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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병동에 핀 들꽃

  • 작성자 사랑하마
  • 작성일 2020-10-24
  • 조회수 2,171

-경고-

정신과 보호병동(폐쇄병동)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자학, 폭력 및 성적 요소가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숙고해 주세요.
위와 같은 내용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람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읽기를 권합니다.

이 수필을 올리는 이유는, 정신적인 위기에 빠졌거나
정신 병동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호 병동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고정관념과 비관을
타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깊은
상처를 숨겨온 청소년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가명을 썼습니다.
성별과 나이(호칭)과 같은 설정도 몇몇 변경하였고,
사건도 이야기에 걸맞도록 재구성했습니다.

9월, 제가 글틴에 올린 수필 '코스모스'와 내용상
연계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1. 치유를 향한 첫걸음인데

"……새사람 병원? 거기가 어디야?"

"거기 종합병원인데 같이 정신과 가보자고."

엄마는 어물쩍거렸다. 나는 정신과에 가서 약이나 받아오는 줄 알았다. 몇 달 치 받아가는 걸까. 그럼 수면제도 받을 수 있을까.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들이켜도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 나 잠들어도 될 것 같아. 그냥 오십 알 정도만 받아 가도 좋겠다며 꾸벅이는 졸음을 참는다. 부모님 차를 타고 30분 동안 얄따란 도로 위를 달렸다. 차창에 서린 김을 손가락으로 지우며, 지루한 낙서를 새긴 자리에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물방울 맺힌 검지 끝에 목적지가 있었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저기 있네. 주원, 보이니?"

"네. 생각보다 크네요."

거대한 감옥이네요. 목젖을 누르고 치밀어오르는 속앓이를 또 혀로 짓눌러, 다시 삼켰다. 광활한 사거리 도로에서 차들은 알아서 갈 곳을 찾았다. 눈이 굳은 자리에 박힌 타이어 자국은 거무죽죽하게 녹아 있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차들은 유턴하지도 않는다.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달려나간다. 아빠는 길이 미끄럽다며 투덜거리다, 핸들을 확 꺾는다. 다시 유리창을 손으로 닦으니, 수백 개의 유리로 덮인 병원 본관이 보였다.

"내려라. 난 지하에 주차하고 올 테니 먼저 가 있어."

나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망연히 엄마 손을 잡고 세 번째 층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계단을 올랐다. 숨이 차오를 때쯤, 3층 바닥을 딛고 주변을 살폈다. 근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정신과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좁겠구나. 감이 바로 왔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

생각보다 넓다. 상담실이 3개나 있었고 모두 비밀을 간직한 듯이 문이 꼭 닫혀있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문서들을 정리하던 간호사들의 냉정한 눈빛이었다. 엄마는 한 간호사에게 다가가 예약이 되어있는지, 상담 전에 무슨 절차가 필요한지, 교수님을 언제 뵐 수 있는지 꼬박꼬박 물으셨다. 모든 질문을 일목요연하게 답한 간호사는 종이 몇 장을 내밀더니 되물었다.

"환자분은……?"

내 몸에서 갑자기 땀이 났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이 부여잡았다. 아무 말이라도 꺼냈으면 좋았으려나. 멍청하게도 나는 쭈뼛거리며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쪽이 보호자세요?"

"네, 제가 보호자이고 저 학생이 상담받으려고요."

엄마는 별 반응 없이 술술 대답하였다.

"일단 검사지 작성하시고, 환자님과 보호자님의 질문은 각각 다릅니다."

1-2.

우울증 척도 검사지.

오랜만에 받아본다. 막다른 복도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으리라 믿으며 종이에 적힌 내용을 쭉 읽었다. '나에게는 이제 힘을 낼 기운이 없는가.', '밤잠에 들지 못하는가.'같이 속이 뻔히 보이는 문답을 거쳤다. 이런 질문들로 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모습에 근접하게 드러내곤 했다.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주차할 자리가 안 보여."

아빠였다. 엄마는 검사지 답을 다 썼고, 주차장에서 막 온 그는 기진맥진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문답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 될 듯싶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엄마·아빠가 나 답답해할까?'

나는 무수한 질문에 압도되었다. 작성을 끝내고 나서야 좀 나아졌다. 검사지를 카운터에 제출한 후, 우리가 뽑은 대기표에 적힌 숫자가 디지털 화면에 고스란히 나왔다. 서두르며 상담실에 들어가 보니 시원시원해 보이는 50대 정신과 교수가 앉아있었다. 인위적인 인사를 끝내고, 교수는 질문들로 나를 파헤쳤다. 부모님은 잠시 내가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상담실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그 사이에 말실수를 했다.

"가족 중에 누가 정신적으로 아프시니?"

"고모요."

아차, 나는 비밀을 말해버렸다. 다시 호출된 부모님은 쓴소리를 들었다. 교수는 내 검사지를 들고 입원이 필요하다며 권유했다.

"얘 지금 우울 점수 심각해요. 입원시킵시다. 또, 고모가 아프시다면서요?"

"네? 고모가?"

아빠는 너무 놀란 나머지 큰 목소리로 반문하셨다. 교수는 허허 웃었다. 개방 병동은 없으니 폐쇄병동에 입원하면 좋겠다고. 엄마는 상담실에서 나와 비통하게 울었다. 아빠의 붉어진 얼굴.

"야 김주원, 고모 이야기 어떻게 알았어. 네가 남들에게 다 알린 것은 아니지?"

"안 그랬어요. 누구에게도 알린 적 없어요."

결국 아빠는 내가 폐쇄병동 가는 것을 배웅하지 않았다. 고모는 아빠에게 큰 결함인가 봐. 나도 고모와 다름이 없나.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에 둥지를 틀고 자리 잡았다. 북적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올라갔다. 엄마는 침울한 기운을 풍겼고, 하마터면 나는 그 기운에 숨이 막힐 뻔했다.

"8B 병동이랬지……."

폐쇄병동, 아니 이제부터 '보호병동'이라 부르겠다. 보호병동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저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지 의아할 정도로. 한 간호사가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더니, 입원하려고 왔는지 물었다. 간단한 확인 끝에 나는 간호사를 따라 굳건한 문 앞에 섰다. 그녀는 두툼한 열쇠 자루를 꺼내더니, 오직 하나의 열쇠로 잠긴 문을 열었다. 나는 앞으로 갔다. 왼발을 들이밀고, 오른발을 그 앞에 내밀며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뒤에 있던 엄마를 위해 돌아보지도 않고.

