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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 소설집 후기

  • 작성자 터부의 벽
  • 작성일 2013-07-17
  • 조회수 261

이력서 - 소설집 <종이벽> 후기

 

 

작가의 말은 간결하게 쓰는 게 최선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오늘의 오디션」의 실제 모델이 된 동아리의 모토처럼, ‘주어진 판을 깨뜨려라!’ 에 따라야 한다.

고등학생 시절동안 쓴 글은, 그냥 글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란 나에게 모험이었다. 구석이건 어딘가에 박혀 있었던 것들을 모아 앞에 걸어둔 소설들은 나의 글쓰기 행적을 처절히도 보여준다. 편견과 고통이 찢겨지는 과정은 말만으로 설명하자면 고통스럽다.

지금 나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주어진 공간에 그 행적이 어땠는지를 괜히 보여주고 싶다. 딱히 이때는 이러했다, 그때는 그러하였다 같은 것을 따로 쓴 적이 거의 없어 (조각조각 쓴 적이야 있지만) 오직 그 순간의 기억과 인상으로만 써야겠지만 말이다. 눈이 감긴 채 손을 더듬는 기분으로 과거를 회상해보자.

참고로, 나는 이 이력서에 ‘글에 대한’ 이력서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다른 이야기까지 하면 갑작스럽게 분량이 많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먹고 있었는데, 정작 책 제목을 정해야 할 순간 그것조차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제목으로 하려다 고를 수 없었다. 딱히 그럴 필요도 없기에 그만뒀다. 잠시의 고민으로 나온 제목이 하나 있긴 한데, 그건 다음 책을 위해 아끼기로 했다. 그 제목으로는 잡문집을 낼 생각이다.

결국 나의 소설집 제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Yellowcard의 가장 좋아하는 앨범 「Paper Walls(2007)」에서 따왔다.

“살아오면서 정말 수도 없이 많은 굴곡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높은 벽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한데, 결국 극복하고 나면 결국 종이로 만든 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냥 쭉 찢어버리면 간단하니까. 몰론 이번 음반의 타이틀은 앨범의 마지막 곡과 제목이 같기도 합니다. 다분히 공개적으로 쓰여진 일기처럼, 우리들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죠.” (2009.03.30 인터뷰)

 

 

 

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설과 같은 산문글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책을 열심히 읽고 글구상도 많이 했지만 말이다. 특히 일기를 정말 많이 썼다. 누군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냐는 말에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가 필수적으로 나오는 이유를 글을 쓰며 알았다. 빠르게 쓰느라 악필로 쓰이긴 하지만, 사실 내가 원래 악필이지만, 하여튼 일기라도 많이 쓴 것이 글 쓰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기를 많이 쓰면 쓸수록 나의 숨겨있던 진심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편견과 고통은 열심히 찢겨졌다.

나의 글쓰기를 가로막는 건 ‘최고의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증과 ‘시간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열심히 일기장에 글자들을 열심히 박아두는 것으로도 시간이 퐁당 빠지는 건 충분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소설을 쓸 계기가 생겼다. 국어시간에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과제물을 제출하는 수행평가였다. UCC나 시 같은 방법이 있었지만, 나는 당연히 소설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을 생각해봤다. 하지만 딱 이 사람, 이라고 정할 수가 없더라. (지금이라면 박완서 작가를 고민 없이 선택했을 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다) 고민을 하던 도중 어떤 학습관련 사이트에 어떤 사람이 올린 생활담을 읽게 되었다. 나는 그 글에 큰 인상을 받았고, 그분의 이야기를 토대로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을 썼다. 처음으로 ‘글쓰기’의 즐거움 자체를 느꼈다.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방법 자체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쓰기에 도움 될만한 책을 찾았다. 「글쓰기의 유혹 (스티븐 킹)」이 가장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그 책을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책에서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강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물론 언어는 달라 문법체계에 대한 짧은 조언은 좀 상황이 달랐지만 말이다. 책에 나오는 ‘이력서’는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 이력에 대해 쓴 글인데, 나또한 이 책의 후기 제목을 ‘이력서’라고 썼다. 책 제목도, 후기 제목도 다 따올 정도로 창의력이 없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앞의 글에서 나의 창의성이라던지 정성성을 따져달라고 바랄 뿐이다. 패러디와 표절의 경계는 작가의 의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패러디에 '재창조' 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한참 글을 쓰지 않았다. 우선 그 책을 천천히 읽었다. 게다가 글쓰기 방법과 상관없는 '이력서'가 맨 앞에 있어 '이력서' 먼저 읽어나갔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정확히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아마 오랜 시간동안 나를 장악한 강박이 그때에도 내 몸속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글을 쓸 때 느끼는 순간의 기쁨보다는 그 후의 절망이 더 컸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했다. 나는 어린이 청소년 문학 전문 출판사인 ‘바람의 아이들’의 카페 ‘미래의 독자’에 가끔 활동을 하는데, 그때 ‘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다이어리’란 이벤트를 열었다. <글쓰기 다이어리(수지 모건스턴, 바람의 아이들)>란 책은 하루 한쪽마다 글쓰기 소재와 그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여백이 있다. 이벤트에서 작가들이 어떤 날의 글쓰기 소재를 올리면, 카페 회원들이 여백 대신 페이지로 글을 올리는 것이다. 너눈 나에게 처음으로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작가의 꿈을 꾸게 한 김혜진 작가님이 참여한 주에 참여했다. 「저녁에」와 「베가스타 호텔」이 그 글이다.

