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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시네마와 이상한 세상에 대한 연구

  • 작성자 화자
  • 작성일 2023-11-22
  • 조회수 542

영화가 끝났다. 스크린에 엔딩크레딧이 올라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나는 영화가 끝난 스크린 앞에서 한 참을 더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화면보다야 텅 비어있는 스크린이 더 재밌는 영화였는데도 어떤 사족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사족은 무엇이었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와중 젊은 알바생이 쓰레받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이상하단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 영화 상영 끝났는데요.

알고있습니다만

알바생은 말은 않고 곧곧이 서서, ‘알고 계시면 어서 나가주시죠’하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힘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나 또한 그에 상응하듯 침묵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관람실의 조명이 어느 때 보다도 따갑게 내렸다. 거리에는 저녘놀이 드리웠다. 그렇지 않아도 허기진 배를 채우려 영화관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주변 상가들은 나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듯 모두 셔터를 내려버리고 없었다. 

식당을 찾다가 마땅히 갈 곳이 없음을 깨닫고 쓰레기가 머무는 골목구석으로 들었다. 한숨을 내쉬고 담뱃불을 붙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 보았다. 벽과 벽 사이로 퇴근을 하는 사람들 한 무리가 보인다. 그들은 끊임없이 벽과 벽을 넘나든다. 

골목 사이로 그들의 잔상들이 스친다. 검은 정장, 검은 구두, 검은 가방. 쓰레기의 악취가 아우성치고 있다만, 나를 저 사람들 속으로 내몰지는 못한다. 담배연기를 머금고서는 문득이 이곳이 내가 머물러야 할 곳임을 깨닫는다. 


이방인. 카뮈는 나같은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불렀다.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는 사람이라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너는 이방인이라고.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때때로 Tv쇼를 보노라면 이방인은 막장극의 남주와 다름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실 넌 내 아들이 아니다’. 급발진 막장 아침 드라마에서 남주를 향해 우려먹다시피 나오는 대사. 알고 있던 사실을 부정하게 되고, 그들 스스로 타인을 부정하게 만드는 비극을, 카뮈에 의해 ‘이방인’으로 일반화당해야만 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을 그런 막장극으로 치부하기 싫었다. 막장극에서의 ‘막장’이 극의 마지막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개판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결국 산다는 건 나만의 산물임으로 운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을 염두해두어야만 하고, 인생에는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건 개판 아닐 수가 없다. 막장이 무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해도, 어쨋든 막장은 막장일 뿐, 막장만큼은 싫었다. 내 인생은 그런 힘든게 아니라고 애써 부정했다. 내가 이방인이라고? 나는 이미 지쳤는데, 내 인생이 막장극으로까지 변모한다면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만약 알베르 카뮈가 눈 앞에 현신하여 그 대단한 코트자락을 펄럭이며 당신은 이방인이 되셨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겠나요?, 하고 묻는다면 어림도없는 소리, 하고 거절의사를 표명하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이방인으로  나를 구태여 귀속시키려는 카뮈의 부조리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그늘 뒤에 서있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사람이 없었으면 했고, 내 뒤에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곧 그늘이 되고자 했다. 머릿 속에는 그늘로부터 벗어나 뙤약볕 아래 광명을 마주하는 순간이 수천번 수백번이고 계속되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큐어>를 관람하고 짜증이 일었던 적 있다. 형사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최면술사를 찾아다닌다는 이야기였는데, 최면술사가 피 묻은 손으로 희미하게 X 자를 그리다가 끝내 죽고마는 장면에서 나는 한탄했다. 최면술사는 영화 속에서 세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에서 연쇄 살인범이라며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정신병자는 세상을 바라보려하지 않는 사람들, 당신들인데. 그가 죽으면 더 이상 그 영화 속 세상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각의 파멸이었다.