 

2. 잠이 잘 올 것 같아.

노을이 참 예뻤다. 8인실 병실에 스며드는 주홍빛이 내 발에도 묻었다. 이런 조그만 이유로 살아가야 하는가. 귀찮게도 내가 정신과 약을 과다 복용할 일이 몇 주간은 없겠지. 여기에서 모든 행동이 감시된다. 남자, 여자 병실에도 복도에도 독방에도…… 샤워실 입구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화장실에도 있겠지. 나는 십자가 그림으로 도배된 환자복을 입었다. 속박된 느낌이었다. 눈에서 물방울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 나는 내 침대에 누워 얼굴을 가렸다. 주변에 있는 평화로운 여자 환우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인가 봐.'

몸을 웅크리며 한참 저린 명치를 눌렀다. 가슴은 마치 주먹을 꽉 쥔 손 같았다. 죽어야만 이 주먹이 스르르 원래대로 펴질 것이다. 노을이 지하로 파고든 후에야 나는 제정신을 차렸다. 일어나니 바로 왼쪽 침대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는 환우가 있었다. 망연자실했다. 건너편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둘이 구석에서 날 바라보았는데, 그중 웨이브를 한 갈색 머리의 아이가 내게 큰 보폭으로 걸어왔다. 그 애는 또렷이 내 눈을 보았다.

"안녕? 이곳이 낯설 수도 있겠다. 내가 여기 소개해 줄까?"

나는 애써 눈빛을 떨구었다. 다른 설득의 말이 내 귀에 날아 꽂혔다.

"나는 이래서 여기에 입원한 거야. 내 이름은 가인."

그 애는 헐렁한 병원복의 소매를 걷었다. 아아, 손목에 남겨진 흉터 자국들이다. 셀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자마자 다시 땅에 시선을 처박았다.

"미안. 나는 보여줄 수가 없어."

나는 머뭇거렸다. 가인이는 더 힘써 미소 지었다.

"아니! 괜찮아! 와, 너 나랑 동갑이구나."

그 친구는 내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 표를 읽었다. 그 표에는 나이, 이름, 담당의가 적혀있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크게 쓰여있었다.

"일단 날 따라와."

가인이와 함께 병동을 둘러보며 그나마 긴장감으로 헐떡이는 숨을 낮출 수 있었다. 열 걸음 정도 나오니 오른 편에 기다란 소파 3개가 벽걸이 텔레비전을 향해 정렬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규칙을 들었다. 오후 10시가 되면 텔레비전을 끄고 취침시간에 들어간다. 왼편에는 두 팔을 벌리면 벽이 손에 닿을듯한, 남녀 화장실이 두 개 있었다. 소파 건너편에는 식탁이 있었다. 적어도 열여덟 정도가 앉아 끼니를 때울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난 식사가 언제쯤 나오는지, 환우들은 무조건 2개의 식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함을 알았다. 그런 가인이의 친절한 설명이 무색하게, 아직도 현실 같지 않은 이곳이 내게는 멀게 느껴졌다. 가인이는 갑자기 내 등을 두드리더니, 정수기 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전화기가 있어."

보호병동에서는 카드를 주고 그걸로 전화기에 긁어 통화하는 줄 알았다. 그것마저도 위험한 것인지, 전화 카드 자체가 사라졌다. 하루에 3번으로 통화 횟수를 제한하였다.

"자, 이제 나의 언니를 소개해야지!"

"……뭐, 언니?"

"진짜 언니는 아니고."

그 애는 손뼉을 치고 웃더니, 내 손을 잡고 다시 여자 병실로 들어갔다.

"친구랑 산책 잘하고 왔지?"

가인이 바로 옆에 또래로 보이던 그 친구, 아니 선배였다.

"나는 해람이야, 18살이고. 반가워."

"저는 16살이고 주원이에요."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구야. 친하게 지내자, 주원아."

나는 몇 번 말을 더듬었다. 이렇게 편히 말해도 되는가 싶었다. 떨떠름해서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마주친 가인이와 해람의 얼굴은, 마치 나를 안아줄 바다같이 편안한 인상이었다. 해람 언니의 포근한 침대에 셋이 앉아 간단한 소개를 나누었다. 밤이 세상을 짓누르는 소리에 귀를 막곤 했다. 하지만 병실 형광등에 비추는 우리의 얼굴은 하얀 종소리 같았다. 잠이 잘 올 것 같다, 오늘이라도.

 

3. 그러니 괜찮아.

오늘은? 아, 1월 31일이구나. 두 번의 긴 잠을 끝내고 일어나니 2월이 코앞이었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고 대충 안경을 쓴다. 요새 마음이 가는 친구가 있다. 가인이뿐만 아니라 나와 동갑인 아이가 하나 있었다. 왼쪽에 있는 침대에서 늘 뒤척거리는 소리에, 누군가 싶어 그쪽의 인적 사항 표를 보았다. 늘 궁금했다. 눈에 띄지 않았고, 가인과 해람과도 사이가 멀어 보였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아무튼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얼굴을 씻고 입을 헹군 후 밥을 먹었다. 미역 죽과 크루아상 그리고 샐러드. 무슨 조합인가 싶었지만, 맛은 나름 담백했다. 그러나 밥맛은 여전히 없어서 밥알이 모래알처럼 다 느껴지는 듯했다. 간단히 먹고 접시를 냈다. 이를 닦고 나니 아침 9시였다. 여전히 이른 시각이지만 잠은 더 오질 않았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침대에 있는 그림 노트와 검정 사인펜을 가지러 갔다. 이내, 내 발은 바닥에 붙어버렸다. 그 애가 일어나 이불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내 침대에 앉았다. 내 입이 방정맞아서인지, 그 애의 책상에 자리 잡은 컬러링 북이 눈에 밟혀서인지…… 나는 처음으로 그 애에게 말을 건네었다.

"이 컬러링 북, 네 거야?"

"응."

"나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서, 너도 그래?"

"별로."

