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늘의 바이올린

  • 작성자 참치좋아루나
  • 작성일 2017-05-25
  • 조회수 308

내가 말을 하면 사람들은 답답해합니다. 내 병명은 편측성불완전구순구개열로 간단히 말하자면 언청이입니다. 입을 벌리지 않아도 하얀 치아는 제멋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이야, 너 이제 그만하자.”

바람은 갈라진 틈새로 목구멍을 드나듭니다. 솔-레-라-미- 단조로운 바이올린의 음률이 순차적으로 올라갑니다. 손가락을 대지 않은 채 긋는 현은 깊고 웅장합니다. 나는 입에 이어 귀까지 부정하고 싶어졌습니다. 내 이름과, 뭐라구요?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앞치마의 끝자락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빈곤한 편입니다. 하루하루 버는 돈이 그날의 식량입니다. 게다가 반복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내 입은 그나마 남은 돈을 그대로 잡아먹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는지 조금이라도 기미를 보이면 맞설 기색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난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악기를 처음 손에 쥐어본 것은 중학교에 올라오고 나서입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된 재능의 발현이었습니다. 처음 손에 쥔 바이올린 채와 둥그스름한 몸체는 딱 품에 안겨들어 예기치 않은 흥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과는 이미 나왔습니다.

“엄마 나, 하고 싶어.”

단순하지만 뚜렷한 의지를 담은 한 마디였습니다.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합니다. 나는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뜹니다.

“집안사정이 그런데, 무슨 애가 자꾸 음악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이제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습니다.

“너도 알잖아. 응? 너 이거 해서 돈 못 벌어.”

그녀는 울음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참으려고 끅끅거렸습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젖가슴을 부여잡았습니다. 맹수처럼 날선 눈이 나를 파랗게 쳐다보았습니다. 그것은 가난의 서러움과 죄책감, 원망이 고인 세월의 응어리입니다. 심지어 내가 언청이라 더욱-

“소이야...”

건조한 공기로 차있는 실내에 내 이름이 가라앉습니다.

 

 

“소이야! 담임쌤이 너 불러.”

무릎이 가볍게 튀어오릅니다. 어깨는 한 순간 들썩거립니다. 그 분은 내 은사십니다. 나에게 처음 음악을 향한 열정과 재능을 불태워주신 분입니다. 나는 집과 현실에서 벗어나 그의 온화한 목소리와 격려의 손짓, 그가 말해주는 아름다운 미래에 위로받습니다. 음악계에서 꽤 권위 있는 분이라고 들었으나 왜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이끌어나가고 싶은 것처럼 고상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해볼 뿐입니다.

“A고는 생각해봤니?”

그 때부터 나의 가슴은 차갑게 가라앉습니다. A고는 일반계지만 음악중점고등학교로 저희 지역에선 나름 성적도 괜찮은, 일반계인데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명문입니다, 성적이 조금 부족하지만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는 학교중에 가장 여건이 좋은 학교입니다. 그런데,

“너 음악에 재능 있잖아. 그래서 물어본 건데, 어머니는 뭐라셔?”

목구멍에 걸친 언어가 죽어갑니다. 어머니가 내비친 것은 완고한 거절이었습니다. 음악은 당장의 삶이 급한 어머니께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각각 다른 고등학교의 특성이 어떤지에 대해 알아보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발이 넓거나 시간이 많은 분이 아니셨고 내가 어머니를 잘만 속일 수 있다면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성공만 한다면 어머니도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놓고 싶지 않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희망과 세상에 존재를 새기고 싶어 하는 열망입니다.

“...괜찮으시대요.”

“그래? 다행이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 학교의 팸플릿과 입학원서를 건네십니다. 어머니께 갖다드리렴. 생기부랑 서류들은 내가 잘 정리해 놓을 테니까 사인만 받아와. 나는 그것을 꼭 쥐고 집에 갔지만 어머니는 상위에 통장과 서류, 책 더미를 쌓아두고 한 장씩 넘겨보고 있었습니다. 말이 없는 어머니는 블라인드가 쳐진 듯 감정을 읽을 수 없어 무서웠습니다. 난 그냥 서류를 가방에 쑤셔 넣곤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부터 난 실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허락을 해주시진 않으셨지만 단순히 실기준비를 핑계로 악기를 만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학원을 다닐 비용은 없었습니다. 지방, 그것도 소도시 외곽의 작은 학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에 남아 바이올린을 지도해주셨습니다. 난 매일 음악실에 남아 연습을 했고 일찍 끝나는 날이면 계단 난간에 앉아 윤동주의 시를 읽었습니다.

