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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투영된 만남

  • 작성자 dailybest
  • 작성일 2006-10-22
  • 조회수 386

삶 속에 투영된 만남


 낙엽이 구르는 계절에 홀로 찬비 내리는 창밖이라도 내다보고 있으면 아련히 먼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리운 사람들, 그러나 이젠 모두 사라지고 행방조차 모르는 사람들, 더러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고 있어도 피차 간에 소식 한 번 전하지 않고 멀어진 사람들..... 그런 얼굴들을 되새기며 비록 짧지만 지나온 18년을 적으려고 할 때, 모든 수식어를 빼버리고 뼈대만 적는다면 감히 인생에 대해서 이런 결론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인생이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마치 파도가 밀려와 철썩거리다가 썰물이 되어 사라지고 나면 다시 또 밀려오고 사라져 가듯이 만남과 이별의 수없는 반복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이도 만나고 많이도 헤어졌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 만남과 이별이 거의 모두 운명적이다.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저절로 만나진 사람들이며 또 이제는 내 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곁을 떠났고 아득한 세월이 흐를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다시 낙엽의 계절이 오고 다시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고-. 이렇게 계절도 만나고 헤어지며 역사도 만나고 헤어지고 우리가 태어나는 고향도 만나고 헤어진다.
 과거를 회상할 땐 누구나 그리움과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이별이 많았다는 뜻이다. 옛친구, 선생님, 모교, 어린 시절에나 즐기던 소꿉장난......
 그 모든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이미 모두 영원한 이별이 되어 있다. 이렇게 이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만남이 많았다는 것이다.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이별도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그 사람, 그 일들이 모두 그립고 그 이별이 서럽다는 것은 그 만남들이 그만큼 기쁨이었다는 뜻이 된다. 그와 반대로 과거를 떠올려 봐도 그립고 아쉬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것은 만남이 그만큼 없었거나 또는 만남이 많았어도 그 만남이 결코 기쁜 일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만남이 많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길거리에 나설 때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학원의 접수창구에서도, 지하철역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때문에 교통지옥이 생기고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취직난이 생긴다. 그렇지만 그 같은 군중 속의 만남은 만남이 아니다. 온갖 불편한 경쟁 상대 중의 한 사람일 뿐 기억에는 거의 남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와 달리 우리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만남이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반드시 기쁨으로서의 만남만은 아니다. 더러는 우리를 너무나도 슬프게 하는 만남이 있다.
 친구가 있으면 배신자도 있고, 자선가가 있으면 도둑도 있고, 애인이 있으면 라이벌도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이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사람들의 만남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어려운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런 역사적 운명을 이끌어 나가야 할 이 나라를 만났기 때문이다.
 친구는 물론이요 그같은 시대와 역사와 환경의 만남은 거의 모두가 운명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운명적 만남이 바로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 말이 결코 모든 것이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동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은 아니다.
 피해 다니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때도 있듯이 만남은 우리의 의사에 반해서 운명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 만남은 결코 우리에 대한 절대적 순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도 만남이란 우리의 의지로 창조적으로 수용할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불행한 환경은 우리를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우리에게 야망을 키워주고 강한 의지를 키워 주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영웅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야만 비로소 영웅이 될 수 있듯이 모든 만남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불행한 과거와 역사만이 아니라 좋은 친구, 사랑하는 연인 등 기쁨으로 가득한 모든 만남이 그렇다. 인간은 역사 속에 살고 사회 속에 산다. 그것은 무수한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만남이 없다면 인간의 삶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만남이란 바로 삶을 위한 방법이자 기회이다. 따라서 불행한 만남조차도 창조적으로 수용할 의지와 슬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원래는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글이 너무 무거워졌네요 중수필 필이라고나 할까..

걍 가볍게들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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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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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원래 글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써지지 않아요.^^ 이 글의 문장은 어디서 많이 읽어본 듯해요. 표현이 좀 상투적이고 식상합니다. 청소년다운 발랄함과 끼가 아쉽습니다.

    • 2006-10-26 19:59:4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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