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속풀이

  • 작성자 아그책
  • 작성일 2015-02-25
  • 조회수 441

1, 이유

내가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지금이 새 학년, 새 선생님들을 기다리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뭐, 나름 걱정도 되고 또 괜한 것 때문에 혼자 되도 않는 걱정하기 싫어서 사연팔이 하는 셈치고 주절대려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정말 힘들다. 그 관계가 어떤 대상과 이루어지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관계를 작용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이제 한 해를 먹고 2015년인 지금, 5년 째 글을 써오면서 그걸 절감했는데,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이것보다 더 큰 충격을 주는 연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5년 동안의 글쟁이 생활을 시시콜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한 번쯤 말했거니와 그게 이 글의 요지는 아니니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는 선생님과 ‘글을 쓰는 학생’이다. 일반 친구들과 가족도 아니고, 거기다 친했거나 가까이 지냈던 선생님들과의 무슨 아름다운 눈물 감동 스토리의 인간극장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선생님들은 계속 머리와 마음으로 되새기고 생각해야지, 이 활자 덩어리들에 가둬놓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다. 왜냐면 그렇게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머리와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이 파탄의 연속인 관계는 머리와 마음에 가두는 데 이제 한계가 왔다. 앞서 말했듯 일전에 풀어놓긴 했어도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란 허구의 세계 안이었기에, 나는 그냥 눈앞에 생으로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2. 용두사미

중 2때까지만 하더라도 선생님한테 내 글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 1때부터 소설을 쓰긴 했지만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온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글쓰기였으니까. 더군다나 그 즈음엔 부모님조차 그다지 글 쓰는 걸 탐탁찮게 여기셨고, 기껏해야 내 친구들이 빈말에 가깝게 잘 썼다고, 재밌다고 하는 수준이었다. 백일장이나 공모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3학년에 올라가서였다. 그래서 처음 나간 것이 마로니에 백일장이었는데, 고등부보다는 덜하지만 어쨌거나 중등부도 경쟁이 꽤 있었고, 처음 나간 대회인데다 산문의 개념조차 헷갈리는 나였기에 상당히 두렵기도 하고 긴장이 되었었다. 더군다나 예선이 있어서 일단 본심 백일장에 가려면 통과를 해야 하는 게 우선이었고, 수필이든 단편소설이든 콩트든 장편을 빼곤 죄다 처음 써보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동안 자기만족을 바탕으로 혼자서 죽치고 글만 써왔는데 난생 처음으로 '대회'라는 곳에 가게 된 것이다.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충격이었다. 뭐 놀랐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글쟁이의 내 판을 깨버린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아는 애는 예고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애도 예선에 나간다 하여 왠지 모를 불안감이 더 증폭되었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국어선생님과 친해져야겠다고. 때때로 대회 제출 작품도 보여드리고, 피드백도 받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해타산적인 관계를 원한 건 아니었다. 다른 반 친구 C까지 끌어다 국어선생님이 담당인 독서토론부에 들어갔다. 처음에 C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독서는 그렇다 쳐도 그걸 갖고 토론하는 게 별로라고. 그러나 나는 초기 때만 해도 의욕이 아주 차고 넘쳐서 어떻게든 친구까지 다 데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국어선생님과 친분을 쌓아갔다. 어쨌거나 독서토론부도 결국은 책이니 글 쓰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직까진 괜찮았다. 나는 그 국어선생님이 원래부터 해오던 한 아이에게 이번에도 동아리 활동하라면서 '우리 동아리 기둥인데, 네가 해야지.' 하는 말을 듣고 그 정도로 친분을 쌓고 또 가까이 지내고 싶다, 는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예선에 출품할 작품을 보여드렸다. 사흘 정도가 걸렸고, 3교시가 시작 될 쯤에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가보니 내가 부탁드렸던 작품을 꺼내들고 계셨다. 그리고 내 글에 관한 얘기가 시작 되었다. 처음 써본 글, '집'에 관해 수필 식으로 쓴 글이었는데 마치 일대일 수업을 받는 것처럼 글의 구조와 첨삭에 관해 여러 얘기가 오갔다. 그러다보니 3교시 수업시간도 십오분 정도 넘기게 되었고, 수업에 늦게 들어가게 됐는데 마음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친구나 가족이 아닌, 객관적으로 내 글을 봐줄 수 있는 제 3자를 만난 것이니까 말이다. 수업에 교과서를 아예 챙겨가지 못해서 나는 작품 뒷면에 문제를 푸는 척 하면서 어떻게 글을 고칠지, 생각하기 바빴다.