 지구 인구는 70억이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을 살고있다면 이 세상은 저마다 다른 70억의 수로 파멸될 가능성을 지닌다. 게 중에서 무언가가 개인을 상실하면, 70억의 하나가 잊혀지고, 잊혀진 것은 그렇게 사라지고 만다. <큐어> 속 최면술사의 죽음이 그랬다. 그가 죽었을 때, 영화 속에 그는 더 이상 없었으므로 나는 영화로부터 벗어나 좌석에 기대어 어둠 속으로 묻혀야만 했다. 스크린의 빛은 나를 거부했고, 그 빛이 늘어뜨린 나의 그림자만이 나를 어둠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게 그간 나의 시네마였다. 이 후 같은 감독의 영화였던 <도쿄 소나타>를 관람할 수 있었다. <도쿄 소나타>는 일가족이 돈문제로 분개 직전까지 갔다가 결말에서는 모두가 완전한 개인으로서 관념을 확보하고, 가족이라는 허상일 뿐인 공동체에서 일상을 불안하게 유지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극 중 엉성한 강도가 주부인 엄마를 납치하고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있다. 엄마라는 이유로 가족들의 노예로 전락해야만 했던 한 여성은 강도에 의해 자유롭게 차를 몰고, 자유롭게 대화하며 위태롭게 타지에 들어섰을 때에 해방된다. 그녀는 간밤 사라진 강도를 찾아 해안으로 나선다.

 발을 내디딜 때 마다 살결에 까끌히 붙어나는 모래, 숨조차 허락하지 않는 공기, 몰아치는 파도,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일출. 카메라가 새벽바다를 향해 뻗은 타이어 자국을 보여주며 사라진 도둑을 상기시키는 순간, 영화는 비로소 빛이 된다. 광명이 된다. 영화를 보던 나의 두뺨이 형형색색 빛으로 맴돌 때, 영화는 곧 인생이 된다. 머릿 속에서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 하마구치 류스케, 미조구초 겐지는 사라지고 어둠 속 숨어있던 내가 등장한다. 

나의 시네마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 시작/계속되었다. 종교를 바꾸듯 감독을 바꾸어 숭배했다. 임권택, 이만희, 홍상수, 마틴 스콜세이지,버스터 키튼, 알렝 레네,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뤽 고다르, 장 르누아르, 레오 까락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잉그마르 베르히만, 로베르 브레송, 미조구치 겐지 등등…. 

그들의 영화 속에서 나는 파계승(<만다라>, 1981,임권택)이 되어 부처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나를 놓고 떠나간 누군가(<휴일>, 이만희)를 기다리기도 했다.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남기위해 헤엄(<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을 쳐본적도 있다.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벗어나려 나 스스로 내가 특별하다고 착각(<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콜세이지)을 해보았다. 환상 속에서도 살아보려고도 했고(<우게츠 이야기>, 미조구치 겐지), 환상을 알려고도 했으며(<셜록 주니어>, 버스터 키튼), 사랑을 벗어나려고도 했다( <미치광이 피에로>, 장 뤽 고다르). 수백 수천번을 그렇게 살았다, 나는.

 불안한 시각들과 불안한 환상들. 영화가 담아내는 무언가. 그것에 홀려서 한동안 끔찍한 것들에 빠져 살았다. 

문학과 그림, 사진과 영화. 무엇이 더욱 끔찍하냐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영화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역겹고, 무서운 것이었다. 문학은 글이기에 나를 건드릴지언정 주변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그림은 나를 표현한 것이기에 타인과 나를 연결할 수는 있을지언정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진은 순간을 만들어내지만, 그 순간을 넘어선 시간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영화는 관객을 현장으로 불러들이고 순간을 살아있게 했다. 영화는 매사 나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한치의 앞도 알 수 없는 너와 나, 우리를 둘러 싼 시간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핏줄을 타고 내려 몸부림쳤다. 그래서 영화는 더 끔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부처를 찾아다니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헤엄을 하고, 환상과 사랑을 넘나들어보았더래도, 그건 그 순간의 나일 뿐이지, 조명이 내리쬐는 객석에서 스크린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아니었으니깐. 영화는 꿈을 꾸게했지만, 그만큼 실현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한 까닭에 절망도 함께 키우도록 했다. 영화는 끔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영화를 찾았다. 꿈은 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만큼 끔찍한 것도 없었고, 그만큼 끔찍해도 살아가는게 인생이었으니깐. 

나에게 부조리는 영화였다. 불가능한 것들을 해볼 수지만, 결국은 무용한 행위들. 자신이 알고있던 것을 부정당한 사람은 부조리를 겪는다.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것들, 지금의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것.  과거였던 자신을 부정당한 사람에게 부조리의 존재는, 자신이 힘들게 쌓아올린 젠가의 아래층을 모조리 몰수당하거나, 지구의 내핵을 삭제시켜버리는 것과 같아서, 무너진 젠가를 바라보며 절망하거나 열과 중력이 없는 지구 위에 놓여진 것처럼 현재도 미래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부조리는 그런 것이다. 카뮈는 부조리를 겪는 사람에 대하여 그의 철학서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만 한다'. 상스런 소리가 따로 없다. 누가보아도 그의 말은 정신승리를 합리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실존주의자는, 결국 허무주의에 들어가지 않기위해 아이가 치과에 가기 싫다고 때쓰듯 조리없는 오기만을 부리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영화 평론가가 되고나서야 알 수 있던 사실이 있었다. 카뮈는 응석을 부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영화가 체험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스크린을 마주하고, 스크린에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면 고무처럼 늘어지는 나를 한탄하는 나 또한 어쩌면 카뮈처럼 정신승리로 살아가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도대체 왜 영화를 보려고 하는가. 카뮈식으로 발화시켜보자면, 나는 왜 죽지 않는가. 

