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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 작성자 글마루
  • 작성일 2017-04-30
  • 조회수 496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얼굴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이상한 눈초리에 시달렸다고 한다. 수산시장에 가서 생선 조금 사는데도,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 먹는데도 못쓸 병 걸린 사람 보듯 하는 이상한 눈초리에 시달려서 살았다.

왜 엄마를 이상하다고 보냐고 매번 물어봐도 어물거리기만 하고 아무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 아직도 답답하다.

 

“엄마, 어디 가?”

나는 거의 울 듯이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는 미안하다고만 말하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단칸방을 나섰다. 나중에 보니 우리 엄마가 시위라는 걸 한다는 모양이다. 해가 저물고 뉴스를 보니 엄마가 무언가를 호소하겠다고 전단지를 돌린다고 한다. 이후 엄마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뒤, 엄마는 피멍이 들고 예전보다 더 무거워진 몸으로 대문을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엄마의 말수는 조금 더 줄었으며 피로도 나른함도 아닌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축 처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엄마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하룻밤이 지난 내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랬다.

 

책가방을 챙기며 바쁘게 움직이고 ‘엄마,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던 어제와 달리 마음이 심란하고 무거웠다. 발걸음도 조금 묵직해졌다.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놀릴 거리가 하나 더 생긴 모양이다. ‘터키’는 예사요, 상스러운 욕과 자기네들 은어까지 종잡으면 셀 수가 없다. ‘흑형’이라나. 그 두 글자가 누구 입에서 나오면 몇 초 뒤 웃음소리가 나는 건 당연한 법칙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자리 바꾼 결과를 공개합니다. 1번 심민주, 2번 세르칸, 3번…….”

“근데 니 앞으로 어쩌냐?”

내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 짝궁에게 말했다.

“지금 나 놀려먹냐? 니 같음 저딴 애랑 앉아 지내겠어?”

“야, 잘 지내자.”

짝궁의 표정이 껌 밟은 표정이었다. 나에게 이 말을 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책가방을 열고 찬방에 배를 깔고 숙제를 하다가 TV를 보는 건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저희 노조 측에서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사측은 오래된 장비가 소금기로 녹슬어 무너지는 사고로 인해 무려 30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났으나 이에 대해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않고 방관하고 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안전모, 장갑, 연장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들의 안전 역시 뒷전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사측은 이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합니다.”

자세히 보니 엄마가 그 안에 보였다. 이를 확인한 나는 텔레비전의 소리를 조금 키웠다.

“이 영상은 외국인 근로자 다수가 모여 집회를 진행한 모습인데요. 이후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유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6일이 지난 오늘 사측은 이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섰습니다. 사전 신고 없는 불법 집회라며 경찰의 대응을 요구하였는데요. 경찰은 무장경찰을 동원하여 불법 집회를 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여론에서는 자칫 과잉 진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신동호 기자 연결합니다.”

곤봉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치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TV를 꺼버렸다.

 

난 노조나 시위 같은 걸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래서 엄마가 오자마자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었다. 왜 그런 걸 했느니, 뭔지도 모르고 맞고 있지를 않니, 집에 안 온 게 그것 때문이니 등등. 당연히 엄마는 내게 알려줄 리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한테 시위나 노조 따위를 설명하는 게 말이 될까?

아무튼 그때의 나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에게 계속 안 좋은 일이 생기기만 했었고, 이에 대해 엄마에게마저도 어떠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기에 그랬다. 홀로 사막 같은 곳에 불시착이라도 한 느낌이랄까. 너무 막막하고 슬펐지만 힘들어하는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엄마에게 2배의 짐이 되기는 싫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지만 아이들의 놀림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하고 있었다지만 안 들렸다. 이상하게도 책과 칠판의 글자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슬픈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손에 서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요리 동아리가 생기자 나는 생각과 달리 요리에 관심을 들이기 시작했다. 오직 나만 이것에 관여하고, 집중하며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 분야인 요리는 나에게 익숙했다. 요리에 관련된 학과로 진로가 바뀌고 내 꿈은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벨 소리와 함께 주문이 들어오자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스 버너에 불을 붙인 다음 기름을 둘러 채소를 볶고 고기를 굽는다. 어린 시절의 나도 이렇게 뜨거웠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도 이내 적응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잘 못해 드린 점이 미안하여 산소를 찾아 절을 올린다. 눈물샘이 마른 것도 아닌데, 슬프면서도 울지 못한다. 고요한 정적만이 남아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내려간다. 노조랑 시위가 뭔지 알았는데도 여전히 막막하고 슬퍼서이다. 슬픔으로 가득 찬 그때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나는 차를 타고 현재를 달리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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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한 아이

    우선 다문화 가정 및 외국인 근로자(그리고 늘 빚어지는 회사와 노조의 갈등) 같은 사회적 문제를 잘 다루셨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앵커와 노조측 대사는, 이 문제에 대해 꽤 조사하셨다는 걸 확연히 보여주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네요. 저도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좋았어요. 다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곤봉으로 맞는 등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상황은 나왔지만, 그 다음 문단을 보면 어쨌건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기는 한 듯 한데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건가요?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확연히 이럴 것이다 하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소 당황스러웠네요. 이런저런 소리를 했습니다만, 정말 좋았어요. 이런 주제는 많이 다뤄서 많이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보고 갑니다!

    • 2017-05-04 22:54:58
    조용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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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재

    * "하룻밤이 지난 내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랬다." - "하룻밤이 지났지만 엄마는 여전했다." : 이 작품의 화자가 옛일을 회상하는 형식의 작품에서 '하룻밤이 지난 내일'이라는 표현은 어색합니다. 굳이 옛일을 회상하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룻밤이 지난 내일'은 다시 오늘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내일'이라는 단어는 내내 미래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 “근데 니 앞으로 어쩌냐?” - "근데 너 앞으로 어쩌냐?" : '니'는 방언입니다. 너, 네 등으로 쓰셔야 합니다. * 현실 비판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나름의 발언이 분명한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이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 각각의 '삶'을 관찰하는 시선입니다.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어른, 아이들에게는 남들은 모르는 각각의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고통들일 겁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상상하는 그 보편적 고통 너머, 그들의 개별적 고통, 구체적인 삶이 좀더 드러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엄마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의 일상이 지나치게 보편적인 상상력으로만 진술된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삶을 좀더 구체적으로 관찰하거나 상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어린 시절의 나도 이렇게 뜨거웠을까,'라는 문장은 정말 돋보였습니다.

    • 2017-05-03 15:47:17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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