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오래오래
- 작성자 눈금실린더
- 작성일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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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가끔 생각하는 이 단어에는 애틋함이 묻어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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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뭘까.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라고 한다. 이 정의는 우리가 넓은 의미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넓은 의미라는 뜻은 좁은 의미를 포함한다는 뜻도 될 수 있을 테니. 직전 수필인 ‘자주 바쁘고 가끔 슬픈 사람이 되고 싶다’에서 언급한 그 친구를, 나는 사랑한다고 감히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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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조심스럽게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은 친구에 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전형적일 수 있지만 내게는 너무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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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서는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친구와 멀어진 이유에 대해서 적어볼까. 공교롭게도 그것 또한 내가 그 친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때 사랑은, 앞서 말한 넓은 의미의 사랑이 아닌...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실 사랑이라고 적기에는 조금 간지럽다. 나도 늘 ‘좋아한다’고만 표현해 왔고, 사랑은 더 깊은 층위의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애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무언가... 다양할 정도로 그 애를 사랑했다. (아이, 낯간지러워라.)
대개의 짝사랑이 그렇듯이 슬픈 결말로 끝이 났고, 한동안은... 연락조차 끊겼었다. 친구로 지내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그 애의 말에 크게 상심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때에도 그 애는 얼마나 다정한 아이였는지. 잘못을 내가 아닌 제 쪽으로 돌리곤 했다. 직접 적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문장에 갇혀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멍청하게도 너는 다정한 위선자일 거라고, 그래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하고 끙끙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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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했다’라는 표현이 거의 들어맞을 정도로 그 친구는 첫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는 게임을 좋아해’, 말하던 그 모습.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보일까 봐 한참 부정했었지만. 저번 글에서 적었듯이 시를 쓰게 한 사람. 꿈을 꾸게 한 사람. 일기장 한구석에 적어놓았듯, ‘내 세계를 반쯤 만들어 놓은 사람’... 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학적인 과장이라고. 하지만 그 친구 덕에 나는... 취향이 많이 변했다. 사실 글부터가, 저번 글에서부터 꾸준히 언급했지만, 쓸 생각이 없었는데... 쓰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변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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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지금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다. 아주 우연찮은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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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였고, 그때의 나는 작년부터 기획한 동아리를 준비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 친구와는 항상 못 본 척, 모르는 사이인 척 지나가기 일쑤였고. 당연히 그 아이가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도 나는 그 친구가 신경 쓰였다. 이성적으로 좋아하겠다는 마음은 이미 접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아는 사람을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싶었기 때문에. 너무 괴로운 나날이었다. 시간은 흐르는데, 정말이지 ‘자주 바쁘고 가끔 슬픈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슬퍼지고자 해도 시간이 없었다. 고3이라는 압박감에 이제는 자연스레 취미가 되어버린 글 쓰는 일까지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교과 공부를 하고 그 외에도 할 일을 하다 보면 슬퍼할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그 정도의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바빴다.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하고...)
동아리 홍보지를 붙이고 나서도 신청서를 재깍재깍 확인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 애는 당연히 신청서를 넣지 않았고 그것이 쭉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급식실에서 마주치거나 이동수업에서 마주치거나 방과후에서 마주치거나... (마주칠 곳이 참 많다.) 미묘하게 감도는 어색한 기류를 그 애도 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애의 희망 분야 동아리는... 이미 꽤나 많은 수로 개설이 되어있었다. 그곳을 놔두고 내가 개설한 동아리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기대는 이미 접어둔 상태였다. 그런 상상조차 한 적도 없었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어느 날 동아리 신청서를 확인해 보니 그 애의 이름이 뿅, 하고 적혀있었다. (정말 ‘뿅’ 이라는 소리가 났던 것은 아니다.) 관용 표현처럼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진짜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그 애가 동아리에 들어와서 얻는 이점이 뭐지. 생기부... 하지만 다른 동아리도 있는데? 굳이? 아, 우리 동아리 이름이 멋져서 그런 건가? 그렇다면 인정이지. 그래도 나 같으면... 이런 사이로 지내는 사람이 있는 동아리에는 안 들어왔을 것 같은데... 지금 들어와봤자 나랑 할 수 있는 게 디스랩 배틀 밖에 더 있나. 내가 만든 동아리인 걸 몰라서 들어온 건가? 알아채고 나서 탈퇴하면 안 되는데. (동아리 인원수가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상황이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이지, 잡다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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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친구에게 말했다.
혹시 너, 우리 동아리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아? 불편하지 않겠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는 당연히... 뭐? 너희 동아리였어? 당장 나가야지! 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불편하지 않다고, 네가 괜찮다면 자기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횡설수설하며 나도 말했다. 생기부 채우기는 좋을 거야. 동아리 담당 선생님도 좋으시고, 자습 시간도 많이 줄 거고, 여러 가지 활동도 많이 할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동아리는 이름이 멋지니까. 생기부에 적으면 멋있을 거야. 그리고...
... 다시 친구로 지내는 건 불편하겠지?
다시금 말하는 괜찮을 것 같다는 말에 나는 굉장히.............. 괜찮은 마음이 되었다. 내가 자기를 싫어할까봐 거리를 두었다고 하는 말에 놀라기도 했고. 내가 너를 어떻게 싫어하겠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나는 지금 너에게 너무 감사한걸......
그렇게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다. 정말 우연찮은 계기였다... 그 애가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내가 방과후에서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색하게 지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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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지금도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사랑하는’ 친구라고 칭하며 이 글을 적는가 하면, 내 감정을 보다 잘 정리하기 위해서. 솔직하게 적자면 나는 그 애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동안 적은 글에는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 애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곤 했다. 이제 그 사랑을 다시 정립하고 싶다. 조금... 기괴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 애에 대한 마음은 내 글에 담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애와 나의 글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앞서 말한 얘기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정립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만 같다. 이하 적을 내용들은 아마 모두 그런 내용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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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에서 토론을 하면서도 그런 내용을 말했었다. ‘아가페’.
전적인 사랑, ‘나는 네가 무엇을 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사랑할 거야’. 때로는 신이 인간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사랑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나는 그 애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 애의 신이나 부모가 될 수는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나는 친구로서의 자리에 만족한다.
그래도 네가 항상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었으면 좋겠어. 욕심인 건 알지만 연인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오래 네 옆에서 있고 싶다. 그냥 네가 잘 사는 일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 물론 너는 대단한 사람이니까 누군가 돕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겠지. 그냥 옆에 있고 싶다는 소리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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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내용을 썼다가 지웠다. 꼭 적지 않더라도 다음 문장을 남기면 설명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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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친구를,
조심스럽게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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