머쓱했다. 목덜미에서 땀이 났다. 물러나기에는 늦었다고, 속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나는 한마디 더 꺼냈다.

"나 이거 봐도 돼? 음, 다희야?"

다희, 그 애의 본명이었다.

"어. 얼마 안 칠했어."

다희는 컬러링 북을 좌르르 넘겼다. 몇 페이지 빼고는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 맞다. 부모님께 전화해야 해. 또 보자."

복도로 나오고서야 난 한숨을 쉬었다. 한 무더기의 숨은 안도의 뜻도 있었지만 못난 자신에게 던지는 돌덩이와 같았다, 어찌 보면. 무겁게 슬리퍼를 끌고 전화기 앞에 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별표 버튼을 누르니 연결 음이 들렸다. 받았네.

* 어, 엄마 잘 잤어?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걱정하지 말고. 그래서 토플책과 교과서는 아직 반입 안 돼? 그럼 더 기다리도록 할게. 나는 괜찮아. 또래 애들도 있어. 책 들어오면 그 아이들과 공부할 거야. 응 알겠어. 좋은 하루 보내고, 끊어……. *

갈증에 시달리던 나는 종이컵으로 정수기 물을 받아 두 컵 마셨다. 둥둥 떠다니는 절망의 쓰레기를 그물로 건졌다. 약간 맑아진 정신으로 이번에는 노트를 꼭 가져오리라 주먹을 쥐었고, 행진했다. 당당한 발걸음, 왼 가슴의 두근거림으로 무장한 나는 분명히 자신 있었다. 병실에 다가가니 흔들리는 신음, 끅끅거리는 울음, 희미한 부스럭거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설마, 난 달렸다.

"다희?"

다희는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중이었다. 우울이구나. 너에게도 그런 괴물이 있다니. 다희의 얼굴은 평소에도 붉은 편이었다. 당시에는 빨개지다 못해 터질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떡해, 어떡해. 간호사 불러올 테니 조금만 참아봐."

그러자 다희는 주름진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도 저도 못하다가 가인이가 때마침 들어왔다.

"가인아 간호사 좀 불러줘. 부탁해."

가인이는 도와줄 이를 찾아 나갔고, 나는 다희 옆에 앉아 등에 손을 대었다. 나는 울먹거리며,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가 몇 장을 다희에게 뜯어주었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아니야."

나는 놀랐다. 그 애는 말 주머니를 터뜨렸다.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해! 다른 말없이 그냥 있어줘."

간호사가 찾아와서 재빨리 물었다. 그 옆에 쭈뼛거리는 가인이.

"지금 많이 우울해요? 못 버티겠나요?"

"네."

"안정제 처방해 드려요?"

"네, 제발."

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인과 나는 밖으로 나갔고, 간호사는 안정제를 다희에게 투여했다. 가인이는 내게 물었다.

"쟤랑 친해?"

"그다지는……."

한바탕의 사건이 끝난 이후, 나는 다희와 가까워졌다.

3-2.

나는 다희와 간식으로 산 과자를 같이 나눠 먹었다. 달곰하고, 매콤한 맛이 혀에 달라붙었다. 내 손가락에 묻은 가루를 물티슈로 닦아내며 다희에게 물었다.

"넌 왜 여기 오게 되었어?"

내가 말실수했나. 과자의 바삭거림 빼고 무거운 침묵이 들렸다. 다희는 천천히 말했다.

"이거 보이지?"

그 아이는 내게 손목을 내밀었다. 가인이의 손목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끄덕이며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너희는 왜 이리도 아파야 하는가. 다희는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

"죽으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줄이 늘어났거든. 시도 후에 아빠에게 전화했고 바로 입원했지 뭐.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엄마는 항상 내 탓이라고 해. 자기 자식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니까."

"너희 엄마가 너무하시다."

다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똑같이 물었다.

"너는 왜 여기 왔는데?"

"환각, 환청 때문에 왔지."

"나도 환각 본 적 있어. 거울에 비친 내가 팔을 긋고 있더라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너도 죽으려 한 적 있어?"

난 어렸을 때의 기억을 찾아 꼼지락거렸다. 아기가 옹알이하듯이, 입을 열었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응, 있지. 사실은 다 내 잘못이라 생각해."

자포자기하듯이.

"7살이었지만 옥상에 올라가려다 실패했어. 5살 때는 가슴이 욱신거려서 팔을 깨물면서 버텼는데, 근데 웃기지 않아? 난 벌 받을 만해서 벌 받은 거야. 내가 잘못한 거 맞으니까."

"아니야."

흐릿한 다희의 목소리와 함께 복도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우리는 재빨리 식탁 자리에 앉았다. 과자를 먹었는데 밥은 술술 넘어갔다. 게임을 할 때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린 것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들뜨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저녁 시간 후 우리는 한 침대에 앉아 재잘거렸다.

"다희야, 너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니? 가인이는 남자 친구 있던데."

"음 나는 사실…… 성 소수자야."

"너도? 나도야! 난 범성애자야."

"우와, 나도."

우리는 몇몇 사람들을 짝사랑하며 애를 태우곤 했다. 다희에게는 특히 키 큰 사람이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머리에 턱을 올릴 수 있을 정도면 좋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가인이 키가 크잖아.

"야, 우리 가인이에게 가보자."

가인이는 실실거리며 뛰어오는 우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인아! 혹시 다희 머리에 턱 좀 올려줄 수 있어?"

"그러지, 뭐."

다희와 나는 크게 외쳤다.

"세상에!"

가인이의 키가 다희의 이상형에 딱 맞았다. 턱이 적당하게 걸쳐 있었다. 나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오른손으로 입을 막아도 소리가 새어나갔다. 다희도 만족한 듯이 미소 지었다. 가인이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저 따라 웃었다. 어느새 우리 셋은 웃음에 전염되어 있었다. 취침 시간, 다희는 왼쪽 침대에 누워 내게 속삭였다.

"난 지금까지 누군가를 그리 좋아한 적 없었어. 그런데 이젠 네가 좋더라."

"……고마워."

나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어떠했든, 지금이라도 좋으면 다행인 거야.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는 불빛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 빛줄기 사이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4. 오늘도 흉터는 몸의 절반을 넘어가고

"네가 어떻게 알아! 긍정이고 뭐고 아주 재수 없는 소리를 해, 그냥."

