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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하늘에는 별이 많습니까?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19-08-07
  • 조회수 269

공부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겨울로 가득 찬 밤하늘에는 별이 참 많았습니다. 하얀 숨이 하늘로 흩어질 때 저는 문득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달을 보고 같은 별을 보다보니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차오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비록 당신은 이 편지를 읽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수신인은 윤동주. 발신인은 ㅇㅇㅇ.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저는 당신의 시집을 집어 들었습니다. 언젠가 당신도 가을의 하늘을 보며 별을 헤었을 테죠. 문득 당신이 보았던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집니다. 달의 빛 부스러기들이 어느새 바닥에 떨어진 탓에 더 이상 빛나는 것들은 하늘에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곳과는 대조되게도 너무나도 밝은 그 곳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깁니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저는 어느 순간 숫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면 모두 네가 이미 사람인데, 뭘. 하며 고개를 젓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승무원이 되고 싶었고, 군인이 되고 싶었고, 도예가가 되고 싶었던 저는 저기 멀리 있는 별-명왕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이곳에는 오로지 사람을 갈구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틀 전 저는 거울을 보았고,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일기라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쓰면 쓸수록 좋은 모습은커녕 부족한 모습만 드러내 보여줍니다. 일기를 쓰다 보면 오늘 하루가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습니다. 항상 고쳐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음날이면 연거푸 후회를 하는 저의 모습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습니다. 국어 시간에 당신의 시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윤동주의 작품에서는 자아성찰적인 면모가 많이 보이지만 실질적인 시행으로 이루어지 것은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고뇌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돌아볼 때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혹시 저처럼 괴로움에, 죄책감에 몸부림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는 날에 당신은 우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미워지는 그 사나이를, 가엾어지는 그 사나이를, 그리워지는 사나이를 당신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당신에게 답을 구하고 싶습니다. 거울을 보았을 때 저는 웃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멋대로인 머리카락에 잔뜩 상기된 볼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을 때, 두 눈이 붉게 물든 제 모습이 그리도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제가 너무 가엾어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공공연하게, 혹은 암묵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은 또 본인들끼리 집단을 구성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그 집단 속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잘하는 게 너무도 당연합니다. 잘 하지 못하면 죽어버려야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지냅니다. 잘 하는 사람들이 더 잘 하기 위해 날뛰고 있습니다. 그 틈에서 저 역시 잘 하지 못하면 죽어버려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잘 해내지 못 하였고, 그리하여 저는 열등감만 가득 찬 숫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폭력적인 이분법 세계에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죽어버려야 합니까. 자아 성찰은 어느덧 자기 비하가 되어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상(理想)은 너무나도 멉니다. 담장은 너무도 높고 철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당신은 이런 기분이 들 때 무엇을 했는지. 그렇게 자아성찰을 한 당신에게 남은 것 무엇이었는지. 후회는 없는지. 황혼으로 물든 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너무도 처연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총명하지 못 한 까닭입니까. 아니면 제가 제 스스로 귀를 막았기 때문입니까.

 

오늘 하루 종일 저는 당신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당신의 시집에는 참 많은 속울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울음이 제게 전해진 탓인지 읽으며 두어 번 울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저는 이 구절이 참 좋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저는 새벽에 들려올 나팔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설칠 것 같습니다. 마침내 새벽이 와 나팔 소리가 들려오는 그날에 저는 맨 처음 당신을 떠올리며 일어나 창문을 열겠습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도 상쾌할 것만 같습니다. 그날이 온다면. 폭력적인 이분법 세계는 깨어지고 제가 사람이 되는 그날이 온다면. 저는 검은 옷을 입고 가지런히 누워야겠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어제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쓸 생각입니다. 손을 놓아버린 모든 것들을 다시 주워 담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아성찰을 멈추지 않았던 당신에게는 분명 그 이유가 존재할 테지요. 제 일기 속에는 우울한 이야기 밖에 없었습니다. 자아성찰이라는 것은 필시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글에는 우울함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존재했습니다. 자신의 무기력함과 한계를 느끼고 당시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넘어선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혹은 그것 때문에 끊임없이 길에 나아선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저는 그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항상 먼저 길에 나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 주머니 속에 먼저 손을 넣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제 주머니에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단지 너무 작아서 제가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늘은 일기를 쓰면서 우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고, 후회할 수만 가지의 일들을 저질렀지만 분명 저는 조금씩 나아질 테지요. 그 우울함마저도 달게 받아드리겠습니다. 이 삶이 끝나는 길 끝에서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일 수 있도록 조금 아프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 저는 거울을 보았습니다. 작은 입이, 꼬리가 올라간 눈이 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길을 걷는 동안 제 일기는 쌓여갈 것이고 그 일기 속에는 제 후회가 담겨 있겠지요. 후회들이 켜켜이 쌓여 삶을 만들고, 후회를 거듭하며 저는 조금 더 이상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기숙사 창 너머로 수많은 별이 보이는 밤에 저는 저의 내면을 한 층 성장시키며 조용히 당신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당신의 이름자 적힌 언덕 위에는 풀이 무성합니까. 이름이 부끄러워서 울던 벌레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이 있는 그곳 하늘에는 별이 많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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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록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일을 기록해 왔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노트북 바탕화면의 오른쪽 구석에는 수필 폴더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올리지 않은 글을 포함하면 벌써 28편의 짧막한 수필들이-수필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제 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비록 좋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 약간의 위안을 얻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더군요. 글을 쓰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입니다. 더 버티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스트레스가 더 늘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다시 제 오랜 친구를 떠납니다.   더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던 과거에 이제는 작별을 고합니다. 2022년 1월 5일, 오늘부로 글틴을 떠나려고 합니다. 항상 아낌없이 칭찬과 조언을 해주신 멘토님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다른 분들께도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탈퇴 회원
  • 2022-01-05
조금은 바보 같을지도 모르는 그런 변명

