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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밑에서

  • 작성자 Hicky
  • 작성일 2010-01-27
  • 조회수 353

 당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집의 이미지를 그려보세요.

 그것으로 당신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시시콜콜한 심리테스트 따위일 것임을 잘 알지만, 나는 문장을 훑었던 눈길을 백지로 돌려 펜 끝으로 그려내는 나의 집을 한참 들여다본다. 집 그리기란 아주 간단하다. 먼저 사다리꼴의 지붕을 그린 후에, 귀찮은 듯이 사다리꼴의 아랫변에 선을 두 개 적당한 간격으로 긋고, 바닥만 메워주면 된다. 심심하다 싶으면 문과 창문도 좀 그려 넣어보고, 특별한 미적 감각이 있는 이라면 굴뚝에서 피어나 허공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섬세하게 그려 넣어도 좋다. 나는 내가 그린 집 그림을 한번 더 들여다보고, 설명을 읽는다. 예상대로 별 거 아니었다. 창문과 문만 본단다. 창문이나 문이 그려진 사람은 개방적이고 소통을 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았다면 소극적이거나 소통에 있어서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나는 창문과 문 두 가지가 모두 그려져 있었으므로 괜히 으쓱거린다.

 그러다 친구들은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든다. 와글와글 모여들어 한바탕 이야기 수레를 뒤집어 엎던 아이들이 일순 조용해졌을 때, 나는 침묵을 깨려는 듯 말한다. 너희, 심리테스트 해 볼래?

 이면지 등을 들고와 모두가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지시문을 읽는다. 또박또박 군더더기 없이 읽는다. 집부터 시작하여 해, 하늘, 구름, 뱀, 우물 등등 그려야 할 것들을 차례로 그리는 아이들의 종이가 잡다한 그림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뱀을 꼭 실지렁이처럼 그린 녀석에게는 장난기 서린 비난도 서슴지 않고 퍼부어준다. 아이들의 종이가 다 찼다. 나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기나긴 설명을 들은 아이들의 입에서 레몬같은 탄성이 터져나온다. 아, 내가 이랬었나, 에서부터 이건 사기라며 다시 하면 나야말로 인격 완성의 신선이다, 하는 철학적인 농담까지 내뱉던 아이들의 그림을 찬찬히 뜯어본다. 나도 그렇지만 친구들의 그림 실력 역시 고만고만하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찰나, 나는 아이들의 집 그림을 비교해본다. 그러고 보니 하나같이 사다리꼴의 지붕 밑에 직사각형의 형체가 그려진 집이다. 창문이나 굴뚝같은 다른 요소들이야 천차만별이라도, 어찌 집 모양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묻는다. 너희 혹시 어디에 살아? 그들이 대답한다. 우리 집? 아파트. 여기서 좀 먼데, 우리 학교 앞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40분 정도? 우리 집은 되게 가까워. 요 앞 빌라잖아.

 아, 그래? 나는 머리를 긁적인다. 죄다 아파트 내지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근데 그럼 너희가 사는 집에는 지붕이 없는데 왜 지붕을 다 그렸어? 내가 묻자 다들 대답을 못 하다가 하나가 얘기한다. 보통 집하면 이렇게 그리잖아. 하긴, 나도 그렇게 그렸으니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었어도 저런 대답은 충분히 나왔을 것이다. 똑같이 지붕이 덮인 그들의 집. 나는 공연히 그 지붕의 눈이 시린 하얀 여백에 색칠을 한다.

 

 글쎄, 왜 다들 똑같은 집을 그렸을까, 라는 생각도 설핏 들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왜 그들이 실제로 사는 집에는 지붕이 없는데 너나 할 것없이 지붕을 그렸을까, 라는 이상야릇한 질문에 도달한다. 보통 집하면 이렇게 그리잖아. 한 아이의 대답이 떠오른다. 그건 그래, 라고 혼자 대답을 하면서도 수긍 뒤에 남은 잔여 단어들이 맴맴 돈다.

 '하나같이' 지붕을 그렸으니 우리가 너무 획일화 된 사회에 스며들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하는 상투적인 의문은 일찌감치 접어두기로 한다. 그런 얘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고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그러면 왜 지붕을 그렸는지. 나는 내가 그린 집 지붕 밑에 가느다란 몸체에 가분수인 사람 하나를 그린다. 벽에 기대어 있는 사람을. 별로 이렇다 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림이나 그리기로 한다. 미술에는 개미 눈물만큼도 관심 없는 나답지 않게 그림에 명암처리를 한다. 그려진 사람은 지붕에 의해 덮였으므로 머리 위에 옅게 칠을 한다. 그리고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는 그림자가 만들어지니 그의 발 밑에도 살짝. 지붕이 드리웠으니 빛은 어느 정도 차단이 된다. 내 얼굴을 고스란히 비추는 빛이 지붕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덮이고 가리운다. 나는 펜의 움직임을 멈춘다.