"오빠의 마음을 알아요. 저도 맞아봤거든요."

가인이는 오늘도 다른 사람을 설득한다. 저 남자 환우의 이름은 형욱이다. 그는 처음 입원했을 때 욕을 퍼붓고 다녔다. 며칠 전 내가 한참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그가 버럭 소리치는 동시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과 의사는 소란스럽지만 너무 놀라지 말라며 날 진정시켰다. 혹여나 지금,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어쩌지.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가인이가 차분하게 행동하기를 빌었다. 언젠가는 낙관으로 뒤덮인 가인이가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다. 가인이는 늘 좋아하는 책에서 메시지를 찾고 남에게 그것을 퍼뜨렸다.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에 행복해질 거야.' 그 애의 인생 좌우명이었다. 물론 자신만의 세상에서 늘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외줄 타기와 다름없는 그 애의 세상은 늘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오빠, 살아있는 일은 늘 힘든 거예요. 그런데 언젠가는 끝나죠."

"제발 그 책 이야기는 그만 좀 해라. 그리고 여자가 맞는 것과 남자가 맞는 것은 뭔가 달라도 너무 달라."

"저는 오빠의 편이에요. 싸우기 싫단 말이에요."

"좀! 알면 그만하라고! 나는 아버지란 놈에게 골프채로 처맞았다고, 모르면 좀 닥치라니까."

"안 되겠다. 그래요, 우리 이제 그만하고 화해의 악수를 해요."

가인은 대뜸 오른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그 군인은 미치고 환장할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짚었다.

"그래도 악수는 안 한다. 그냥 평범히 지내자."

"좋아요!"

한시름 놓았다. 이 상황에 감사하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골프채로 맞아서 앓는 고통은 상상만 해도 몸이 움찔거린다. 뼈가 으깨지겠지. 그 무서운 흉기로 제 아들을 때린다니. 심장이 벌렁거리며 온몸의 기운이 시들어갔다. 소리치던 형욱의 눈빛은 이미 뜨거운 눈물에 젖어있었다. 난 급히 여자 병실에 들어가 울음이 터지지 않도록 자신을 스스로 달래려 했다. 그 병실 입구 앞에 남자 환우인 건호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건호와 여자인 인숙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바닥에 시선을 두던 건호가 말을 꺼냈다.

"누나야, 나 성폭행당했다?"

"뭐라고? 누가 그랬어."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막 그랬어!"

"정말 그런 짓을 한 거야?"

"응, 난 거짓말 못해."

심히 찡그려진 인숙의 얼굴은 힘없이 풀렸다. 나의 정신은 경련을 일으켰다. 인숙의 입은 가늘게 떨렸고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다시 주름이 서럽게 나타났다 숨는다. 인숙은 말했다.

"우리 아버지 나쁜 사람인 거 알지?"

"응, 나빠! 아주 나쁜 자식!"

"그 사람도 나를……."

몸에 구멍이 송송 뚫린 듯, 차디찬 공기가 파고들었다. 육체를 더듬는 산소에 나는 서서히 부패하였다. 인숙과 비슷한 고통을 나도 겪었다. 경민, 즉 사촌 오빠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 당시 나는 9살이었고, 오빠는 12살이었다. 나의 빠른 눈치로 오빠의 놀이는 중단되었다. 경민은 아쉬운 듯 내게 물었다.

"뭐야, 들켰네. 기분은 좋아?"

나는 웃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살아남기 위한 정반대의 태도였다.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이 세상은 누군가에게 더 각박한 건 아니라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힘든 것이 더 근접하나, 모든 인간은 각자 다른 고충을 지녔다. 한 부류만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폭력에 더 취약한 부류는 존재한다. 그렇다고 가해의 범위가 제한되지는 않는다. 인숙의 부친과 나의 사촌 오빠처럼, 건호를 괴롭힌 그들은 하나의 인격을 무참히 밟아버렸다. 폭력의 피해자는 이미 절반이 아니다. 절반을 넘어섰다. 난 그림 노트를 가지고 도망쳤다. 소파 구석에 웅크려 앉아,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천장을 보았다. 저 위에 웬 거미 떼가 몰려 다니네. 울먹이는 내 추한 표정이 보일까 봐 황급히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환각이 보인다. 그렇지만 정신과 의사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림 노트를 꼭 안으며, 주절주절. 나만 그런 게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나는 또 혼자야. 언제까지……."

 

5. 그냥, 어린애가 되고 싶다.

"벌써 가시는 거예요? 아쉬워요."

"아쉬워하면 안 되죠."

여자 병실에 있는 환우들은 제각기 음으로 키득거렸다. 30대인 영희는 이 병동에서 가장 오래 있었다. 거의 두 달을 시멘트벽으로 둘러싼 케이지에서 보냈다. 그녀는 조그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세면도구와 평소에 낭독하곤 했던 성경을 차근차근 집어 들었다. 몇몇 환우들은 영희를 지켜보다가, 떨어진 펜을 줍고 우수수 쏟아지는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나는 A4, B4, 종이 그리고 4절 도화지를 보고 영희 씨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아기자기한 수채화 그림과 학습지들은, 평일에 매일매일 열리는 마음 치유 활동에 참여했다는 일종의 수료증이었다. 내 이동식 책상 서랍에도 많이 들어있었다. 물론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제 갑니다!"

'드디어 퇴원이라니' 이러한 생각이 다 읽히도록 영희는 행동했다. 그녀는 옷을 다 갈아입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복이었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으며 보호사와 떨리는 이 순간을 공유했다. 웃던 보호사는 열쇠 자루를 들었다. 그는 잠시 긴장한 기색이었다. 문이 딸각 열리고, 영희는 오른팔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그리고 보호사와 함께 두터운 문 뒤로 사라졌다. 정말 순식간이구나.

"그럼 저분 침대 있잖아. 접이식 책상이 붙어있는 거 알지? 엄청나게 편하던데."

"맞아, 우리 늘 그 이야기했었지."

나는 가인이의 말에 동조했다. 가인, 다희와 나는 우르르 여자 병실로 몰렸다. 책상이 결합된 침대는 딱 2개였다. 그중 하나는 해람 언니 것이었다. 다른 환우들은 우리에게 침대 선택권을 주었다. 해람은 슬슬 다가와 물었다.