이즈음에서부터 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솔직히 엄마가 죽을 줄 몰랐다. 언제나 죽음 앞에 있던 건 나였는데. 왜. 왜 죽어야 하는 건 엄마였나. 내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날에도 나는 살아있었다. 죽음이란게 너무 남용되고 있는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죽음은 가까이에 있지만 아득한 것이었고, 아득하지만 눈 앞에서 아른거리며, 꼭 '나 잡아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전기세가 나가고, 난방비가 나가고, 수도세가 나가면 통장은 마이너스가 된다. 

통장의 뺄셈 부호 뒤로 끝없이 이어진 숫자들 끝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죽음은, 숫자 끝에서, 여기야, 여기 라고 언제까지나 외치고 있었고, 이 참에 죽음을 잡아버리자, 하며 미어지는 가슴으로 통장의 숫자를 꾸역꾸역 넘기고나면, 죽음은 나를 기만이라도 하듯 통장 속을 벗어나 또다른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죽음이, 다른 일상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 까지는 공백기가 있었다. 나는 그 공백을 죽음이 없는 세상이라고 불렀다. 

죽음이 떠나버리고나면, 나는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 세상에는 나를 거대하게 덮쳐오는 밀도높은 파도나, 인생을 휘몰아치는 폭풍우도 없었다. 죽음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를 곳에 놓여지게 되었다. 죽음이 다시 나를 찾아와 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몇 십년 동안 줄곧 나를 골려대는 죽음과 놀음 해왔다. 이제 그 죽음은 내가 아닌 엄마를 집어삼켜버렸다. 그것은 내 앞에서 자신의 형상을 과감히 드리웠지만, 실상은 내가 아닌 엄마를 마주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건 죽음이 그간 나에게 행해온 또다른 형태의 기만에 다름없었다.


엄마의 부고 소식을 처음 접했던 것은 다름아닌 편집장으로부터였다. 그는 처음 내게 ‘집안에 좋은 일이 생겼나봐, 어서가봐. 사장님께서 그만 가라고 성화셔’하고 말했다.

 ‘무슨 좋은일이요?’하고 묻자, 그는 ‘나도 모르지. 근데 좋은 일인가봐. 너 이름으로 계속 연락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하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있었으므로, 그 좋은 일이 도대체 무얼지 가늠하려고 애쓰며 버스 정류장서 심장을 매만져댔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볼 수 있었던건, 의욕없는 경찰과 여유로운 구급대원들이 바닥에 홀로 누워있는 엄마의 시신을 둘러쌓고 있던 참신한 광경 뿐이었다. 정말이지 죽음의 기만이 아닐래야 아닐 수 없던 일이었다. 


암울한 장례식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다 보험사에서 직원을 보내 처리해줬다. 아무것도 모른던 나는 아무렇게 보험직원 말에 동의했고, 사인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삶을 동경하던 영화 <화장>의 주인공이 뇌종양으로 아내를 떠나보냈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르겠고 어딘가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었을까. 원래 죽음 후 공백은 이런건가. 있는지도 몰라 마음 속 숨겨두었던 시원찹찹한 감정들이 엄마의 죽음을 담조했다

상주로는 형과 형수가 왔다. 형은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엄마가 원래 편찮으셨냐’,’너가 고생이 많았다’ 같은 말은 일절 없고, ‘엄마가 돌아가실 때 동안 도대체 너가 한게 뭐야! ’따위의 화 조차 내지 않았다. 우리는 묵묵히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세살배기 조카도 함께 왔다. 입 속에 찹쌀떡을 빵빵하게 집어넣은 듯한 볼살이 제법 귀여웠다. 


