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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구경

  • 작성자 이바
  • 작성일 2007-06-03
  • 조회수 356

 

  쉬는 시간이었다. 교실 맨 뒤 창가에 기대 서 멍하니 있으려는데, 두 녀석이 말싸움을 하는 것이 보였다. 한 녀석은 소위 말하는, 노는 애, 였고(갑이라고 한다), 한 녀석은 그 녀석에게 툭하면 괴롭힘을 당하던, 우리 반의 놀림거리(을이라고 한다)였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두 녀석의 대화 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그렇게까지 서로 성질을 부릴 일은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있던 갑이 갑자기 일어나 을에게로 다가가더니, 따귀를 갈겼다. 어이쿠. 순간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의 표정이 모두들 굳었고, 갑과 을은 주먹다짐을 시작했다, 고는 하지만 실상 을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여자애들은 빨리 안 말리고 뭐하냐며 난리를 치고, -나를 비롯한-갑이 두려웠던 남자애들은 차마 가까이서 말리지 못하고 주변에서 주춤주춤. 딴 반 애들까지 몰려와, 반 분위기는 그야말로 투견장. 딴 반의 ‘노는 애‘들이 그나마 갑을 말리려고 해봤으나, 걔네들마저도 잔뜩 흥분한 갑이 두려워 제대로 말리지는 못했다.


  머리채를 쥐어뜯기고, 발로 면상을 걷어 채이고, 이빨이 깨진 을은, 그 와중에도 자존심을 살리고 싶었는지, 자기는 죄가 없다는 표정. 주변에서 말리던, 아니 주변에서 얼쩡대던(나를 비롯한) 아이들이, 그냥 빨리 미안하다고 해, 라고 말하자 그제야 울먹거리며 “미안해.” 갑은 더욱 흥분해, 뭐가 미안한데. 빨리 안 나와?.


  그나마 반장인 여자애가 중간에 끼어들어 둘 사이를 벌려놓고, 딴 반의 노는 애들이 갑을 겨우 진정시켜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을은 깨진 이빨 조각을 들고 양호실로 가고, 누군가 선생을 불렀는지 어쨌는지, 학년부장이 교실로 들어와 갑을 끌고 갔다. 교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웅성웅성. 딴 반 애들은 어디서 잘못 주워들었는지, ‘얻어맞은 애 이빨 두 개 나갔다며?’ 우리 반 반장은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 울먹거리고, 남자애들은, ‘남자애들 안 말리고 뭐하냐고’라며 따지는 여자애들의 시선을 외면하기 바쁨. 물론, 나도 마찬가지.


  종례 시간, 마침 담임이 며칠 자리를 비워 학년부장이 임시 담임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학년 부장은 잔뜩 흥분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안 말린 놈들 일어나봐’. 나는 떳떳하게 기립. 왜 안 말렸냐, 는 학년 부장의 질문에, 다들 ‘분위기가 말릴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나는, ‘무서워서요’. 난 맨 앞자리에 있었으므로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학년 부장이 짓던 표정과 비슷했던 것 아니었을까. 이건 뭐,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야? 걔가 니들 말린다고 때리는 게 무서운 건 아닐 거 아냐. 현수, 대답해봐.”

  “저요?”

  “그래, 뭐가 무섭냐고 대체.”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게 맞는데요?”

  “…….”


  당시 교실에 없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목격자 진술서를 쓰라는 학년 부장의 명령. 종이를 나눠주더군. 나는, 심심한데 마침 잘 됐군. 문장 연습이나 할까. 내가 썼던 진술서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쉬는 시간.


  중간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쨌거나 목숨은 건졌으므로, 알게 뭐람.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대한 독립 만세다.


  원래는 진술서 모두를 옮기려 했으나, 나의 기억력이 부족한 관계로 다음 기회에. 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 기회가 올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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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좀 심심해서....

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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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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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바
  • 200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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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심하게 싸우네...흠

    • 2007-06-04 20:55:3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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