㅎ

    • 2015-01-25 16:45:55
    144
    0 /1500
    • 익명

      저희학교라면...? 참고로 전.. 대화중나왔다죠ㅇㅅㅇ 저는 처음 소설을 썼을 때 가족이고 뭐고 마구 보여줬는데, 그때마다 반응이 시큰둥하고 관심없어 하는 것 같아서 실망해서 안 보여줬더랬죠. 글 쓰는 건 참,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굉장히 튀고 신기한...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ㅎ

      • 2015-01-25 19:32:23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같은 글쓰는 학생 입장이라 몰입해서 봤어요. 예전에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소설을 쓰다가 친구에게 들켜서 반 친구들 거의 모두가 제 소설을 보게 됬어요. 남자주인공은 누구고 여자주인공은 누구냐고 물으면서 기대를 하던 친구들이 로맨스가 아닌 제 소설을 읽고 나서는 시큰둥해 했었죠. 한창 그러고 있는데, 반에서 저보다 인기 있던 아이 하나가 팬픽을 쓴다고 제 소설처럼 친구들에게 돌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에요. 원래 글쓰던 아이가 아닌데도요. 그래서 저도 악의없이 기대하며 봤는데... 맞춤법도 간혹 틀리고 전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모티콘 가득한 글이었어요.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했던 지라 대단히, 크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남에게 처음 보여주었던 소설이라 더 그랬었죠. 이 소설과 비슷한 경험은 아닌데, 이때 일이 떠올랐어요ㅎㅎ 학교에서 글을 쓸 때 남의 시선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었던 터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장황하네요;;)

    • 2015-01-23 01:18:00
    익명
    0 /1500
    • 익명

      제 글 읽어주신 것에 일단 감사드리고, 사실, 저도 이 글을 쓸때 되게 속풀이 하는 식으로 썼기 때문에 빼야 할 것도 많은... 그런 글이죠. 꽁보리님께서 공감하며 읽으셨다니 글쓴 사람으로서는 그저 기쁘네요ㅎㅎ 저는 어떤 애가 제 소설을 마음대로 가져가서 읽기에, 거의 뺏다시피 해서 가져왔죠... 그런데 그 애가 "야, 독자가 없으면 어떡해?"이래서 제가 했던 대답이 생각나네요. "그런 독자는 필요없어." 무슨 뜻... 으로 한 건진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참... 우여곡절이 많았던 처음 글썼던 3년이었던 것 같아요. 뭐, 지금도 나중에는 '처음' 글썼던 데로 비춰질지도 모르죠ㅋㅋㅋㅋ 친구들에게는 저도 그닥 보여주진 않아요. 객관적인 감상평을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거 갖고 막 뒤에서 씹을 수도 있기 때문에... (종종 그런 걸 봐왔다죠) 물론 베프한테는 보여주죠. 그때 친구가 진실한 감상평을 해주면 기분이 참 좋았네요.

      • 2015-01-23 11:13:28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