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무릎에 대하여

  • 작성자 aomame
  • 작성일 2013-10-20
  • 조회수 503

김경주 시의 <무릎의 문양>을 읽다가 <옆구리의 발견>이라는 이병일 시가 생각났다. 시인은 평범한 사람과는 약간 다른 시선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선을 바라본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지.

어떠한 것에 비유하기 어렵다. 무릎은 무릎이다. 한 번쯤은 피를 흘려보는 곳, 후시딘을 발라 보는 곳이다.

어릴 적 읽었던 책에서 한 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남자는 늙고 여자는 키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여자를 찾으려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가 늙은 모습은 찾기 위함이라 했던 것 같은 사라예보 작가 소설의 제목도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이었다.

그러나 무릎에 관한 글 중 가장 감탄했던 건 주인공 남자 아이가(어쩌면 여자아이일수도 있다) 무릎을 핥는 것이었다. 따라해 봤었다. 나쁘지 않았었다. 요즘은 그처럼 핥지는 않지만 무릎의 냄새를 맡는다. 무릎에는 고유의 냄새가 있다. 바깥바람 냄새가 살에서 묻어난다. 손에서 나는 냄새와는 사뭇 다르다. 손은 주위의 것들의 냄새가 밴다. 물비누 냄새, 지우개의 고무 향, 짚고 있던 의자 나무의 냄새, 집어먹은 반찬 냄새, 누군가의 체취. 그러나 무릎에서는 자신만의 냄새가 난다. 이건 나야, 이러한.

 

짧은 글을 쓴 게 있다. 옮겨보자.

무릎에 멍이 들었다.

산딸기 색이었다.

오디 색이 되었다.

무릎에 하는 키스.

아픈 곳엔 미열이 있다.

 

잠깐 미열에게로 가보고 싶다. 아픈 곳의 온도는 늘 조금 더 높다. 아픔은 그러고 보면 시린 게 아니라 뜨거운 걸지도 모른다. 시린 아픔. 타오르는 아픔. 내가 어떤 말을 하고자 했는지 잊어버렸다. 아, 무릎. 다시 그것에 대해 말한다.

 

오랫동안 무릎의 냄새를 맡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aomame
aomame

추천 콘텐츠

만일

만일 내가 이 모든 것을 욕망하지 않는다면, 만일 내가 아무런 것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살 필요 없는데. 목숨만 연명하는 것이 만족할 수 있다면. 당신들을 만나고 싶어서, 당신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서 애써가지 않아도 될 야. 더 깊은 문학을 배우고 싶어서 내 길목이 막히지 않기를 바라서 좋은 대학이 가야한다 믿지 않아도 될 거야. 맛있는 음식을 못 사먹는 사람이 아니라 안 사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을 거야.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강자의 위치에서 약자를 챙기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안달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하루는 이기심 속이서 부끄러워하고 그 다음날은 한 없이 가난해도 책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도 될 거야, 비오는 아침나절, 혹은 새벽의 어둠에 젖어드는 밤에 사대문 안의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20대를 꿈꾸지 않아도 될 거야. 가보지 못한 전 세계 미술관에 가보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월리엄 터너,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크리트, 바스키아, 쿠닝, 조지 오키프, 마네, 모네, 루소, 앙리 마티스, 드가, 라파엘로, 보티첼리, 다빈치, 프리타 칼로, 세잔, 고갱, 샤갈, 피카소, 고흐, 미로, 쇠라,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칸딘스키, 브뢰겔, 르누아르, 휘슬러,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이렇게 이들의 이름을 애써 나열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하루 종일 서점을 배회하기를 바라지 않아도 될 거야. 당신들을 죽음에 아파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추억 따위 만들지 않아도 그것쯤은 상관이 없을 거야, 당신들을 뼈저리게 증오할 필요도 역겹게 사랑할 필요도 없을 거야. 만일 내가 그 어떤 것도 기대하고 바라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 어느 것도 욕망하지 않는다면 삶도 죽음도 그 양측 모두 두렵지 않을 텐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갈구하며 사는 나는, 밤에 누우면 죽음이 두렵고 아침에 눈뜨면 사는 게 두렵다. 그리고 그 사이의 낮에서는 살아있는 것에 한없이 벅차오르곤 한다.