「저녁에」는 김환기 작가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를 보고 그려나간 글이다. 김환기 작가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1960)>라는 시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평소 그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알려진다)

김환기 작가는 이 작품으로 한국미술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우리 집에 있어 어릴적부터 읽어온 미술책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다. 저작권상의 이유로 이 책에는 작품을 수록하지 않았다.

아래는 김혜진 작가님의 답글이다.

 

깊은 감정을 담은 글이네요.

구석구석 새로운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어둠이 햇빛을 먹어가기 시작하는 저녁즈음'이라는 표현도 참 좋네요. 또한 이 첫 문장부터 이 글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밝거나 웃긴 글이 아니라 어둡고 또한 열정적인 느낌이랄까요.

'온기 있고 좋은 생각'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남네요. 이 따뜻한 표현은 역설적으로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 극대화하고 있는 듯 해요.

이제 헤어진 두 사람이 각각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활을 해왔으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네요.

두 사람은 왜 헤어져야 했는지... 그런 호기심을 마구마구 자극하는 글입니다.

지금 이 글은 어떤 소설-이야기의 마지막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마지막에 적힌 시 때문에 더 그렇겠지요.

그런데 7시 14분은 어떻게 등장한 숫자인가요? 제게는 무척 특별한 숫자라서요.

바로 제 생일이 7월 14일이랍니다. ^^* 그래서 이 글이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나 봐요.

애틋한 감성으로 써내려간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김혜진 드림.

 

촤근 작가님이 쓴 동화 4부작이 나왔다. 마지막 페이지에 카페 덧글인 축하글도 실렸다고 하는데, 여유가 생기는 즉시 그 책을 읽어야겠다. 하여튼 아래는 「베가스타 호텔」에 대한 작가님의 답글이다.

 

잘 읽었습니다.

지금 아래 글에 먼저 답글을 달고 이 글을 두번째로 본 건데요, 터부의 벽님의 문장력과 묘사력이 이 글에서 더 빛나는 것 같아요. 그건 이 글이 보다 '구제척'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첫 문장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거의 나무랄 데 없이 잘 읽힙니다. 이미 출판된 책의 도입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예요.

주인공 '나'의 상황이 글 전반에 걸쳐 조금씩 드러나고 있어서 이야기에 점차 몰입하게 하네요.

특히 제가 좋게 읽은 것은 사서와 '나'의 첫 대화입니다. 내가 혼자 갇혔다고 생각하고 나가려고 하자 사서가 묻는 질문 말이지요. '구출되어 쫓겨나는 것보다 갇혔지만 여기서 자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그 질문은 논리적이며 글에 전환을 줄 수 있는 질문입니다.

아마 터부의 벽님이 처음부터 이런 장면을 상상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멋대로^^ 글쓰는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터부의 벽님은 손가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주인공이 무서워하며 구해달라고 하는 장면에 이르렀겠지요.

그때 '이 아이는 왜 이럴까? 그냥 여기 자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마음에 떠올랐을 거예요.

사실 이 질문은 독자들도 가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사서의 질문으로서 드러내고, 그에 대한 답으로 '엄마의 죽음 이후 폐쇄된 공간에 혼자 남는 것을 싫어했다'고 설명한 거지요. 질문이 있었기에 주인공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또다시 제시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쓰면서 이런 질문에 부딪치고, 답을 찾아내어 쓰는 것이 작가의 일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이렇게 떠오르는 질문을 잘 잡아내어 답할 수 있어야 작가로서 충분히 예민한 촉수를 가진 것이라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어서 이 글을 읽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에 쓴 대로, 엘리베이터 안과 시위대 속이라는 설정도 정말 특별하고 새롭습니다.

그런 상황을 상상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터부의 벽님이 앞으로 쓸 (꼭 이 주제는 아니더라도) 글에 대한 기대감이 마구 생겨요.

앞으로도 글쓰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계속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혜진 드림.

 

글쓰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계속 쓰기. 내가 글을 쓸 때 최고로 추구해야 하는 강박은 최고의 작품을 써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즐거움을 느껴야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최고가 어디 있나.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나에게 도약의 기회를 준 중요한 계기이다. 그리고 이 이벤트를 통해 작가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글쓰기 다이어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내년부터 제대로 한번 써볼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현실적으로 생각해 「저녁에」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때쯤 나는 'Vegastar'라는 프랑스 밴드를 접하게 되었다. 그들의 ‘100ème étage’ 뮤직비디오를 보고 구상을 얻었고, 카페에 원래 쓴 글과는 조금 수정되었다. 다른 말이지만, 나는 살면서 작가나 사상가가 무엇무엇에 영향을 받아 이런 글을 쓰고 사상을 펼쳐냈다라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정말 그 영향이란 게 크구나 싶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베가스타 호텔」은 장편소설로 쓸 것이다. 아마 거의 30대가 되었을 때 같다. 지금은, 그리고 최근 몇년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느껴진다. 판타지는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진다. 아직 나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참 들게 하는 구상이다.

