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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다 현실 속에서

  • 작성자 이노을향
  • 작성일 2013-04-26
  • 조회수 351

 꿈을 꾸다 현실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여 동생한테 책을 많이 읽어주었고, 좋은 글을 보면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란 생각을 하곤 했다. 또한 머리에서 피어나는 생각이 손끝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아름다운 한 송이 꽃과도 같은 글로써 표현되는 과정은 정말 아름답고, 실제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6학년 때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나의 꿈은 교양방송작가 및 여행작가인데, 5학년 때부터 꿔왔던 꿈들 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글을 쓰는 점이라는 것이다. 무언가 마성의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똑같은 문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기업인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느 날, 그는 아들을 볼 겸 모교를 찾아갔다. 백발이 성성한 은사가 여전히 강단에 섰고, 마침 아들은 중간고사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중간고사를 보고 나온 아들의 시험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십여 년 전에 본 문제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했다. ‘등록금이 얼만데, 아직도 문제를 바꾸지 않고 가르치시다니!’ 그는 은사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말문을 열었다. “교수님, 우연히 아이 시험지를 보니 제가 풀었던 문제와 똑같던데요.” 은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여전히 같은 문제를 가르치시나요?” 그러자 은사가 말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경제학의 문제는 변함없어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가.”

    

: 나는 이 글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각양각색이고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눠도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는 것인데, 난 너무 일반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하는 과정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다보면 내 자신도 약간씩 변화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시대의 변화를 잊고 살아왔다. 이 글을 읽고 시대가 변화해도 변함없이 못 사는 사람들의 수는 일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나는 곧 그 답을 생각해냈다. 바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들의 수가 크게 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어려운 사람들 스스로도 노력을 해야 하지만, 가난을 이기기엔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주변의 도움 없이 재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돕는 사람의 수가 적다.

    

나는 그래서 교양방송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많고 다양한 교양 프로 중에서도 동행이나 인간극장과 같은 프로처럼 어려운 이들의 삶을 다루고 보는 시청자가 선뜻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하는 프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세상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송작가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말에 꿈을 정해놓고도 맘이 편치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더 내게 같은 반 윤지가 “승민아!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는거래!” 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왜 나는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생각은 하지 않고 현실만 부정하고 있었던 거지? 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말을 해준 윤지에게 고맙고 힘들고 때로 막막하더라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서 나를 보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생길 수 있도록! 얼마 전 책에서 본건데 이런 말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겁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려면 힘들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려면 괴롭다.

    

현실이 이렇다. 그러나 정말 좋아하고 좋아하는데 있어 열심히 하다보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다보면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보단 훨씬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내 미래는 과연 어떨까. 때로 미래를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 더 좋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미래가 되기 위해선 현실에 충실해야겠지? 힘내자!

이노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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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노을향
  • 2013-03-10
꿈을 향한 설레는 발걸음. 동시에 그 시작의 입구에 서서 적어내려가는. 짧은 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선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을 숙제로 내주셨어요.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일기는 일주일에 두 번 마음 내킬 때, 대충 휘갈겨 쓰곤 했었어요. 그런데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매일 매일 적어서 내라니요. 그것도 15줄 이상으로 말이죠.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보고하라는 것만 같아 정말 싫었어요. 더구나 악필이었던 터라 4학년 담임선생님한테 글씨 좀 예쁘게 쓰라고 혼났던 기억이 나서, 제 글씨를 길게 나열해서 매일 보여야한다는 사실 또한 불만이었고요. 아무튼 시간은 가고 어느덧 일주일 정도가 지났어요. 아이들이 힘들어하자 선생님께선 몇 가지 추가 제안을 하셨죠. “일주일에 두 번은 시를 쓰거나 독후감을 써도 된다.” 매일 밤 열다섯 줄을 채우기 위해 머리를 싸매던 저는 약간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시야 뭐 세네 줄 정도니깐 금방 써지고 독후감도 줄거리 쓰다보면 금방 쓰니깐요. 그렇게 그날로부터 일주일에 두 번은 시와 독후감으로 일기를 대신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썼던 시 아래 적혀있던 선생님의 짧은 글 두 줄. ‘승민이는 시를 참 잘 쓰는구나! 학급문고 만들 때 시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니?’ 악필로 삐뚤빼뚤 처음으로 쓴 것이자, 일기쓰기 싫다고 대신 대충 휙 적어 내려갔던 시이건만 생각지도 못한 칭찬을 들으니, 직접 얼굴을 마주대고 들은 칭찬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오르곤 하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여주는 어린 날의 기억..아직도 생생한 그 날 제가 받았던 기쁨은 지금 제가 글을 쓰는 것에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글을 쓸 때가 가장 즐겁고 편안해요. 이런 느낌이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썬 그다지 큰 방해물만 없다면 이대로 쭈욱-가거나 이런 느낌에 더 매력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다는 것이 행복해요. 그런데 사실 솔직히 말해서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하다보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글 쓰는 직업을 꿈으로 삼는 것에 있어 머뭇거리곤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야 확고해졌습니다. 제가 머뭇거리는 선택의 길이 이미 누군가 걷고 있고 그들도 그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인내를 겪었는데, 전 그냥 쉽게 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갑자기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지는 거 있죠. 아무리 어렵고 고된 일이라 해도.. 막상 하게 됬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해도.. 저는 한 번 하나뿐인 제 인생을 걸어볼 용기를 이미 충전해 놓았어요! 교양방송작가..! 제가 쓴 글이 방송에 나가서 이 사회에 작게나마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에요. 글을 쓰는 일-!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 평생 한다면 아-, 그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요? 오늘도 꿈을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내딛어봅니다.

