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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얼룩

  • 작성자 루시페린
  • 작성일 2006-07-11
  • 조회수 649

 

 어젯밤에 이미 완성했어야 하는 문학 수행평가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을 몇 번쯤 켰다 끄고 생각을 바꿔 한글 2002를 실행시켰다. 보기 싫은 도구 모음은 싹 치워버리고, 책상 위에는 뜨끈한 카푸치노 한 잔을 올려놓았으며, 지금 귓가에는 ‘후회’에 대한 글을 쓰는 분위기를 만들어 본답시고 내가 연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피아노 곡 중 하나인 ‘Regret'이 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선택이나 경험을 글로 쓰라는 수행평가를 수행하기에 가장 완벽한 상황을 조성한 후 졸린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키보드의 덮개를 벗기고 타다닥 경쾌한 타이핑 소리를 내며 몇 줄 맥 빠진 문장들을 적어 본다. 작업 표시줄의 시계는 1시 12분을 알리고 있다. 이전까지의 아침 시간을 어이없게 날려 버린 탓에 나는 최대한 두시 삼십분까지는 이 글을 마쳐야 나의 수두룩한 업무들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아빠 생신이랍시고 거나하게 저녁을 먹은 후 새벽 3시까지 숙제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자리에 앉아 컴퓨터에 빠져 버린 죄다. 그러므로,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지금의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제 저녁 아무 과제에도 손을 대지 않고 놀아 버린 일이다. 물론 그렇게 쓰면 안 되겠지. 멍하니 키보드의 기본 운지에 두 손을 올려놓고 다시금 생각한다. 후회, 후회라.

 

 아주 성의 없어 보이는 문단 하나를 완성했지만 사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열심히 고민한 사람 축에 끼어도 좋을 것이다. 수행평가 과제가 공표된 때부터 나는 계속 생각해 왔다. 무엇이 내 인생에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이었는지, 언제 내가 후회스러운 감정을 느꼈었는지. 그러나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글로 써서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경험이 없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컴퓨터 학원을 3달치 10만원을 끊어놓고 한 번도 제대로 수업을 받지 않았던 것, 이적의 ‘지문 사냥꾼’을 내용도 읽지 않고 무턱대고 내 돈 내고 사 버린 것,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토요일에 매주 가던 문병을 친구와 놀아야 한다는 이유로 거른 것 정도가 떠올랐지만 그 일들에 대해 내가 가지는 실망과 후회의 정도는 미약했다. 은연중에 나는 일종의 3불(不) 원칙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기대하지 않을 것,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또 하나. 이 원칙은 내가 터득한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이다. 자신의 기대에 의한 실망은 그 누구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기에, 공연히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 않는 쪽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서 아무리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땅한 글감을 찾을 수 없던 이유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아픈 경험들에서 후회의 감정을 제거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뒤돌아보지 말고, 잊어버릴 것. 나의 괴상한 천진함에 기대어 그런 식으로 나는 후회라는 감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반성’의 가치까지 저버려 왔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인간의 필수 영양소는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이 아니라 망각과 자기 합리화니까.

 

 하지만 정말이지 수업시간에 괴성을 지르며 토로했듯 쓸 것이 없어서, 나는 조금쯤 후회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도박을 해 볼 걸 그랬나. 엄청 돈을 날리고선 그게 바로 ‘내 인생을 바꿔버린 치명적인 선택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와 같은 상황이 아직 내 인생에선 한 번도 없었음에 언짢아하며, 나는 글감을 찾기 위해 다른 친구들의 두 갈래 길은 어떤 것이었는지 기웃거려 보았다. 말하자면, 같은 반 친구 주란이의 글을 읽었다. 어제의 일이다.

 