조카가 태어나던 날, 나는 한강근교에 겨우 매달려있었다. 왜인지 몰랐다. 그냥 거기에 있었다. 발 끝에서 기차의 소음이 맴돌았다.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에도 이런 상황이 있다. 영화 첫장면에서, 여주인공 현정은 한강에 투신자살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주에 의해 구조되고, 윤간당하며, 폭력에 노출된다. 죽지못해서 고통받는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죽지 못하면, 내가 윤간당하고만다. 세상이 나를 괴롭힐 것이고, 죽음이 나를 강간하겠지. 발 밑을 내려다보았다. 하류에서 서로 철썩 철썩 부대끼며흐르는 물보라가 나를 삼키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든 생각은, 난간을 붙든 손을 놓고 저 소용돌이로 빠져버린다 한들, 그 수심이 무릎 밑 안 팎일 것같다는 것이었다. 뛰어내려도 죽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매달려 있었다. 

경찰 서너명이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 있던 나를 보고 달려왔을 때, 나는 물었다. 

한강도 이렇게 보면 별 것두 없군요. 그렇지 않나요?

흰 머리 새끗한 경찰은 말은 않구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되물었다.

그렇지 않으냐구요. 왜, 내 맘대로 뭣 하나 할 수가 없는건데. 죽는 것도 왜 못하는 거냐구.

....

세상이 저를 당최 가만두지를 않는군요.

....술 좀 거하게 자셨소?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답해! 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거죠?!

이 사람, 참. 거하게도 자셨나보군. 어서 가시죠.

그의 손이 내 겨드랑이를 비집고 들어와 붙잡았다. 나는 그의 팔을 내치며 말했다.

난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오!

예, 예. 알겠으니깐, 어서 빨리 경찰이 있을 경찰서로 가자구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듣지 않아줄 사람도 없었다. 아무리 답해도 답해줄 사람이 없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사람은 있어도 답은 없었던 나날들. 

알 수 없어서 알려고 했고, 그래서 슬플 것이란 것을 몰랐다. 나는 영원히 한강을 벗어날 수 없었고,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애는 돌 지난지 얼마나 됐지?

형이 못마땅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세살이다.

세살…세살이라니… 저 녀석 태어난지가 엊그제 같은데…난 내 조카가 돌도 지나지 않은 줄 알았어.

…..

졸음가득한 눈으로 하품을 하는 조카녀석을 보니 시간의 힘이 확 와닿았다. 세월이란 것을 느끼지 않고 살아온 것이 얼마나 되었던가. 저 녀석도 태어난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니. 

문득 이만희 감독의 영화<휴일>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일요일이 지나가기를 바라던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괴로움에 가둬버리려고 작정한듯 일요일 늦밤, 11시 59분에 끝나버린 영화. 

지금까지 나 또한 일상을 같은 식탁에 앉아 내용만 다를 뿐 크기와 색이 같은 신문지를 읽어왔고, 생김만 다를 뿐 그 쓰임은 같은 옷들을 입어왔던 것을 상기해본다면, 그건 <휴일>의 실현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월요일을 준비해야하는 일요일’ 에 갖힌 <휴일>의 주인공 처럼 늘 같은 일상과 같은 날들로 같은 맥락의 것들을 소비하며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휴일>의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그 일은 그저 휴일 속의 일일 뿐이지만, 나에겐 휴일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시간의 산물이 없었다는 거. 그렇게 시간 속 갇혀 밤 12시가 되면 모든 것이 정체되었다가, 초침이 1시를 향할 때, 다시 시간을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계속 반복하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태조차 제대로 잡혀있지 않던 시절의 조카가 이제는 눈 코 입,모두 또렸하게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시간이란 것은 내가 보지 않고 있어도 나 없는 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지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니 걱정할 필요 없던게 시간아니었나. 우습다. 사람은 꼭 시간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왜일까. 그건 아마 시간 속에 사람의 운명이 달려있기 떄문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엄마가 죽을 이유도, 저 조카 녀석이 태어날 이유도 없을테니까. 이 것을 끝으로, 형과 나는 장례가 끝날 때 까지 침묵을 지켰다. 


오늘. 아니, 어쩌면 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쉬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형으로 부터였다. 엄마의 유골이 땅 속에 묻히자마자, 아무 말 없이 나를 떠나는 그를 보며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를까 잠시 고민했지만, 휘청걸음으로 멀어져 가던 형의 뒷모습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전화를 받았다. 

…..

형은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하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언제나 그랬다. 형 뿐 아니라 모두가 대답이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답을 기대했던 걸까. 답 없는 세상에서, 나 혼자 묻고, 답하고, 되묻고, 헤매었다. 