그렇게 메일로까지 새로운 작품을 피드백으로 주고받으며 대회에 냈고, 예선에 통과한 것도 모자라 첫 대회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렇게 나는 독서토론부 활동을 성실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하면서 큼직큼직한 대회들, 이를 테면 대산청소년문학상이나 아니면 특정주제에 관한 글짓기 대회들을 여러 차례 악착같이 조언을 듣고, 첨삭을 받았다. 대산청소년문학상에 응모했을 때는, 국어교사 및 학교장 추천서가 필요해서 필히 작품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나는 처음에 A4파일에 작품을 프린트해서 드렸다가 나중에 다시 고쳐서 건넸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마감일날 급하게 교장선생님 결재를 받아 겨우 당일 우편으로 응모했다. 물론 나는 나대로의 불만이 있었다. 작품을 보여준 지가 언젠데, 한 달이나 걸려서 추천서를 써주느냐. 그것도 작품은 바빠서 읽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회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그 A4파일은 나와 선생님의 기억 모두에서 잊혀졌다.

관계에 균열의 초석이 깔린 건, 주말의 늦은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면 나는 핸드폰으로 대충 몇 가지 것들을 확인한 다음(메시지나 알림 따위의) 일어나는데, 카톡이 와있었다. 보니 국어선생님이었다. 확인했다. 채팅방을 클릭하기 전부터 알게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뿌연 게, 석연찮았다. 적중이었다, 예감은. 이토록 장문의 메시지를 받아본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 내용이 꽉꽉 내 행동을 책잡아서 지적하고 비난하는 투로 채워본 적도 처음이었다. 앞의 몇 문장을 읽기 전에, 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청소년문학상.

단편소설.

첨삭부탁.

메일로 보냄.

때는 여름방학이었고, 나는 8월 중순에 어떤 청소년문학상이 있는데 작품을 봐주실 수 있는지 미리 양해를 구한 터였다. 다행히 OK~라는 답이 왔고, 나는 기분 좋게 작품을 나름대로 손질한 다음 메일로 보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그야말로 나는 울고 싶었다. 실제로 울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만 자제력을 잃었어도 펑펑 울어버렸으리라. 눈물이 나오는 것은 뭐 친구와 싸워서, 아파서, 엄마아빠와 싸워서, 그런 상황에서만 터지는 게 아니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한데, 그것도 초등학교 시절에나 머물렀던 얘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의 울 지경까지 왔던 날이, 중학교 들어서 있었을까? 그때의 심정을 아무리 좋은 낱말을 가져다가 요리조리 포장한다 해도, 그건 그저 짐작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

그때 더 컸던 건 아마,...... 오해와 약간의 배신감이었다.

내가 예의가 없다고 했다. 기본예의가. 선생님이 자신의 귀한 방학시간을 깨면서까지 너에게 이렇게 해줘야할 이유라도 있느냐, 너는 한 번도 고맙다고 해본 적이 있느냐, 너는 이걸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짚어봐달라 한 것인지 자세히 말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뭐 대충 그런 내용들. 솔직히 지금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생각이 나면 기다렸다는 듯 머릿속에선 그 여자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롭고 참신한 욕들을 찾기 바빠 죽겠는데, 이걸 구태여 쓰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건 한 번 확 까발려야 한다. 그 여자의 잘못을 낱낱이 세상에 알린다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이석마냥 굴러다니는 그것을 밖으로 빼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너무 중언부언한 것 같다.