 

「주홍빛 주술」은 과제연구를 위해 문헌검색을 어떤 자료를 읽고 쓴 것이다. ‘청소년’이라 검색하니 예상 밖이지만 충격적인 자료를 찾아냈다. 바로 청소년들이 행하는 주술이었다. 내가 아는 몇 가지의 주술 말고도, 정말 많은 주술들이 있더라. 그를 행한 후의 심리결과도 흥미로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기분만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주홍빛 주술」는 그 심리를 따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쓰는 도중에 생각에 나오는 글과 실제 쓰이는 글 느낌이 달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글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이름이다. 주인공들의 이름을 정할 때 꽤 공을 들였다. 연지는 주홍색을 의미한다. 특히 입술에 바르는. 허진은, 진실한 아이지만 허구 혹은 비어있음으로 가득 차있다, 는 이미지를 잘 들어낸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이기에 허구일 수도, 아니면 텅텅 비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이다. 도아는 '도둑질 하는 아이'란 뜻. 수민이는 중학교 시절 한 아이가 떠올라서 썼다. 딱 저런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어울렸다. 우리학교에 수민이란 이름이 셋이나 되고, 그 중 하나는 2,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지만, 뭐 괜찮을 거다.

이번에 소설집을 만들기 위해 글을 모으고 편집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내 글에 나의 욕망(?)이 점철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내 생각에 더 집중하고 싶었는데. 내 생각 속에도 욕망이 내재되어 있나 보다. 점점 가면서 그 욕망의 분량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어차피 모든 소설의 첫 시작은 욕망이다.

 

「공방 시간과 공간」은 이틀간 미친 듯이 빠져 썼던 단편소설이다. 2011년 12월 26일에서 27일까지. ‘오후2:17 초안 완성하트’! 아직도 초완을 완성할 당시의 메모가 남아있다. 하여튼 그 ‘빠져있었다’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글이다.

글 구상은 여름엔가 했던 건데, 겨울에서야 쓴 것이다. 초기의 소설 중에, 여름 오후의 태양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 생각보다 빠르고 늦었다. 꽤 인상에 깊은 글이어서 그런지 후기가 있다. 후기의 일부를 여기에 남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베일에 부친 것이 있다. 존재여부를 증명할 길이 없지만, 내 심장은 그 곳의 분위기, 느낌, 떠나던 그 날 등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내내 그것이 글만으로도 와닿길 바랬고, 결과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심장 반쪽을 내어준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내가 살아가며 잊지 못할 장소이고 처음으로 완성한 단편 소설이다. 부디 ‘공방 시간과 공간’을 아껴주고 그곳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

아래는 내가 공방을 떠나보낸 뒤 한참 뒤에 그 곳 뒤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휴대폰에 썼던 메모이다. 날씨다 약간 쌀쌀하지만 상쾌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정신이 맑았고 기분이 좋았다. 이제 진짜 공방을 떠나보낼 시간이다.

‘(2010.09.19 11:05PM) 그래도 나의 시간과 공간은 다시 누군가의 현상이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을 만들던 도중, 내 친구가 「공방 시간과 공간」을 보게 되었다. 전에도 내 글을 종종 읽어본 아이였다. 친구가 말한다.

“그런데 선정아, 나 이 말 전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좀 더 자세하게 써봐.”

사실 이런 말을 한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니다. ‘친절하게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말. 생각의 단계를, 남이 한 칸 올라설 때 나는 성큼성큼 두 칸씩 올라가기 때문에 내 생각의 간격 사이에 댓돌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돌려 말하기 전에 우선 단단해야한다. 그래야만 ‘주제 전달’이란 게 확실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고 싶은 다른 말이 있는데,「오늘도 문학을 글로 배웠습니다?」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잡문집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이때쯤 글구상 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특히 「베가스타 호텔」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니 원래는 한 권에 모든 내용을 박아놓았던 일기의 분업화가 일어났다. 꿈일기, 여행일기, 소망일기, 시상일기...... 대여섯의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꿈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다양한 꿈을 꿔왔는데, 정말 인상 깊은 꿈은 기록할 때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기록하니까 그 기록만을 읽어도 그 꿈에서 어떤 느낌이 있었는지 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경험이다. 내가 최대한의 힘을 끌어올려 최소한의 문장을 완성한다는 것은 말이다. 글자하나를 써도 ‘이거 나중에 절대로 못알아보겠다’ 싶어 그 글자를 지우려고 하는데, 그 글자가 아닌 다른 여백을 쓱쓱 지운 적도 많다.

 

봄에는 나와 같은 학교 친구 둘이서 남산도서관에서 주최한 제 7회 남산백일장에 참여했다.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던 나는 백일장에 좀 늦어서 친구가 전화로 글제를 알려주었다.‘친구 / 더불어 사는 세상 / 남산’. 듣자마자 인상이 팍 쓰였다. 글제가 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성의 없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남산에 대한 한 구상이 떠올랐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미루고, 다른 글 구상을 해보자. 그보다 더 최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서울타워의 붉은 자물쇠」를 열심히 썼다. 마감시간이 다 되어가자 사람들은 차차 자리를 떴다. 몇 분전에야 나와 친구는 글을 제출하러 허둥지둥 뛰어갔다. 나와 다른 친구는 각각 산문과 운문에서 차하를 받았다.

