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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대본: 김광석, 그의 흔적을 찾아서

  • 작성자 neo
  • 작성일 2016-06-13
  • 조회수 2,399

김광석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김광석, 그의 흔적을 찾아서)

시작:

#김광석, 그의 흔적을 찾아서

화면: 검은 바탕, 하얀 글자

나레이션(주인공 목소리): ‘1996년 1월 6일 그날은 전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날이었다. 우리 곁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던 가수 김광석이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광석의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뜬다. 동시에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2016년 현재,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후 자그마치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김광석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갔을까. 사람들은 김광석 20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제목이 뜬다.

김광석, 그의 흔적을 찾아서

#김광석 팬과 그의 형 소개

(페이드인)

아파트와 옆의 나무, 꽃들이 비춰지고 집 내부가 펼쳐진다.

기타를 들고 있는 주인공 모습이 비춰진다. 시선은 악보를 향해 있고 기타를 친다. 연주를 마친 후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는다.

주인공: “아, 안녕하세요. 김광석 씨와 김광석 씨의 노래를 좋아하는 김광석 팬 한동준(가명)입니다. 나이는 열다섯이고요, 무슨 이 나이에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냐 뭐 그런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뭐 나이가 상관있나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웃음) 네,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한, 그리고 또 앞으로 계속 나올 한동준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분은 제 형이고요. 네, 반갑습니다.

(페이드인)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검색

(페이드인)

주인공의 뒷모습과 주인공 옆에 앉아있는 형이 비춰지고 모니터가 비춰진다.

나레이션: ‘나는 먼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주인공 옆모습이 비춰지고 마우스를 몇 번 눌러댄다. 모니터 화면 전체가 비춰지고 네이버가 뜬다. 네이버에 ‘김광석’이라고 입력하고 김광석 팬 카페를 찾아서 누른다.

한동준(이하 한): “네, 여기가 바로 김광석 팬 카페 ‘둥근 소리’입니다. 왜 이름이 둥근 소리냐면, 음, 한 스님이 김광석 씨께 소리가 둥글다고 ‘원음’이라는 별명을 붙여줘서 그렇게 되었다는데요, 네 여기 추모의 글이 있고... 20주기에 관한 글은...”

‘우리는 많은 사이트에 들어가 김광석에 대한 추모 글들을 찾아보았지만 20주기를 기념하는 글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시 모니터가 비춰진다.

한: “네, 여기 최근에 유가족들이 김광석 씨 미완성곡을 공개해서 가수 성시경이 완성했는데요,”(주인공 옆모습이 비춰진다) 솔직히 제 생각에는 공개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성시경이 그렇게 잘 부른 것도 아니고, 애초에 성시경이랑 김광석 씨는 어울리지도 않고... 제 생각엔 저 하늘에서 김광석 씨가 울고 계실 것 같네요.”

(몇 초 뒤)

형: “어, 그리고 여기... 김광석 20주기라고 뮤지컬을 한다고 나와 있는데?”

한: “어, 그러네. 어디 보자...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2015년 11월 27일부터 2016년 1월 10일까지. 아... 이런 걸 다 하는구나.”

형: “어, 여기도 있네.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 12월 18일부터 1월 10까지. 뮤지컬이 두 개나 나오는구나.”

‘그러나 김광석을 기념하는 뮤지컬은 존재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김광석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간 것일까. 우리는 대구에 있는 김광석 거리에 취재를 가 인터뷰를 해 보았다.’

(페이드아웃)

#KTX에서의 촬영

(페이드인)

KTX 정거장이 비춰지고 서 있는 주인공이 비춰진다.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나레이션: ‘나는 김광석을 아직도 기억하고 추모하는 생생한 현장, 김광석 거리로 가 보기로 했다. 20주기가 가까운 지금, 많은 행사가 준비되고 있지 않을까.’

KTX가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주인공 뒷모습이 비춰지고 KTX에 탄다. KTX 옆 유리창이 비춰지고 형과 주인공이 의자에 앉는다. 주인공 상반신이 비춰지고 말한다.

한: “저희들이 지금 KTX를 탔는데요, 버스를 타면 너무 오래 걸려서... 네 시간이나 걸리거든요? 그래서 KTX를 타기로 했습니다.”

(형과의 대화)

바깥 창문을 바라보고 있고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주인공이 비춰진다. 형이 물어본다.

형: “지금 뭐 듣고 있는 거야?”

한: “어, 이거? 김광석 광야에서.”

형: “어, 그래... 김광석 다큐멘터리 찍는데 김광석 노래를 듣다니, 뭔가 이상한데.”

한: “아니 오히려 당연한 거지.(웃음)”

(KTX에서의 대화, 움직임 등 다양한 행동)

주인공 앞모습이 비춰진다.