중학교 이학년 때의 일입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끝내고 허리 밑으로 내려앉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금 내가 당한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정말 역겹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울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에서 올려다본 네모난 하늘이 너무 새파랬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공터가 참 많습니다. 난 그날 밤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공터 흙바닥 위에 누워 밤을 지새었습니다. 시골의 하늘은 참 맑습니다. 겨울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 사이로 바람이 달리고 있습니다. 별아, 너는 왜 그렇게 빛날 수 있는 거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고 우주공간의 운석들을 빨아들이면서, 어쩌면 그렇게 타오를 수 있는 거니. 그렇게 까맣고 더러운 하늘에 있으면서, 밝고 찬란하게 초원에 빛을 내리는 너를 동경했어. 그런데 난-

몸을 씻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흙이 묻은 교복을 세탁기에 넣어 몇 번이고 빱니다. 깨끗해지도록. 더러움이 남지 않도록.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빈 방에선 일에 지친 어머니의 땀 냄새만이 났습니다.

새벽부터 엄마가 큰 소리로 통화하는 통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엔 어머니께서 옷장 속에만 고이 모셔두던 정장을 꺼내 입으셔서 예쁜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서류에 사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 김소이!”

점심시간, 이현오는 중학교 1학년 때 전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이런 시골 학교까지 전학 온 도시아이입니다. 비싼 집에서 사는 비싼 옷을 걸친 비싼 도시아이. 그 애는 백 원짜리 동전을 손에 얹어 이마를 탁 치고는 웃으며 도망칩니다. 찢어진 흔적이 옅게 남아있는 입술로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이내 꾹 다물어버렸습니다. 그는 판잣집이라 불릴만큼 낡은 옥탑방에서 사는 내 가난한 집안사정을 곧잘 놀리곤 했습니다.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 시간은 역사였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어 우리는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물소를 사냥하는 인디언들과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들이 스쳐지나가고 유럽에서 온 호모 사피엔스들은 문명을 이루었다. 남북전쟁과 링컨과 독립선언문이 다시 지나가고 교과서는 맨 앞으로 옮겨져 하얀 페이지만이 남습니다

실기 연습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자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마룻바닥에 앉아 서류를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어머니는 말이 없습니다. 서류가 사락사락 넘어가고 어머니는 손가락을 붉은 점토에 찍어 지장을 찍습니다.

“저 이것 좀 사인해주세요”

“...소이야.”

“응?”

“엄마가, 미안해.”

서류에는 양육권 포기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 이후로 난 학교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마을의 대청마루라 불리는 큰 공터에서 어머니가 자살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상담센터와 집을 오가며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무슨 효과를 발휘하는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갑자기 미쳐버리거나 돌아버리지 않습니다. 나는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뿐입니다.

나는 결국 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그 서류 때문에 자연스레 아버지께 양육권이 넘어갔고 난 아버지가 바라는 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쓰고 검은 하늘을 가렸습니다.

*바이올린은 말을 한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로운 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어머니가 나왔다. 어머니는 날뛰고 있는 물소위에 올라타 있었다. 어머니는 바람조차 자유로운 아메리카의 초원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이룬 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어머니는 자유롭게 초원을 달리고,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내렸다.

