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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

  • 작성자 표리부동
  • 작성일 2019-03-09
  • 조회수 4,107

독이 든 성배

 

독이 든 성배를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배의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성배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거느린 기독교의 상징, 성자 에수의 피를 담았던 잔을 이르는 말이다. 예수가 죽었다 부활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예수의 피를 담았던 잔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중세 서양문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다. 성배를 찿아 떠나는 이야기, 성배를 지키는 이야기, 성배를 빼앗는 이야기 등 말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국이 인도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던 대문호 세익스 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멕베스의 구절로 등장하면서 부터를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인도측은 굉장히 불쾌해 하겠지만 과거 영국인들은 세계의 절반을 발아래 두었기에 굉장히 오만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성혈을 담았던 성스러운 잔, 그게 성배다. 그런데 왜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나왔을까? 일단 성스런 피를 담았던 잔은 성혈의 힘으로 성스러운 성질을 띄게 되었고 성물이 되었다. 성물의 사례들을 생각할 때 예수가 입었던 수의가 성물이 된 사례, 성인들의 소지품이 성물이 된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편하다. 물론 성인들의 물건보다는 성자, 예수의 물건이 급이 높고 기독교의 구원중 중요부분을 담당하는 성자의 부활과 관련된 성배는 더더욱 높다.

 

비교하는 일이 신성모독인지 모르겠지만 냉장고의 락앤락(플라스틱) 김치통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김치를 오랜 시간동안 보관한 락앤락 김치통은 김치를 다 먹고 나서도 김치냄새가 배어있어 김치냄새가 나지 않는가? 성스런 피를 보관했으니 당연히 성스러워져야 한다. 담긴 피가 보통 피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 성배에 담긴 물은 성수가 되고 악을 정화한다.  당연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종교계에서는 억만금을 주어도 팔지 않는다. 성배는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는 신비한 능력이 없어도 자체의 상징성 때문에 높은 가치를 가진다.

 

성배를 가지기 위한 분투는 다른 작품들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독이 든 성배의 뜻을 풀어보자.

 

성배는 당연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누구나 원한다. 물론 당신이 속세와 연을 끊은 사람이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 배화교, 이슬람, 유대교, 불교 등의 신자나 성직자인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쉽게 얻을 수 없다. 성배를 가진 자는 성배를 원하는 이에게 굉장히 힘든 일(과업)을 요구한다. 굉장히 힘든 일이라 하면 해변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지만 그중에 독을 마시는 일을 들 수도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그래 네가 성배를 원하는 건 잘 알겠다. 그런데 성배는 굉장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러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성배가 필요 없다면 들어주지 않아도 좋네. 하지만 성배를 가지고 싶다면 들어주게.

 

성배를 눈이 튀어나올 만큼 바라는 당신은 부탁이 도대체 뭐냐고 물고 성배의 주인은 말한다.

 

성배에는 독이 담겨있네. 물론 원래 담겨있는 건 아니고 내가 담아놓은 것이지. 아마 마시면 죽을 수도 있지만 마시고 살아있다면 성배는 독을 이겨낸 자네 것이네.

 

독이 든 성배다. 독을 이겨낸다면 성배를 얻지만 독을 이기지 못한다면 당신은 불귀의 객이다. 서양 사람이면 카론의 배에 타 증오의 강을 넘을 것이며 동양 사람이면 삼도천을 넘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여러 종교의 심판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요단강을 넘든지

 

현대의 말로 풀자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고위험, 고수익이다. 보통은 초두효과를 위하여 고수익 고위험이라고 하지만 알게 뭔가?  독을 견딜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값진 성배는 당신의 소유지만 독을 견디지 못한다면 당신은 끝이다. 말 그대로 끝.

 

이렇게만 말하면 잘 와닿지 않으니 사례를 들어보자. 전 재산을 굉장히 수익성과 안정성이 요동치는 분야에 투자하기(가상화폐 올인, 도박 올인, 주식 올인,), 정신적 고양을 위해 위험한 행동하기(일부 익스트림 스포츠, 극기, 소위 미친짓들), 명예롭지만 맡은 일의 성공, 실패 여부 또는 흥행 여부에 따라 극명한 평가를 받는 자리들을 맡기(고위 공직, 인기 스포츠 종목의 감독, 여러 분야의 감독등)등이 현재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을 쓰기 알맞은 사례들이다.

 

생각해보자. 어디에 올인하던(시쳇말로 꼴아박아서) 잘되면 평소에 꿈꾸던 일들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실패한다면 당신은 다리밑이나 역내 심하면 교도소에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남의 돈을 빌려서 떼먹는 다는 가정이다. 아, 제3금융권이라면 교도소가 아니라 남해 혹은 서해 갯뻘일 수도 있겠다.

 

정신적 고양을 위한 행동도 안전하게 잘 끝나면 좋겠지만 사람의 일은 항상 안개속에 있다. 확실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확실할 뿐 나머지 모든 일은 확실하지 않다.(모순된 말이지만 맞는 말이다.) 번지를 뛰다 머리가 박살날 수도, 페러글라이딩중 난기류를 만나거나, 설산을 오르던중 혹한을 만날 수도 있다. 물론 잘 극복할 수도 있지만 통계는 대부분 사망을 말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명예직도 성공만 한다면야 좋지만 실패한다면 당신은 역적이 된다.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죽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역전의 감독은 낯이 뜨거울 정도의 찬사를 받지만 참패한 감독은 감독에만 그치지 않고 감독의 3대까지 욕을 먹고 기상천외한 모욕들이 따라붙는다.

 

어떤가? 이제 독이 든 성배가 팍팍 와닿는가? 글을 읽고 좀 더 생각해보자. 주변에 존재하는 독이 든 성배들은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나는 독이 든 성배를 마셔보았는지, 그리고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마실 것인지.

 

어떤가? 한번 마셔보지 않겠는가?

 

 

표리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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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현

    안녕하세요. 표리부동님. 반갑습니다. ’독이 든 성배‘의 의미에 대해 풀어주고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사례에 대해 짚어주셨네요. 먼저 올려주신 글보다는 비유가 더 정돈된 느낌입니다. 이야기 구성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독이 든 성배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이는 사례를 경험하게 될 때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가 중요한 것인지 방향을 잡으셔야 합니다. 지금 이야기의 비중과 분량이 반반이어서 작자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사례가 제시된 뒷글의 분량을 줄이고 독이 든 성배의 의미를 강조하며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후자가 중요하다면 앞글의 분량을 줄이고 (김치통의 비유 등) 독자들과 가까운 사례를 제시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고수익 고위험 투자. 익스트림 스포츠, 고위직은 대부분의 독자들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내용을 보편적으로 풀어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갖기 위해서는 청소년들 혹은 일반인들이 겪게 되는 사례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문장에서 강조한 ’한번 마셔보지 않겠는가?‘라는 문장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말투도 중요한데요. 말 그대로 끝, 소위 미친짓들, 시쳇말로 꼴아박아서 라는 등의 문장이 거칠게 느껴집니다. 마음 급하고 말발 센 강사가 강단에 서서 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요? 수고하셨습니다.

    • 2019-03-12 11:21:14
    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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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리부동

      감사합니다 쓰다보니 부족함만 보이네요

      • 2019-03-12 22:09:54
      표리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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