각설하고, 다시 돌아가서 얘기하겠다. 그런 내용들은 끝없는 스크롤의 지옥의 빠진 것처럼 계속 아래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다 읽지 못하고 바로 꺼버렸다. 그리고 씻고 나서, 오전 시간을 그냥저냥 보내다 어느 순간, 툭하고 그 생각이 뇌 한쪽을 두들겼다. 그래서 다시 카톡을 키고 보았다.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 인간이 단단히 뭔가를 착각하고 있구나.'였다. 착각은 사실이었다. 오해도 사실이었고, 나는 그 여자가 묘사한 '무례하고 저 잘난 줄 아는 아이'에 부합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무례하지도 않고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지금까지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 생각은 그때 다시 카톡을 정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 카톡을 읽고 나서, 나는 문자로 친한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독서토론부에 데려갔던 C에게도 보냈고, 같은 반 친구에게도 보냈다. 당연히 친구들은 내가 예의가 없다는 그녀의 말에, 학교에 얼마나 싸가지 없는 연놈들이 널렸는데 그럼 걔네들은 뭐냐, 하면서 내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때 생각해보았다. 나는 글을 쓰고, 달리 작품을 보여줄 사람이 없어 보여준 것뿐인데,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죄송하다는 서두로 나 또한 장문의 답장을 보내긴 했지만,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아 연락처 삭제 및 차단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마음이 그렇게 심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는데, 국어선생님과 친해져서 글쟁이들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트려고 했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겨우 더 분쇄되기 쉽도록 미리 초석을 깔아둔 균열에 불과하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다.

관계란 무엇일까. 나는 방학이 끝나가도록 생각해보았다. 첨삭을 봐달라 했던 작품은 응모하지 않았고, 그 여자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의 이해에 몰두했다. 그 여자 말마따나 내가 학교 선생님한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일까, 안 그래도 바쁜데 징징대며 매달린 것이었나. 예의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속으로 그건 당연한 거야, 여긴 건 아니었나. 그러나 자기반성 보다는, 그 위에 가분수로 얹힌 증오와 배신감이 더 컸다. 배신감, 나는 그녀를 믿고 따랐고 가깝게 지내려 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한테서 그런 예상치 못한 말을 듣는다는 건, 누구나 상당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걸 대충 비유하자면 사랑하는 연인한테서 꺼지라는 말을 들은 것이나, 부모로부터 넌 내 자식 아니야, 정도로 짚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예로 든 것 보단 당연히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실제 바깥 날씨와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밖은 똑같이 영하 1도인데, 저 사람은 따뜻한 날씨라고 느끼고, 나는 매우 춥다고 느낀다.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 누구나 처하겠지만, 만약에 그 상황이 영하 5도 정도라고 한다면 나는 한 영하 20도를 느낀 것 같았다.

다시는 작품을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아마 그때부터, 더욱더 폐쇄성으로 내 글은 돌아선 듯하다. 대회나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제외하고, 나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더 이상 내 글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 느꼈다. 내가 글쓴답시고 국어선생한테 글 보여 줘 봤자, 서로가 부담만 지며 피곤해질 뿐이라고. 나는 글을 부탁드렸으니 뭔가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실망시켜드리지 않아야 할 것 같고, 선생은 글 쓰는 애가 매우 드물니 더 꼼꼼히 봐주고 가르쳐줘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이제 부담의 무게에 짓눌린 한 쪽이, 지치고 마는 것이다.

좆나 그냥 서로가 부담만 많고 필요가 없어.

그런 생각에 나는 2학기를 시작했다. 용두사미였다. 처음은 좋았는데, 1년의 반이 채 가버리기도 전에 관계가 너덜너덜한 헝겊 같았다.