"저 침대는 누구에게 가장 필요할까?"

우리 셋은 망설였다. 막상 정하려니 힘들었다. 눈치싸움이 시작되었고, 결국 다희가 입을 뗐다.

"내가 저 침대 써도 돼? 공부할 때 딱 좋을 것 같아."

"으응."

가인이와 나는 끄덕였다. 해람은 무언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지 나와 침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난 별생각이 없었다. 가인이는 제안했다.

"좋아, 그럼 공부할 때 다희의 책상에 집합!"

다희는 이동식 서랍과 짐을 그 침대 곁으로 옮겼다. 한동안 우리 셋은 다희네 침대를 약속의 장소로 꼽았다. 나는 겨우 반입한 수학 교과서를, 다희와 가인이는 검정고시 책을 각자의 서랍에서 꺼냈다. 우리는 바투 다가앉았고, 가인이는 스터디 그룹을 맺은 것 같다며 설레 했다. 공책에 필사하며, 나는 다희와 가인이의 이름을 머릿속에 빼곡히 적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들의 이름을 암기하는 것이 또 다른 의무였다. 일주일이 지나고, 해람이 병동에서 나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해람 언니 우린 정말 좋은 인연이었어요."

가인이가 해람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가인아, 그리고 얘들아 고마웠어. 내 침대 있잖아. 책상 달린 거야. 알지?"

"언니 고마워요. 주원, 나 이거 써도 돼?"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해람은 나를 뚫어지라 보았다.

"응. 마음껏 써."

"고마워, 주원아."

가인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그 모습에 실타래처럼 엉킨 속이 풀어졌다. 나름 안심되었다. 해람도 가인이와 따라 보조개를 보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을 먹은 뒤, 늘 그렇듯이 나는 내 침대에 앉아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다희와 가인이는 면담시간이 거의 같아서 잠시 나가 있었다. 다른 환우들은 식사 중이라 나 혼자였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검은 선들이 겹치는 소리는 내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작은 종이를 허벅지 위에 두고 계속 그렸다. 구부정한 허리가 점점 뭉쳤다. 몇 번이고 허리를 두들겼다.

"주원아."

"아, 깜짝이야!"

"미안, 근데 너 자세 너무 안 좋다."

해람 언니였다. 언니는 내 곁에 앉아, 나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다.

"너 정말 대단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던데. 온종일 그림 그리잖아. 안 피곤해?"

"좀 피곤하긴 하죠. 그래도 괜찮아요."

해람은 어색하게 웃는 나를 보더니 두 손을 내 어깨 위에 살포시 올렸다.

"어깨 뭉쳤다. 내가 안마 좀 해줄게."

"아아."

저릿한 통증과 함께 시원함이 밀려왔다. 언니가 손을 뗄 무렵, 나는 아쉬움에 젖었다.

"고마워요."

"천만에. 주원아, 사실은 난…… 네게 저 침대가 가장 잘 어울린다 생각했어. 다희와 가인이도 물론 필요로 하겠지. 하지만 네 건강을 위해서 저 침대를 남기고 싶었는데."

"아뇨. 가인이가 좋아하면 됐죠. 전 밖에 식탁에서 그려도 충분해요."

"……."

해람 언니의 표정이 미세하게 어두워졌다.

"주원아, 넌 성숙하구나."

"전 아직도 미숙한 점이 많아요! 언니."

"내 말을 들어보렴.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 그 사이에서 네 몫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 누군가에게 잘 배려하고 성숙한 게 너의 장점이라면. 반대로 네 단점도 마찬가지야. 성숙한 거지. 네 나이대로 행동했으면 한다. 가끔은 양보하기 싫으면 투덜거려도 괜찮아."

"……."

"그럼 어떻게 할지 걱정될 거야. 너는 지금 '표현'이 필요해. 네 감정과 생각을 말하는 거야."

언니는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왜 여기에 왔는지 생각해보면 역시 까마득해. 조증이 매우 심했거든. 심하게 울고 웃으며 발작을 일으켜서 응급실에만 2번 갔다 왔어. 생각해보면, 난 왜 이리 숨기는 게 많았는지. 나도 표현을 못 했거든."

"저도 노력하고 싶어요. 하지만 언니가 내일 퇴원하고 언젠가 저도 이 낙원, 그니까 보호병동에서 벗어나면 전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난 어느샌가 울적한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스쳐 간 옷깃을 떠올리는 거야. 그 사람의 향을 기억하며 우리는 비로소 성장하는 거지. 난 네가 잘 해낼 거라 믿어."

그 순간은 가장 고요했다. 시계 초침이 도는 째깍거림과 눈이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 중 하나가 될 것을.

"주원이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이 사인펜 세트 가져. 48색인데 정말 좋더라고."

"감사해요, 정말로."

아침이 되어 해는 졸린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사인펜 통을 꼭 안고 해람 언니를 배웅했다. 딸각, 문이 닫히고 언니는 떠났다. 이후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다희와 가인이는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 둘의 성격차이가 두드러졌다. 다희의 비관과 가인의 낙관이 심각하게 충돌했다. 결론적으로 싸움에 지친 다희는 말을 쏟아냈다.

"너…… 진짜 역겨워. 가식 덩어리."

"뭐라고?"

충격받은 가인은 복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또 우울함에 빠진 다희를 위해 간호사를 부르고, 가인이를 찾아갔다. 가인이는 매우 흥분한 상태로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며 울부짖었다.

"오빠! 나 이제 더는 못 해먹겠어. 방금 내 세상이 무너졌다고! 나 그냥 죽을 거야."

나는 급히 뛰어가 가인이를 진정시키려 했다. 다른 간호사가 나를 제지하였다.

"다른 환우 분들이 동정할만한 행동하지 마세요!"

나는 마음에 화살이 꽂힌다는 걸 다시 느꼈다. 나는 모두를 살리기는커녕 같이 죽어가고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새벽녘,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와 잠들지 못했다. 1시간 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아 결국 눈물을 흘리며 실실거렸다. 중간에 간호사들이 왔고, 결국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가인은 보호자와 함께 바로 퇴원하였다. 그다음 날, 다희도 퇴원했다. 이제 나 혼자구나. 오랜만에 마음에 구멍이 크게 뚫렸다. 주제를 알았어야 했다. 나도 이기적으로 행동해볼걸. 텅 빈 병실 창밖에 떠오르는 구름을 지켜봤다. 나는 퇴원하고 싶지 않아. 이 땅에서 떠나고 싶어, 저들처럼.