 너도 나와 같은 DS였냐, 역시 DS 얘네들은 다 쓰레기들이야. 이니셜이 DS인 애들하고는 사귀면 안 돼. 개놈들, 하고 나는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인쇄물을 돌려주었지만 눈가에는 나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긴 여자들에게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이 첫사랑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감동을 받은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런 식으로 쓰는 거야. 쓸 거리 많잖아. 서투르고 모자라게 굴었던 어린 나와 실수투성이의 4년이라는 기간. 헤어지고 나서도 모든 인간관계를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 언니에게 혹시 그 사람이 요즘 새 여자 만나는지 물어보았던 그 바보 같은 짓. 헤어지고 나서 나는 밥 먹듯이 자책했잖은가. ‘내가 좀 더 잘해서 헤어지지 말걸’ 이 아니라 ‘빌어먹을, 내가 이미 옛날에 한 50번쯤은 엉덩이를 걷어차 주었어야 했는데!’하고.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더 이상 그 나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미 화석처럼 굳어진 기억과 단단하게 뭉친 은박지처럼 손끝에서 둥글게 결정이 된 마음을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타인 앞에 풀어헤치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첫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인간이 가장 후회할 수 있는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일이다. 나는 지난 4년간 운영했던 내 블로그들에 들어가 ‘후회’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너’에 대해 내가 저주와 증오를 담아 써내려갔던 글이 나타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첫사랑은 그래도 나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안겨다 주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해 주었고, 필사적으로 강해지게도 만들어 주었다. 거지같은 첫사랑에 대해 후회가 그래도 덜한 이유는 그나마 내가 얻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너’에 관해서라면 나는 결코 득을 본 일이 없다. ‘너’에 관해서라면 떠오르는 것은 그저 미친듯한 후회, 씁쓸하고 악취가 나며 마음에서 잘 떨어져 나가지도 않던 감정의 뒷맛, 혼자서 걸어오던 밤거리의 차가운 겨울바람, 그리고 그 모든 악몽들의 끊임없는 순환뿐이다. 결코 나에게 어떤 것도 남겨놓지 못한 최악의 인간관계, 그래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고 일부러 꼭꼭 묻어 놓았던 기억들이 포스트 검색결과와 함께 한꺼번에 눈앞으로 튀어 올랐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말할 수 있다. 나는 후회한다. 나는 미치도록 후회한다. 중학교 1학년 등교 첫날,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웃던 너의 그 인사를 무시해 버리지 못한 나의 선택을. 너를, 너를 결코 떨쳐버리지 못했던 나약한 나의 선택을.

 

 ‘너’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지만 일단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자였다. 아니 성 전환 수술을 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여자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버리고 나니 갑자기 아무 것도 말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기분이 든다.

 

 중학교 때 쓴 일기에는 가끔씩 ‘너’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다 비슷한 내용이다. 역겹고 재수없는 너를 싹 무시해 버렸어야 하는 건데. 매일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너’와 처음 만난 순간을 후회했다. 후회할 때마다 그 짧은 몇 초는 선명하게 눈앞에서 재생되곤 했다. 어리석은 순간들은 잊혀지지도 않아. 1학년 7반의 담임선생님은 등교 첫 날 아이들을 번호 순대로 책상에 앉혔다. 나는 2번이었고 너는 4번, 빌어먹을 4번이었다. 아침의 신선한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너는 내 쪽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온 세상이 하얘지는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너는 특유의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 애들이 왜 이렇게 서먹하게 인사를 안 하지? 안녀엉?

 

 그날 저녁 나는 저녁 식사 때 김치찌개를 먹으며 식구들에게 그 얘기를 했다. 내 옆옆자리에 앉아 있던 애는 사교성이 좋은지 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막 인사하려고 노력하더라고. 좋은 애네, 아빠는 숟가락을 들고 말했다. 친해지도록 해라. 일단 친구를 사귀어야 할 거 아냐. 응, 그러려구. 나는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다. 아아 젠장, 난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수많은 차이점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네잎 클로버처럼 드문드문 끼어 있던 공통점 때문에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어느 샌가 우리는 공인된 한 짝이었다. 복도에서 혼자 걷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너’ ― 아니 이제 귀찮으니 K로 하자 ― 를 선생님이 지금 찾는데 어디 있냐고 물었고, 혼자 있는 K에게 선생님은 내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하고도 꽤 놀았는데. 1년 동안 자리는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둘은 교실 좌석을 한 칸이 1인 좌표축으로 나타냈을 때 루트 2 이상의 범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붙어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아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것이다. 교과서에 낙서를 하며 킥킥댔을 것이다. 추측형의 문장인 이유는 내 뇌가 그 시간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들은 기억난다. 너는 쫑알쫑알 붉은 입술을 쉴 새 없이 놀리며 떠들어대는 흰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예쁜 단발머리 여자 아이였고 나는 그런 K의 수다에 무성의하게 대답하고 성격이 극과 극을 오가며 남자처럼 바싹 머리 깎은 시니컬한 아이였다. 사실 소년이었다, 고 문장을 끝내도 좋을 만큼 나는 그때 한창 여중과 여고에 유행하던 레즈비언 놀이의 부치(여자 동성애 관계에서 남자 역할을 맡는 쪽)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러나 레즈비언 놀이에 혐의가 있다면, 우리는 사실 상대방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몰랐던 1학년 때 우리는 그저 각각 다른 선배 ― 학교의 공인된 부치 캐릭터였던 연극부 부장과 색기와 카리스마 가득한 춤을 추던 댄스부 부장 ― 를 추종하고 동경하기에 바빴다. 누구나 여중/여고 시절에 한 번쯤은 보이시한 여자아이에게 끌리기에, 거기까지는 괜찮다. 괜찮았다.

