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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비명만을 지른이는 절규

  • 작성자 필력
  • 작성일 2007-04-22
  • 조회수 150

 체육대회날에 오전에는 영화 300을 본다는 소문이 돌았다. 18세라는 등급의 벽에 부딪혀, 보고싶은 영화 리스트 1순위에 올라있었지만 보지 못한 그 영화이기에 더욱 더 기대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께서는 개인용 노트북을 가져오시고는 오래된 영화 한편을 틀어주시며 학교 방송부의 전사 300명을 일순간 물리치셨다. 그러한 선생님의 극악한 범죄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들 분노하며 전사들을 애도했다. 300명의 전사를 물리친 선생님의 병사는 다름아닌 -일급살인- 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지닌 제목의 영화였다.

"아무리 일급살인이라도 그렇지 300명의 전사를 일순간에 물리치다니 역시 영화는 제목을 잘 지어야 해."

 아이들끼리 수군대며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토로할 때, 영화를 틀어주시며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간단 명료했다.

"300은 정보의 바다에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영화지만 우리가 느껴야만 하는 것들을 내포한 이런 고전영화들을 너희들은 존재여부조차 알지 못하지 않니? 사람을 죽이고 죽는 영화라면 그 뜻을 지닌 것을 본다면 좋겠구나. " 

그래도 그 반나체 근육질의 300명 남성들을 기대했던 여자아이들과 '남자의 로망은 소수정예의 전투부대 아니겠어?' 라고 생각했던 남자아이들은 모두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가 느껴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우리는 300명의 전사와 다음을 기약하며 -일급살인-에 눈을 돌렸다.

 영화의 도입부부터 우리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옛날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탈옥수가 잡혔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순식간에 300의 전사를 우리의 뇌리에서 몰아냈다. 여동생을 굶주리지 않게 하려 단 돈 5달러를 훔쳐 인간만도 못한 생활을 영위해야 했던 헨리 영의 실화는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발가벗은 채로 빛도 없는 조그만 독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하고 느꼈다.  너무나 끔찍한 헨리 영의 고문 장면들이 인간의 잔인성과 법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를 변호하는 제임스에게 너와 내가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나도 이처럼 살아야 했을까라고 묻는 그로부터 과연 우리가 그런 부조리 안에서 살아감을 알고는 있었나 생각했다.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는 그의 대사는 과연 우리는 그들을 가둠으로써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함을 알렸다. 나는 제임스다. 이렇게 앉아 다른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내가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느꼈음을 누군가에게 알리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자 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처절한 외침을 내뱉을 때 누군가는 좀 더 맛있는 반찬을 먹기 위해 소리친다. 누군가가 화려한 치장에 돈을 쓸 동안 그 돈으로 수만명의 헨리 영이 구제 받는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좋음을 외치면서 우리는 5달러를 훔쳐 지옥에서 살아야 했던 헨리 영을 모른다.

 친구들과 나는 입시는 지옥이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죽은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배워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그저 우리가 배워야 함만을 강조하는 사람들 뿐이다. 모두를 사회라는 독방에 가두어 놓고 있으니 개인의 독방을 보지 못한다. 헨리 영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약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 역시 정신적 약자였다. 이제는 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복지가 아니며 그저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을. 사회의 약자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는 것은 사회의 강자들이며 그들은 지금도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범죄자를 위해 관용을 베푼다. 그들은 헨리가 원한 것은 5달러가 아니며 먹을 것이었음을 모른다. 우리는 헨리가 감옥에서 바란 것은 인간의 정을 느끼는 것이었음을 모른다. 이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테지만 제임스와 헨리 영이 미국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나와 친구들 혹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력이 분명 이 사회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이 사회의 법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노숙자를 위해 나의 목도리를 풀어 목에 둘러 드릴 수는 있다. 이제는 폐휴지를 모으며 리어카를 끄시는 분을 피해 옆에 물러서지 말고 그 분의 뒤에서 함께 밀어드려야겠다. 비록 내가 가진 힘은 작을지라도 그 분은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일테니까...

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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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력
  • 200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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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력
  • 200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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