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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기 직전

  • 작성자 M0no
  • 작성일 2018-04-29
  • 조회수 417

 

“너 진짜 디질래?”
주황빛을 띄는 전구가 은은하게 만들어낸 빛이 어두운 술집안을 채운다. 그는 술에 취해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띄었지만 그가 분노를 머금고 나를 내려보는 흔들림없는 눈동자는 전혀 취객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소곤거리면서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야! 야! 그만해.”
누구지? 어디선가 본듯한 사람들이 얼굴이 빨개진 그를 말린다.
“말 좀 하라고!”
그는 테이블 위에 올라간 컵을 들고 나를 향해 던진다. 순식간에 내 얼굴로 술잔이 날라온다.

“헉… 헉…”
또 같은 꿈이다. 몸과 침대가 땀으로 젖었다. 나를 벌레 쳐다보듯이 보는 눈동자들 하나 하나 모여 내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모두가 나를 쳐다 본다는 생각에 내 머리는 멈추었다. 곧이여 나는 참을 수 없는 화를 느꼈다. 오래전 일이 나를 괴롭히는게 화났다. 그녀석들은 나를 쫓아낸 눈으로 잘 살고 있다는것이 화가 났다. 침대 옆 스탠드 테이블에 있는 약통을 열어, 한알을 혓바닥 위에 올려 놓고 컵을 입에 털었지만 컵은 비어있었다. 난 거실로 나가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셨다. 어느정도 진정 된거 같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밖에서 귀뚜라미와 개구리의 시원한 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맑아졌고 더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자고 싶지도 않았다. 컴퓨터를 키고 전자담배를 한번 빨고 숨을 내셨다. 흰 연기는 달콤한 블루베리향을 품고 내앞으로 퍼졌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더이상 차갑지 않았다.

 

 
“카톡.”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나를 잠에서 깨웠다. 새벽 늦게 자서 그런지, 해는 벌써 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상단바에 노란 말풍선하나. 참 오랜만에 보는 알람이였다. 난 문자를 확인했다.

민수 : 야! 요즘 잘지내냐?
민수… 민수는 고등학교때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2년만에 온 문자였다.
나 : 나야 잘있지. 무슨일인데?
오랜만에 온 친구의 문자에 난 바로 바로 답했다.
“꼬르륵…”
허기가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부터 지금 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것이 생각났다. 나는 물컵에 물을 채워 냄비에 부웠다. 이걸 3번 정도 반복하고 가스렌지의 벨브를 돌렸다. 나는 전자담배를 한번 길게 빨고 다시 숨을 내셨다. “ 카톡! ”

민수 : 우리 못본지 오래됬네. 이번주에 만날래?
민수로 부터의 카톡이였다. 사람을 만나는건 오랜만의 일이였다. 몸상태도 어느정도 괜찮아졌고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나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나 : 그럼. 토요일에 볼래?
시골에 내려와서 가족을 제외하고는 처음 만나는 지인 이였다.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불안함과 설렘이 동시에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머리와 심장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기묘한 기분 속에서 끓는 물에 난 스프와 면을 같이 넣었다.

 

 