5-2.

다희마저 나간 병동에서, 나는 왼편에 있는 침구가 비어있는 것을 보며 자야 하는 고역을 치렀다. 뒤척이다가 잠에 취했다. 그리고 보았다, 해람 언니를. 언니와 단둘이 카페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꿈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챈 나는 섣불리 울지 않았다.

"언니, 오랜만이다."

"나도 진짜."

나는 언니가 너무 미웠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왜 떠났느냐고 옷깃을 부여잡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 아직 퇴원 못했다, 내 또래는 다 퇴원했는데……. 나 서운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선뜻 지나간 언니의 울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해람 언니는 내게 나긋이 말했다.

"넌 지금도 성숙해 보인다. 그런데 있잖아. 넌 아직도 표현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난 그게 미숙해서. 알잖아."

"모두 다 그거 어려워해. 그리고 넌 단계를 거쳐 갈 때마다 좋아질 거야."

"고마워. 그런데 정말 괜찮아질까?"

언니는 마지막 위로를 내게 흘려보냈다.

"괜찮아질 거야."

꿈에서 깬 나는 방황했다. 언니는 다음날, 다음 달, 다음 해가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이 정도면 됐다. 그녀를 선배로서 존경하기 위해, 해람 언니를 보내주기로 했다. 천천히.

 

6. 그래, 피어나느라 고생했어.

또래들이 모두 퇴원했지만 나는 다른 환우들과 적당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떠난 이들의 여백을 채우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시간이라는 약이 처방되고, 남들과 나를 연결 지으며 자신을 치료했다. 특히 자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항하던 형욱은 하루가 지날수록 변해갔다. 그는 나에게 가인의 이야기를 하며 관심을 보였다. 형욱은 환우로서 가인이가 상처를 마주하며 바르게 자라기를 은근 소망하곤 했다. 가인이가 떠나고, 그와 나는 소소한 보드게임을 즐겼다. 그리고 우리의 게임에 다른 환우들도 끼어들었다. 주로 게임에서 일희일비하던 사람은 다섯 정도로 나와 형욱만이 아니었다. 채빈 그리고 경하 언니, 재환 오빠가 있었다.

"……."

"제발 그러지 좀 말자고요."

채빈과의 첫 기억은 강동규 보호사의 탄식으로 시작되었다. 피가 끈적하게 묻은 채빈의 손을 간호사가 소독했다. 보호사는 얼굴을 구겼다.

"도대체 원, 어디에 자해할만한 도구가 있나요?"

간호사와 채빈은 조용했다. 사실, 늘 자신의 몸을 긁어내고 상처를 내더라도 언니는 나처럼 웃을 줄 아는 사람이다.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빈치 코드'라는 보드게임에서, 나는 형욱과 끈질긴 판을 이어갔다. 드디어 나에게 승리의 기회가 넘어왔고, 난 형욱의 마지막 남은 블록을 보며 움찔했다. 그리고 물었다.

"잠깐만 너무 비양심적인데요?"

"에이, 게임에 양심이 어딨어요."

재환은 대꾸했다. 우리는 분명히 깔깔거렸다. 그리고 입술을 물며 실실대는 채빈은 예뻤다. 단순히 웃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던 그 모습이 서럽게도 아름다웠다. 사실, 울든지 웃든지 진솔하면 뭐든지 좋았다. 등에 업고 가기 힘들 정도의 고민을 남에게 기어코 넘기는 행동조차도, 여기서 내가 본 것들은 용기 그 자체였다. 모래알 속에 촘촘히 박힌 사금 같았다. 채빈은 입을 가렸다. 그녀의 손에 감긴 붕대에서 갈색의 피가 보였다. 알 수 없는 감정의 빛깔이 쪼개지던 그 순간, 쓰러진 형욱의 마지막 블록. 나는 재환의 재치 덕분에 이겼다.

생각해보니 재환은 내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가 이 병동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환우들은 병동 계획에 따라 산책을 했다. 문 앞을 나서고 가운을 입고 8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갔다. 나는 병원 정문에서 보고야 말았다. 심하게 휘청이는 재환의 몸은 태풍에 꺾여버린 잎사귀의 고꾸라짐을 보는 듯했다. 의사는 재환을 부축하며 질문했다. 재환은 고개를 힘겹게 끄덕이더니 보호병동으로 다시 가는 듯했다. 나는 무례하게도 그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과연 다음에도 같이 산책하러 갈 수 있을지. 그 불안한 생각은 산산이 조각났다. 재환은 호전되었고 더는 땅을 보고 걷지 않았다. 다음 산책 시간에, 배드민턴을 하는 남자 환우들을 보며 그는 활짝 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채빈과 재환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나와 달리 그들은 성장하는 게 눈에 선했다. 취침시간이 다가오고 불은 미리 꺼두었다. 나는 독방을 쓰는 채빈 언니와 시간을 많이 쓰지 못했다. 그녀가 물을 마시려고 정수기 앞에 나왔을 때 난 은근슬쩍 물었다. 대학생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언니 대학생이라고 들었어요. 혹시 어느 학과 다니세요? 저는 생명공학과 지향하고 있어요."

"응…… 내가 생명공학과인데."

"진짜요? 정말 존경해요, 최고!"

"……고마워."

내 선배를 만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조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녀는 조금 피식했다. 나는 들뜬 마음에 폴짝거리며 침대까지 뛰어가 앉았다. 창밖을 보니 여전히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도 잘 시간이 되지 않았다. 건너편 창가 곁 침대에 경하가 슬쩍 밖을 내다봤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경하 옆에 다가섰다.

"언니 비 오는 거 좋아하시죠?"

"주원이구나, 응 맞아. 오늘은 거의 비 같은 진눈깨비네."

"번개도 쳤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게 말이야."

언니도 여기 나가기 싫죠.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겨우 추론한 사실을 그리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며칠 전, 내가 좋아했던 박수아 간호사분은 병동에서 나가기 싫어하는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나긋이 털어놨다.

