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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죽이고 싶은 동생이 있습니다

  • 작성자 초가집에비오는날
  • 작성일 2008-09-11
  • 조회수 4,026

제게는 죽여버리고 싶은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잠자는 틈을 노려서 머리카락을 모조리 썰어버릴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마트에 밧줄이 파는지 알아보러 간 적도 있습니다. 남들은 제 동생이 세븐을 닮아 잘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세븐은 짝짝이 보조개붕어입술찢어진 눈걸레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다른 세븐이겠죠. 저희는 3살 터울로 만나기만 하면 서로 죽고잡자를 외치는 남매입니다.

제 남동생은 가끔 눈이라도 마주치면 썩은 미소를 날려줍니다. 아주 독특한 비웃음인데, 입꼬리가 오른쪽만 올라갑니다. 끔찍합니다. 실로 살인충동이 이는 면상이지요. 다행히도 제가 수박을 썰 때는 그 사실을 아는지 절대 웃지 않습니다. 머리는 크지만 일주일에 영어단어 100개도 간신히 들어가는 용량을 가지고 있으며, 윤리관을 담당하는 부분은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의 친구들도 하나같습니다.

한번은 제가 보는 앞에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걸 줄 테니까, 누나를 때려.” 막대사탕 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진짜로 맞을 줄 몰랐거든요. 제가 더욱 놀랐던 이유는, 그때 처음으로 사탕에 목숨 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기야 막대사탕에도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는데, 떡밥을 어떻게 물리겠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으로 불쌍하신 분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번개처럼 제 머리를 때리고는 막대사탕을 받아 들고 저 멀리 도망갔습니다. 그날 펑펑 울면서 집에 올 때는 혼자 마구 뛰어왔습니다. 그랬더니 몇 분쯤 뒤쳐져서 온 동생, 이 녀석이 새빨개진 얼굴로 자길 두고 갔다면서 삿대질을 합니다. 그런 동생이었습니다. 겁보에 울보입니다. 그 얼굴을 치즈강판에 갈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절 쫓아오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 버릴 수만 있다면 진작에 했을 겁니다. 믹서에 넣고 갈고 싶습니다. 이불에 둘둘 말아서 밖에 어디 버릴 데 없나요?

동생은 화가 나면 절 .’라고 부릅니다.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욕들도 줄줄줄 잘만 합니다. 싸울 때면 이 녀석은 잭키찬입니다. 주판, 팔레트, 가위, , 하키스틱, , 볼펜, 연필, 컴퓨터, 스탠드, 의자가 전부 무기로 바뀝니다. 저는 반사신경이 좋은 편이라서 가위와 볼펜과 주판은 피했습니다. 코끼리 레고에는 머리를 맞았지만 그건 가위가 아니었지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맞아서는 안 되니까요. 남동생은 노린데다가 정말 잘 던집니다. 훌륭한 투수지요. (비유법이 아니라 진짜로 야구를 잘 합니다.) 큰 싸움에서 한번 동생은 컴퓨터 액정을 부쉈고, 저는 엄마가 아끼는 팩스를 박살 냈습니다. 전화기와 리모콘이 집안을 날라 다니고(그러고 나면 십중팔구 하나는 망가집니다.), 동생은 라면을 엎지르고, 저는 햄스터 케이지를 뒤집어엎었습니다. 리모콘과 수화기는 시도 때도 없이 새 걸로 바꿔야 했습니다. 가위가 날아왔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열살 아이도 초인으로 변합니다. 이른 나이에 죽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요. 대신 불쌍한 여동생이 한번 연필에 찔렸습니다. 하지만 손에 직접 들고 때리는 것에는 방도가 없습니다. 3살 어려도 남동생입니다. 내일이라도 저희 집을 방문하시면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제 방문이 난도질이 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맥가이버입니다. 문 잠그는 데는 진짜 0.1초도 안 걸립니다. 잠긴 문 여는 데에도 도사죠. 창문사수도 정말 잘 한답니다. 하지만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면 종일 방 안에 있어야 하는데, 무척 괴롭습니다.

동생 꿈을 참 많이 꿉니다. 신경쇠약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한번은 피아노를 치는데, 계속 간지럼을 태우더군요.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제 잠꼬대에 여동생이 걷어차여서 침대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 후로는 저랑 안 자고 엄마랑 잡니다. 가장 끔찍했던 건 사랑니를 뽑은 날 밤 잠을 자다가 한 잠꼬대 였습니다. 남동생한테 조용히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온 가족이 놀라서 뛰어왔는데, 입 안에 피가 가득 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 왼손을 크게 다쳤습니다.