“성민아! 여기야.”
길게 빠진 다리를 감싼 슬랙스와 바지 안으로 넣어 입은 흰 와이셔츠와 까만 선글라스, 뒤로 넘긴 머리, 민수는 고등학교 때 보다 더 성숙해 보였다. 흰 무지티와 면바지에 삼선슬리퍼 끌고 나온 내 모습과 많이 비교 돼 보였다.
우린 창가에 원형테이블에 않았다. 시간은 오후였지만 하늘에 낀 먹구름은 태양을 완벽히 가렸다. 밖에 내리는 빗소리, 따뜻하게 빛나는 노란 전구들, 에어콘이 작동하고 있어 선선한 온도와 적절한 습도, 카페안의 환경은 완벽했지만 난 불안했다. 민수에 비해 초라한 나를, 사람들이 쳐다보는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지냈냐 성민아?”
민수의 차분하고 시원한 말투는 미쳐 날뛰는 나를 조금 차분하게 만들었다.
“어.. 뭐 나야 잘 지내지.”
오랜만의 대화여서 그런지 내 목소리는 뒤로 이어질수록 작아지고 어눌해졌다.
“몇주전에 고딩때 얘들이랑 술한잔 했거든. 그 때 니 얘기 나와서 보러왔어. ”
“어.. 그래?”
“일단 뭐 좀 마시자. 뭐 먹을래?”
“너랑 같은 걸로”
“그럼 아메리카노로 시킬게”
그는 주문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 홀로 테이블에 남겨졌다. 수근거리는 사람들 모두 나를 보는거 같았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고개도 돌릴 수 없었다. 의미없이 핸드폰의 열어 흘러가는 시간만 확인할뿐이였다. 민수가 주문을 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저서야 난 고개를 들수있었다.
“야.근데 너 서울대 가지 않았었냐? 왜 이런 시골에 살고있어?”
민수가 내게 질문했다.
“몸이 안좋아서. ”
“너. 설마 또 사고 쳤냐?”
그 질문을 듣고 난 바로 전자담배를 물었다.
“저기. 손님 여기 금연 구역인데요.”
정리하러온 알바생 한명이 이 모습을 보자마자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할 수 있을 만큼의 상냥함으로 내게 말했지만 짜증은 숨기지 못했다.
“네. 죄송합니다.”
난 최대한 성의있게 대답했다.
“야. 넌 변한게 없냐. 너 영민이랑 싸웠던거 기억나냐?”
2년전 얘기지만 영민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생생하게 장면이 떠올랐다. 오고가는 고함과 날 벌레처럼 쳐다보는 반애들의 표정.
“야. 너 내말 듣고 있니?”
난 민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다시 민수에게 집중했다.
“근데. 그때 영민이랑 왜 싸웠던거냐?”
질문은 나를 고등학교때로 돌려보냈다. 영민이는 완벽에 가까운 친구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와 영민이는 같은 반이였다. 영민이 자리에는 친구가 넘쳤다. 전교 회장도 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는 모든사람들에게 편견없이 편하게 말을 걸어주고 타인이 가진 고민과 공감대에 대해서 공감해줬다. 점심이 지나고 식곤증이 밀려오는 지루한 수업시간엔 적절한 농담으로 교실 분위기를 살릴정도로 유머감각이 풍부한,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성격적으론 하자가 없는 친구였다. 그런 영민이는 항상 혼자 앉아있던 음침한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몇안되는 친구였다. 처음에는 그런 영민이가 난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시험을 보고 두번째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의 처음학기가 끝났을 때. 나는 영민이를 보고 알수없는 화가 올라왔다. 영민이는 항상 친구들 틈에 껴있었고 난 항상 책에 모든 집중을 쏟아부었다. 항상 노는것처럼 보였던 영민이는 내 모든걸 쏟아부었던 점수를 3점 4점 차이로 따라오고 있었다. 그 당시엔 그런 영민이가 싫었다. 그 후 난 영민이를 피했다. 아마도 난 영민이에 대한 열등감이였을것이다. 그리고 일은 고3 여름방학전에 터졌다. 1학기 영민이의 성적이 나를 압질렀던 것이다. 난 그 점수확인표을 보자마자 영민이의 자리로 가서 책상을 엎었다. 그 위로 기억나는건 나와 영민이 사이에 오고 가는 고함과 날 쳐다 보는 시선, 내게로 날라오는 주먹과 점점 좁아지는 시야였다. 다시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사건이였다. 생각해보니 19살때의 나와 21살때의 나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던거 같다.
“야. 성민아. 너 자니?”
민수의 말 기억속에 빠진 나를 다시 대화로 잡아 올렸다. 담배 한모금을 간절히 원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그 순간 쳐다보는 점원의 눈빛에 전자담배를 꺼낼수없었다. 난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고 깊게 숨을 내셨다.
“삐빅. 삐빅.”
“응? 잠깐 커피 좀 받아 올께.”
민수는 커피를 가질러갔다. 난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자담배를 만지작, 만지작 주물렀다.
“야 여기 커피왔다.”
난 커피잔이 테이블에 닿기 무섭게 팔을 뻗어, 커피잔을 들고 마셨다. 처음 먹는거 같은 커피의 맛, 그 커피의 쓰면서 시큼한 맛이 담배 생각을 어느정도 없애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몰론 대화는 민수가 주도했고 난 그에 따라 적당히 호응했다.