"주원이는 참 신기해요. 자신도 그리 생각하지 않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간호사와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이 보호병동에서는 네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여기서 80%의 사람들은 집에 가고 싶다며 애원해요. 10%는 개방병동으로 옮겨달라며 부탁하죠. 8%는 보호병동이 그리 나쁘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리고 제 경험상, 오직 2%만이 이곳을 낙원으로 여겨요. 2%의 사람들을 만나면 솔직히 먹먹해요. 주원이도 그렇고 그들이 어떤 사연 때문에 이 좁은 곳에 만족하나 싶거든요."

실제로 나도 눈치를 못 챈 건 아니었다. 경하 언니도 이곳에 만족하는 정도이지 영원토록 보호병동에 눌어붙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나머지는 퇴원만 하면 살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나는 간호사의 말을 곱씹으며 침대에 누워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그리고 아침이 드리웠다. 식사하려는데, 구석 2인실 방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전에는 저곳에 아무도 없었는데. 보호사는 그 방 밖에 멀찍이 서서 애타게 이름을 불렀다. 발까지 동동 구르며,

"임숙자 씨! 임숙자 씨!"

이어서 들리는 누군가의 비명. 겉보기에도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간호사가 숙자를 부추겼다. 식사 시간이 된 지 20분 정도 넘어서야 그녀는 도움 끝에 의자에 걸터앉았다. 물론 내가 식사를 다 끝낼 때까지 그녀는 죽을 한 입도 먹지 않았다. 고개를 젓는 바람에 죽이 철퍽 떨어질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루 이틀 시간은 지나갔다. 토요일 오후, 나는 간식으로 과자를 받아서 먹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희가 좋아하는 과자였다. 속이 쓰렸다. 식탁에 앉아 감자 칩을 깨작거리는데.

"어어……?"

숙자 씨가 2인실 방에서 복도로 나왔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맞았다. 그녀가 놀랐을지 걱정했는데 하나의 얇은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허리를 천천히 폈다. 드디어 일어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으세요? 오른쪽이 병실이에요."

"……."

"제가 가까이 가도 될까요?"

나는 그녀에게 한 발짝씩 두 발을 번갈아 내밀며 다가갔다. 그녀는 멀뚱히 나를 보며 영양제 링거를 달아놓은 기둥에 의존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그녀 앞에 우뚝 서 있었지만,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볼 뿐이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혹시 과자는 드실 수 있나요?"

"……."

그녀가 날 향해 쭈글거리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비록 먼저 제안을 했으나 망설였다. 나는 과자 한 조각을 꺼내 드렸다. 그녀는 내 손에서 감자 칩을 빼내어 입에 약간씩 넣었다. 하마터면 위험하겠다 싶어 목덜미가 서늘했다. 나는 주변에 간호사와 보호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긴장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과자를 씹고 삼키는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나는 꾹 참은 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웅얼거리더니 갑자기 2인실로 들어갔다. 멍하게 있던 나는 조금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곧 그녀의 손에는 네모난 플라스틱 용기가 들려 있었다.

"무겁잖아요."

나는 당황하며 그것을 대신 들어주었다. 용기 안에는 딸기가 다섯 개 정도 들어있었다. 그녀는 딸기 하나를 집더니 내 입에 가져다 대었다. 얼떨결에 받아먹는 딸기였지만 상큼했다. 아무 말도 못 하다 나는 입을 겨우 열었다.

"감사해요."

그 이후로 숙자 씨와 나는 주고받는 게 많아졌다. 나는 살살 녹는 과자를 주로 샀다. 그녀는 매일 다양한 과일을 들고 2인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언제나 내 손에 한가득 과일을 쥐여주었다. 나는 숙자 씨의 끄덕임 아래, 그것들을 다른 환우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녀에게 과자를 한가득 쥐여 드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탈이 날까 두려워 조금씩 드렸을 뿐이다. 숙자 씨의 딸기를 먹던 형욱은 내게 물었다.

"둘이 친해요?"

"네……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 역시 숙자 씨와 친해지는 건 힘든가 봐.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눈높이로 서로 다른 세상을 관조하는 게 친구라면, 나는 쓸데없는 동정심이 많았다. 나는 그녀가 아침마다 식사를 거부하여 점심에 영양제를 맞으며 나타나는 게 보기 힘들었다. 그녀와 일주일을 보내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손잡아 봐도 돼요?"

그녀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내 양손으로 슬쩍 잡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다.

"간호사, 보호사님들 많이 두렵죠?"

"……."

"사실은 무서운 분들 아니에요. 물론 힘드시겠죠. 그분들도 숙자씨가 굶고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가끔은 믿어봐도 돼요."

"……."

"수고하셨어요."

나는 슬며시 숙자 씨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뒤돌아 2인실로 갔다. 분명 화났으리라 나는 단정 지었다. 오히려 숙자 씨는 청포도가 든 통을 들고 내게 왔다. 우리는 함께 청포도를 몇 개씩 나누어 먹었다.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상관없었다. 그날 밤, 숙자 씨를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급히 보호병동을 떠났다. 나는 사인펜을 들고 일기를 썼다. 숙자 씨의 이름을 적지 못했다. 남은 것은 오늘의 한 줄.

'죽고 싶지만 살고 싶기도 해.'

친구들이 떠나고 절망을 향해 달렸던 병동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하루였다. 보호 병동에 있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알맞은 속도로 성장했다. 그들은 메마른 땅에 꽃잎을 흩뿌리며 여러 색으로 차츰 물들었다. 오늘도 뿌리를 박고 피어나는 사람들을 위해 물 한 모금을 건네주었다.

 

7. 보호병동에 핀 들꽃

여자 병실 벽 한편에는 제비꽃 그림이 있다. 고개를 부끄럽게 치켜든 한 송이의 보랏빛은 주변의 기다란 잎들로 가려질 듯 말 듯 하다. 나는 졸음을 쫓아가며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그 꽃을 연습 삼아 대강 그렸다. 정신이 깨면, 그림을 보고 '진짜 못 그렸네'하며 쿡쿡거렸다. 그러다 가슴에 앙금이 가라앉으면 코를 푸는 척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잘 시간이 되어 여자 병실부터 불이 꺼지면 복도의 빛이 어둠을 뚫고 새어 나왔다. 그 불빛이 연하게 흩어지는 지점, 건너편 침대 구석에서 거인을 보았다. 그는 새까만 몸과 얇고 기다란 팔다리를 지녔다. 그는 병원 천장에 머리가 닿아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여 나를 보았다. 거인의 머리에는 두 눈과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둥그런 구멍들 뒤로 제비꽃 벽화가 흘깃흘깃 보였다. 그들이 내 머릿속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안다, 지금은.