 

3. 파괴

잘 지워지지 않는 볼펜 자국 위에 오히려 더 볼펜을 묻혀서 닦으면 더 잘 닦인다. 왜냐면 아직 따끈따끈한 볼펜의 새 잉크가 기존의 스며든 잉크까지 떼어가기 때문이다. 내 관계가 그랬다. 나와 그 여자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완전한 붕괴로까지 치닫는데는 예상보다 1년의 반이라는,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수업을 외면했다. 그 여자가 들어와 수업을 해도 나는 고개를 돌려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국어책만 내내 응시하며 딴 생각으로만 끔찍한 45분을 꾹꾹 눌러 채웠다. 수업이 끝나면 그때서야 고개가 자유로워져서 목 운동 한 번씩은 꼭 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욕하면서 싫어한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그 여자를 좋아하는 애들은 독서토론부가 전부였다. 한 마디로 그녀의 추종사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내부에는 동아리 정할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온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중 1, 2 때부터 같이 해온 일종의 측근들인 셈이었다. 나는 그 점이 거북스러웠다. 당연히 싫은 인간이 있는 한 방에 어떻게 지내고, 더군다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서 또 어떻게 지내겠는가.

독서토론부 활동을 계속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2학기 들어 처음으로 그 여자와 대화를 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짧게 몇 마디 나눈 것인데, 나는 학원 때문에 못할 것 같다고 대꾸했다. 나는 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그 여자는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러면서 그 방학 중 카톡에 관해 얘기를 시작했다. 참, 빼먹은 게 있는데 이때는 관계에 약간의 회복세가 나타났다. 교무실에서 그녀가 카톡에 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면서 다시 관계를 좋게 이끌려고 한 것에, 나도 여태까지 지녔던 생각들을 다 청산하고 다시금 새로운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다 기대를 품고 독서토론부 활동도 계속 이어나갔고 수업도 집중했다.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 다가오는 내내 평탄했다. 단체 출전 대회 때문에 책 내용을 바탕으로 연극처럼 UCC를 만들기 위해 내가 시나리오를 써서 애들이 연기하고 편집하기도 했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로 밤에 연극을 보러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는데-아, 사실 말하는 게 꼭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다. 벌써 2년 전 일이라서 그런 진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기분이 좀 이상하다-그 여자가 나를 다시 교무실로 불러냈다. 때는 기말고사와 합창대회도 끝나고, 방학식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방과 후에 친구더러 밖에서 기다려 달라 하고 교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여자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 여자는 대뜸, 교원평가 결과가 자신한테 왔는데 자기에게 자뻑이 심하고 수업이나 잘하세요 라는 막말이 적혀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선, 내게 그거 네가 쓴 것이냐, 고 물었다. 나는 황당하고 당황한 나머지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미리 밝혀두자면 그건 내가 쓴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아니라고 했고, 내 말에 그 여자는 그럼 너는 뭐라 썼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수업 잘해주시고 마지막까지 잘해달라는 말만 했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식은땀이 나는데, 솔직히 그때만큼 ‘오해’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절실히 깨달은 적이 없다.

그러자 그 여자는 미심쩍은, 의심이 넘치다 못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눈빛과 표정으로 자기나름의 근거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먼저, 동아리 평가 때 내가 이 독서토론동아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 그것은 대학교에서 연극을 봤던 날에 대해, 내가 연극 모임의 시간이 너무 늦었고, 또한 앞으로는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도록 활동이 지속되어선 안 된다,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미리 그러한 사실을 알려드리면 좋겠다, 내용이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동아리의 한 애가 ‘야, 너무 비관적으로 썼잖아.’ 이랬다. 나는 ‘뭐 어때, 부정적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는 거지.’ 했는데, 아뿔싸, 그게 지금 이 얼토당토않은 사건의 시발점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여자는 이 글을 보면서, 방학 중 카톡 일에 대해 아직도 나한테 뭔가 감정이 남아있나 라고 딴에 추측해보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했고, 그 상황에서 방학 중 있었던 일이 이렇게까지 확대되는구나, 하며 놀랐다. 서로가 다 끝난 거 아니었나. 다 끝난 얘기를 전혀 관련 없는 것에 가져와 연관 시키는 재주가 상당히 있네, 하면서 속으로 놀라고 어이가 없었다. 넘겨짚는 탁월한 초능력도.