“민수야. 우리 이만 갈까?”
점점 대화가 줄어들고 분위기가 어색해지는걸 느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카페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오는거 보니. 이제 진짜 여름같다야. 성민아. 혹시 무슨일 생기면 연락하고. 또 보자.”
“어. 그래.”
성민이는 먼저 등을 돌리자마자 나도 등을 돌려 갔다. 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오래 내쉬었다. 성민이와의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고등학교 기억들은 대학교때 기억들을 불러왔다. 대학교때 기억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확실한건 그날은 시험이 끝난 날, 늦은 저녁이였고 술에 취했던 것이다. 그 뒤 기억은 구멍이 뚫린 스편지같은 상태이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심한말을 했고 그는 내게 술잔을 던졌다. 내가 무슨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성적에 관한 이야기였을것이다. 내가 열심히 공부할 동안 그는 동아리 선배들로 부터 받은 족보를 이용해 시험을 쳤다. 난 그 일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날 술자리에서 터진거같다. 주머니속 이어폰처럼 머릿속 꼬였던 기억들을 풀수룩, 죄책감, 후회, 열등감, 수치심, 두려움등 수 많은 가정들이 기억의 끈에 붙어 같이 풀어져나왔다. 난 빗속을 걸으면서 그 기억들을 풀기 보단 블루베리향의 연기로 숨겨버리는걸 선택했다.

 

 

햇빛이 눈 부시고 매미 소리도 시끄러워 지기 시작했던 무더운 여름날되었다. 난 허기가 졌고, 본능적으로 먹을걸 찾았다. 싱크대 위에 찻잔을 살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하고 냉장고도 열어봤다. 어머니가 보내 주신 반찬들이 조금 있었다. 불투명한 플라스틱안에 김치인지 오징어포인지 붉은색을 띄는 음식이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역한 악취가 풍겨왔다. 무말랭이였다. 곳곳에 핀 곰팡이도 보였다. 토할거 같아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넣었다. 할 수 없이 이 더운 날씨에 동네 슈퍼갔다. 높은 곳에서 비치는 햇빛은 기분 좋았다. 하지만 뒤통수를 타고 목선으로 내려가는 땀방울이 모든걸 잊을 만큼 불쾌했다. 동네 작은 슈퍼에 도착했다. 문을 열면 몰려오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상상했지만 이런 작은 동네 가게에서 에어콘 바람은 사치다. 가게안은 밖과 구분하지 못 할 만큼 더웠다. 요리하기도 귀찮아서 눈에 보이는 라면 한 묶음과 햇반 몇개, 아이스크림 하나 계산 하고 가게를 나섰다.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겨, 주머니에 넣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집에 가던 중이였다.
“야! 다음은 누구야? ”
“기달려봐. 지금 꺼내고 있으니까.”
매미 소리를 뚫고 내 귀에 들어온 소리였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소리 나는 곳으로 향했다. 마을 정자에 꼬마 몇몇이 왁자지껄하게 모여있었다. 뭐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있나 하고 터벅, 터벅 걸어가 꼬마들 뒤에서 뒷짐을 지고 살짝 훔쳐 봤다. 꼬마들은 가운데 플라스틱 통을 둘러싸고 있었다. 통안에는 귀뚜라미 두마리가 들어있었다. 귀뚜라미 엉덩이 부분을 붓으로 슬슬 간지럽히니,사슴벌레 같은 집게 모양의 주둥이가 툭 튀어 나왔다. 두마리 모두 투우의 성난 황소가 투우사에게 뿔을 겨냥하는 것처럼 집게를 서로를 향해 겨눴다. 순식간이였다. 놈들은 서로를 물어 뜯었다. 시끄러웠던 꼬마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집게를 들고 서로의 더듬이를, 날개를, 목덜미를 물었다. 치열한 싸움이였지만 전투의 결과는 금방 나왔다. 전의를 상실한 한마리가 겁을 먹고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날아갔다. 한 꼬마가 한숨을 쉬며 투덜 거렸다. 꼬마들은 무시하고 날아가는 귀뚜라미를 입을 벌리며 쳐다봤다
“다음 사람 누구야! 빨리 덤벼.”