형, 아무 말이라도 해봐. 

…..어제는 잘 들어갔냐?

무슨 말이야. 어제라니.

그래,그래. 그랬었지.

도대체 뭐가 그랬다는거야.

아니 왜, 너 형수가 애 낳는다고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냐. 어제 너 조카 태어났잖아.

형. 어제 엄마가 돌아가셨어…

엄마는 어디있냐구? 마누라 옆에서 조카 보고 계시지, 뭐. 너가 지금껏 엄마랑 같이 사느라 고생많았다. 내가 요번에 진급하면 한 턱 쏘마.

형…오늘 엄마 장례 치렀어. 엄마가 죽은 건 슬프지는 않았는데, 형이랑 나는 멀어진 것만 같았어. 그래서 더 슬픈걸까…

고생했다니, 뭘. 나보다 더 고생한 건 너희 엄마지. 엄마가 너 보고 고생많았댄다. 지금 얼마나 활짝 웃고 계신지를 몰라. 손주 녀석이 제법 보고싶었던 모양이지.

…..

엄마 바꾸어 드릴까?

…..

짜식,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조카 하나 생긴게 그렇게 좋더냐?

……어. 왠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좋네… 조카 낳은 거 축하해, 형. 엄마도 행복하시는 것 같으니깐 정말로 좋아... 좋은 거야…

아무렴, 좋구 말구지.

…..

……

형, 지금 어디야?

어디긴, 광화문 산부인과에 있지. 

내가 지금 갈게.

지금 온다고? 아냐, 오지마. 지금이 몇신줄 알구 그래. 밤도 늦었고, 눈이 내리지 않으냐. 내일, 아니면 모래. 눈이 그치고 나면, 그때 안전하게 와서, 가족들 데리고 다같이 외식이나 나가자. 

….

텅 빈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자 스르르 내 정신도 풀렸다. 지금은 한 여름인데, 겨울이라니. 눈이 내린다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고 피식 웃어보았다. 어둠이 몰려온 검은 유리창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는 죽음의 형상이 드리웠다. 나는 숨을 죽였다. 고얀 녀석. 다시 나타난 게로군. 죽음이 없는 세상에 죽음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알랭레네의 다큐멘터리 영화 <밤과 안개> 에서는, 그 제목을 풀이하며, 나치 정권에 저항한 이들은 흔적도 없이 밤과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하는데. 저 어둠은 저항하는 나에게 그러했다. 창 밖 어둠은 지금을 인정할 수 없는 나를 데려가기위한 나치-강압적인 세상이었다. 여전히 죽음은 어둠 속 유유히 나를 데려가려 서성거린다. 나는 이제 늘 그러했듯 저 죽음을 잡아버려야 한다.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어둠 속을 헤쳐들 수가 없다. 저 죽음을 쥐어잡아 뭉그러뜨려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걸까. 순간, 그럴리 없는데, 유리창으로는 정말로 눈이 내렸다. 하얗고 소복한 눈이다. 제법 영롱하기도 하여라. 유리창 앞 까지 다가온 어둠이 물렀다.

 희끗거려 퍼져라, 눈아, 눈아. 부디 오늘 밤 만큼은 거리를 소복히 덮어주었으면. 밤과 안개가 그 육중함에 견디지 못해 가라앉을 때까지. 

***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간 밤 꿈 속에서는 당신을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 M자 탈모. 길다란 얼굴. 커다란 눈과, 입에 내 문 양담배. 눈 위를 홀로 걷는 당신 옆으로는 두꺼운 버버리 코트가 하나의 제국을 선포한 문명의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쓰라린 바람은 살결을 베어내는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 카뮈구나. 그의 뒤를 따랐다. 추위를 헤집고 그의 뒤를 쫓았다. 설원에는 그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없으면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에게 할 말이 많다. 물어볼 것도 많다. 나를 밀어대는 눈보라를 밀고나아가, 당신의 이름을 외쳤다. 

카뮈! 잠깐 멈춰봐요!

….

대화, 대화 좀 하자구요!

….

당신은 말이 없다. 나를 보지도 않는다. 당신에게 나는 없다. 나는 내가 없는 당신에게 나를 요구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수백번이고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았자 썩 도움될 성 싶지는 않다. 말을 그치고, 걷기에 집중했다. 