 

 사실 나는 K의 모든 기질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맘에 들어 한 것은 아주 적었다. 그것들을 뺀 나머지를 나는 혐오했다. K의 앞에서 한창 내가 빠져 들어 있던 어두운 염세주의 철학 사상과 잡다한 지식들을 거만하게 설파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K의 얼굴도 그랬다. 얼빠지고 한심한 여자아이였던 K가 점점 나에게 물들어 가는 것도 우월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상해졌다. K와 나는 어차피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종자가 아니었다. K는 언제나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이상함’은 불편함이기도 했고 어색한 충동이기도 했다. K를 보고 있으면 울렁거리는 것처럼 기분이 불쾌해졌다. K의 얼굴이 기억난다. 항상 내가 왼쪽이고 K가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K의 얼굴을 볼 때의 시점이다. K에 대해서 생각할 때 떠오르는 단 하나의 이미지. 하얀 피부와 나를 올려다보며 빛나는 까만 두 눈동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간신히 그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리면 붉은 입술이 보인다.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 이미지는 어렸던 나를 그토록 매혹시켰던가. 평범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평범했던 나를 뒤흔들어 버릴 만큼이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K와 나의 얼굴은 입술이 서로 닿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물러나곤 했다. 1학년 2학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결과만 놓고 이야기 할 때, 3학년 2학기가 끝나도록 우리의 입술이 확실하게 맞닿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다행히도. 그러니까 안심해도 좋다. 사실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학년이 되어서 우리는 반이 갈렸고 나는 K에 대해 적대심과 혐오와 경멸이 뒤섞인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사이는 멀어졌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는 하지 않았다. 다만 불친절하게 상대방의 교실 문을 열고 서로를 불러내 별다른 말없이 학교를 맴돌긴 했다. 아마 K가 그때부터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K는 어두워졌고, 냉소와 사춘기의 유치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명랑함으로 빛나던 검은 두 눈은 독백과 자조와 거만함, 그리고 지나친 자아의 과잉으로 칙칙해졌다. 우리는 비슷한 형질의 인간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서로 다름으로 빚어졌던 생기발랄함이 사라지고서 남은 것은? 검고 어두운 에로틱.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미움.

 

 이 글에서 K와 내가 서로에 대해서 가졌던 감정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잊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했으므로 많이 소멸된 과거의 일인데다, 그 감정을 느끼고 있던 그 당시의 우리도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쓰고 불쾌한 수많은 감정들이 충동처럼 솟구치곤 했다고 말했다. 너를 만지고 싶은 마음과 너를 때려눕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너를 지긋지긋해 하고 너의 같잖은 철학을 비웃는 동시에 너의 두 눈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는 일이 가능했다. 열넷과 열다섯과 열여섯, 아니 사춘기란 그저 미친 시간들이다. 어떤 짓을 할 지 모르는. 설명이 불가능한. 당시 나는 정상적인 친구들과 정상적으로 교류했고 한창 첫사랑과 행복하고 빛나는 순결한 추억의 페이지들을 넘기고 있었다. K만 빼면 내 인생은 건전하고 흠 잡을 데 없이 올바른 것이었다. 나는 이미 K의 시기, 유치하고 냉소적이고 삐뚤어진 사춘기의 시기를 넘어선 상태였다. K와의 추억, K와의 교류, K와의 시간, 아니 K라는 인간 자체가 나의 음지고 얼룩이고 그림자였다.

 

 중학교 2학년 때 K는 공공연히 레즈비언 놀이를 하고 다녔고 그런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나는 이반도 아닌 주제에 그런 친구들 모두와 친구여서 가끔 함께 놀곤 했다. 나의 짧은 머리까지 어우러져 나는 완벽히 ‘그런 무리’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진짜 동성애자도 아니면서 레즈비언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끔찍이 혐오하는데도. 후에 내가 자주 생각했듯이 2학년 때부터 K와 내가 함께 보낸 시간들은 그저 우리가 비교적 순수했고 진짜 친구였던 1학년 때의 감정을 우려내기 위한 연장전에 불과했다.