날아가는 귀뚜라미에게 넋을 빼겼던 꼬마들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한 명이 자신의 옆의 작은 통에서 귀뚜라미를 꺼냈다. 이제 보니, 꼬마 한명, 한명 모두가 귀뚜라미가 든 작은 통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승리햇던 덩치가 큰 귀뚜라미는 도전자들을 차례차례 무찔렸다. 도전자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겁쟁이들. 마지막에 남은건 그 덩치 큰 귀뚜마리와 그 전의 도전자들의 비하면 비실비실해 보이는 귀뚜마리였다. 적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올라온 그 녀석, 난 녀석이 쉽게 비실비실한 녀석을 무찌르고 승리를 차지 할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여기 꼬마 대부분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꼬마 몇명은 이미 결과가 났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 녀석은 작은 놈을 두고 고전했다. 작은 놈은 마치 축구 경기장의 메시같이 재빠르고 정확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그 작은 몸으로는 큰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었나 보다. 커다란 녀석이 작은 놈의 머리를 물었다. 한번의 공격이였지만 작은 놈은 그 공격에 깜짝 놀랐다. 모서리로 도망 가더니, 큰 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약간의 고비도 있었지만 예상대로 겁쟁이 놈들은 모두 도망가고 큰 놈이 남아 이 싸움의 챔피언이 되었다. 챔피언의 주인인듯한 꼬마는 의기양양하게 두팔을 꼬고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녀석들을 쳐다봤다. “이제. 재미없어.” 패배한 꼬마들은 돌아갔다. 승리한 꼬마는 챔피언을 살펴보았다. 더듬이 한쪽과 다리 두쌍은 이미 뜯겨 나갔고 날개 하나 마저도 찌져질려고 했다.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아까울 정도로 심히 몸이 상한 귀뚜라미였다. 꼬마는 나뭇가지로 뚝 뚝 쳤다. 챔피언은 날개를 푸드득 거리면서 통안 누워서 한 바퀴돌았다. 날개를 펄친 귀뚜라미는 위협적이고 혐오스러웠다. 꼬마는 놀랬는지 정자에서 내려와 앞에 차도 까지 도망갔다. 나도 그 모습에 올라 고개를 내밀기 위해 굽힌 척추를 피고 한발 물러 섰다.그 꼬마는 멀리서 챔피언 살폈다. 챔피언이 더 이상 발작하지 않는 걸 확인한 꼬마는 다시 정자로 돌아와 플라스틱 통을 거꾸로 들고 털어냈다. 꼬마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집으로 가버렸다. 챔피언은 다시 한번 날기 위해 바둥거렸다. 남은 2쌍의 발을 재빠르게 움직이기도 했고 비정상적인 날개를 부르륵 거리며 움직이기도 했다. 몸이 부서진 챔피언, 난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로 챔피언을 감싸고 눌렸다. “뜨드득 푹.” 이 소리가 챔피언의 마지막 소리였다. 난 아이스크림 막대와 같이 챔피언을 품은 포장지를 옆에 묶인 쓰레기 봉투에 끼워놓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서 난 자퇴신청서를 모니터에 열어 놓고 한동안 계속 고민했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이렇게 지루한 고민 속에서 난 점심때 봤던 귀뚜라미가 생각났다. 더이상 도망친 귀뚜라미가 겁쟁이로 보이지 않았다.