  • aomame
  • 2013-09-14
이러한 여름

이러한 여름, 당신의 틀어 올려 비녀를 꼽은 머리. 잠이 들깬 제가 소파에 기대어 바라본, 거실의 거울 앞에 앉아 작은 빗으로 당신의 머리를 곱게 손질하던 그 손길이 보고 싶어요. 증조외할머니. 명칭만으로는 누군가에게는 멀게 들리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당신이 살아계실 동안 당신을 많이 사랑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그 때 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지도 몰라요. 보고 싶네요. 앞으로 4년이 흐르면, 당신과 함께 보낸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같아져요. 시간의 흐름은 제게서 당신을 조금씩 조금씩 데려가겠죠. 그러다가 제가 한 아이의 증조외할머니가 되면, 당신은 제 기억의 저편에서 아슬아슬하게 남아있겠죠.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질지도 몰라요. 죄송해요. 너무 어렸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에는 너무 어렸어요. 당신에게 아이일적의 모습이, 소녀일 적의 모습이, 여인일적의 모습이, 누군가의 부인이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었어요. 잊어버려서 죄송해요. 9살 10살인 저에게 들려줬던 일제강점기며 6.25이야기들을. 그때 제게 말하셨죠.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겠나?” 강아지를 배 위에 앉히고 배시시 웃었던 제 모습만 기억나요. 죄송해요. 받기만 한 것 같아요. 늘. 명절 때 마다 당신은 초등학생인 제게 하얀 봉투에 십 만원 수표를 담아 주셨죠. 그 돈은 당신이 모아두신 용돈 중 일부였어요. 아끼고 아끼며 쓰시던. 당신이 돌아가시고 한 친구 분께 들었어요. 전복죽을 사 드시러 나가셨다가 한 그릇에 만원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요. 당신에게 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전화도 받기만 했어요. 당신에게 전화를 건 기억은 그다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네요. 당신은 늘 사람들이 전화를 맞게 받았는지 확인했죠. “00이라?” 당신은 늘 같은 걸 물었죠. 밥은 잘 먹었는지 학교는 다녀왔는지 뭐하고 놀았는지.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하지만 긴 이야기를 들려드리기엔 너무 어렸어요. 지금 당신과 통화할 수 있다면 멈추지 않을 수 있어요. 정말 멈추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번은 당신이 제가 쓴 일기를 읽어보라 했는데 부끄러워서 싫다고 했어요. 그렇게 제가 쓴 무언가가 부끄러워서 안 읽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어요. 한 번만 더 부탁해주실래요? 세상의 글들을 당신이 잠드신 후에도 그 옆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읽어드릴게요. 6,7살의 저는 당신 옆에서 잠에 들 때 말순이와 콩순이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동물들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싸우기도 했어요. 조금은 다르지만 늘 비슷했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잠이 들었어요. 가끔은 자장가를 불러줬어요. ‘꼬꼬댁 아 울지 마라 우리아기 잠 깰라 멍멍개야 짖지 마라 우리아기 잠깰라 잘도 잔다’ 이 노래였어요. 당신의 음성이 아주 어렴풋이 기억나기도 해요. 주말 아침 당신 집에서 당신이 부엌에서 내는 소리에 잠이 깨서 거실로 나가곤 했어요. 거실의 슈나우저가 발소리를 내며 다가와선 저와 소파에 눕곤 했죠. 당신은 늘 같은 말을 걸었어요.

  • aomame
  • 2013-07-31
'나는 용서한다'는 말을 읽었을 때

‘나는 용서한다’는 저 말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이 있다. 줄곧 말해보고 싶었던 것, 언젠간 적어 내려가 보고 싶었던 이것은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이 이야기의 조연일 뿐 주연이 아니다. 주연은 외삼촌이다. 왜 주연이 외삼촌인지 말하기에 앞서 외삼촌과 나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외삼촌은 4남매 중 막내다. 위로 누나가 세 명 있는데 그 중 둘째가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가 결혼할 때 외삼촌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래서 첫 대학 등록금도 아빠가 내준 걸로 알고 있다. 어릴 땐 외삼촌이랑 안 친했다. 삼촌이랑 이야기하고 함께 놀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증조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다. 그 때부터 삼촌에게 마음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생겼다. 중2 여름 방학에는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을 기록한 편지를 A4로 열일곱 페이지를 써 주기도 했다. 중학교 때 까지는 무릎에 앉아 이야기 할 정도로 친했다. 지금은 가족 모임에서 가끔 만나고 어쩌다 통화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외삼촌은 작은 이모와 같이 살았었는데 며칠 전 6월 1일 20년 동안 살던 그 빌라 명진 한양타운 가동 301호에서 각자 이사를 했다. 그 집은 엄마도 큰 이모도 결혼하기 전부터 살던 곳이라, 내 어린 시간도 담긴 곳이라, 5월에 엄마 아빠랑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아침에 그 집에서 눈을 떠서 내가 했던 벽의 낙서를 보며 거실을 돌다가 외삼촌 방에 들어가 책장을 봤다. 외삼촌의 초등학교 졸업장을 보는데 옆에 일기장이 있더라. 삼촌의 중학교 때 일기장,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 때의 삼촌을 만나고 싶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삼촌에게 다가가 보고 싶었다. 외삼촌의 엄마, 그러니까 내 외할머니는 삼촌이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삼촌은 세 명의 누나가 나의 외할아버지, 자신의 아빠와 갈등하고 방황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외할아버지가 재혼하고, 증조 외할머니랑 싸우는 것들을 바라만 보는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삼촌은 감정 표현을 잘 안한다. 삼촌의 마음에 있을 수많은 상처와 닫힌 세계를 사실 난 하나도 모른다.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에게 들은 몇 안 되는 이야기들로만 써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건 외삼촌이 자신에게 상처 준 이들을 조금이나마 용서하기를, 그것으로 마음의 짊이 조금이나마 준채로 가족을 꾸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외삼촌은 그 아픔을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로 게임을 찾았던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삼촌 옆에 서서 게임을 많이 구경했다. 언젠간 우리학년 남자애들과 함께 할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을 만큼 삼촌은 게임을 좋아하고 잘한다. 삼촌은 게임하고 담배 피운다. 따뜻한 마음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절대 조카랑 잘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다가서는 마음을 어떤 반응 없이 그렇게 받아줄 뿐이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삼촌이랑 안 친했나 보다. 앞에서 말 한대로 삼촌은 감정 표현이 없다. 어릴 적 삼촌이 일부러 잃어버린 듯하다. 그랬던 삼촌이 이사하기 한 달 전 쯤 작은 이모랑 TV를 보다가

  • aomame
  • 2013-07-2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소재를 발굴하는 눈이 좋아요. 아마도 님은 시력이 좋은 듯. 호호호. 소설은 그림이 예쁘네요. 바냐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수록 키가 작아져서 나중에는 없어지는 싸냐가 가여웠어요. 빛나는 별이 아닌 한낱 평범한 점이 되어버린 사랑. 진정 사랑은 뭘까요.

    • 2013-10-25 00:53:04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