 

 블로그를 검색했을 때 나온 포스트는 그런 시간을 생생한 현재형으로 담고 있었다. 서로를 그렇게 미워했는데도 서로를 버릴 수 없어서, 같이 있기만 하면 세상은 달리의 그림처럼 녹아버리고 내 정신도 이상해져서,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오고 밤이 깊어서야 내가 오늘 왜 그랬을까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후회로 가득한 글을 쓰게 되는 나날. 과거의 내가 쓴 포스트가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K가 내 방에 놀러 왔을 때의 경험이었다. 2학년 때부터 우리는 별 말을 나누지 않았다. K는 내 방 침대에 누웠다. 졸린다고 했던가. 학원 시간에 맞춰 잠시 누워 있겠다고 했던가. 친구도 뭣도 아닌 건조한 관계였으나 성급한 건조함이었고 그 건조함에서는 유황과 아세톤의 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런 식으로 침대에서 몇 번쯤 K를 안았다. 과일나라 샴푸향기가 나는 K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을 때 내 코에 느껴진 것은 그저 아세톤과 유황의 냄새일 따름이었다.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넘고 있어. 침몰하는 배 위에서 멀뚱히 해수면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있는 자의 기분이었다.

 

 여기서 ‘안다’는 그저 말 그대로 ‘안고 있다’의 의미이니 오해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는 친구를 품에 안고 도닥이는 정도의 신체 접촉과 같은 수준. 이 글이 글틴의 모든 회원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이제 와서 다 지난 일로 레즈비언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뭐가 레즈비언이란 말인가? 난 결코 K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젠 체 하는 태도와 사춘기 특유의 염세적이고 사탄 지향적인 철학을 특별함의 표지처럼 자랑스럽게 지니고 있는 것이 역겹기 그지없는 아이였는데. 우리는 둘 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그런 청소년기의 동성애와도 K와 나는 가깝지 않았다. 그냥 그건, 랭보와 베를렌 같은 관계였다. 차라리 우리가 정말 레즈비언이었더라면 편했을 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우리가 동성애자였다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 혐의가 있긴 했으나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아직까지도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양성애자는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를 매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성해야겠다. 이 글에 나의 그 미친 듯한 절절한 후회와 말도 안 되는 모순의 감정을 잘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한 이불을 덮고 K를 안고 K와 나의 손가락이 서로를 스치고, (등이다, 등. 우리의 가장 에로틱한 행위라고 해봤자 3년을 통틀어 귓불 만지기가 다였을 것이다.) 오싹오싹하면서도 타락하는 듯 한 분위기 속에서 불을 끈 방의 침묵을 지키고. 마주 닿은 상대방의 체온과 고동과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왜 나는 너를 끌어안고 있나. 나는 여잔데, 너도 여잔데. 나는 나중에 후회할 일은 절대 하지 않을 텐데. 나는 첫사랑도 있는데.

 

 나중에 후회할 일은 결코 하지 말자는 것이 내 모토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을 할 때면 이것이 내 미래의 일신과 안전과 평화로운 삶에 어떤 해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곤 했다. 가끔씩 미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K의 손을 잡고 학교 화장실을 전전하며 같은 칸에 들어가 문을 닫았을 때에도 이 일을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이상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나는 K와의 관계가 나의 명예, 나의 학교생활, 나의 평판을 얼룩지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K의 얼굴 근처에서 가끔 초초한 입술이 맴돌았지만 나는 내 첫 키스를 여자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K와는 더욱 더. 나중에 K가 관계가 끝장나고 난 뒤 소문을 낼 수도 있다. 어른들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사춘기를 돌아보았을 때 결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후회는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K에게 이제 갈 시간이지, 하고 물었을 것이다. 불을 켰을 것이다. K를 보냈을 것이다. K는 같이 가 달라고 졸랐다. 조르는 게 K의 특기였다. 안아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으니까. 그 때는 화가 미친 듯이 나서 거의 폭발 직전까지 갔었더랬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K를 학원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혼자서 차가운 겨울밤의 언덕을 넘었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밤거리, 옆에선 차가 쌩쌩 달렸고 공기는 뼛속까지 차가웠고 머릿속은 텅 비었고 가슴은 미친 듯한 후회로 가득했다. 나는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달렸다. 포스트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어긋난 관계를 어떻게 끝내야 좋을까. 두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피어오르는 끔찍한 에로틱을 내가 수용했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내가 왜 너로 인해 이렇게 고민해야 하는지도 한심했다. 여자랑 이렇게 되어 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해. 어떤 무엇보다 더. 숨이 차도록 달리며 나는 맹세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너를 안지 않아, 절대 너를 안지 않아. 앞으로 너와 이렇게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 앞으로 두 번 다시 너를.