M0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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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적엔, 정해진 시간에 잠에 들고 알람에 맞처 일어나는, 어쩌면 몇몇 사람들은 따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그런 규칙적인 잠이 내게 가장 필요했다. 그 시절에 나는 침대에 누우면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불면증.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내게도 불면증이 생겼었다. 경험한 바로는 불면증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이 침대에 누우면 그 많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내 경우에는 오늘은 잘 수 있을까? 였다. 그 걱정 때문에 나는 잘 수 없었다. 눈은 감아도 보이는 수 만 가지 것들 때문에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잠에 든 상태와 잠에 들지 못한 상태. 그 사이에서 밤을 새우거나, 혹은 해가 떠오를 때쯤에 자거나. 종일 피곤했지만, 피곤은 큰 문제가 아니였다. 중요한 것은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갔다. 불면증 때문에 남들보다 많이 준비할 수 있었다. 싫긴 해도 불면증 덕이 있었다. 아마 그때쯤부터 불면증이 사라진 거 같다. 바빠져서였던 것일까? 아니면 대학에 합격해서? 어찌됐든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나는 침대에 눕기만 하면 잠드는, 십대 시절 내가 꿈꾸던 유형의 사람이 됐었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은 룸메이트가 내게 씩씩거리며 따졌다. 코골이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어떻게 좀 할 수 없냐고 말이다. 나는 미안했다. 불면증을 격었던 나는 잘 때 사람이 얼마나 예민해지는 지, 누구보다 잘 안다. 나 보다 어렸던 친구였는데, 연신 사과를 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아 매우 뿌듯했다. 스파이더맨을 꿈꾸는 아이가 진짜 스파이더맨이 되면 분명 이런 기분을 느끼겠지. 잠을 자든 못 자든, 코를 골며 자든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내 마음은 십대 시절과 비교하면 평화로웠다. 지금은 그런 시절들을 모두 보내고 가장 편안하고 최적화된 수면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의 수면 습관은 최악이다. 지금의 나에게 잠은 두렵다. 물론 잠은 자고 싶다. 하지만 지금 자는 잠은 아니다. 그건 진짜 아니다. 뭐라고 해야 될까? 난 꿈이 없는 잠을 자고 싶다. 지금 나는 내 의지로 잠에서 깰 수가 없다. 자각몽을 꾸기 시작한 게 시작이었다. 자각몽. 누구나 한 번쯤은 흥미를 느낄만한 꿈이다. 인물을 정하고 그 인물들이 행동은 물론 배경까지 정할 수 있는 그 꿈속에서만은 신이 될 수있다. 시작은 모르겠다. 어떻게, 언제부터 자각몽을 꾸기 시작한 것인지. 그게 지옥의 입구였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들러가는 꿈은 재밌다. 재밌었다. 처음에는.... 처음 몇 번은 진짜 재밌었다. 영감이 되기도 했고. 하지만 가혹 꾸던 자각몽이 종종 꾸는 꿈으로 바뀌고 종종 꾸는 꿈은 자주 꾸는 꿈으로 바뀌면서 내 삶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자각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자고 일어나면 그 꿈이 자각몽이든 아니든 모든 꿈의 모든 내용이 기억났다. 그런 잠은 쉬지 않고 긴 마라톤을 뛴 것처럼 피곤하다. 모든 사건이 공백없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니까. 그래도 피곤한 건 괜찮다. 그건 이미 고등학교

