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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에서 찾는 행복

  • 작성자 구테본
  • 작성일 2013-11-25
  • 조회수 430

2012년 2월 26일, 학교 기숙사에 처음 입사해서 첫 룸메이트들과 어색한 시간을 보내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벌써 2013년이 되었습니다. 1년하고도 몇 개월의 시간은 짧은 듯하면서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만큼 저도 많이 변했지요.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학교생활에 적응했다고 해야 할까요? 학교생활의 많은 것들이 낯설었고, 우수한 친구들이 모여서 그런지 때에 따라서는 위축이 될 때도 잦았습니다. 사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친구들도, 그리고 지금까지 저와 똑같은 과정을 먼저 겪으셨던 선배님들도 다 그랬었죠. 가끔은 후배들을 통해 그 모습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시간은 저에게 낮섦을 가져가고 익숙함을 남겨놓았습니다. 학업의 긴장과 진로 고민 등은 여전하지만, 분명 학교생활을 즐기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2학년의 저는 학교생활을 1학년 때와 똑같으면서도 다르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쯤의 어느 날에도 마찬가지였죠. 수요일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날 6교시에 체육 수업을 했거든요. 그 날도 평소처럼 수업하고, 6교시 체육 시간이 되자 운동장에 나갔습니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날이더군요. 너무 강렬하지 않으면서도 살포시 우리에게 얹혀진 햇빛과 높은 가을 하늘. 날씨가 좋아서 때문이었는지 저는 더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는 수업이 끝나기 십 분 전쯤 지쳐서 조금 이르게 계단 위로 올라가 쉬었습니다. 그러고 자연스럽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아, 이게 웬걸. 저는 하늘을 본 순간 입을 벌리고 넋을 놓았습니다. 이게 하늘인지 한 폭의 그림인지.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제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유치원생일 때 그렸던 그대로인, 풍성한 순백의 뭉게구름. 아름다운 하늘을 위해 일부러 몸을 숨긴 듯 구름에 몸을 반쯤 가린 채 자신의 밝은 해, 거기에 저의 마음을 간질이며 불어오던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던 바람까지. 얼마 전 미술 수업에서 ‘이상적 풍경화’를 배웠습니다. 화가의 이상에 맞추어 화가의 의도대로 계산된 풍경화를 뜻하는데, 곧 실재하지 않고 화가가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실재를 왜곡시킨 풍경화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그때 본 하늘은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이 있을 수 있는지, 의심하게 할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늘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 하늘에 넋을 빼앗기고, 입을 벌린 채, 수업 종료종이 치고 나서 몇 분 이 지난 후까지 멍하니 그 하늘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그 하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야, 어제 하늘 봤어? 내가 어제 체육 시간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봤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은 처음 봤어. 정말 그림 같더라니깐.”

다음날 저는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그 전날 보았던 하늘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요즘 여유롭나 보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건 니가 지금 여유롭다는 뜻 아니야? 아무튼, 난 가야겠다. 다음에 또 보자. 안녕”

친구의 마지막 말이 제 뒤통수를 치는 듯했습니다. 정말 제가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 본 것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점점 웃음이 더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 자세도 한결 더 가벼운 것 같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하늘을 얼마나 오랜만에 올려다보았는지. 사실 제가 하늘을 언제 마지막으로 올려다보았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혹시 그렇게 하늘이 아름다웠던 날이 그 날 뿐이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늘이 밝았던 날은 수없이 많았는데, 그저 신발 끝만 쳐다보기에 바빠서, 다른 것들을 볼 여유가 없어서 하늘을 못 보고 이제야 그 아름다웠던 하늘을 인식한 건 아니었을까요. 지난날 그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신발만 보며 고민하던 저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돌리다가 결국 시선을 땅에 처박아두었습니다. 어떻게 완전한 미(美) 앞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

사실 아름다운 건 하늘뿐만이 아닙니다. 굳이 거창한 예술 작품이 아니더라도, 바로 저의 주변을 생각해보면, 우리 학교는 교정이 매우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전국에서도 손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정 기관은 잘 모르겠지만, 몇 해 전엔 우리나라 100대 조경 중 하나로 선정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간격을 지키며 서 있는 녹음의 나무들, 등굣길을 황금으로 뒤덮는 은행잎들. 그리고 전체를 든든히 지켜주는 것 같았던 히말라야 시다와 그 자리를 다른 평온한 느낌으로 대신하고 있는 새로운 나무. 나무뿐만이 아닙니다. 항상 머무르지 않고 무언가를 향해 꿈틀거리는 역동의 비단잉어들이 있는 연못은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운동장에 있는 연못 옆의 바위는, 동양화에서 보던 바위입니다.

과연 제가 벤치에 앉아서, 이 아름다움에 온전히 빠져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별 게 아닙니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고, 남이 모두 부러워할만한 상태가 돼야 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은 대개 순간적이며, 후에 더 강렬한 것을 원하게 하고, 오히려 집착만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어떤 것에 대해서 좋음의 감정을 느끼고, 지긋이 미소를 오랫동안 입가에 머금을 수만 있다면, 그것들이 바로 행복 아닐까요.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오랫동안 머금으려면, 여유가 필요합니다. 계속 무언가에 쫓겨 위로 향해있던 시선을 좌로, 우로 자꾸만 돌리다 보면 결국 중력에 이끌려 땅만 보게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일 년의 역동을 마치고 다음 해를 기약하며 떨어지는 낙엽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메는 잉어를, 일 년 내내 한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를, 제 주변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지 말고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바로 그런 것들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요. 흔히 슬픔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삶이 이런 소소한 행복들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끊어지지 않는, 지속 가능한 행복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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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교정이 매우 아름다운 학교라 어느 학교일까 궁금하네요. 여름방학 때에 다녀온 지평선 학교도 아름다웠는데요. 아름다운 경치랑 함께하면 생활도 좀더 여유로워질 것 같습니다.

    • 2013-11-26 14:54:3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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