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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이 되려고 그렇게 아팠나 봐

  • 작성자 사즈
  • 작성일 2021-06-05
  • 조회수 669

내가 항상 바닷가에 가면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특이한 조약돌이나 조개껍질 찾기다. 당장 오늘도 오랜만에 바닷가에 놀러 가서 바닷가에서 보물찾기를 했다. 고작 조개 껍데기가 무슨 보물이냐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사실 부모님도 내가 자꾸만 바닷가에서 뭔갈 주워오는 걸 탐탁지 않아 하시니까. 조개구이 먹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게 껍데기 아니니? 하면서. 하지만 바닷가의 조개 껍질은 그런 것들과는 다르다. 파도에 풍화되어 모난 구석 없이 매끄러운 데다 색도 크기도 모양도 저마다 달라 수집하는 보람이 있다. 돌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독특한 색을 가진 온전한(껍데기가 약해서 거센 파도를 여러 차례 맞으면 잘 부스러진다) 조개 껍데기를 발견하면 그 순간만큼은 길 가다 만 원 주운 사람 부럽지 않다!

그런 연유로 모래사장에서 눈에 불을 켜고 보물을 찾다가, 특이한 색의 돌을 하나 발견했다. 모래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았기에 바닷물에 모래를 씻고 보니 에메랄드 색에 반투명한 것이 예뻤다. 처음에는 보석이나 독특한 색의 돌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소주병 파편이 파도에 풍화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소주병 파편이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파도에 밀려온 스티로폼 조각들은 바람에 날려 법석을 떨고 있었고,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담배꽁초는 누가 발로 비벼 끈 자국이 선명했다. 심지어 폭죽도 한 개 있었으니 소주병 파편쯤이야 뭐. 다른 쓰레기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파편은 다른 쓰레기들과 달리 해를 '끼쳤었다'는 점일 것이다.

술에 잔뜩 취한 누군가가 소주병을 돌에 내리쳐 깨뜨리며 파편이 탄생했겠지. 산산조각 난 소주병은 모래사장과 돌무더기에 지뢰처럼 숨어 사람들의 맨 발을 노렸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소주병 파편을 밟고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해변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커다란 조각을 주워 담으며 시골 밤하늘의 별처럼 흩뿌려진 작은 파편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렇듯 처음에 깨진 소주병은 해를 끼치기만 하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난 구석 많고 쓸모없던 유리병 조각은 작은 보석이 되었다. 고작 한 번 두 번 파도가 쳤다면 파편은 절대 둥글둥글해지지 않았을 거다. 파도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모래사장을 집어삼키면서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파도는 뾰족하던 파편을 매끈하게 다듬어 돌려주었던 것이다.

바닷물로 깨끗이 헹궈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소주병 파편을 보는데, 문득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오랜 시간 힘들게 하던 사건을 찾으러 굳이 오래 거슬러 갈 필요도 없었다. 작년에 왜곡된 역사적 사실과 본인의 개인적 정치적 의견을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시고, 다름과 틀림을 인정하지 않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수업 시간에 마스크를 제대로 쓰시지 않으셔서 크게 다툰 적도 있었다. 예전에 많이 존경하던 분이셨던 데다 선생님이 개인의 정치적 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한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그때 당시에는 이 일로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정신적 소모가 엄청났고 시간도 많이 빼앗겼으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화가 났고 내가 제때 그런 사람을 쳐내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 자책했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지고 일 년가량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일이 일어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일 덕에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회에 나가서 이런 종류의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내가 덜 힘들지 조금이나마 깨달았으니까. 부모님은 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아끼신다는 사실과 그 선생님 같은 사람의 의견 또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 또한 깨달았다. 

사서 선생님은 그분으로 인해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셨다. 애초에 그분의 사상을 너무 맹신하지 말라 말씀하신 분이기도 하고. 국어 선생님은 동아리 날, 그분이 학생들에게 정치색이 확 묻어나는 책들을 읽히고 독후감까지 쓰라고 하셨던 그 날에는 아예 아이스크림까지 주시면서 상담을 해주셨다. 예지(가명)는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위클래스 상담까지 알아봐 줬다. 몇 시간 동안 내 고민을 들어주고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을 해주셨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다시 한번 상기 시켜 주셨다. 이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자기 일처럼 나를 걱정해주고 도와주려 내게 손을 뻗어 주었다. 한 가지 소득만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이런데, 다른 일로 이만한 소득을 오로지 한 사건 덕에 이만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좋은 교훈을 이 일이 아니었다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막 깨진 소주병 파편처럼 나를 아프게 한 사건이었지만, 시간이라는 파도에 풍화되어 둥글둥글해진 지금은 내 안에서 반짝거리는 보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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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이번에는 파편을 손가락에 끼고 요리조리 스탠드에 비춰 보았다. 더 자세히 보니 파편은 책상에 까는 유리판만큼이나 반질반질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날카로운 파편을 예쁜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 내면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 만지면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유리의 모서리를 곡선으로 바꾸는데 안 아프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사실 지금도 짜증 나는 일도 많고 힘들지만, 파도가 언젠가 그것들을 예쁜 보석으로 만들어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책상에 파편을 올려 두었다. 유난히 미끈한 모서리가 빛을 받고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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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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