상당한 눈에, 시야는 거의 막히다시피 했지만, 당신의 코트자락만은 무릎 팍에서 모습 춤을 감췄다 드리웠다했다. 닿을 듯 말듯, 잘만하면 뒷새를 밟아 당신을 멈춰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걸음을 빨리고 하여도 당신은 잡히지 않았고, 아무리 걸음을 내세워도 당신은 멀어지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만이 미동도 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뒷모습이 미동도 없이 움직인다니. 미동이 없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불현듯 현실이 눈 속을 파들고 나에게 들어왔다. 그래, 말도 되지 않는게 현실이었지. 이제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가늠할 수 없는 죽음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 카뮈의 모습이 여느때 보다도 부질없어 보인다. 카뮈, 당신은 죽음이었어. 길다란 얼굴의 남성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작은 미소를 머금는다. 영락없이 내 곁을 배회하던 죽음이었다. 순간 그것을 뒤쫓던 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는 겨울아침이 나를 마중나와 있었다. 언제적 바랬던 만큼 강렬한 광명은 아니었으나 그 나름대로 따사로운 오전의 습기 찬 햇살이었다.  검은 코트를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 도로를 걸었다. 

간밤 내린 얇은 눈들이 제법 맛난 소리를 내며 발 밑서 으꺠졌다. 찬 바람이 불었으나 게의치않았다. 형과 조카와 엄마가 한데 모여 겨울나기를 할 것을 생각해보자면 그보다도 더 좋은 일은 없었을테니. 

그러나 나는 조카에게 갈 수 없었다. 엄마에게 갈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형한테는 갈 수 있었으므로, 모두에게 갈 수 있다는 조그마한 희망만 있을 뿐이다. 

만약으로 불어오는 눈보라에 담배 하나 입에 물고, 그들이 있을 곳 까지 걸었다.

광화문 앞 산부인과에 들었다. 흰 데스크톱에서는 간호사가 쉬고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제 처제와 형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산모 이름은 이미소, 보호자는 김디귿입니다. 

간호사는 한참동안 기록부를 뒤적거리더니 난처하게 물었다.

산모 분이 이미소, 보호자는 김디귿씨라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만, 그런 산모 분은 현재 계시지 않아서요. 대신 기록부에 이미소와 보호자 김디귿 씨는 등록되어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이곳에서 3년 전 아기를 낳으신 모양이네요. 

나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어색히 데스크에 서있다가, 눈치가 보여 산부인과를 나왔다. 이제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왜 갈 곳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뭐가요?

행인은 이상한 사람이야, 하며 내 팔을 뿌리치고 가던 길을 걸었다. 난 아무 것도 할 생각 못하고, 한 겨울 반팔을 입고 건널목을 건너는 그자만을 바라보았다. 순간 추위에 무색한 그가 이상해 보였다. 저 행인도 내가 이상해 보였을까.  

어디로 갈지 몰라서 한참동안 어디로든 걸었다. 도보를 향해 발을 내디딜수록 내가 머물 곳은 없다는 확신만 짙어져갔다. 완전하게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목적지도 없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떄야, 비로소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영화관 앞에서였다. 나는 왜 영화관 앞에서 뭠췄어야 했나. 알 수 없다. 영화관은 왜 여기에 있는가. 알 수 없다. 그러나 걸음을 다그친 단 한가지의 명제만은 영화관과 나를 상회한다. 난 시간을 떄울 거리가 필요하다. 

그 명제가 너무나도 얄팍한 영화와 나의 사이를 겨우 붙잡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키오데스크에서 티켓을 끊고, 상영관 좌석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명이 꺼졌다. 여러 색깔이 두 뺨에 머문다. 내 두눈에 들어온다. 그래, 그렇게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으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는 빛을 만들었고, 어둠 속 나를 밝혔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시작됐다.


