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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오일팔 정신 계승 전국

  • 작성자 아마도생선
  • 작성일 2006-09-29
  • 조회수 720

제 5회 오일팔 정신 계승 전국 청소년 토론대회 후기 pt.1

 몇달전 부산에서 토론대회 때 나의 껍질은 한꺼풀 벗겨졌다. 당신과 내가 조우해 이뤄내던 동반상승.함께 약속의 장소로 가자던 우리들을 잊지못해서 나는 광주를 향했다. 오일팔의 피비린내 사이로 의지의 향기가 진동하는 빛의 고을, 광주를 향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광주로 가기 2주 전 부터 공부를 시작했었다. 부산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안다는 것, 그것은 말할수 있다는 것과 직결되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그 어떤 대회보다 더 힘들게 공부했고 치열하게 외웠다. 오만과 자만의 찌꺼기를 버리기 위해 그리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앎의 의지를 견고히 다져주는 강화제였다. 전날 새벽 4시 30분까지 자료와 발제를 준비하고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광주에 도착했다. 모든 떠남의 길 위에서 가진 것은 사람이었음을 상기하며.
 공원의 푸른 잔디밭을 지나 커다란 플랜카드, 안내처의 이름표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부산에서의 반가운 이름들, 가슴이 떨렸다. 광주의 9월, 햇살 따사로웠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유치원생들, 여기저기서 분주한 광주엠비씨의 카메라들,그들 중 아무것도 영혼으로부터 진동하는 심장의 박동을 멈추지 못했다. 반가운 얼굴들과 낯선 얼굴들, 익숙한 대화와 어색한 대화들을 지나 대회안내가 이어졌고 빛나는 얼굴들은 집중을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가벼운 음파의 진동을 느꼈다. 과도히 심플했던 기념티셔츠를 한켠에 걸어둔채 파란 의자위에서 연설을 듣는 대신 심장을 느꼈다. 연설이 끝나고 오일팔 재현 행사를 하기 전에 잠깐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부산에서 만났던 아이들 몇몇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떠남의 길위에서 만남이 계속됬다. 사람을 만나고 떠나고 다시 만나고 떠남의 길이 다시 만남의 장소로 환치되는 일련의 과정들중 일부에 불과하다 해도 나는 반가웠고 또한 행복했다. 약간의 레크리에이션 후에 오일팔 재현 행사가 시작됬다. 시민군과 국군의 대치상황을 재현한 극, 안에서 나는 다시 고민했다.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실제적 폭력, 그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 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 시절 역시도 5월 18일 광주 동성로 거리에서 제도적 폭력은 물리적폭력으로 환치되어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혼백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폭력은 명확히 구분되어질수 없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폭력은 다른 종류의 폭력으로 환치될 가능성을 지니며 어떠한 폭력은 특정한 폭력보다 우월하다. 특정 폭력이 어떤 폭력을 막아 낼 수 있을 떄 그 특정 폭력은 정당성을 획득한다. 따위의 서술은 무의미하며 올바르지않다. 평화를 위한 폭력 또한 정당화 될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평화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 누구도 축출한지 않는 사랑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 내면의 사색에서 진정한 평화는 얻어지는 것이며 우리의 행복을 담보하는 가장 큰 전제인 것이다. 따위의 잡상을 뒤로한 채 밥을 먹으러 갔다. 급식을 받고 주먹밥을 받았다. 여기서 느낀점? 혁명이건 쿠데타건, 에프티에이건 쇄국이건, 신자유주의건 사민주의건간에 최우선의 문제는 생명의 영위이며 삶에대한 보장이라는 것이다. 광주의 주먹밥이 국회 의사당 둥그런 지붕안의 열라게 비싼 밥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은 진정한 삶에 대한 투쟁을 가능하게한 최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쓰고 보니 웃기긴하다, 고작 밥먹는데 저런 생각을 하고있었다니 어쩌면 그건 광주였기에 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오일팔의 무덤을 향해 어두운 거리르 달리던 버스 안 드문 드문 가로등이 지나갔다. 버스에서 내려 무덤가 앞에서 모였을 때 김남주시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귀뚜라미들이 울고 있었다. 버스에서 받은 촛불이 하나 하나 불을 밝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다가왔다. 검은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같이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마음이 완전 편한것은 아니었다.'비록 죽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이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역시 고민할 필요 없으니 참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 문제다. 나름 80년대 후반에 태어나 풍요를 누리고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성장했다 그것인가. 중학교 때, 고상하다는 학술서도 아니고 이우혁의 <퇴마록>을 읽다가, 머리를 산산조각내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적 있다. 혼세편에 나왔는지 말세편에 나왔는지 다 까먹고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몰라도, 그 때 읽은 그 대사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대사도 구체적인 표현은 희미해졌지만...ㅡ.ㅡ;;)
한빈거사 : 현암아, 너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네 한 몸 거뜬히 바칠 수 있겠느냐.
현암 : 물론입니다.
한빈거사 : 그래선 안 된다. 자기 목숨을 거뜬히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목숨도 거뜬히 희생시킬 수 있다.