참치좋아루나
참치좋아루나

추천 콘텐츠

1)나는 높이, 높이 날아오른다. 하지만 아주 높지는 않게,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대각선 뼈대를 꽉 붙잡고는 날아오른다. 세찬 공기의 흐름이 귓방망이를 때렸다. 배때지 사이로 햇살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졌다. 다른 이들도 제각각 사다리를 타고 꾸역꾸역 올라와 파란 하늘을 가득 채웠다.   하얀 지상에는 갈색,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들이 알알이 들어박혀 있다. 공통적으로 거뭇한 흥분과 탐욕의 시선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 깃든 복합된 덩어리. 아아, 나 그 틈에서 광대가 되리. 2) 마지막으로 치달은 무대 위에서 광대들이 관중들을 유혹하듯 몸을 흔든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과는 달리 서로를 경계하고 밑으로 끌어내리려는 음산한 움직임. 이미 무대 한 구석에서는 머리채를 뒤흔들며 싸우고 있다, 아, 광대 넘버12가 아래로 떨어졌어! 순수한 승자만이 무대 위에 남는 서바이벌 게임. 패자에게는 그저 패자의 이름만이 붙여질 뿐. 아름다웠던 별똥별은 초라하게 흩어지리라 3) 전부 떨어졌다. 남은 것은 서로를 물어뜯으려는 상어들 뿐, 광대들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진다. 나는 넘버3를 떨어뜨리고는 마지막 상대와 맞선다. 4) 누군가에겐 기회의 순간이, 누군가에겐 절망의 시간이 다가오는 곳, 난 하늘 위의 무법자처럼 날아올라 빙글빙글 공중제비를 돌았다. 한 방을 독수리처럼 메다꽂아 결말을 맺을 것이다. 푸른 광대는 당황하여 빠져나가려 애를 썼지만, 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는 나의 것이라 모두가 확신할 때, 난 명예로운 검투사가 되어 단숨에 명줄을 끊어버렸다. 나, 피투성이 속에서 찬란할 지어다. 5) 우승, 우승! 달콤하고도 매력적인 그 이름이여! 영원히 명예로우리라. 나의 이름이여! 하늘을 떠다니며 관중들에게 유린당하는, 우스꽝스러운 꼴의 패배자들을 조롱했다. 맹렬하게 도망치며 자기 몸을 추스르기 바쁜 꼴들이란! 최후의 승자는, 영웅은 나였다. 6) 하늘을 떠다니며 관중들의 환호를 즐겼다. 최고로 극적인 승리였다. 단상에서 내려갈 시간이라고? 웃기지 마!   ☆)연은 지하로 끌려 내려갔다. 샛별이 떴다 지는 건 한 순간인 것처럼, 광대도 무대가 끝나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것처럼. 위대한 영웅의 명예는 한순간의 불명예로 퇴색되는 것처럼. 하늘에는 보랏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영웅의 결말을 안타까워하기라도 하듯, 우울하게, 우울하게...      후기 사실 이건 책의 한 장면에서 연을 의인화 한 장면인데요.(떠오르는 소설이 있을거야...) 학교에서 독서 포트폴리오로 이걸 냈어요... 상당히 중2중2합니다. 중3이 되어 똘기가 조금 사라진 줄 알았더니... ㅎ.... 너 어디로 안 갔구나...★ 몇몇 문장들은 제가 항마력이 없어서 삭제했습니다.