그건 한 마디로 몰아붙이기였다. 죄 없는, 누명을 쓴 사람이 다른 뭇 사람들에게 지탄받을 때의 심정이 어떤지를, 드라마에서나 소설에서나 봤던 그러한 인물의 심정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선생이 국어 작품으로 느끼지 못했던 인물의 감정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려고 이러나, 싶었다. 그러나 그건 이건 꿈일 거야, 하는 내 마지막 희망의 풀린 올에 불과했고 관계는 막장드라마의 결말처럼 화려하고 웅장하고 잔인하게 파멸로 치닫았다.

그 선생은 그러한 내 평가문과 방학 중 있었던 일,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내 평소 성격까지 거론해가며 나를 막말 교원평가의 범인으로 몰아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순진하고 착하고 배려 깊은 줄 알았는데, 평소 자세히 보니 친구에게 욕을 하며 하는 것이 아, 사실 이런 애였구나, 깨닫게 되었다고. 세상에, 그게 무슨 상관이 있더란 말인가. 더군다나 그 여자가 말한 그 ‘평소에 친구에게 욕을 하고 막 대한 것’이란 2년 지기 둘도 없는 친한 친구와 습관적으로 서로를 장난으로 대하면서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그 여자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서로에게 교과서적이고 기계적인,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인간이다, 라는 말이다. 평소의 나를 물론 담임보다 더 잘 안다 딴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2년 동안 그 일을 계속 되뇌며 살아오면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 여자를 모르겠다. 그녀, 라는 ‘사람’을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싸가지 없고 몰상식한 아이로, 인격을 멋대로 평가해 단정 지은 것에 대해 나는 더 화가 났다. 온갖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디선가 본 건데, 제방에 구멍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절대로 막지 못한다 한다. 그대로 무너지고 물길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방학 중 있었던 일은 알고 보니 제방에 뚫린 구멍이었고, 나는 그것을 영원히 코르크 마개처럼 봉쇄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휴지를 틀어막은 것에 불과했고, 천천히 제방에 균열이 일며 광란의 일격을 터뜨리는 준비를 차곡차곡 한 것이었다.

하지도 않는 일에 대해서 했다고 오해를 받고, 그것 때문에 나라는 인간 자체가 20분 만에 평가되고 한 사람 말에 의해 갇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만, 어차피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순전히 이제 막 고 2가 된 고딩의 교사에 대한 치기 어린 분노나 원망쯤으로, 자기 잘못은 인정치 않고 자기변호하기 바쁜 그야말로 그 여자 말대로 개념 없는 인간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건 소설이 아니고 수필이니 그렇게 제 3자가 느끼는 걸 내가 뭘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든 간에 이건 크나큰 충격이었다. 계속 충격충격충격 이러니까 싸구려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다. 싸구려 성장소설이 사실 진짜 성장소설일 수도 있으니까.

성격이 원체 내성적인 데다가 표현을 막 드러내는 표현이 아니라서, 그녀가 딴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분명한 내 잘못이다. 물론 내 서투른 사람과 사람간의 처신이 이 모든 일을 촉발시킨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표현을 잘 못해서, 선생님을 미리 생각하고 배려하지 않아서. 당연히 나는 어느 정도 그랬을 것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관계가 어디 있는가. 신화를 보면 그 전지전능한 신들마저도 서로 싸우기 바쁜데.