한: “네, 이제 10분 후면 김광석 거리, 정확히 말하자면 대구에 도착합니다. 오래 타서 멀미가 나려고 하네요.(웃음)”

KTX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짐을 들고 바깥으로 내리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한: “다 챙긴 거 맞지?”

형: “응, 다 챙겼어. 내리기만 하면 돼.” 밖으로 내리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비춰지고 잇따라 카메라도 내려간다.

나무가 있는 거리를 걸어간다. 저만치서 걸어가고 있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페이드아웃)

#김광석 거리에서

(페이드인)

웅성웅성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김광석 노래가 들린다.(바람이 불어오는 곳)김광석 거리와 그 밖의 김광석 동상 등이 비춰지고 주인공이 큰 소리로 말한다.

한: “네, 여기가 바로 김광석 거리고요,”

동시에 카메라가 거리 전체를 죽 둘러본다.

한: “네, 그리고 여기가 분향하는 곳입니다.”

분향소가 비춰지고 주인공의 옆모습이 비춰진다. 활짝 웃고 있는 김광석 영정사진 앞이 비춰진다. 다시 국화를 들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춰지고 엄숙하게 국화를 내려놓는다.

몇 초 동안 조용히 묵념한다.

나레이션: ‘20년이 지난 지금, 저 하늘에 있는 김광석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광석 거리에서의 인터뷰

다시 김광석 거리가 비춰지고 주인공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본다.

한: “네, 이제부터 김광석 거리와 근처 주민 분들에게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인터뷰를 한다.

첫 번째 질문: 가수 김광석 씨를 아시나요?

두 번째 질문: 가수 김광석 씨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는데, 그 사실 알고 계신가요?

세 번째 질문: 가수 김광석 씨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는데,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가 질문: 여기 근처가 가수 김광석 씨 거리인데, 아시나요?

사람들이 질문에 답해주면 말한다. ‘촬영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김광석 거리가 비춰지고 주위의 광경이 펼쳐진다.

나레이션: ‘가수 김광석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광석은 어느 정도의 흔적을 남겼을까. 어느 연령대에게 가장 많은 흔적을 남겼을까. 나는 그것을 조사해 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주인공의 옆모습과 형이 비춰지고 어쩌구 저쩌구 말하고 있다.

주인공 옆모습이 비춰진다.

한: “네, 이때까지 촬영한 인터뷰 동영상들을 모아서 정리해봤는데요, 역시 예상대로 10대 5%, 20대 15%, 30대 20%, 40대 25%, 50대 35%정도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죠. 김광석 씨가 살아계셨을 때 당시 그 분의 음악을 듣는 분들이 대부분 나이가 비슷비슷했으니까요, 김광석 씨가 지금 살아계셨다면 50대니까 50대가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하네요.”

#김광석 거리 둘러보기

다시 김광석 거리가 비춰지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한: “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여기 처음 오는 거여서요, 한번 여기를 쭉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주인공을 뒤따라온다.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소개하고, 돌아다닌다. 도중에 잠시 쉰다. 쉬면서 몇 번 촬영한다.(주인공 인터뷰 등등)거리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춰지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한다.

한: “네, 지금까지 그 유명한 김광석 거리를 쭉 둘러보았고요, 음... 정말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럼, 다시 KTX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KTX에서의 촬영

주인공과 그의 형이 장비를 챙기고 KTX를 탄다. 차 내부가 비춰지고 주인공과 형 옆모습이 비춰진다.(가까이)

나레이션: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아직도 김광석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년이 되었든, 30년이 되었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 가수 김광석은 세월에 상관없이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형과의 대화, 여러 가지 행동들)

올 때와 같이 장비를 챙기고 내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춰진다. 거기를 계속 걸어가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동시에 김광석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레이션(형 목소리): “음...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아직도 김광석 씨를 기억하고 있고, 김광석 씨의 노래를 부르는구나, 20년이 아니라 50년, 100년이 지나도 세월 상관없이 여전하다고 생각했고요, 김광석 씨가 그만큼...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송내역의 기타guy가 비춰지고 여러 김광석 관련 물건들이 나온다.(LP, 음반, 사진과 앨범 등) 계속 이어 말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가수 김광석 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 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김광석 씨의 노래를 들으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많은 흔적을 남기고 갔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광석 씨가 남기고 간 흔적, 우리는 그 흔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김광석 얼굴이 비춰지고 말한다.(슈퍼콘서트 당시 영상)

김광석: “한동안, 뭔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요. 뭐,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밌거리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하면서 만든 노랩니다. '일어나' 불러 드리면서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동시에 화면이 정지된다.

(페이드아웃)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고(일어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옆에 조그맣게 화면이 뜬다.

전부 올라가고 나서 화면 꺼짐 상태로 김광석 목소리가 나온다.

김광석: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쇼.”

끝.

 

n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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