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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금붕어는 배를 뒤집고 죽지 않았다

  • 작성자 카임
  • 작성일 2021-06-29
  • 조회수 2,446

우리 집 금붕어는 배를 뒤집고 죽지 않았다.

할머니네 집 금붕어는 날이 더워 배를 뒤집은 채 쪄 죽었고 이전에 키우던 금붕어는 엄마가 먹이를 한 움큼 던져주는 바람에 배가 터져 죽었다. 좋아하는 시에선 열 마리 모래무지를 담아두었는데 바다로 돌려보낼 때 배를 드러낸 채 헤엄치지 못했다고 했다.’*란 구절이 나오고 읽었던 소설에선 배 터져 죽은 금붕어가 어항 위를 떠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집 금붕어는 배를 뒤집고 죽지 않았다.

 

“금붕어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더라.”

언니에게 말을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엿들으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던 금붕어의 죽음은 온통 배를 뒤집은 채 수면 위를 방황하는 모습뿐인데 그 금붕어는 죽어서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점이. 사람은 죽을 때 몸을 던져 바닥에 내리꽂히고 물고기는 죽을 때 둥둥 떠올라 하늘을 나는데 그 금붕어는 어째서 바닥에 가라앉은 채 이리저리 치여댔는지 알 길이 없다.

 

그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가장 몸집이 작았다고 했다. 나의 철저한 무관심과 이따금 동생이 던지던 열렬한 관심 그 어중간한 사이를 찾아 뜯어 먹었을 금붕어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몸집이 작았다. 물고기는 물에서 죽더라도 익사체처럼 퉁퉁 불어 몸집이 커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금붕어는 내내 몸집이 가장 작았다.

동생은 몸집 작은 그 금붕어를 아기 금붕어라 불렀다. 아직 어려 단순한 연결밖엔 되지 않는 탓이다. 몸집이 작으니 새끼일 거라고 무작정 단정 짓고 자꾸만 ‘작은 물고기’를 ‘아기 물고기’로 정정하던 그 목소리 탓에 나는 금붕어의 나이를 모른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새끼로 분류된 금붕어의 나이를.

 

몸집도 작은 주제에 물 위로 떠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그 모습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익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익사할 리 없는 생명체가 익사한 것 같은 행색으로 죽었다. 물에서 태어나 물이 버거웠던 것처럼. 그 금붕어는 아가미를 달고 익사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관심 하나 주지 않았던 금붕어가, 죽은 뒤 바닥을 기는 금붕어가, 그 무렵 자꾸만 내 머릿속을 침범했다.

 

배를 뒤집고 죽지 않은 우리 집 금붕어를 죽은 뒤에야 멋대로 상상한다. 아주 가끔 들여다보던 어항 속에서 이따금 마주쳤던 금붕어의 형형한 눈깔이 그 금붕어의 눈깔이라고 멋대로 단정 짓고, 한 번도 본 적 없어 가늠할 수 없는 몸집의 크기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았을 거라고 멋대로 판단하고, 금붕어조차 알지 못할 금붕어의 나이는 백 살이었을 거라고 멋대로 설정한다. 새끼가 아니라 아주 오래 살아낸 노어(老鱼)였다고. 내내 갇혀 있던 탓에 이뤄내지 못한 꿈들을 먹이 대신 뱃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느라 아주 작은 몸집으로 꿈의 무게만큼 가라앉았을 게 분명하다고 금붕어의 죽음에 서사를 부여한다.

 

한집에 살았지만 살아있을 적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금붕어의 생애를 멋대로 날조한다.

 

 

*하재연, 양양

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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