  • M0no
  • 2019-02-25
계시

오늘도 도서관에 박혀 책을 읽는다. 이상. 이 도서관에 매일 출석한 것이 벌써 1년이 됐다. 매일 읽던 이상. 그런데 나는 이상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실화가 實話가 아니라 失花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 일이었다. 앉아서 그에 대해 연구한다. 책을 뒤적이고 연필로 몇자 끄적이다가 문득 시계가 보고 싶어졌다. 9시. 해가 저버린 9시. 평소보다 늦은 시간. 이제 갈 시간이다. 천천히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책을 책장에 꽂아 놓고 문을 향해 걷는다. 서고는 나와 사서 2명이 전부다. 전등도 이미 절반이 꺼져서 서고는 어둡다. 천천히 걷다가, 그들 앞을 지나갈 때에 그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난 재빠르게 도서관을 나왔다. 아스팔트위, 그 위에서는 다시 천천히 걷는다. 영원히 걷고 싶다. 도착지에 도달하고 싶지 않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면서 나는 이미 현관 앞에 서있다. 도어락의 키패드를 무겁게 누른다. 문은 열리고 정이는 아직도 집에 있다. “오빠 왔어?” 놀란 목소리다. 정이 얼굴보다 눈에 먼저 보인 것은 물이 가득 채워진 잔이었다. “약 줘.” 상 앞에 털썩 앉는다. 정이는 자기 화장대 앞에 두었던 병을 내게 건넨다. 병을 내 손에 턴다. 수십정의 알약을 입에 순식간에 털어놓고 잔에 입을 댄다. 정이는 내게 말한다. “오빠, 그러지마. 우리 그냥 살자.” 내 눈동자는 움직인다. 정이는 두손을 모아 입을 가렸지만 눈꼬리가 내려가있다. 나는 결국 끝을 내지 못한다. 그자리에서 알약들을 모두 토해 버린다. 변기로 달려가 더 토한다. 내게 자살하지 말라는 정이는 아무말이 없다. 거울로 비친,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를 입고 바닥을 닦는 정이는 분명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정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처다본다. 정이의 표정을 볼 자신은 없다. 다시 얼굴을 변기에 박는다. “나 이제 갈게.” 난 여전히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우엑 우엑 소리를 낸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이 연기를 멈출 수 있었다. 다시 상 앞에 앉는다. 텅 비어버린 잔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울컥해진다. 처음 죽겠다고 한 것도 나였다. 정이는 이런 나보고 살아달라했다. 어쩌면 정이가 웃던 것은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내 토를 닦던 정이는 사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내 눈물은 멈추지 않는가? 어쩌면 이 방에 가득 독이 찼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고 싶어서 집을 나섰다. 나는 다시 걷는다. 나는 죽고 싶은 것일까? 살고 싶은 것일까? 노란 달이 바다에 비쳐서 울렁 거린다. 나는 울렁이는 돌을 계속보고 싶어졌다. 멈춰서 계속 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입을 벌리고 가만히 서서 처다본다. 노란 달이 비친 줄 알았는데, 그 노란 원을 중심으로 바다가 갈라진다. 그 위로 노란 달이 떠오르더니, 내가 있는 곳까지 길게 다리가 난다. 달이 나를 부른다. 왠지모르겠지만 확신이 들어, 본능대로 움직인다. 암흑. 내가 들어온 문이 닫힌다. 암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예감이 틀린 것인가? 나는 이제 죽는 것인가? 어쩌면 나는 이미

  • M0no
  • 2018-12-29
그를 위해 애도 합시다.

