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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세상의 벽

  • 작성자 고양이공포증
  • 작성일 2011-11-02
  • 조회수 477

  <우리들 세상의 벽>*

 

 

 

  “되게 오랫동안 팬 분들과 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엉엉 울었다. 그렇게 우리를 벽 뒤에 가둬 놓고, 이제야 돌아온 거야 왜. 혼자 얼마나 괴로웠던 거야. 얼마나 지옥의 끝을 살았던 거야.

  나는 6년째 그의 팬이었다. 조금 더 일찍 그를 알았다면 좋았을 테지만, 나는 아직 어렸으니까.

 

  처음으로 타블로를 TV에서 본 것이 2005년.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음악 프로그램에 ‘에픽하이’로 나와 랩을 하고 있었다. 때론 낮게 나는 새도 멀리 봐, 어두운 밤일수록 밝은 별은 더 빛나.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노래 가사가 내게 얼마나 와 닿았던지 모른다. 그 뒤로 다른 가수들같이 사랑 타령 하는 노래가 아닌, 진정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던 에픽하이의 팬이 되었고, 그 중 특히 에픽하이의 리더인 타블로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어렸기 때문에 제약도 많았고, 어렸기 때문에 몰랐던 것도 많았다. 최근 3년에 들어서야 타블로를 보기 위해 콘서트도 가고 음악 프로그램 공개방송도 갔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나는 그를 단순히 외적으로 좋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내면의 세계를 존경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듣고 만들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글을 읽고 썼는지 생각할수록 그가 멋있어 보였다. 내 짧은 18년의 삶에서 정말 중요했던 순간들을 꼽아보면 에픽하이나 타블로가 걸쳐져 있다. 죽고 싶었지만 죽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에픽하이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을 때는 손에 타블로의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 들려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가 아름다운 여배우 강혜정과 결혼을 한다고 발표했을 때, 꽤 많은 팬들이 팬카페를 탈퇴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팬카페에 남아 둘의 사랑을 축복해 주었다. 나는 그 정도로 그를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가 결혼을 하고 얼마 뒤 일이 터졌다.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그가 학력위조를 했다는 게시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며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를 개설했다. 카페의 회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몇 주, 길어야 두어 달 하다가 그만두겠지 싶었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하게 흘러갔고, 뮤직뱅크에 나와야 할 그가 아홉시 뉴스에, 인기가요에 나와야 할 그가 특집 다큐멘터리에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학력위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고 그의 모교인 스텐퍼드 대학에서도 인증 자료를 보여주었다. 검찰 조사 결과도 사실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의 학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계속 그를 괴롭혔다. 결국 그는 우울증의 재발과 대인공포증으로 인해 휴식기간을 갖게 되었다.

  그의 휴식기라는 거대한 장벽이, 나를 괴리시켰다. 나는 그 뒤로 문이 없는 방에 갇혀 벽이 사방에서 밀려오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꼼짝 없이 밀려오는 그 벽들에 눌리는 것이었다. 꿈은 매번 조금씩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 방이 ‘쇼! 음악중심’ 녹화장이었다가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방이 되기도 했다. 악플러들의 손이 벽을 밀고 올 때도 있었고 내 옆에 타블로가 같이 앉아있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무기력했고 벽은 언제나 무서웠다.

  그는 이따금 팬카페에 올리던 안부글도 더 이상 올리지 않았다. 자연히 나는 팬카페 활동을 그만두었다. 벽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것 밖에 나는 할 수 없었다. 정말 간절히 기다렸다. 제발 그가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으며 팬들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주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니 결국에는 이루어졌다. 1년 4개월만의 컴백. 그가 소속사를 조금 큰 곳으로 옮기고 새 앨범을 발매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1년여 만에 다시 팬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돌아온대요, 그토록 우리가 그리워했던 그 사람이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준대요.

  그의 새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도 함께 공개되었다. 메이킹 필름에서 그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되게 오랫동안 팬 분들과 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다행이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통해서 그 벽을 어느 정도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 같으니까, 여러분이 저를 많이 기다려줬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더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매일마다 노력하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나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보면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며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에요. 그렇죠? 브라질에는 앵무새의 부활이라는 전설이 존재한대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과 바람이 죽은 앵무새를 더욱 멋지게 부활시키는 거래요.

  지난 10월 30일. 나는 그의 컴백 무대를 보기 위해 등촌동 SBS 공개홀에 갔었다. 그날, 타블로와 팬들 사이의 벽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나는 베를린 장벽처럼 붕괴된 그 벽 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었고, 나는 울고 있었다.

  그날 밤 타블로와 팬들이 인기가요 녹화장에 갇히는 꿈을 꾸었다. 사방에서 벽이 밀려오고 있을 때, 타블로가 먼저 한쪽 벽에 붙어 벽을 밀기 시작했다. 팬들은 안간힘을 쓰는 그를 바라보다가 하나 둘, 그 벽에 함께 들러붙었다. 모두들 벽이 더 이상 밀려오지 못하게 벽을 막았다. 더 이상 방에 갇히는 꿈이 무섭지 않았고, 밀려오는 벽도 두렵지 않았다. 무기력했던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이에 달려들었다.

 

 

 

 

  *제목 <우리들 세상의 벽>은 타블로의 단편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에 실린 단편 소설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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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수정해도 마지막 문단에 엔터키가 계속 추가되네요 ㅠㅠ 일부러 3줄 띄운 건 아니에요....ㅠㅠㅠ

    • 2011-11-04 21:02: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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