글과 작별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5번,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작은 숫자가 제게는 크게만 다가옵니다. 글은 항상 저의 친구이자 안식처였습니다.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던 글은 저를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글이 너무 싫어져서 피하고 말았습니다. 결코 잘 쓴다고 말할 수 없는 실력도, 부족한 점을 알면서도 고쳐 쓰지 않는 제 손도, 몇 번이고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도 전부 싫어져서 피하고 말았습니다. 맞아요, 사실은 이런 제가 싫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글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있으나 그것도 결국엔 제 오랜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던 거죠.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네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고, 내가 괜히 예민해져서 그랬다고, 바보 같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소리 없는 외침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변명뿐인 사과를 받아줄 리 없겠지만요,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다면 받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탈퇴 회원
  • 2021-12-29
변화를 기다리던 때는 이제 지나갔기에

매일매일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하고 살아가며 찾아오는 시련에 엎드려 울고는 했다. 오늘도, 내일도, 내가 먼저 변하지 않으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라는 걸 알면서도 변화가 두려워서 피하고는 했다. 결국 변하는 건 없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기만 했다. 혼자 구석에서 같은 하루를 보내기만 했다. 낮도 밤도 전부 길게만 느껴져서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꿈속에서 시달리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을 자는 것도 아니어서 겨우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악몽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나를 깨워주기만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나 나를 위한 알람 시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가볼까 하면서도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 괜히 삶이 두려워져서 이불 속에 틀어박혀 울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겨울의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이대로 죽는다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수많은 감정과 함께 파도에 밀려와 마음을 스치고는 했다. 내일도 행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나에게 저주를 내리며 살아가고는 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내일을 바라보며 나를 찾아오는 매일에 후회의 한숨을 내려놓을 때, 그제야 비로소 나의 하루를 마주할 수 있었다. 비참했다.   힘들 때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좋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알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이 무서웠다. 그게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기댔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계속해서 상상했다. 그 상상으로 인해 나는 점점 나락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에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우울감이 심해진 나머지 꿈에서 본 녀석이 환청과 환각으로 찾아오는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알았어야 했다.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며 나를 새장 속에 가둔 채 살아갔다. 괜찮지 않았다. 행복하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불행하게 살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여러 생각과 감정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이렇게 불행한 삶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아주 불행했던 것도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면 참 평범한 삶이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와 달랐을 뿐이니까. 그래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 고통이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계속 살 자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다시 좀먹었다.   확실한 꿈이 없었기에, 내 삶이 어떻게 되던 그건 무섭지 않았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꼭 만나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약속한 일도 없었으며, 삶의 끝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으니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끝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열다섯이 끝나가면서 어설픈 꿈이 생겼다. 열여섯이 다 지나갈 때까지

  • 탈퇴 회원
  • 20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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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현

    안녕하세요. 빛낢님 첫 만남 반갑습니다. 늦은 밤 기숙사로 가는 길에 느껴진 우울하고 허탈한 마음을 시인 윤동주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담아 올려주셨군요. 윤동주의 시를 통해 그의 삶을 되짚어 보고 상처받고 고통받는 작자의 마음을 담담하고도 거리감을 두고 담아내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에게 평가받는 삶을 숫자가 되어버린 삶으로 비유하셨다는 생각입니다. 꿈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신은 존재감을 갖지 못하는 별(명왕성)과 같다는 생각, 때로는 그러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자기비하에 시달려야 하는 고통 등을 담아주셨네요.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후회만 거듭하는 삶들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작자가 윤동주의 시를 통해 위로받고 희망을 얻고자 했다는 생각입니다. 시기적으로 언제 쓴 글인지 알고 싶네요. 첫 문장 ‘겨울로 가득 찬 밤하늘’이라는 표현이 나오니 추운 겨울에 글을 쓴 것 같은데요, ‘마지막 문장에서 언덕 위의 풀은 무성합니까’ 라는 문장이 나오니 조금은 계절적 이미지가 맞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 단락에 많은 내용이 담기다 보니 한 번에 읽히지 않는 아쉬움도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두 번째 단락의 글을 보면 참으로 빠르게 흐르는 시간, 숫자가 되어버린 삶, 내가 꾸는 꿈, 일기에 드러나는 나의 부족한 모습, 후회되는 하루 등이 나오는데요, 이 중에 어떠한 부분을 윤동주의 고뇌와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자에게 여러 갈등과 고뇌가 있겠지만 일제강점기에 별을 헤고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뇌했을 윤동주와는 어떤 감정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공유하고 공감하여 위로받을 수 있을지가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별이 많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드러난다면 더 좋은 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019-08-13 08:27:20
    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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