저의 둘이 싸울 때면 엄마는 머리카락을 잡아뜯으며 저희에게 욕을 합니다. 동생이 욕하는걸 엄마한테 배웠나 할 정도로 둘은 말하는 게 비슷합니다. 서로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동생은 비오는 날 잠옷째로 집 밖에 쫓겨난 적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녁을 굶은 적은 더 많습니다전 남동생이 아직 가출하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왜 엄마는 그렇게 도화선이 짧은지 모르겠습니다. 저렇게 무섭고 지독한 여자가 제 엄마라고 생각하니 비참했습니다. 아빠도 남동생 일에는 인정사정 없습니다. 현재 저의 집에서 매로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다 부러져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밖에서는 비가 내립니다.

온라인 게임에 미쳐있는 녀석입니다. 하루라도 만화방에 들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녀석입니다. 현거래를 합니다. 잔인한 영화에 사족을 못 쓰는 녀석입니다. 초코파이와 아몬드사탕과 오렌지주스를 입에 달고 사는 녀석입니다. 친구들과 자주 싸웁니다. 학교에 엄마가 불려갑니다 용돈은 없지만 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드래곤볼과 추리소설과 해리포터 이외의 책은 책이 아닌 녀석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스타크래프트를 하자고 조르는 녀석입니다. 동생 덕에 저는 몇 안 되는 초고수 여자 저그 유저가 되었습니다. 만화를 볼 수도,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날에는 장기판과 체스판을 들고 제 방으로 옵니다. 번번히 쫓겨나지만 문만 잠겨 있지 않으면 계속 들어와 공부를 방해합니다.

남동생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이상한 녀석입니다. 컴퓨터에 목을 매달지만 제가 같이 따라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PC방도 못 갑니다. 인간말종 같은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본인은 영향을 거의 안 받습니다. 이 녀석은 술도 담배도 할 줄 모릅니다. 여자친구한테 고백 받았을 때 어떻게 거절하는지도 모르는 녀석입니다.

이제 저희 집에 이 녀석은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결국 학교를 따로 갈라서 멀리 보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한동안은 말 그대로 기분이 째졌습니다.

집안이 조용합니다. 방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정전이 났습니다. 집안이 굉장히 조용합니다. 괜히 기분이 꿀꿀했습니다. 저는 시끄러운걸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조용한 게 싫습니다.
 
동생의 방에서 팔레트를 찾다가 러브레터를 발견하고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못생긴 동생이라고 놀릴 수 있는 기간은 지난 것 같았습니다. 전공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녀석이었습니다. 더 이상 초등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망할 녀석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자 하나 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녀석은 남자주제에 요리를 무척 잘합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가족들 전부가 먹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제가 주로 시식을 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살이 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과도 즉각즉각 잘 합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합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며 사람을 재미있게 해줍니다. 동생은 제가 쇼핑 갈 때 불러내기 가장 만만한 친구였습니다. 같이 캐치볼을 해주는 친구도 이 녀석뿐이었습니다. 맨날 엉뚱한 곳으로 던진다고 불평했지만, 동생은 훌륭한 투수였습니다.

  동생은 부 전공으로 첼로를 합니다. 몰랐었는데, 친구한테 듣고 알았습니다. 동생을 좋아하는 여자애들 대부분이 남동생이 솔로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G Major을 할 때 다 녹았다는 사실을. 갈수록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동생은 집에 없습니다. 서로 좀 안 싸우게 되었다 싶었는데, 전학을 갔습니다. 이제 제가 남동생이 던지는 직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전학을 갔습니다. 서로 대화라는 것이 가능해질 무렵,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족끼리 온전히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알게 모르게 제게서 끝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두 동생의 언니였고, 누나였지만, 썩 좋은 본보기는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입이 험하고, 항상 질투와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사과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누나였습니다. 책 한 권을 동생들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속이 좁은 사람이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제 이런 성격이 가족들을 굉장히 힘들게 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캐내는데 도사였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상황이 바뀌었을까요? ‘최악이다.’ 이거 말고는 달리 절 묘사할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저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좁게만 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남동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동생을 많이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몰랐었습니다. 언제까지고 싫어할 줄만 알았습니다. 미워할 줄만 알았었는데, 어떻게 어렵게 마침내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게는 사랑하는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제게는 사랑하는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초가집에비오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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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가집에비오는날
  • 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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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한 구절구절이 와닿는게 이 남동생과 만나고 싶을 정도네요ㅜㅜ

    • 2008-10-14 23: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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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절하네요. 성격상인지 감정이입되어버려서 마지막 문장은 울상으로 읽었습니다. 정말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ㅜ.ㅜ그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별 다섯개!! 뿅뿅

    • 2008-09-15 21:25:1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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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게도 동생이 세 명이나 있어서 공감이 되네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던 날들도 있었지만, 제 자신이 도리어 못 된 언니이자 누나였음을 알고 지금은 동생들과 잘 지내고 있어요.

    • 2008-09-12 21:39:3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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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읽었어요^^

    • 2008-09-12 16:35:0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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