그는 환하게 타올랐다. 우리들은 불 앞에 바퀴벌레처럼 그 주위에 둘러싸았다. 그 불에 매료되었지만 누구 하나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그 어떤 말도 못 하였다. 하나하나 모두가 그림자 같았다. 표정도 없는 얼굴로 소름 끼치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봤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그 캠프파이어 광경은 계속 됐다. 그림자 같은 우리들은 그 환한 빛 덕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새로운 일을 하고… 길고양이들이 죽었다. 누군가 사료에 쥐약을 넣고 길고양이들에게 먹인 것 같다. 라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모자이크된 고양이 사체 사진 몇 장과 작성자의 추측이 내용의 전부였다. 사람들은 모두 분노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범인을 욕하였다. 가족에 대한 욕도 서슴없이 적었다. 마치 자기 지인이 죽은 것처럼 고양이들을 위해 슬퍼해 줬다. 사람들은 추천 버튼을 눌렀고 게시판의 꼭대기로 올라가, 첫 페이지의 첫 번째 글이 되었다. 편의점에서 만난 진상, 사람을 죽이고 도주하다 뺑소니를 당한 살인마, 법 앞에 억울하게 누명은 쓴 사람의 글이 그 아래를 이어갔다. 오늘 공장에서 있던 일도 게시판에 올라가 있었다. 하나의 글도 빠짐없이 나도 분노와 위로의 답글을 달았다. 일상의 반복이었다. 아침에는 더 나아진 환경에서 일했다. 저녁에는 인터넷 속에서 화를 냈다. 분노하고 위로하고, 하늘은 무너지지도 땅은 갈라지지도 않았다. 난 여전히 표정 없이 소름 끼치는 사백안을 가진 모습이었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분주히 준비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가 멈출때마다 사람들이 한 명, 두명 늘어났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버스는 사람들로 꽉 차버려, 출근 시간에 어울리는 버스의 모습이 되었다. 내 옆자리에도 덩치가 큰 사내가 앉아, 나는 몸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게 앉아있는데, 핸드폰이 떨려왔다. 얇은 팔은 나와 덩치 사이를 힘겹게 비집어 들어가 간신히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어머니에게 온 전화였다. 받지 말까 생각했지만 벨소리가 길게 울린다는 생각과 이 아침에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어머니.” “요즘 너희 아버지 코피 많이 난다고 했었잖니.” “아직도 병원 안 가셨어요? 전에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면서요.” “농사일 한창 바쁠 때였는데. 그 양반이 가겠니? 이번에도 겨우겨우 설득해서 가는 거야. 그래서 그런데, 너 금요일에 시간 되니? 밥이나 한번 먹자.” “애 바쁜데. 왜 또 나오라고 해.” 휴대폰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도 들렸다. “죄송해요. 일이 바빠서… 나중에 한번 내려갈게요.” “그래. 그럼 그러럼.”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팔을 창틀에 붙여 얼굴을 받치고 창밖을 구경했다. 나무와 가로등, 걸어 다니는 사람들과 거대한 건물들이 전부인 지루한 풍경을 지나 어느덧 시청까지 왔다. 시청 앞에서 한 노모가 피켓을 목에 걸고 시위하고 있었다.

  • M0no
  •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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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재

    * "컴퓨터를 키고" - "컴퓨터를 켜고" * "커피를 가질러갔다." - "커피를 가지러 갔다." * "성민이는 먼저 등을 돌리자마자 나도 등을 돌려 갔다." - "성민이가 먼저 등을 돌리자마자 나도 등을 돌려 걸어갔다." * "높은 곳에서 비치는 햇빛은 기분 좋았다 - "내리 쬐는 햇빛에 기분이 좋았다." * "찌져질려고 했다." - "찢어지려고 했다." * " 나도 그 모습에 올라 고개를 내밀기 위해 굽힌 척추를 피고 한발 물러 섰다." - "나도 그 모습에 놀라 굽힌 등을 펴고 한 발 뒤로 물러 섰다." * "집으로 돌아가서 난 자퇴신청서를 모니터에 열어 놓고 한동안 계속 고민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모니터에 자퇴신청서를 띄워 놓고 한동안 고민했다." * M0no님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M0no님의 글에 타자가 등장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여태 쓰지 않았던 의성어들도 보이네요. 삐빅이라든지 꼬르륵이라든지 하는. 의성어는 가능하면 묘사로 대신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문 완료를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라든지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를 연신 보냈다 라든지 와 같이. 절대 쓰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의성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건 어쩐지 그 상황을 너무 쉽게 넘겨 버리는 듯한 인상을 주거든요. 각설하고, 이 소설은 열등감에 휩싸인 '나'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그런데 그 열등감은 성적에 기인한 것인가요? 아니면 영민이라는 인물에 기인한 것인가요? 그 둘은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입니다. 작품 내용으로 보건대 나(성민)도 서울대에 진학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나가 시골에 살고 있는 이유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보다 사교적이고 활발하여 쉽게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마는 영민에 대한 적개심이 그리 크게 드러나지도 않는 것 같고요.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귀뚜라미들의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귀뚜라미를 죽여 버린 것으로 그 갈등을 해소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주인공의 내면이 설득력 있게 그려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고생하셨어요.

    • 2018-05-04 13:07:00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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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0no

      다음에 쓸 땐 이 점에 유의해서 써볼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

      • 2018-05-04 22:35:26
      M0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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