 

「앨리스의 타키온」은 원래 짧은 수필이었다. 그 길이를 늘려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던 KAIST문화과학대학에서 주최한 제 4회 한글날 기념 KAIST 과학 글쓰기 대회에 응모했다. 「앨리스의 타키온」은 정말 열심히 썼다. 아예 작업 노트를 따로 만들어 초안을 쓰고, 또 수정하는 식이었다. 그간 안하던 퇴고도 그나마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발랄하게 쓰고 싶었던 글이다. 그래도 내 목소리대로.

물리 수업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들의 일부분이랄까. 과학은 아무래도 나와 거리가 먼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만약 내가 이과를 선택했다면 나는 식물과 관련된 과에 가지 않았을까......싶다. 그래도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자면, 이과과목은 나에게 너무도 접근성이 적었다! 과고 가서 지금 대학 잘 다니고 있는,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가 괜히 생각난다. 그냥 다 버리고,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럽다. 상고 간 애들은 벌써 취업했더라. 기분 이상하다. 하여튼 정말 이상하다. 단지 고등학교 선택일 뿐인데, 너무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와 반해 실업계 가서 그 과에 실망하고,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린 애들도 꽤 많더라. 사실 나도 그 부류일지도 모른다. 처음 나는 우리학교에 와서 사회과학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인문학으로 돌아오게 되더라. 하지만 나는 이렇게 '돌아옴'을 축복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은 나에게 무궁무진하게 많은 것들을 주었고 그것들은 나란 사람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인문학 짱. 이렇게 말하고 나는 피식 웃는다.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교실에 붙은 ‘제 3회 전국학생 인권문예대회’ 공모가 눈에 뜨였다.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더라. 중학교 친구들이 하소연하듯 말하던 그 학교의 한 선생님이 떠올랐다. 폭력을 쓰는 선생님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충격적인 말이었다. 게다가 자율공립학교인데. 잘못하면 내가 갈지도 모르는 학교였던 것이다. 다른 인문계에 간다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쓰고 싶었던 글인데, 나는 노트북을 켰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정녕 내 목소리인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결국 깨달은 건, 내 목소리란 건 글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글에 있는 화자에 의해 색이 덧입혀진다.

「옥색 다이너마이트」를 쓰고,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들의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열심히 수정했다. 또 조언을 한다. ‘지금도 괜찮은데 이 부분에서 더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냥 안했다. 지금까지 수정한 것도 충분히 나에게 강박을 만들어줄만 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공모전의 결과는? 좀 이따 이야기를 하겠다. 시간 순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으니까.

 

「오늘의 오디션」에 나오는 한빈이의 춤은 민가라는 노래를 몸으로 표현하는 춤이다. 몸짓 또는 마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90년대 대학가에서 처음 방송 댄스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어, 각 대학의 가장 대표적인 대학 문화 중 하나로 남아 지금까지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상당히 그 종적을 감추었는데, 대학가의 학생 운동이 정체되는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대학생활을 해보지 못한 내가 대학생에 대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였다. 하지만 그저 상상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받아 적는 것이었다면 손을 올릴 힘마저 없었을 것일뿐더러, 누군가 얼굴을 벌겋게 하며 따진다면 ‘그냥 소설이잖아요, 후후’라 말할 변명도 좀 더 타당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빠르게 그리고 열심히 쓴 글이다. A4용지로 15페이지 분량을 한 주만에 쓰고 수정했다. 써나가는데, 생각 속 글과 실제 나오는 글과의 괴리가 커서 힘들었던 작품이다. 너무 설명식으로 흐른 건 아닐까, 아쉬움이 크다. 글에 나오는 느낌도 다르고. 나는 「앨리스의 타키온」과 같이 좀 밝게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내용 자체가 어두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을 읽어나가며 빨리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설가들이 괜히 독자들 괴롭히려고 그렇게 어렵게 쓴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오늘의 오디션」의 첫 모티프는, 어떤 고민에 싸여 대학로에서 술을 진탕 마셔대던 K대생이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1학년때 학교 셔틀버스를 기다리느라 혜화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오더니 어쩌저쩌 자신의 처지를 말하더라. 하여튼 이 사람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를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벽 낙서는 C대학 과설명회를 들으며 친해진 친구 재희가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소설에 땀과 피로 생동감을 불어넣어준 E.S언니께 특히나 감사를 전한다. 참, 내 머릿속에 관념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패짱 한빈이(물론 이름은 내가 지어낸 거다...아마도?). 팬픽 쓰는 줄 알았어요, 하여튼 고마워요! 그냥 동아리의 모든 분들게 감사합니다! 헤헤.

 

이때쯤 나는 남산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매주 일요일마다 <예비작가 교실>에 참여했다. (그때 백일장에 갔던 애들과는 다른) 두 친구들과 함께 다녀서 외로울 일이 없었다. 마지막 시간에「오늘의 오디션」마지막 부분을 발표했다. 칭찬 받을 부분은 받고 꾸지람 받을 부분은 받았다. 그렇게 오늘의 비판은 내일의 칭찬이 되니까.

그 교실에서 나는 「소녀의 묵주」와 「일상의 경련」, 그리고 (약간의 마약을 탄 물을 마신 채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글을 썼다. 김동리기념사업회가 하는 제 7회 김동리 문학제에 넣는 글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 시간이다. 이따가도 말하겠지만, 내가 종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던 때라 종교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더 참신한 구상을 할 필요도 없이 달리듯 써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소녀의 묵주」가 나왔다. 마치 닭고기 수프 시리즈의 한 일화같은 느낌이다.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서 우수상을 받았다.