  • 참치좋아루나
  • 2016-07-1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김선재

    * 오랜만에 감각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은 갈라진 틈새로 목구멍을 드나든다든지, 목구멍에 걸친 언어가 죽어간다는 표현은 다분히 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개성적인 표현들을 앞으로도 잘 개발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아쉬움도 남습니다. 개연성 있는 얘기를 위해 꼭 분명히 밝혀야 하는 사건들이 있는데 여러 사건들이 한 줄의 문장으로 간단히 처리되거나 모호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가령 - "중학교 이학년 때의 일입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끝내고 허리 밑으로 내려앉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금 내가 당한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정말 역겹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뒷 부분에 등장하는 옷을 빨고 몸을 씻는다는 진술로 보아 아마 상담을 담당했던 선생으로부터 성추행과 같은 일을 당한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이 부분은 몹시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방금 내가 당한 일'이 무엇인지 좀더 자세히 진술, 묘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소년기인 서술자에게 그것은 큰 충격이나 트라우마가 되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진술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할테니까요. - "새벽부터 엄마가 큰 소리로 통화하는 통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엔 어머니께서 옷장 속에만 고이 모셔두던 정장을 꺼내 입으셔서 예쁜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 읽을 때는 무심히 넘겼지만 이 장면이야 말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엄마는 누구와 어떤 통화를 한 것인지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옷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옷을 꺼내어 입었는지,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뗀다고 해도 독자들에게는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혼하고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엄마는 무슨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이었나요? 작품 속에서 그녀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빈곤하게 살았다거나 일에 지친 엄마의 땀 냄새가 났다거나 상위에 통장과 서류, 책 더미를 쌓아두고 일을 하고 있다는 진술이 거의 전부인데 그렇다면 그녀는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 노동을 하는 어떤 전문직에 종사했던 건가요? 엄마라는 등장인물은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인물인데 그에 대한 진술들이 지나치게 간단하고 생략된 듯 합니다. 그래서 엄마의 자살이 느닷없게 여겨지기도 했고요. - “저 이것 좀 사인해주세요” “…소이야.” “응?” “엄마가, 미안해.” 서류에는 양육권 포기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 이 장면 또한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살하기 위해 양육권을 포기한 것인지 남편과의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세계 자체가 이미 병들어 있었던 것인지 생활고로 인한 자살인 것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작품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작품은 글을 쓴 자 혼자만 알고 있는 얘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개연성을 위해 필요한 얘기들까지도 말입니다. 작품 후반에 이현오라는 인물을 등장 시킨 의도도 잘 읽어지지 않습니다.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은 등장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저 '반 친구' 중 하나가 아니라 이현오라는 이름까지 명명했으면 더욱 더 이유가 필요합니다. * "붉은 점토에 찍어 지장을 찍습니다." -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습니다." : 일반적으로 도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것은 인주라는 물건입니다. 또한 이 문장에는 '찍다'라는 동사가 두 번 등장하는데 짧은 문장 안에 같은 단어를 두 번 쓰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용한 아이님이 언급하신대로 결말 부분도 지나치게 서둘러 끝나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지으려 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결말로 인해 발단 부분에 등장하는 바이얼린이 그저 엄마와 나의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는 감각적 표현을 쓰는 것에 더해서 하지 않아도 좋을 말과 반드시 해야할 말을 가리고 꾸며낸 말에 어떤 맥락과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궁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2017-06-04 15:57:06
    김선재
    0 /1500
    • 0 /1500
  • 조용한 아이

    안녕하세요, 참치군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좀 있어요. 우선, '나'는 바이올린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요? 그런데 어째서 그 소망을 포기해야 했음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건가요?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열망'이란 것이 그렇게 순식간에 식어버릴 수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보통 그런 열망은 강하고, 그러니 '나'도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시더라'라는 거짓말을 했겠죠. 이 점에서 좀 아쉬웠어요. (그리고 '나'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을 좀 더 보여주셨으면 공감이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번째로, 마지막 문단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아까 역사 시간이라는 언급과 함께 나왔던 표현(물소, 호모 사피엔스 등)이 왜 어머니와 함께 묘사가 되는 건가요?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또 바로 그 전 문단도 그래요. '차갑고 날카로운 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바이올린이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세번째인데, 작품 중간에 '나'가 상담 중에 '역겹고 공포스러운 일'을 당하고 공터에 누워 별을 보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이 장면은 왜 나오는 건가요? '겨울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 사이로 바람이 달리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장면에 의미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가 별을 보며 별들에게 묻는 말들 역시도요. 앞서 언급한 '역겹고 공포스러운 일'이 제가 생각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굳이 묘사될 필요가 있었는지 싶어요. 그 외로는 후반부에 가끔 서술이 '~습니다'가 아니라 '~다'로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안 좋은 소리만 해댔네요.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문장, 특히 묘사가 좋은 작품이었어요. 위에 언급한 문장 말고도 '목구멍에 걸친 언어가 죽어갑니다' 도 좋았어요. 그동안 글틴에 올리신 작품들을 보니 시(그리고 수필)을 주로 써오셨던데 그래서 그런지 시적 묘사를 잘 쓰시네요.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이런 쪽에는 서투른데 배우고 갑니다. 다음 소설 기대할게요:)

    • 2017-05-25 22:02:17
    조용한 아이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