*작품해설 - 메타 모더니즘 - 다다이즘 - 포스트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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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마지막 소설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씁쓸하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든지 간에 끝난다는 건 씁쓸하다. 왕자와 공주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통속적이고 관념적인 여느 이야기 마저 그렇다. 처음 글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꺠달은건, 황순원 작가님 덕분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를 보고 내 영혼이 젖어버림을 느꼈다. 이 후 씨의 작품을 열렬히 사모하게 되었다. '막은 내렸는데', '눈', '우산을 접으며' '땅울림'등등의 것들을 읽으며 나는 곧 소설이 사람의 영혼을 담아낼 수 있는 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멜라씨의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러했다. 와 , 와 을 읽을 떄, 그곳에서 내가 만난 것은 나의 어떠한 깊은 심장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은 김현 평론가의 글을 읽으면서이다. 와 을 읽으며, 나도 이런 평론가의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소설로 방향을 튼 것은 아마 권여선 작가의 책을 읽고나서 일 거다. 어떤 연상작용이었는지 몰라도 나의 비평은 소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솔직히 하자면 태어나서 세계문학전집같은 걸 눈에 담아본 적 없다. 누군가 톨스토이와 카뮈와 카프카를 이야기 할 때,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그들의 무거운 글들을 잡아서 소화해낼 마음이 서지 않았고,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폴 드 만과 데리다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외국 작가였다. 또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어디 가서 부끄럽게도, 하고 있는 일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꺼내기 싫어서, 억지로 토해내듯, 글 써요, 하는 말을 내뱉을 때, 난 수치심을 느꼈다.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면 주변에서 대치동 강남에서 학원받으며 과학고 간 친구들은 콧방귀를 뀌고, 누군가는 한심하게 쳐다본다. 초등학교 떄 별볼일 없던 친구가 예고의 문예창작헉과에 들어간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너도 글 써? 나도 글 쓰는데...하고 말하면 듣는 말이, 좋아하는 작가 누구야? 카프카? 톨스토이? 글 보여주면 좋겠다...등의 것들이다. 난 사실 정지용과 황순원과 김멜라와 권여선을 사랑한다, 라고 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어떤 연상작용이었는지 모른다. 그 곳에서 뽐내기 위해 아는 척 했다. 톨스토아보단 도스토예프스키지 않아? 사실 난 그 누구의 작품도 읽어본 적 없다. 이건 고해성사가 아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말의 의중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당신들은 알까? 마지막으로 쓴 글은, 작년 11월에 글틴에 기고한 다. 그건 내 전부다. 나는 그 글을 쓰며 나에게 글이란 무엇인지 알았고, 이 후로는 글을 쓸 수 없었다. 내 모든 걸 쏟아부었다. 이 후 알게 된 사실은, 결국 글이란 세상이란 거다. 문장이란 것을 조립, 배치하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다. 근데 그 세상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가장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었다. 결국 내 세상은 어떠한 욕망의 발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 조립된 세상의 이면에는, 그 어떤 계기나 동력도 존재하지

  • 화자
  • 2024-03-21
가을 소나타

디귿씨는 요몇칠 동안 인력 사무서를 전전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모 기업에서 사무부장을 지냈다는 디귿씨는, 회사 내부평가에서 “당신은 이 회사에 무얼해주실수 있나요?”라는 대표이사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내부평가 다음날, 디귿씨의 책상에는 각종서류들과 필기구, 타자기 등이 대용량 상자에 담긴 채, 한쪽 구석으로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지저분했던 자신의 자리에는 오랜 직장동료 임 차장이 앉아있었지요. 임차장은 대용량 상자를 아무렇지 않게 디귿씨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날 디귿씨는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회사를 위하지 않은 사람은 필요없으니, 이제 그만 퇴직하시라는 대표이사의 통지서와 함께 말이지요. 집에 돌아가는 길, ‘당신은 아무래도 회사를 위하지 않고 있군요.’라는 대표이사의 말이 자꾸만 눈에 걸렸습니다. 30년 동안 뼈빠지게 오로지 한 직장에 몸담아온 디귿씨는, 자신이 버텨원 세월들이 부정당한 것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이 회사에 무얼 해주실 수있나요아무리 그 질문을 상기시켜본다해도 디귿씨는 답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 질문이 임 차장에게 돌아갔다면 임차장은 답 할 수 있었을까요? 이사 본인조차 이 질문에 답은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나는 그냥 돈을 위해 회사를 다닌 것 뿐인데. 디귿씨는 잠시 상심했습니다. 이제 자녀들의 대학비와 식비, 자취비, 아내의 용돈,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월세와 세금은 어떡하나요. 그는 그 모든 것을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해고통보를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비밀로 부치던 참이었지요. 해고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디귿씨는 사람들이 즐비한 인력 사무소에 들어섰습니다. 형광등이 나란히 마주 앉은 사람들 위로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디귿씨는 형광등의 끝자락에서 처음으로 놓여진 등에 다다를 때까지 오래간 기다렸지요. 그렇게 해가 저무는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상담원에게 닿을 수 있었습니다.막노동이라도 할 참이니 아무거나 주시오. 디귿씨의 말에 상담원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시는 분이니 막노동도 힘들 것 같다고. 애 쓰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시라고. 디귿씨는 억울했습니다. 무릇 인간이라면 늙기 마련인데. 나이를 먹는다는게 디귿씨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이 녀석들은 꼭 디귿씨를 노인 취급입니다. 디귿씨는 이만 나가보라는 상담원에게 자신이 앉아있던 접이식 의자를 집어던졌습니다. 홧김은 아닙니다. 눈에는 타오르는건 분노가 아니라 억울한 울음이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모두 디귿씨를 쳐다봅니다. 이 것을 시작으로 벌써 삼주 동안 인력 사무소만 드나들었습니다. ***이른새벽부터 디귿씨는 정장차림으로 버스에 몸을 욱여 넣었습니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이 사무부장을 지내는 줄로만 알아서, 입으나 마나인 정장을 답답하게 걸치고 있습니다 . 요 몇달간은 퇴직금으로 여차저차 월급을 메꾸었다지만, 이제 퇴직금도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버스 창문으로는 여러 직장인들이 스칩니다. 디귿씨는 ‘회사를 위해 무얼해주실 수 있나요’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자신 스스로가