  • 이노을향
  • 2012-12-02
그리운 나무야

  유치원 뒤에 자그마한 뒷동산. 날씨가 맑게 개어 엄마가 빨래하기 좋다며 웃음 짓던 날이면 항상 그리로 야외수업을 나가곤 했었지. 손에는 장갑을 끼고 삽과 빨간 양동이를 하나씩 든 채로. 그곳에서 운동하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예닐곱살의 조그맣던 우리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셨어. 그런데 한 할머니가 다가오셔서는 “야들아, 손에든 그것은 뭣 하러 가져가누?”라 물으셨어. 우리가 들고 있는 삽의 정체가 궁금하셨던 거야. 우리는 이미 그런 질문을 자주 들은 터라 익숙하게 대답하곤 했었지. “나무 심으러 가는 거예요~”    요즘 들어 유치원 때 선생님이 가끔 생각나! 특히 집 가까이에 위치한 남산에 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생각나곤 해. 산과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무엇 무엇들이 있는지와 그것들이 매우 소중함 것임을 일컫어주신 분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유치원 때 내가 심고 돌봐준 나무들이 쑥쑥 자라는 과정을 보면서 난 예닐곱이라는 이른 나이부터 남들보다 일찍 뿌듯함과 보람참이란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어. 나무 심는 일이 요즘에 안 심어봐서 지금 심는다면 즐거울 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무척이나 즐거웠어. 그래서 유치원 놀이방에서 아이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야외수업을 하는 날이 매우 기다려지곤 했었고 혹여나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가 오거나 우중충한 날씨엔 그 날 하루 동안 살짝 우울해지곤 했었어.    처음부터 나무 심는 것이 좋았냐고? 당연하지! 라고 얼른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좋았던 것만은 아니야. 유치원 소풍날 동물원에 갔는데 도시락을 꺼내 먹을 때였어. 햇볕이 줄기차게 쨍쨍 내리쬐던 날이라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그늘진 곳을 찾았는데 마침 커다란 나무 밑에 자리가 비었어. 우리는 냉큼 달려가 돗자리를 깔고 앉았고 도시락을 꺼내어 먹기 시작했지. 그런데 김밥을 한 두세 개쯤 꺼내 먹었을 때였어.    툭- 내 도시락 위에 떨어진 까만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벌레 하나. 내가 쫌 둔해서 내 도시락에 떨어진 줄도 몰랐어. 툭-소리에 나뭇잎이 떨어졌구나 하고 무심히 김밥을 하나 꺼내는데 으악-! 놀라서 도시락을 떨어트리고 (지금 생각하면 좀 아까워) 난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벤치에 앉아계시던 선생님께 달려갔어. 도시락도 버리고 즐거운 기분도 망치고 이게 뭐야~ 하는 심정으로 집에 돌아가서 애꿎은 엄마한테 짜증을 부렸지. 아무튼 그렇게 기다렸던 소풍이 나무에서 떨어진 벌레 때문에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고.. 난 나무를 싫어하게 되었어. 나무 위에는 벌레가 가득하다는 생각에 나무 밑에는 얼씬 거리기도 싫은 거 있지.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였어. 선생님이 야외 수업으로 바깥 놀이터나 박물관이 아닌 뒷동산에 간다는 거야. 산에는 나무가 많으니까 안 그래도 가기 싫었는데 나무까지 심는다니깐 난 기절초풍할 뻔했어. 마침 그 날 엄마가 새로 사주신 분홍

  • 이노을향
  • 201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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