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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랭보씨

  • 작성자 꿈꾸는고등어
  • 작성일 2006-12-16
  • 조회수 549

 열다섯이 된 겨울이었다. "인생이 결정된다는" 허풍 섞인 담임선생님의 잔소리가 따라다니던, 중 3이 되기를 기다리던 2월이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뒤적 거리다가 참 특이한 사람을 발견했다. 천재다. 세상에 대해 냉소하고, 반항한다. 그런 주제에 자기가 원하는 것에는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다. 스무 살에 태양을 찾아 아프리카로 훌쩍 떠났다. 그 여행 때문에 다리가 잘려버린 프랑스시인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은 ‘인생을 결정한다.’는 내 열 다섯 한 해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껏 배워왔던 시와는 달랐다. 애써 공감하지 않아도 좋다.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좋다. 어렵고 난해하다. 그러나 그저 느낄 수 있었다. 운율이나 형식, 그런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저 먼 곳에서 살랑거리던 발을 간질이는 느낌이었다. 그냥 그 사람이 마음을 톡톡, 두드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많이 깨지고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이성도 사랑도 부정하던 그 말에 애써 반박을 하다가 실패한다. 모든 사람들의 로망인 ‘파리’를 두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이성이나 선입관에 기대지 않고 세상을 보려고 했던 사람. 나는 그 사람 덕에, 다른 이의 주관에 기대지 않고 내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서툴러서 배려와 관용이 없는 극단적인 논지로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히지만 적어도 남들이 말하는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그의 이름을 늘 중얼거렸다. 그 이름이 답답할 때, 슬플 때, 화가 날 때.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주는 주문이었다. 그에게 늘 말을 걸었다. 모든 것을 말했다. 남쪽 바다를 보았을 때의 환희,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던 일출을 그림 그리듯 읊었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폭언에 맞서지 못하는 나약함에 대해 고백했다. 때로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말투 하나하나에 딴죽을 걸기도 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라틴어 시 쓰기에서 상 탄 이 사람에게 천재는 부럽다며 한탄했다.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정말로 유령이란 게 있다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잠 좀 자게 내버려 두라고 투덜거리러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좋아한다고 크게 외치지 않았다. 그 이름은 입에 담기에는 무거웠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반항하는 청춘’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티셔츠에 가득 찍혀서 팔려나가는 체 게바라의 초상화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온갖 색채를 덧씌우고 신화를 만들어갔다. 그의 이름을 크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그맣게 말했었다. 그의 이름을 잘못 말하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제대로 말해주고 싶었다. 그와는 언어도 나라도 시대도 다른 내가,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점잔빼는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여겼던 불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내신들을 들먹거리며 나보고 저주받은 세대는 가지 말라던 그 학교에 끝끝내 원서를 냈다. 다들, 쓸모없다는 그 언어를 1지망으로 써냈다. 기대했다. 고등학교, 여름방학이 되면 그의 시를 온전하게 읽을 수 있기를.

 

 하지만 정말 우습게도 그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들어왔던 이 학교에서 나는 그를 잊어간다. 11월 10일, 그의 기일이었던 그 날, 나는 합격을 기원한다는 찹쌀떡 하나를 먹으며 하얗게 질려서는 계속해서 문제집을 붙들고 있었다. 시험 때문에 불안해서 그의 기일을 잊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열여섯의 11월 10일, 그저 다음날에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이 기뻤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열일곱의 나. 백 몇 년 전쯤 그 사람이 잘린 다리를 끌어안고 죽어간 그 날, 프랑스 아이돌이라는 여자아이의 사랑 노래를 듣고 그 노랫말을 입으로 되뇌고는 등기부를 외우는데 바빴었다. 늘 늦게야 깨닫고,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한다. 자격시험의 성적표 두어 장도, 머릿속에 들은 문법과 단어 몇 개도- 이 허전함을 채워주진 못한다.

 

 지금은 시험, 불어교과서에는 부모와 갈등하고 무엇이 될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글로 가득하다. 그리고 조언은 정말이지 깔끔했다. 불어를 잘하고 잡지를 좋아하니까 기자가 되는 게 좋고, 남을 돕기가 좋으니까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한다고 하고.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조언을 구하라고 말하고. 교과서의 씰비, 뤼시, 안느, 그리고 피에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불어로 빠르고 명쾌하게 말해주고, 나는 그 말을 외운다. 하지만 꿈을 꾼다는 것은 결코 교과서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랜만에 또, 이 사람에게 받지 못할 편지를 쓴다. 말을 건다. 질문한다. 그것이, 이 사람처럼 “바칼로레아(혹은 수능) 따위는 엿 먹어”라고 말할 수 있지 못할 내가, 지금 해 보일 수 있는 대단치 않은 반항이다.
 
