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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토 예술

  • 작성자 이디고
  • 작성일 2021-11-12
  • 조회수 204

  피토 예술. 너무나도 당연한 말. 예술을 하는 것은 피토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려 예고에 진학하긴 했으나 너무 많은 피토와 구토로 인해 말라 죽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느꼈을 때는 눈앞이 깜깜하고 끝 없는 암흑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매일 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매일 코에서 붉은 물감을 잘못 흘려 스케치 종이에 번져나가기 일쑤였다. 매일 숨이 차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싶었지만 이 마라톤은 잠시 쉬면 너무 격차가 나는지라. 폐 안에 들어오는 공기가 따가워질 때까지. 숨통을 조여와 내 손으로 목을 조르고 싶어질 때 까지. 계속 달렸다. 결국 결과는 길고 긴 빨간 암흑이였지만.

   끈적히 흐르는 피토는 나의 방을 적셔갔고, 나의 방문을 닫았다. 나를 감금하며 협박했고 불안에 휩싸이게 했으며 나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빌었다. 어떻게든 뇌를 쥐어짜 아이디어라는 피가 뚝뚝 하얀 세상에 떨어지도록 했고 아이디어라는 피를 물감으로 써서 붓으로 하얀 세상을 창조했다. 하얀 세상의 왕이며 혁명가이며 창조자가 되려고 했다.하지만 나의 피토는 더욱 줄줄 흐를 뿐이였다. 어느 날 피토만 꺽꺽 흐르던 나날들, 피토의 뭉텅이가 툭 나왔다. 끈적거리며 꿈틀거렸고 호흡하며 피를 뿜고 있었다. 그 징그러운 뭉텅이를 나는 너무 싫었고 소름끼쳤고 못하겠다고 혼자 감금된 방에서 소리쳤지만 결국엔 그 역겨운 뭉텅이의 세 조각 중 하나를 먹었다. 그 물컹거리는 핏덩이를 먹었다. 나 스스로.내 목으로 넘어가는 식감은 정말 다시 토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감고. 삼켰다.

   그 다음, 세 조각 중 두 조각을 굳게 닫힌 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열려고 발악해봐도 꿈쩍 않던 그 철문같던 문은 깃털처럼 뭉텅이를 맞자마자 펑 뚤렸다. 내 방은 피토가 가득한 시뻘건 방에서 다시 깨끗한 방으로 돌아왔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가 미친 사람이였던 것처럼. 모든 게 정상이였고 방에 갇혀있는 동안 시간을 흘렀고 피토를 토하는 동안 이미 다른 아이들은 저 멀리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저멀리 달리고 있다는 것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눈이 비친다는 것이 희망적이였을 뿐이였다.

   조금 달리니 깨달았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처음 피토하던 넘어졌던 그 자세 그대로 너네를 쳐다봐서 그랬구나. 비틀거리며 일어났더니 이번에는 너희가 피토를 하고 있구나. 그저 완벽하고 나보다 훨씬 달릴 것만 같던 너희들도 피토를 하고 있구나. 한 번 겪으니 피토하며 꺽꺽거리는 너희들 모습을 보며 비웃음이 났다. 공허한 초점 없는 회색 눈빛으로 너희를 바라봤고 피비린내 나는 피로 물든 너희를 가볍게 짓밟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깨끗한 옷을 입고 깨끗하다 못해 광이 나는 운동화를 신고 앞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다시 달리기 시작하니 피토를 하고 난 후인 건지 피토를 하기 전인 건지 모를 앞서가는 아이들을 만났다. 맨 앞에 달리는 아이는 왼쪽 가슴에 '1등'이라고 쓰여있는 뱃지를 차고 있었다. 그 뒤로 달리는 두 명의 아이는 맨 앞에 달리는 아이와 웃는 것 처럼 보이나 뒤로는 칼과 총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맨 앞에 달리는 아이는 눈치가 빨라서 뒤의 아이들이 무기를 꺼내려고 하면 그대로 전속력으로 뛰었다. 뒤의 아이 둘은 눈에 살기를 머금고는 그 아이의 뒤를 재빨리 쫓았다. 내 왼쪽 가슴을 보니 '4등'이라고 쓰여 있는 파란색 뱃지.앞에 세 명의 아이들은 같은 시기에 거의 지쳐 쓰러가고 있었다. 숨은 헉헉 대고 눈에는 초점이 없으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에 조그만한 구멍이 뚤려서 분수처럼 피가 나오는 중이였다. 저 구멍은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망설임 없이 전속력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전속력으로 달렸는데도 이상하게 숨도 차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앞 세 명을 모조리 쏴버린 후 머리에 피를 흘리며 껄떡대는 세 명의 아이를 냅두고 맨 앞에 아이의 피 묻은 뱃지를 내 파란 뱃지와 바꾸어 꼈다. 이상하게 내 손에 닿는 순간 피는 없어지고 청아하며 빛나는 '1등'이라고 적혀있는 금뱃지가 내 눈에 비쳤다. 뱃지를 달고 혹시 몰라 뒤에를 돌아보니 피범벅인 2등이 나를 죽일 기세로 좀비처럼 달려오더라. 정말 가관이였다. '이번에는 다른 무기를 써볼까?'라는 생각에 칼로 2등의 심장을 찔렀다.

이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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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이디고님 안녕하세요. '피를 토할만큼 열심히 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그것에서부터 착상된 글로 보였습니다. 처음엔 피토라는 예술이 하나의 장르인 줄 알았지만요. 다만 예술을 그저 경쟁의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예고라는 설정이 있지만, 그 중에서는 경쟁에서 포기한 인물도 있을테고, 피를 토할만큼 열심히 안 하는데도 잘 하는 인물이 있을테지요.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하는만큼 글에서도 예술을 다양하게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1-12-16 07:15:39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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