「일상의 경련」은 릴레이소설의 일부다. 아까도 말했듯 같은 학교의 친구들과 썼는데, 내가 두 번째 순서였다. 그런데 처음 쓴 아이가 '내가 기숙사에서 가출한지 3일째가 되었다', '거울에 비친 서울타워'라 쓴 것이다! 뜨악, 싶었다. 3일이란 시간으로 장편소설을 만들 수도 있는데......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기숙사에서 어떤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고'를 떠올렸다. 나름 그 느낌도 살려 썼다. 덕분에 그 친구와의 글 느낌에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이때쯤 나에게 정말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간단히 말해 내 멘탈이 붕괴되었다. 그런데 글에 있어서는 좀 좋은 일이 생겼다. 그룹과제연구에서 우수상을 받고, 발표를 위한 파워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학교에 잠시 머물려 했는데 그 다음날이 신입생 면접일이라 학교를 닫는단다. 어쩌지 하다 PC방에 갔다. 파워포인트 만들려고 PC방에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며 캐리어를 질질 끌고 성대 후문쪽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던 차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번에 쓴 인권문예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생각보다 나는 덤덤했다. 그 전에 부모님께 주민번호를 보내달라는 전화가 오긴 했지만 수상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이메일로 무언가를 보내고 받는 절차가 있었고, 선배 멘토링을 두고 대한변호사협회의 수상식에 갔다. 그리고 심사를 하신 분께서 부끄러울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좀 깜짝 놀랐다. 나중에야 친구들에게 상받았다고 말하니, 축하한다 말하며 친구들이 물었다. “그거 우리학교라고 말 안했지? 그거 말하면 우리 죽어.ㅠㅠ”(지금 이모티콘을 쓰기 싫지만 지금만큼은 써야할 것 같다) 걱정마, 그건 아니야. 하여튼 받은 상금으로 그 학교 친구들에게 밥을 샀다......는 핑계고, 그냥 만나고 싶어서 만났다.

 

겨울방학에는 미지센터에서 하는 ‘소설가와 함께 하는 창작교실’에 참여했다. 마지막 30분 가량의 시간동안에는 글을 썼다. 그렇게 즉석으로 쓰는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건, 확실히 나는 백일장 체질은 아니라는 거다. 흔히들 써야하는 ‘콩트’라는 장르가 나에게는 생소할뿐더러, 시간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기승전결 또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백일장이란 것에 가본 적도 남산백일장이 거의 유일하다. 쉽게 말하자면 내 글은 글빨보다는 생각빨을 많이 받는다. 하여튼「자화상 1」과 「굿바이, 키티 인 매너 모드1」을 썼다. 다른 글도 썼는데, 마지막 시간이라 받지 못했다.

「자화상 1」은 후반부가 너무 급하게 끝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깨달음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였다면, 펜을 머리에 푹푹 박고 머리를 벽에 푹푹 박으며 자기소개서를 대충 채워 넣었겠지. 혼란은 단지 잠시였을지도 모른다. 점심이 그렇듯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공짜이면서도 공짜가 아니다.

「굿바이, 키티 인 매너 모드1」는 「옥색 다이너마이트」와 「굿바이, 키티 인 매너 모드2」사이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과도기적이라고 하니까 뭐 대단한 게 있는 거 같은데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옥색 다이너마이트」 서두의 표현설명방식을 좀 차용했다.

 

누군가 나에게 단편 소설을 하나 보여 달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핫스팟」을 보여줄 것이다. 「핫스팟」에 대한 나의 애정은 남다르다. 가을쯤 떠올리던 글 구상이었는데, 나의 정신적 충격을 밑받침으로 해서 글로 꽃피어났다. 그냥 하나의 작품이 될 줄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괜찮은 작품이 나올지 몰랐던 것이다. 물론 거의 완벽하게 수정을 한 덕도 있다.

그래도 「핫스팟」이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사람에 대한 심리 파악이나, 스마트폰에서 나온 씽크빅!(죄송합니다, 계속해서 이력서를 쓰다 보니...... 가끔 머리가 엇나갈 때가 있어요)의 구상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자화상 2」을 떠올리자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쓴 글은 없을 것이다'이다. 「자화상 2」을 쓰는 것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이었다. 덕분에 나의 무의식을 더 깊게 반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읽어 와서 알겠지만, 내 글에는 나의 무의식이 침투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하여튼 성공한 것 같아 뿌듯하다. 다만 5월이 끝나기 전까지는 후반부를 좀 더 보충할 것이다.

 

어느 날 밤에는 타방을 했다. 친구가 자신의 하소연을 풀어놓더라. 그 친구의 에피소드가 언제나 그렇듯 충격의 결정체였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에는 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글로 복수는 안하려고 했는데......라며 말이다. 언젠가부터 내 마음 속에는 ‘그 누가 읽어도 상처를 받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 1학년을 마치고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을 때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글에 등장하는 등장인물과도 만나는 과정인데, 아예 그 인물의 성격을 확정짓는다는 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예상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예상 외의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다음날이었나. 기숙사에 돌아와 열심히 글을 한글에 쳐내려갔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한 페이지 반을 썼다. 제목은 「이모티콘」. 그 후에 거의 수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퀄리티도 꽤 좋았다.