나는 당연히 그 여자가 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더 잘못했든 간에 나나 그 여자나 커다란 상처로 작용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난 정말이지 내가 대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에 목매달았다. 친구들한테 내가 어떤 인간이니 물어보기 바빴고, 그 여자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친구들에게 그동안 몹쓸 짓을 해왔다는 말이 된다. 한 마디로, 나는 꼭 사회부적응자 기분이 들었었다. 다행히 부모님과 친구들은 끝까지 내 편을 들어주었고, 일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 후유증은 길었다. 독서토론부의 그 여자를 좋아하는 애들까지도 나 스스로 등지게 만들었고, 그 여자가 특목고 원서를 쓰러 온 아이를 예로 들며 “걔한테선 뭔가 감사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느껴졌는데 너한테선 그게 안 느껴져.” 말한 것은 나로 하여금 아무 관련도 없는 썅년으로 욕하게끔 만들었다. 한 마디로, 그 여자와 조금이라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내 관계 분쇄의 여파로 다 폭발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어느 선생님이 조금만 뭐라 해도 금세 그 선생을 깎아내리기 바빴고, 더 곡해하고 비꼬아서 아예 일절 관계를 끊어버리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 그 여자가 하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이 인간들이 아주 작당해서 나를 미친놈으로 만들고 있구나, 뭐 그런 생각.

그래서 말하게 싶은 게 뭔데? 이렇게 말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나는 잘못한 거 없다는 거? 그 여자가(아직도 내 머릿속은 그 여자를 쌍욕이란 수식어와 함께 부르고 있다) 무조건 잘못했다는 거?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분명 벌어진 ‘일’이 있고, 그에 따른 ‘감정’이 아직도 코끝까지 잠기고도 남는데 말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지금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1년을 살아가야 하는 새 학년 시점에서 그 일이 잠재된 공포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런 인간이 또 있으면 어떡하지, 이번엔 국어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나. 고등학교 올라와서 내 작품을 국어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께 보여주는 순간에도,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괜히 쓸데없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건 아닌가, 이러다가 작년 꼴 난다, 이렇게 별의별 상상을 펼쳤다.

그 여자가 나라는 인간을 멋대로 판단한 것에 그렇게 화가 났었는데, 이젠 내가 다른 사람들은 한정된 시선 안에 한정된 행동 하나로 평가하고 단정하는 것 같아서 무섭다. 조금만 내 맘에 안 들어도, 내 생각과 어긋나거나 조금만 오해를 받아도 모든 관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있으니, 내 옆에 5년지기 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냥 신기하고 놀라울 지경이다.

.......

글쎄, 이건 한 마디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고해성사 아닌가. 고해성사라 할 만큼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제일 그나마 알맞은 단어는 속풀이가 아닐까 싶다. 술 먹으면 막 괴로웠던 일 다 말하는 것처럼, 나는 키보드와 지면을 술 대신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관계는 어렵다. 사람 관계는 참 어렵다.

관계는 시작과 중간, 끝이 다 불안정하다. 마치 회사 주가처럼 폭등, 폭락을 계속하며 사람 마음을 망치질 해댄다.

이제 이와 관련된 생각은 안 할 것이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조금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있으면 아마 삐에로 인형처럼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소설 구상하려고 머릿속 뚜껑을 열었더니 확 튀어나오듯이.

이 글이 분노로 가득 찬 글인가, 그렇다,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나는 분노만으로 쓴 글은 아니다.

속이 풀렸다. 이게 잘 쓴 글이든 괴상망측한 넋두리 사연팔이 글이라고 하던 간에 내 속이 풀리면 그만인 것이다.

 

-----------------------------------------------------

오랜만에 생활글에 들르는군요. 개학이 싫어요...

아그책

추천 콘텐츠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아그책님의 개학이야기가 엄청 기대됩니다.

    • 2015-03-15 09:51:16
    익명
    0 /1500
    • 0 /1500
  • 다음날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이해할 수는 있어도 절대 좋아할 수도 없는 사람들,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 아그책 님 힘내세요! (144입니다. 닉네임을 바꿨어요. 올해가 대화중에서 마지막 해네요.)

    • 2015-02-28 11:01:48
    다음날
    0 /1500
    • 0 /1500
  • 익명

    친구가 개학은 '개같은 학교'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줬어요ㅎㅎ 제목 보자마자 전에 쓰셨던 소설 생각이 나서 들어왔어요. 힘내세요!

    • 2015-02-25 17:37:56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