 지붕이 빛을 가린다. 빛을 받는 무언가를 덮는다. 그늘을 만든다. 모든 것이 빛에 노출되어 드러났던 사람이 지붕 밑 작은 어둠에 덮인다. 그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왠지 모르게 나는 그의 표정이 그늘처럼 어두운 것이 아닌, 오히려 얕은 한숨을 내뱉고 안도하는 편안한 표정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이 나일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벽에 기대어 있는데, 해가 내려쪼인다. 눈이 시큰하다. 작열하는 한 줄기의 빛이 훈계하는 듯이 삼엄한 목소리처럼 내려꽂힌다. 나는 벽에 바짝 붙는다. 햇빛이 따사롭게 내려쬔다. 그럼 안되지, 바른 소리를 조목조목 짚는 누군가의 문장들이 빛줄기에서 쏟아져 나온다. 나는 아예 벽과 하나가 되는 양 붙어있다. 저도 알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 하세요. 말을 하려해도 문장들은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흩뿌려지듯 빛줄기에서 쏟아진다. 그 때, 위를 올려다보니, 지붕이 있었다. 지붕 아래 서있는 나의 발 밑에 그림자가 괴고, 정수리로 어두운 그늘의 파편들이 미끄러져온다.

 내가 그린 그의 표정이 내게 묻어난다. 안도하는, 편안한 표정이.

 나는 상상에서 빠져나온다. 철사처럼 얇은 몸체의 그가 다시 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의 빈 얼굴에 언덕 모양의 눈꼬리와 보조개까지 달린 미소 띤 입을 그려넣는다. 그게 맞을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나를 파헤치려는 빛의 다발이 지붕에 의해 한 풀 꺾인 순간, 나는 그 조그맣고도 아늑한 어둠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지붕이었다. 위에서 나를 한아름 안아주는 것은 말이다. 바른 소리, 쓴 소리의 단어들 앞에서 늘상 새카만 먼지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다 풀이 죽어버린 나는 새카만 지붕 밑 어둠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고요히 드리운 지붕 밑 그늘에서.

 나는 친구들의 그림을 다시 떠올린다. 똑같이 그려져 있던 지붕들. 어쩌면 그들도 무의식적으로 지붕 밑 그늘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모든 말들이 다 맞는 말인데, 그 맞는 말들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던 걸지도. 그래서 저도 모르게, 위로받고 싶다는 표현으로, 정작 그린 자신으로서 퍼뜩 해석이 되지는 않지만, 지붕을 그려넣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들이 지붕 밑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 역시도, 위로를 받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거짓말 없이 내 느낌을 담은 말 한 조각을 내밀어 본다면, 나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게 맞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그림 심리테스트의 지시문을 이렇게 고친다.

 

당신이 평소에 위로받고 싶은 지붕의 이미지를 그려보세요.

그 지붕 밑에서 당신은 잠깐이나마 빛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여담.

 

써 놓고도 참..... 읽으실 때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읽는이를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글쓴이네요. 그건 고쳐야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쓴 건, 요즘 들어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글 속에서 나오는 바른 소리들이 오히려 저를 지치게 만들고, 쓴 소리는 당연히 쓰고해서(응?) 또 저를 지치게 만들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 건 맞는데 왜 저는 계속 지쳐만 가는지. 꼭 이런 이유 말고도 가끔씩 그냥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래, 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혹시나 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 중에 저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혹 저를 모르시더라도 그냥 안쓰러워서(...) 위로를 던져주고 싶다 싶으신 분은 저를 위로해주세요.

H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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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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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글을 굉장히 재기발랄하게 잘 쓰시네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외로움을 떠안고 있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 공통된 맥락을 지니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 어영부영 서로 부대껴가면서도, 정작 진정으로 서로를 되돌아보지 못하는 작고 초라한 일상. 그러한 불통의 세상에서 오히려 타인을 배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어른들이 때때로 괘씸하기도 합니다.

    • 2010-02-04 00:35: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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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언젠가 자다가 눈을 떴는데 힘이 축 늘어지는 날, 계속 자고만 싶어지는 날처럼 사람에게는 가끔씩 그런 날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힘차게 지내실 수 있으실거에요! 누구나 그렇듯이요ㅎㅎ 힘내세요!! 글은 읽으면서 알듯 말듯했는데 읽고 생각해보니 묘하게 이해가 아주 잘가요~ㅎㅎ

    • 2010-01-28 08:57: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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