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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

  • 작성자 절박한참치
  • 작성일 2007-01-03
  • 조회수 381

 학원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다. 12월 31일 밤, 아니 1월 1일 새벽인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하고 약간은 짜증이 났다.

 성적표 이야기가 당연한 순서로 따라 나왔다. 꼬리표도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 가방 안에 처박혀 있는 꼬리표와 성적표를 꺼내 왔다. 성적표 귀퉁이가 무성의하게 구겨져 있었다. 가방 안에 구겨넣은 광고지처럼. 며칠 동안 가방 안에서 부대꼈을 것이다.

 꺼내 들고, 어두운 방 안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참담했다. 문학과 수학 등급이 말이 아니었다. 떨어졌다. 올리려고 했는데, 꽤 열심히 공부했는데, 떨어졌다. 빌어먹을 내신, 빌어먹을 선생. 수학에서 실수한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문학은-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문학 내신 따위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아주 짧게 고민했다. 그리고 여러번 접혀 있는 성적표와 꼬리표를 펴서 엄마 앞에 내 놓았다.

 아마 내 얼굴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성적표를 무심히 읽었다. 뭐야, 난 또 많이 떨어졌는 줄 알았네,가 다음 말이었다.

 "많이 떨어졌잖아, 문학하고 수학 좀 봐."

 "그래도 조금 오른 것 같은데?"

 뭐가 올랐다는 거지. 2학년 내내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비록 저번 성적이 가물가물해서 비교도 할 수 없었지만. 이 빌어먹을 놈의 학교는 이런 저런 숫자를 너무 많이 보여준다. 결국에는 다 헛갈려 버리게.

 무슨 이야기가 더 오간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무슨 말만 하면 짜증을 낸다는 이야기였던가, 모르겠다. 피곤한 것 같아서 1년을 미뤘다고, 그렇게 엄마가 말했던가. 아빠는 가만히 TV를 보고 있었다. 연말 시상식이었다. 드라마에 나왔는지도 몰랐던 여배우들이 나와서 상을 타고 울고 있었다. 소감을 말하라니까 죄다 누구에게 감사하구요, 또 무슨 감독님에게 감사하구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누구야 사랑해 따위의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좀 더 독창적인 멘트를 생각해 낼 순 없나. 잠시 말이 끊기고 다들 TV를 보고 있던 사이였다. 화장 지워지겠다, 울지 말지.

 엄마가 다시 말했다. 무슨 이야기였더라. 떨어지지도 않은 성적 가지고 짜증내지 말라고, 그런 말이었나. 이번에는 나도 대꾸했다. 아마 떨어졌다고 우겼을 것이다. 다시 엄마. 또 엄마. 간간히 내 대답.

 어느 순간 TV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내가 울고 있었고, 시간이 자꾸 흘렀고, 또 어느새 엄마가 울고 있었고, 아빠가 그만 자자고 말했고, 내가 할 이야기가 더 있다고 말했고, 또 한참이 지났고, 엄마와 나 둘 다 소리를 질렀고, 엄마가 날 때렸고, 나는 안경을 벗어 던지고 대들었고, 또다시 주저 앉아서 싸웠다. 감정만 격해지면 눈물이 나는 것이 화가 났다. 순간 순간 눈물이 완전히 마를 때가 있었고 나는 입을 앙다물고 이것이 이번 싸움의 수확이라고 자축했다. 다음에 싸우게 되면 절대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고 딸꾹질이 자꾸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졌을 때 나는 너무 지겨워졌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고, 또 이렇게 되었다. 엄마랑 무슨 말만 하면 이렇게 끝나는 것이 지겨웠다. 어째서 자꾸 이딴 식으로 흐르는 걸까.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빨리 끝내려면 아무 말도 않고 엄마 말만 듣거나 아무 말만 주워 섬기고 나서 혼나는 게 제일 낫다. 그러나 전에 없이 머리가 정상이었고 눈물은 말랐고 말도 똑바로 나왔다. 질문도 기억나지 않는데 대답하라고 툭툭 건드리는 엄마가 성가셨다. 입을 아예 다물고 있으리라. 지겨워 죽겠는데, 아무 대답도 안 하리리라. 주황빛 가로등빛이 비치는 베란다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는 바보라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서 말하지 말라고, 내가 엄마 닮아서 다혈질인 거 알면서 왜 그렇게 말하냐고.