 언젠가 이 사람이 태어난 마을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곳은 지금 온통 그 사람을 위한 마을이라 하니까. 그렇다면, 고등어나 참치가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게 헤엄치듯이 한국에서처럼 그림 몇 장과 책 몇 권에서 끈질기게 이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겠지. 느긋하게 앉아서는 공기에 흐르는 그 사람의 바람을 맞고 싶다고, 꿈을 꿔 본다.

 

- 제가 읽어보았던 것이랍니다.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랭보
반역의 시인 짐 모리슨과 랭보
이준오씨 번역의 “랭보 시선”
클라시커 시리즈 커플 50
영화 토탈 이클립스.

 

 샤를르빌에 있는 랭보 박물관에는 자료가 넘친다는데- 불어를 열심히 해서 3일쯤 눌러앉아서는 그 박물관에 있는 모든 자료는 자근자근 씹고 오는 게 제 목표랍니다. 전 엄청난 스토커거든요.

 

 저는 사실 이 사람을 행(횡 정도로 강하게 읽어야...)보라고 불러요. 염상섭씨인가, 호가 횡보이신 분이 있죠? 갑자기 웃음이 나네요.

 

 비평글일까 생활글일까 고민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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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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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고등어
  • 2007-03-30
어딘지도 모를 한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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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고등어
  • 2007-02-03
Alive

 하늘이 점점 짙은 남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버스가 커브 길을 돌자 시야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소월길을 밝히던 가로등이 흐릿하게 보인다. 뉴스가 들린다. 여섯 시 단신이다. 숱한 사고와 사건들이다. 어린 남매 둘만 집을 지키다가 불에 타 죽었다. 산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쳐서 병원에 옮겼으나 숨졌다. 얇아진 얼음이 깨져서 물에 빠져 죽었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다 얼어 죽는다. 폭풍우에 휩쓸려서 사망자만..... 더위를 이기지 못 해서 몇십명의 노인이 죽었다. 차가 미끄러져서 즉사한다. 뇌사에 빠졌다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서 결국 사망했다. 우울해서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  늘 나는 불안했었다. 자주 너에게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불안이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네가 언제나 경계에 서 있는 거 같았다. 언제나 그 경계선 안에 너를 잡아놓으려고 했었다. 온갖 말을 하면서 너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네가 웃어주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위안할 수 없었다. 나는 너의 갈라진 목소리에 그저 흐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남한테서 잊혀지길 원하지 않는구나.   온전하게 빈틈없이 죽였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장 난 수도꼭지.  사실 너의 말은 갈라진 너의 목소리만큼 잔인했다. 계속해서 깨달았다. 꽤나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울 수 있었구나. 이렇게까지 슬퍼질 수 있구나.  그리고, 너라는 존재를 내 삶 전체에서 떼어갔지. 너는 손이나 발과 같아서, 너를 떼어놓는 일이 꽤나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깨끗했다. 친구가 내게 말해준 불구를 만드는 법처럼, 너는 오랫동안 내게 고통을 주었다. 나는 헤어짐에 대한 짐작과 만남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갈등했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고 혼란스러웠다. 마치 물구나무를 못 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매달린 채로 소리를 지르듯. 그리고 너는, 깨끗하게 잘랐다. 그리 아프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 진짜 성치 않아서, 계속해서 절룩거리며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를 죽이려고 악을 썼던 것처럼 너도 나를 죽이려고 했겠지. 너는 이렇게 힘들었을까. 무언가 나를 기억할 만한 게 있을까. 아랍 방송에서 흔하게 들을 그 이름을 보고 있을까. 친구가 장난처럼 붙여버린 그 이름을, 생각하면서 내 얼굴을 떠올릴까. 내가 티백에 쓰인 이름을 보고 널 추억하듯, 요르단 왕자의 이름에서 나를 떠올릴까. 六   

  • 꿈꾸는고등어
  • 200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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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rnweh...먼 곳에의 그리움, 이란 단어가 생각나는 글이었어요. 왠지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서 스리슬쩍 공감이.. 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2006-12-16 23:22: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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