그리고 화를 냈다. 도대체 이 글 속의 여자애는 뭐하는 애이기에? 그런데 며칠간 그렇게 쓰다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가 그 친구에게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흡수는 이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글을 수정하기 위해 글을 틀면, 그냥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맛으로 풍자소설을 쓰는 건가? 싶었다. 하여튼 정말 즐겁게 썼다.

「이모티콘」은 정이현의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소녀시대>에 큰 영향을 받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등장하는 단계라던지, <소녀시대>의 충격적인 도입부분과 말투부분, 그리고 용기에서 말이다. ‘이런 글을 써도 될까?’라는 용기. 무슨 용기인지는 <소녀시대>를 읽어보면 잘 알게 될 것이다. 10대들의 속어와 막장 요소가 가득이다. 불륜, 납치사기, 그렇고 그런 사진을 주인공이 찍는 다던가. 그에 비해 「이모티콘」은 덜 막장이진 않은가? 단지 하나의 홈페이지가, 조금 이상해졌을 뿐이고 썸남이 한순간에 남남이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나는 꼭 필요가 아니라면 막장인 요소는 쓰기 싫다. 막장을 추가하면 쉽게 글이 재미있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재미는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추가할 수 있다. 다들 아는 ‘충공깽’ 말고, 읽고 나니 ‘충공깽’이 될 만한 소재를 쓰고 싶다. 「핫스팟」과 「이모티콘」이 그렇듯 말이다.

 

그렇게 부어대듯 쓰고 나니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았다. 반 친구들이 만드는 학급신문에 서로의 20년 후의 모습을 쓰는 릴레이 소설을 기재하기로 했는데 내가 첫타를 맡았다. 제비로 소설 쓸 상대를 정했는데, 내가 맡은 친구가 20년 후 어떻게 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더라. 그래서 그 친구에게 희망사항이 어떠냐 물었고, 그 주문에 맞추어 쓴 게 「20년 후 어느날, 그녀는」이다. 그리고 다음 친구가 다른 친구의 미래를 써내려갔다. 이 정도의 짧은 글은 원래 이 소설집에 넣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글만은 넣었다. 나에게 있어 이 글은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나의 욕망이 아닌 남의 욕망에 의해 쓰인 글이다. 그리고 글체가 평소와는 다르다. 팬픽과 비슷하다. 팬픽과 같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나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남에게서 나온 글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냥 내가 아까 말한 대로, 지쳤거나. 나름 정성들여 썼는데, 쓴 후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소설은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소설을 쓰는 가장 기본적인 맛이 있으니 말이다) 신문에 기재되지는 못했다. 나의 미래는 뒷번호의 아이가 쓰도록 되어 있어서, 나에 대한 미래는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미래는, 내가 썼던 그 친구의 미래보다 더 예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썬 말이다.

 

3학년이 되어서는 소설은 거의 쓰지 않고 주로 일기를 쓰고 있다. 실험적이면서 짧은 글을 쓰고 싶을 때만 소설을 쓰고 있다.「비민간인 사찰」이 그 첫 번째 글이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 보면 후반부에 두 사람이 아무런 서술없는 대화만이 이어지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서 나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대에서 입학에 관한 Q&A 시간이 있었다. 검색을 하다 창의인재 면접 후기를 봤다. 자유 에세이의 주제가 무엇인지도 있었는데, 그 주제는 다음과 같다.

'두 직선은 평행하다.'는 수학적 명제를 시나 소설, 콩트, 만화 등을 이용하여 문학적 감성과 연관지어 표현하라.

나는 작년 가을부터 종교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생각의 일부가 「사제들의 대담(大談)한 대담(對談)」에 담아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을 인상 깊게 읽은 시기라 주인공으로 그 책의 두 주인공의 이름을 땄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특히 블라디미르의 마지막 대사는 책에서 거의 따온 부분이다. 비문학에서 읽은 것 같은데, 현대에 이르러 등장한 제 2차 창작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심각하게 쓰려다가 심각하지 않게 쓴 글이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 수록된 단편소설 <대범한 밥상> 의 ‘대범’에서 제목을 따왔다.

 

중학교 3학년 시절, 학년부장이자 사회를 담당하신 선생님께서 민주화 운동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길가에 주저앉은 남자를 가리키며 하시는 말씀. “저게 나다.” 네? 뭐라고요 선생님?

그리고 작년 정치선생님께서 똑같은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여주셨다. 쉬는 시간에 3학년 사회선생님 이야기를 하니 웃으시더라.「이 꽃 받으세요」는 그 두 선생님들께 바치는 글이다.

1989년의 6월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계엄군의 시각에서 쓴 짧은 픽션이다. 글을 쓰는 동안 시민과 계엄군 사이의 갈등상황은 피하고 시민과 계엄군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1980년 당시 광주MBC에 일하며 5.18민주화운동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사실도 증언할 수 없었던 누님에게서 사실을 들을 수 있는 봄날은, 주인공에게 언제쯤 올까.