  • 화자
  • 2024-01-10
검은세상, 하얀 겨울

세연에게 가고 있다. 겨울이었지만 눈은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눈이 내리지 않았기에 노동자들은 폭설로 인해 공사를 잠정중단하거나, 일당을 미지급받을 일도 없었다. 그런 일이 없었기에 하루에 붙들릴 일도 없다. 서울역 노숙자들은 눈 오는 날보다 따수운, 그러나 여전히 찬 겨울을 감사하며 보낼 수 있다. 늘 막히는 한강대로도, 눈으로 인해 교통체증을 빚을 일이 없었고, 택시나 버스가 운행을 중단하는 일도 없다. 눈을 녹이기 위해 도로에 뿌려질 염화칼슘이 세연에게 가기를 괴로워하는 나를 설득하듯,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믿서 오독오독 비명을 지르며 부숴질 일도 없었고, 그게 신경은 좀 쓰이겠지만, 나를 멈춰세울 일이 없었다. 눈사람을 만들려고, 또는 어느 벽 담장에 메달린, 산성비가 굳게 되어버린 고드름을 핥으려 안달난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눈은 우리를 막는 병폐로 존재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눈이 얼마나 많은 어른들을 괴롭히는, 비효율적인 자연재해인지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교통체증으로 피해 볼 일이 없고, 노동을 할 일도 없으며, 노숙을 할 일은 더욱이 없었다. 누군가를 괴롭게 만나러 갈 일도 없다. 아이들은 그것을 모르기에, 여전히 추운 겨울을 피해 집으로 들어가, 만화영화를 보다가 힐끔, 창 밖을 확인하며 눈이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찬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유리창 앞에 서서, 언젠가는 눈이 내릴 거라는 희망을 지닌다. 어른들은 출근하기 전 창 밖을 보며 눈이 내리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지닌다. 교통체증으로 직장에 늦을지는 않을지, 날씨가 추워서 하루가 고되지는 않을지 걱정 하며,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지닌다. 나는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눈이 내리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사람은 나다. 나는 구질구질한 어른들의 세계에 살아서, 눈이 내리고 나버리면, 나를 가로막을 하얀 얼음, 그 모든 것들 때문에 도저히 세연에게 갈 수 없을거다. 세연은 눈이 내리길 바라고 있을테지. 그녀에게는 나를 만나는 것 보다 눈이 내리는 것이 더욱 중요할까.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적어도 하나를 알고있다. 이 세상은, 겨우 동심 하나로 어른들의 세상을 덮어 버리기엔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세상이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세연에게로 가고있다. 세연을 만난 건, 눈 내리지 않는 육년 전 겨울이었다. 당시 초임 영화 평론가였던 나는, 삼류 독립영화 감독들을 취재하기 바빴고, 광화문에서 한 신인 감독이 저예산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해서, 잡지사는 촬영지 근처 살고 있던 내게 신인감독 인터뷰를 맞겼다. 영화촬영장은 굉장히 지저분했고 스태프도 대여섯명 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감독이라는 작자는 꽤 단아하고 청순한 여인이었는데, 어림잡아 이십대 중반, 나와 엇비슷한 또래 같아 보였다.안녕하세요, 신인감독 이세연입니다.그녀는,기운이 밝고 흔쾌해서 늘 깐깐하게 굴던 여타 중견감독보다 훨씬 좋았고, 질문에 답을 빙 돌려대서 말하는 어느 예술감독에 비해 시원시원한 답들과 기상천외한 담론들을 꺼내 들어서

  • 화자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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