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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13-09-22
  • 조회수 236

 

 조용한 방에 혼자 앉아서 눈을 감고 가만 있어 보라. 벙어리인 줄만 알았던 고요가 목소리를 갖고 먼지의 언어로 속삭이는 게 들릴 때까지. 다리털이 곤두서는 감각이 느껴지고 턱 아래나 양 손목 같은 곳에서 뛰는 맥박소리를 호흡과 맞춰볼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렇게 얌전히 있다 보면 으레 생각은 깊숙하고 먼 곳까지 흘러들어가, 마침내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건드리게 마련이다.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면 그대로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어제 점심으로 먹은 고사리나물과 사물함 뒤쪽으로 떨어져 버린 몽당연필 같은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지난밤 버터 함유량이 많은 보들보들한 과자를 몇 개나 집어먹었는지, 집 앞 단풍나무가 언제쯤이면 옷을 갈아입게 될지, 영화 <다크 나이트>의 첫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들도. 요 근래 내가 한 일들과 하지 않은 일들까지 모두 여행하고 나면, 생각은 어느 한 자리에서 멈춘다. 매일 반복되고 겹쳐지는 순간들이 그런 자리다. 그걸 습관이라고 부른다.

 누구에게나 습관이 있다. 공통적인 몇 가지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 를 이루는 개성적인 요소다. 신발을 신을 때 앞코로 바닥을 차는 횟수조차 나를 설명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나는 기침을 할 때면 꼭 두 번을 한다. 아파서 하는 기침이 아니라 단지 목에 뭐가 걸려서 하는 기침이라도 마찬가지다. 이 습관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만 떠오를 뿐이다. 내가 기침을 두 번씩 하는 걸 들으시고 부모님은 작은아빠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작은아빠도 어려서부터 기침을 꼭 두 번씩 하시더니 이제는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한 번씩 기침하는 걸 어려워하신단 거였다. 작은아빠가 갖고 계신 습관이다. 나는 기침만 하면 늘 작은아빠를 먼저 떠올린다. 어디 가서 작은아빠에 대해 말해야 할 때면 중간에 이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기침하는 습관과 작은아빠에 대해 소개하고 나면 꼭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습관으로 기억해주길 바라는가, 하는 질문이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손 잡는 버릇이 자꾸 나오곤 한다. 비단 손 잡는 것뿐이 아니라 어깨동무와 팔짱도 포함된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나란히 걷다 보면 나는 어느새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고, 화들짝 놀라서 얼른 떼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이렇게 벌어지는 상황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나와 내 친구는 어색하게 웃다가 늘 이러냐, 늘 이렇다, 하며 서로에게 한 번씩 말도 던져본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도, 남과 하는 애정 어린 접촉에 거리낌 없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오면 손을 씻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게임 중독은 아니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컴퓨터를 켜는 것은 음악을 틀어놓기 위해서다. 언젠가부터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을 나는 음악과 함께했다. 장르는 가사가 없는 포스트락, 인디, 팝, 힙합 등 다양하다. 무료히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숙제를 할 때도 리듬에 맞춰 고개를 앞뒤로 흔들다 보면 뭐든 그 움직임처럼 유연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면 음악의 멜로디나 가사가 나를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그럼 나는 거기 주구장창 머물다가 갑자기 새로운 발상 하나를 꺼내놓는다. 그 다음부터는 그물을 치듯 생각을 전개해 나가야 하고, 그건 오로지 나의 몫이지만, 음악은 책만큼 좋은 간접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내 생활의 반은 음악이다. 글로 적으며 실감한다. 문장을 만들어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음악은 내게 가장 익숙한 습관이다. 

 시를 쓰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되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지만, 그게 진정한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인이 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왜 시인이 되고 싶은가. 그 질문엔 아직 잘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어느 날 시를 접하고 첫 시집을 사고, 시 같지도 않은 첫 시를 쓰고 첫 백일장에 나가 첫 상을 받고 다시 시를 쓰고 읽고 또 쓰고. 이런 과정에 중독돼버린 것일지 모른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시의 싯구가 있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그 구절을 내 마음대로 바꾸어 머릿속에서 써내려가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는 것은 내 하루의 재미 중 하나다.