 

「옥색 다이너마이트」와 미지센터에서 쓴 글을 길게 쓴 게 바로「굿바이, 키티 인 매너 모드2」이다. 전에 쓴 시 「매너모드」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초고를 재빨리 썼다가 이번에 소설집을 내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숙제를 데드라인 안으로 내는 듯이 약간 손보는 정도로 수정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무래도 5월 말 안으로 여러 번 다시 수정을 할 것 같다.

 

「이모티콘」을 쓰고 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쓰고 난 후 더 추가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구상이 있었고, 빼고 싶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버전을 쓰기 시작했다. 저번 「이모티콘」에는 1을 붙이고, 이번 버전은 「이모티콘 2」으로 말이다. 크게 변한 부분이라면, 우선 대화투의 어조에서 ‘-다’와 같이 끝내는 고백조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 우현이와 서영이의 충공깽 (이런 단어가 쉽게 쓰이는 소설에 관한 이력서니까 한번은 써보자)스러운 대화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몇몇 부분이 사라졌다.

말하고 싶은 것은, 서른이 넘는 주석을 찾는 동안 내가 받은 충격은 말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터넷이 이렇게 더러운 줄은 모르고 있었다. 찾아가면서 새로 배웠지만 배우지 않을 게 나았을 용어도 많았고 말이다. 씁쓸하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공격적인 성향이 최근 2-3년간 더 심하게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말이다.

 

「어둠 속 전화 한통」은, 말 그대로 중학교 친구와 전화를 한 후 쓴 글이다. 올해 인권문예에 또 내고 싶다. 「옥색 다이너마이트」에 등장한 학교의 옆에 있는 학교이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내가 그 학교에 속한 것이 아님에도 괜히 부끄러워진다.

 

 

 

‘이력서’는 되도록 초고에서 별 수정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페이지지만, 그냥 이 순간의 나대로, 를 보여주고 싶다. 이 생각은 초기에 퇴고하기 싫을 때 하던 생각인데! 그래도 초고만의 그 묘한 매력이 확실히 있다.

여기에서 수상을 받은 작품만 대회에 출품했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수상을 받지 못한 글이 절반 이상이다. 그때마다 좌절스러울 때가 많았다. '당연히 상 받겠지'했는데 아닌 경우도 상당해(특히 요즘) 충격이 컸다. 그래도 어차피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좋았다. 글을 썼기에 넣은 것이지, 넣기 위해 쓴 글은 없다. 사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작품도 이 소설집에는 포함되어있다.

사실 난 지금도 ‘글쓰기’에 있어 지친 상태이고, 그래서 글들을 정리할 때 조금 버거웠다. 책이 나오는 날이 차일피일 미뤄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고등학교에 와서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참으로 행운아인 것이다. 이제 내 인생에서 '글'이란 것은 도저히 떠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적부터 글을 썼고, 최근 5년간은 글에 파묻혀 산 날이라 해도 말 다했으니까. 미래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다.

고등학교에 와서 참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낀다. 성격,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글이란 존재. 내 글은 계속 변해왔고 변할 것이다. 요즘 들어 내가 정착하고 싶어 하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정착기에 들은 내 글은 어떨까. 그때는 인생에 평온이란 것이 찾아올까, 궁금하다.

오늘, 환기미술관의 특별전에 다녀왔다. 「저녁에」에 등장하는 바로 그 작품 말이다. 방명록에 '나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리'란 말을 남기고 왔다. 뉴욕 아틀리에에서 실제 썼던 물품들을 바라보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20대에 적어도 1년 동안 뉴욕에서 살며 글을 쓰고 싶다는 회색빛 낭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진짜로, 「회색빛 낭만」을 쓸 계획이다.

참, 나는 글을 쓰고 읽으며 감성적이 된 것이지, 원래 감성적인 사람이라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편적인 소녀 감성과는 꽤 거리가 멀다. 아마 앞의 글을 다 읽어온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봄