 그러고 나서 조금 더 싸웠다. 엄마는 자꾸 말꼬리를 잡았다. 동생과 싸울 때 내가 하는 거랑 똑같다. 동생이 상당히 짜증났을 것이다. 우습지만 엄마에게 그것도 이야기했다. 우느라 머리 아파서 헛소리 몇 개 나온 거 가지고 말꼬리 잡지 말라고.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야기 하냐고, 정신 없는데. 이후 몇 번 소모적으로 말싸움을 반복한 후 어느새 상황이 종결되었다. 약간 새로운 결말이 났다. 결국 엄마와는 화해하고, 아빠는 머리 아파하고(상황 종료인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마무리 멘트를 나누고.

 싸운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내용 때문에 엄마가 말을 꺼냈고, 또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 나 때문에 더 싸웠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느낀다. 게다가 그 빌어먹을 성적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울음기 어린 목소리로, 웃으면서, 하고 싶었던 말 다 하니까 속 시원하지, 하고 물었다. 정말 속이 시원해서 나도 긍정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누구한테든 말해, 라는 것은 엄마가 싸우고 있던 중에 한 말이었다.

 

 그날 밤, 혹은 새벽에 나와 엄마는 같이 잤다. 엄마는 이런 저런 말을 계속 해 줬고, 나는 계속 들었다. 배가 고프고 머리가 아파서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엄마의 팔베게에서 나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라고 말하고는 싶지만, 나는 누군가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잠을 잘 수 없다. 게다가 마주보고 자는 것은 곤란하다. 어느 정도 시점에서 우리는 슬그머니 등을 돌리고, 곧 잠이 들었다.

절박한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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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박한참치
  • 200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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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박한참치
  • 2006-12-27
인도에서 멀어지기 위하여

 돈을 모으자. 아니면 적금을 깨자. 걸스카우트 할 때 샀던 커다란 배낭에 옷을 쓸어 담고, 비성수기 비행기 티켓을 사자. 어느 날 나는 학교에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인도, 인도가 좋겠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자고, 먹고, 걸을 것이다. 때가 되면 걸어서 인도를 떠날 것이다. 여권이랑 국경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 되겠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일까?  처음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는 말이 정말로 싫었다. 고생을 하면 정말로 낙이 오나. 하고 싶은 것도 안 하고, 하도 억눌러서 나중에는 아무 욕구도 없어지고, 그렇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엘 가고, 좋은 인재가 되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고 부를 얻으면 행복해지는 건가? 그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건가? 만약에 그렇게 되어서도 행복하지 않으면 - 책임져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냥 행복하지 않은 걸로 끝나겠지. 다시 고생하고, 있지도 않은 행복을 또다시 찾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는 목표가 그런 식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건 지금 생각지 않도록 하자. 다만 떠나고 싶을 뿐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잃어버려도 나쁠 것이 없고, 안달할 일도 없고. 돈이 떨어졌다고 슬퍼할 일도 없는 것 같다. 빌어서 먹으면 되지. 인도라면 사원에 불쑥 들어가도 먹을 걸 주지 않을까. 그것도 안 되면 가정집에 들어가서 일을 해 주고 밥을 얻어먹으면 되겠다. 잘 곳도 걱정이 없다. 인도는 춥지 않을 테니까, 아무 데나 쓰러져서 자면 되지. 입을 것은 또 얻으면 된다. 얼마나 마음 편한 삶일까, 자유롭고, 맺힌 데 없고. 길 잃은 듯한 느낌도 없어질 것이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우주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있다.  하지만 부나 명예, 권력 따위는 얼마나 상스럽게 달콤한지 끌리고 말아버린다. 그것도 교묘하게,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형광 분홍이나 연두색 같은 색은 절대로 쓰지 않고, 금색이나 검은색, 붉은 빛 따위로 그럴듯하게 가장해 놓는다.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나는 별 수 없이 끌려들고 만다. 돈이 있으면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겠지, 영화도 원없이 보겠지, 혹은 온 세상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헛된 꿈.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지만 나도 심각하도록 헛되어서 헛된 것에 혹하는 게 당연하다고 헛되게 변명해 본다. 바보 같다.  그리하여 나는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어떤 날은 새벽 세 시까지 옛날 사람들이 쓴 백과사전류의 책 이름을 외우고(그것도 그 책들의 저자와 함께), 시험에서 한 문제가 틀릴 때마다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 보이기 무서워서 겉으로는 실실 웃으면서.  그래, 단지

  • 절박한참치
  • 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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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글의 내용과 제목이 잘 어울리는 듯. 엄마와 딸의 신년맞이가 아주 역동적(?)이네요.

    • 2007-01-11 01:59:2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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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참치님 캠프! (라는 글과는 상관 없는 댓글)

    • 2007-01-03 22:24:5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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