대충 이런 내용.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내용이지만,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으며, 당연히 이런 상황이라면 나라를 위해서 자기 한 몸 죽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과 맞부딪친 일이었다.  자기 목숨 희생한 위인들에게 쉽게 감동받았고, 도덕책 말대로 당연히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그렇게 해야한다고 믿고 있었다.퇴마록의 짙은 민족주의 정서를 감안하면 놀랍기도 하지만...지금 생각해보면 저런 류의 태도는 저 무렵 여러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과 혁명으로 피를 잔뜩 본 20세기의 끝무렵 시대가 필요로 하는 윤리였는지도 모른다. 그 윤리의 이름은 개인.바람의 검심(노부히로 와쯔키 作) 13권에, 켄신의 스승 히코 세이쥬로 가라사대"사랑하는 사람이나 약한 자들을 부처의 자비로서 자신을 희생해서 지켜봤자...그 사람들 속에는 슬픔이 남고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시대의 위기를 악귀의 격정으로 목숨을 바쳐 구해내봤자...그것은 결국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한때에 지나지 않아. 살고자 하는 의지는 무엇보다도 강하다! 그걸 절대 잊지 마라!"이랬더랬다.한편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네오더러 트리니티와 전 세계 중 무엇을 구하겠느냐고 설계자가 물었을 때 네오는 대뜸 트리니티를 택했다. 그 전에 일본 만화 '마법소녀 리나'(슬레이어즈)에서도 가우링(카우린? 이름이 기억 안 난다;;)을 잃고 전세계를 구하느니, 전 세계를 잃고 그를 구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여하간, 무엇보다 개인의 생명이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이 시대 주류 마인드로 보인다.이 마인드는 나름 혁명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의 이름으로 걸핏하면 소를 깔아뭉개는 그런 문화에 반기를 들 수 있었고, 혁명이라는 단어가 폭주기관차같은 수사의 힘을 발휘할 때,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라고 물어보는 여유를 갖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결코 나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희생시키지 않기를 원한다....그리고 설사 들뜬 혈기에 정신없는 열사라도 이 시대는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희생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혁명'은 어쩌보면 요즘 운동권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결과다. 나도 내가 죽어버린 후의 유토피아는 1g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 윤리는 중요한 혁명이 다 끝난 후에야 가능한 윤리인 것이다.
개인의 의식도 결국 사회적 제반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데, 어쩌면 이우혁이 한빈거사의 입을 빌려 저런 말을 하고, 와쯔키가 만화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최고라 그러고, 워쇼스키 형제가 전세계가 아닌 트리니티를 택하는 것, 그리고 나같은 다수 대중들이 거기 감응하는 것도 시대의 탓이다. 그렇다면 우리 태도는 언제든지 또 바뀔 수 있을려나. 사회 모순이 정말 또 심각해져서 때려엎거나 누군가의 피가 필요할 때,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가 도로 메아리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저 개인의 행복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윤리는 어쩌면 태평성대 젊은이들의 그냥 자기방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기 보다, 때에 맞추어 유행하는 트렌드일 뿐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니 개개인의 행복이나 삶이라는 가치가 너무도 우스워져서 서글프다. 90년대 윤리를 보며 뭔가 2% 이상 빠졌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역시,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인가'는 설명해주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에 팔짱을 끼고 있는 탓이다. 모든 혁명은 자기가 즐겁기 위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있는 나를 위해. 자. 그럼 아무 희생도 얻지 않고 어떻게?! 정말 아무 희생도 얻지 않고 혁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거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나는 겁이 나서, 1910년대 3.1운동이나, 60년대의 4.19나 80년대 광주나...이런 데에 나가지 않을 듯 하다. 어차피 의식이 투철한 혁명가나, 군중심리에 잘 말리는 사람은 나 대신 나갈 것이다, 그들이 싸우고, 죽을 터이고 나는 살아남아서 좋은 세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진리니까. 그 진리에 한 번 익숙해지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보강까지 된다면 역사에 더이상 혁명은 game over일 것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어쩌고 하지만, 이 땅의 20대들은 - 대체로 전 세계의 20대들은-.-;; - 잘 나서지 않는다. 나서더라도 진짜 체제를 뒤흔들만 하지는 않게,프랑스의 CPE 반대 투쟁정도야 괜찮았다지만. 정말 필요할 때, 우리 세대가 세상을 뒤흔들만한 에너지를 발휘할 날은 올까.
라는 상념에 잠긴채 나는 잠이 들었다.

아마도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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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도생선
  • 200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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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더 정제해야할것같긴합니다.

    • 2006-10-06 17: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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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보니 숨이차네요. ^^

    • 2006-10-05 00: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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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쓴 건 취소한다고 하려 했는데, 아까 보니까 수정이 안 돼서요. 더 알아봐야 말할 수 있는 문제 같아요. 음.

    • 2006-10-01 20: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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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 관련글을 곧 궁냥궁냥에 올리겠습니다. 루저-모르겠어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올수밖에 없는 건지

    • 2006-10-01 13: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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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문단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우리 세대가 세상을 뒤흔들만한 에너지를 발휘할 날.. 올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야겠죠. 아, 그리고 제가 부마민주캠프에 참가하고 싶은데 다른 행사랑 겹쳐서 고민중이거든요. 그 캠프의 자세한 프로그램 내용을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프로그램 이름만 보고서는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 2006-09-29 23: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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