터부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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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부의 벽
  •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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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업로드 크기가 요정도밖에 되지 않네요. 크게도 못하고.... 그런데 '미디어 추가'를 누르니, 그 전에 글틴서 올린 사진들이 다 보이더군요. 허허 기묘한 경험이었슴다)   [참, 혹시 게시판에 걸맞지 않은 글인가요? 글에 맞는 게시판을 알려주신다면, 그곳에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ㅎㅎ]   수능 전에 부모님께서 글틴에 편지와 선물이 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듣고 엄청 설렜었어요 ^.^!!!!) 수능 후에야 선물을 확인했어요!! (사실 수능 전날에도 실컷 자고 실컷 놀았지만..ㅋㅋㅋ) 그리고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으구구 게으름뱅이ㅠㅠ   우선 이계윤선생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른 글티너분들 '쌤 저는요?? 흥칫뿡'이라 하실 수도 있으실텐데ㅜㅜ 저도 편지를 읽고 나서야 의외의(!) 선물꾸러미를 받은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이유는 안알랴줌^*^ 책 <릴케의 로댕>!! ↖⊙▽⊙↗  예술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 들어가서 교양수업 등을 들을 생각이었는데 정말 기대되요!! 이제 주말마다 집에 가는데, 집에서 틈틈히 읽겠습니다! ㅎㅎ 지금은 그냥 쑥 훑어보기만 했는데... 이럴수가.... .....'릴케'가 유명한 독일 시인이란 것도 알았고, 시도 읽어본 적 몇 번 있는데 릴케가 남자인줄은 몰랐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바보멍텅구리.... 릴케가 바보였거든요.. 아니 뭔소리야... 릴케 시가 여성스러워서... 껄껄 오오 망고 티백!! 개인적으로 차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무지 기대되네요!! 하나는 기숙사로, 하나는 가족들 먹으라고 집에 두고왔습니다. 그리고 핫팩!! 추위를 (정말 심하게) 잘타는 제게 큰 도움이 될!!! 붙이는 거 두개와, 흔드는 거 하나가 있네요. 흔드는 것 역시 가족들 쓰라고 집으로!! 그리고 베이비로션ㅇㅁㅇ... 인줄 알았는데, 바디로션이더라구요!! 딱 바디로션이 떨어졌는데, 겨울동안 잘쓰겠습니당!!! ㅎㅎ 그리고 사쿠라 지우개가 있습니다. 써본 적 없는데 딱 봐도 정말 잘 지워질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냥 잊고 지나치실 수도 있으셨는데 이렇게 신경써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감동! 잘 쓸게요!! 글틴캠프도 벌써부터 기대되요!ㅋㅋㅋㅋ (뭔가 이 내용을 길게 쓰고싶은데, 더 쓰이지가 않네요..;;)   지금은 교실이에요!  저는 책상에 앉아 스탠딩 책상을 놋북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반 애들은 지금 경영학과 정치외교학이라는 전공을 실전에 적용하는 게임을 하고있습니다. 이름하여 부르마불!!!ㅋㅋㅋㅋ 갑자기 이 내용으로 기사 형식의 시가 쓰고싶어졌어요. 써서 바로 글틴에 올려야징! 낄낄

  • 터부의 벽
  • 2013-11-10
면접 후기

C대학교 철학과(입학사정관제) 면접후기 터부의 벽   ※ 주의사항 : 이 글을 읽을 때 쓸데없는 말은 그냥 흘려 읽고 중요한 건 밑줄 치며 읽는 능동적인 독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다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꽤 쓸모 있는 혹은 없는 얘기가 둘 다 많습니다.   우선 이번 면접에 대해 말하자면, 작년 선배의 후기와는 달리 면접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했다는 것입니다. 면접관분들께서도 제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시거나 저에게 물어본 질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맞았다는 말을 해주시는 등 호의적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희 과..가 아니라 제가 지원한 과(C대 철학과 교수님들께서 인격적으로 좋으셔서 (진짠데))의 경우에만 그럴 수 있고, 다른 과의 경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질문은 크게 ~ 전형의 다섯 가지 중 부족한 면모를 커버할 기회를 주시는 것과, 생기부와 자소서에 있는 내용을 랜덤으로 질문하시는 것이 주였습니다. 즉 아래 대화를 참조하여 다섯 가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친구 말 들어보니, 그 친구는 너무 쉬워서 당황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려워야 더 좋은건데’라 불평하더군요. 친구야 그래도 너는 다섯 가지 부족한 거 안 말한 게 얼마니? 인가?)   저는 면접후기뿐만 아니라, 면접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도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있다 판단, 여기에 쓰겠습니다. 면접 준비를 하다보면 힘들 때도 많고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후배분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원래 말을 잘 못했고 준비 시간이 단 이틀밖에 없었지만, 선생님들께서 지도해주신 이틀간 정말 많이 늘어 정말정말 많이 감사했습니다. 단기적인 결과는 단지 피드백일 뿐입니다.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건 국제고 3년이면 익숙하시죠? ㅋㅋ 여러분들이 정말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고, 자기 욕심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거라면 결국 어떤 대학교던 당신을 채갈 거란 말입니다. 솔직히 3년간 우리가 한 게 얼만데, 다른 학생들과 아예 스타트라인이 다르지 않습니까? 안 채가면 자기네들이 손해죠... 여러분들이 ‘한 게 없다’고 회고하는 건, 여러분들이 그 일들을 충분히 잘 견뎌냈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쨌건 국제고 나와서 과탑 못하면 병1신소리 듣는다(실제로 어떤 선배께 들은 말입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대학가서 열심히 합시다.(결론이 왜이래?)   저의 경우 고려대는 12일(토요일)에, C대와 한양대는 16일에 1차합격자를 발표했습니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고려대의 불합소식을 보자마자 두통이 올 정도였고, 상당히 오래가 주말 전체를 버리다시피 했습니다. 한양대는 내신을 그닥 안본다고 해서 좀 기대했는데, 인문 전체로 뽑는 게 복병이었던지 탈락을 보고 (그 전보단 덜하지만)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대학 다 떨면서 확인했기에 충격이 왔던 거 같습니다. 어차피 결과는 이미 며칠 전에 나왔으니까 그냥 촐싹 떨지 말고

  • 터부의 벽
  •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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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기 미술관은 아는 고등학생이 있네요. 그 자체가 신기합니다.

    • 2013-07-23 15: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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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다이어리도 그렇고, 여럿 아는 정보들이 나와서 반갑네요 ㅎㅎ 소설집을 만들었다고 하니 부럽기도 하고요! 아, 그런데 혹시 중간에 '구제척'이라는 말은 '구체적'의 오타인가요 ㅎㅎ

    • 2013-07-18 21:53:0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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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오타인거 같아요ㅜㅜ..

      • 2013-07-19 11:35:2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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