 

 3학년이 되기 전 우리는 한 번 싸웠던 것 같다. 양쪽 모두 절대 사과하지 않았다. 사소한 어긋남이었지만 상대방의 핵심적인 근원을 건드리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걸로 공식적인 관계는 결렬되었고 K의 편지가 신발장 밑에 놓여 있을 때면 나는 짝짝 찢어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이제는 나에게 K를 묻는 사람도, K에게 나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가 끝났다는 걸 전교의 학생들이 알고 선생님들이 알았다. 우리의 세계는 둘로 나뉘었고 다리는 절대 놓이지 않았다. 에로틱이 사라지고 나서 우리는 엄청나게 서로를 미워했다. 그 미움에는 분명, 너와 함께 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와 미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바보 같은 시간들에 대한 미움. 일그러진 충동들에 대한 미움. 그러나 공식적인 관계가 끝났어도 중학교 3학년 때 복도에서 마주치면 왕가위의 영화에서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K는 나중에 자신의 블로그에서 인간의 눈동자가 그렇게 서투른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면서 불안정하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그 때 나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고 썼다. 다행히도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이었는지, 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은 무엇 때문인지 결코 궁금해 하지 않았다.

 

 첫사랑은 나를 아픈 만큼 성장시켰고 많은 것을 배우게 했지만 K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그 바보 같은 이미지와 함께 먹먹한 후회와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만이 떠오른다. 첫사랑에 대해서는 후회할 포인트가 그래도 몇 가지 다르게 존재한다. 좀 더 나은 여자로 처신할 수 있었는데, 혹은 좀 더 빨리 헤어지는 건데 등등. 하지만 K와의 나날에서 그런 건 없다. 아예 그 처음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가 전부다. 그 처음을 선택하면서 모든 것이 함께 시작되었고 그 처음을 선택하면서 그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불가항력의 힘이다. 그 날 밤 학원에 가기 전 자고 가겠다는 K를 집에 들이지 말걸, 하는 후회는 있을 수 없다. 아예 그 인간관계를 시작하지 말 것을. 중학교의 눈부신 등교 첫 날, 그 미소를 마음에 결코 담아 두지 말 것을.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깨끗해졌을까. 공연히 성 정체성에 대해서 혼돈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바보 같은 짓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잘 나갔던 첫사랑과 좀 더 많은 행복을 쌓을 수도 있었겠지. K와의 나날 전체는 통째로 들어내서 갖다 버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케이크에 잘못 떨어진 촛농 자국이다. 아직 불가항력의 힘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 아직은 그래도 나의 의지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때, 나는 초를 뚝뚝 끊어서 내다 버리고 라이터는 땅 속에 파묻어 버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내내 상기하고 있는, 그 찬란한 미소와 함께 두 눈이 처음 마주쳤던 순간을 다시 한 번 겪게 된다면, 나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고 긴장되어 있던 첫 등교 날의 교실에서, 나를 끌어당기던 그 미소와 그 눈동자를 다시 보게 된다면, 열일곱 살에 건전하고 똑똑하고 정신 올바르게 박힌 이성애자 강푸른은 그 김다은을 밀어낼 수 있을까. 또, 다시, 후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결국 10만원을 날려 버린 일을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라 적어 학교에 제출해야할 것 같다.


루시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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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뭐, 좀 더 지나봐야 알겠죠. 진행형이에요 사실. (....)

    • 2006-07-13 13:15:5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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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빵

    몹쓸짓을 한 일을 한 나조차도 나예요. 어리석은 행동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거같아요. 맞지요? 전 후회할 일을 했던 때의 감정을 기억해요. 그건 일종의 일탈이기도 했고 어리석음이기도 했어요. 저는 그 감정을 기억하면 씁쓸한 톳물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거같아요. 하지만, 끝맛이 그저 구리지만은 않아요

    • 2006-07-13 01:14:47
    얼빵
    0 /1500
    • 0 /1500
  • 익명

    오해하지 않아요.

    • 2006-07-11 20:54: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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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제 친구중에 한명도- 아니, 그냥 제 친구도 아는 여자애랑 입맞춤한적 고의로 입맞춤한 적 있다고 했는데 이와 비슷한 심정이었을것 같아요, 그 애도.

    • 2006-07-11 19:53:1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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