 

동사무소에 가자 /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 외로울 때는 /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 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 / 떠나지 못한 곳 /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前生이 궁금해지고 /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 짧은 질문을 던지지 / 동사무소란 / 무엇인가 /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 동사무소에 가자

-이장욱, <동사무소에 가자> 일부

 

 이장욱 시인의 <동사무소에 가자> 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일상에서 보이는 것들을 시로 부풀리는 상상력은 내가 동경해 마지않는 능력이다. 매일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하늘' 이란 시제로 쓸 수 있는 낱말들을 생각한다. 얼마 전 개인 웹페이지에 '수평선은 하늘을 반 접은 자국' 이라고 적어놓았다. 매번 시제와 발상은 바뀌지만 요즈음 새로 생긴 내 습관은 뭐든지 저 문장에 접목시켜보는 것이다. 습관은 수정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시 쓰는 습관은 또 어떤 습관으로 바뀔 수 있을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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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록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일을 기록해 왔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노트북 바탕화면의 오른쪽 구석에는 수필 폴더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올리지 않은 글을 포함하면 벌써 28편의 짧막한 수필들이-수필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제 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비록 좋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 약간의 위안을 얻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더군요. 글을 쓰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입니다. 더 버티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스트레스가 더 늘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다시 제 오랜 친구를 떠납니다.   더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던 과거에 이제는 작별을 고합니다. 2022년 1월 5일, 오늘부로 글틴을 떠나려고 합니다. 항상 아낌없이 칭찬과 조언을 해주신 멘토님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다른 분들께도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탈퇴 회원
  • 2022-01-05
조금은 바보 같을지도 모르는 그런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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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 회원
  • 2021-12-29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매일매일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하고 살아가며 찾아오는 시련에 엎드려 울고는 했다. 오늘도, 내일도, 내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라는 걸 알면서도 변화가 두려워서 피하고는 했다. 결국 변하는 건 없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기만 했다. 혼자 구석에서 같은 하루를 보내기만 했다. 낮도 밤도 전부 길게만 느껴져서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꿈속에서 시달리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을 자는 것도 아니어서 겨우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악몽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나를 깨워주기만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나 나를 위한 알람 시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가볼까 하면서도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 괜히 삶이 두려워져서 이불 속에 틀어박혀 울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겨울의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이대로 죽는다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수많은 감정과 함께 파도에 밀려와 마음을 스치고는 했다. 내일도 행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나에게 저주를 내리며 살아가고는 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내일을 바라보며 나를 찾아오는 매일에 후회의 한숨을 내려놓을 때, 그제야 비로소 나의 하루를 마주할 수 있었다. 비참했다.   힘들 때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좋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알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이 무서웠다. 그게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기댔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계속해서 상상했다. 그 상상으로 인해 나는 점점 나락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에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우울감이 심해진 나머지 꿈에서 본 녀석이 환청과 환각으로 찾아오는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알았어야 했다.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며 나를 새장 속에 가둔 채 살아갔다. 괜찮지 않았다. 행복하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불행하게 살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여러 생각과 감정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이렇게 불행한 삶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아주 불행했던 것도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면 참 평범한 삶이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와 달랐을 뿐이니까. 그래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 고통이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계속 살 자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다시 좀먹었다.   확실한 꿈이 없었기에, 내 삶이 어떻게 되던 그건 무섭지 않았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꼭 만나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약속한 일도 없었으며, 삶의 끝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으니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끝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열다섯이 끝나가면서 어설픈 꿈이 생겼다. 열여섯이 다 지나갈 때까지

  • 탈퇴 회원
  • 20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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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좋은 습관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기침을 두 번하는 것은 특이한 습관이네요. 저도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냥 듣기도 하고 따라부르기도 하고 우울한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게 음악이 아닐까요? 음악은 절제된 언어 속에서 자신의 감정, 생각을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다른사람의 감정도 느낄 수 있고 보다 더 감성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습관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습관은 수정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네요. 나쁜 습관은 버려야 하고 좋은 습관은 또 다른 좋은 습관을 만들지요. 그래서 이 말이 제 마음 깊이 뿌리를 내린 것 같습니다. 미래에 시인이 될 분이라서 그런지 시적 감각이 글 속에 드러나시네요. 꼭 시인 되세요!

    • 2013-09-28 01:05:1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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