13살의 나는 이상행동을 하였다. 귓가에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그곳에서 바로 뛰쳐나왔다. 거친 숨을 쉬며 쫓기듯 홀로 달아나는 내 모습은 오해를 살 만했다. 나는 온종일 괴물들에게 잡힐까 봐 문을 잠그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것들이 환각이란 생각을 못 했다. 갈수록 심해지다 못해 15살이었던 난 새벽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나는 졸음도 섞이지 않은 맨정신으로 먼저 잠든 엄마를 깨웠다.

"엄마, 벌써 자? 누군가 우릴 보고 있어."

"얘, 그게 무슨 소리니?"

엄마는 '또 시작이구나'하고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천장에 커다란 눈 하나 안 보여? 충혈되었는데? 천장에 뭐 던질만한 거 없나, 히히."

"……주원아 자자."

"아니야, 엄마. 또 뭐가 있는 줄 알아?"

나는 왼편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여기에 진짜 큰 블랙홀 있다? 손 넣으면 빨려 들어갈까. 속으로 들어갈래."

나는 그 벽을 더듬다가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엄마는 내 주먹을 쥔 두 손을 하나씩 풀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게 하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설득하는 엄마.

"주원아, 기도하자. 예수님이 다 알아주실 거야."

"응, 그러자."

보호병동에 오기 전, 1년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정말 애썼다. 한약을 지어먹으며 적지 않은 시간과 금액을 쏟았다. 엄마는 내가 망상에 빠지다 지쳐 잠들면, 혼자서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았다. 그렇기에 나는 무거운 죄책감을 덜었던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보호병동 침대에서 멀찍이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는 일기책에 끄적였다.

'오전인데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무거운 짐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느낌이다.'

안 그래도 침대에서 하품을 늘어뜨리니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 병동에는 바이크와 러닝머신이 있었다. 나는 가인이와 함께 운동을 즐기고는 했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인지 안전상의 문제인지 며칠 전에 운동기구가 모두 없어졌다.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인원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일이 매우 적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한 번 상담 시간이 오기를 고대했다.

"주원 씨, 상담하실래요?"

나의 담당의, 오규호 선생님이다. 첫인상은 굉장히 푸근해 보였다. 말투도 천천히 흘러가듯 부드러웠다. 매일 상담을 하면서,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사실에 감격하곤 했다.

"주원 씨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방금 그린 꽃 그림 감명 깊게 봤어요. 벽화 따라 그린 것 맞죠?"

"네 맞아요. 평소에도 그림 그리기를 즐기기는 했죠. 저는 그냥 평범하게 보통 실력인 것 같아요. 보다시피 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상상화 그림이니까요."

"정말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은 대단해 보여요. "

"음, 그렇게 제 실력이 뛰어나다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이 가장 편안하지만, 때로는 공부해야 할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혼도 났어요. 물론 상도 받아오고 하니까 별로 간섭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상을 받아올 정도면 잘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가요?"

나는 부끄러워서 웃어넘겼다.

"그렇다고 진로를 그림 쪽으로 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취미로 그리는 것뿐이며 이미 잘 그리는 사람은 세상에 깔렸거든요. 사실은 아무것도 하기 싫네요. 그냥 제 방에 누워서 멍 때리는 것만 하고 싶어요. 누구랑도 관계를 잘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군요."

아쉽게도 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끝났다. 유쾌함 없는 대화가 어두운 색채로 돌아갈 때야 상담은 종료되었다. 솔직히 상담하면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울보였던 나에게 사회복지사 장소율 선생님이 다가왔다. 나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울음을 쏟아냈다. 악몽과 다름없는 사건들이 내 마음속에 엉키고 설켰다. 나는 문제아였다. 그런데 소율 사회복지사는 내가 이미 훌륭하단다.

"선생님, 저희 고모도 폐쇄병동에 들어갔어요. 아빠는 그런 고모를 아주 못났다고 생각하시는데 어떡하죠. 저도 고모랑 다를 바가 없네요. 분명히 저도 쓸모없다 여기실 게 뻔하고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야."

"그런데 선생님, 모르시는 게 있어요. 전 죄인이에요."

"……."

침묵하는 소율 사회복지사.

"수십 번 상상 속으로 부모님을 죽여왔어요. 저는 정말 못난 사람이에요. 지금 부모님께서 저를 정신병의 그늘에서 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자꾸 동반 자살하고 싶어요. 괴물 같은 저 자신이 먼저 죽어버려야 끝날 것 같아요.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누군가 칼을 들어서라도 절 찔러서 없애버렸으면 해요."

"주원아, 그렇게 죽고 싶은 거니?"

"네! 정말로."

나는 이미 죽음에 대한 간절함으로 정신이 마비되었다. 한동안 나의 울음소리만이 면담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흐느끼는 나를 보며 사회복지사는 더 수그러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야……? 정말로?"

나는 소율 씨를 언뜻 보았다. 그녀의 살짝 젖은 눈을 보고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사실은 누구보다 더 살고 싶을지도 모르죠."

"주원아, 수고 많이 했어. 나는 그게 보여. 주원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난 눈에 선해.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버티는 과정이 험난했을 뿐이야."

그 말을 믿지는 못했으나, 소율 씨에게 나의 마음을 조금씩 넘겨주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도 틀어주고, 티타임에는 같이 앉아 둥굴레차를 음미하였다. 깊게 우려낸 둥굴레차는 왠지 모르게 텁텁한 맛이 났다. 나는 소율 씨의 옆을 맴돌던 공기를 한 입 베어먹었다. 그녀의 향기는 솜사탕같이 살살 녹았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으나, 나는 마음 한 뭉텅이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녀와 병동 내에서 가끔 탁구를 하는 것은 온전한 낙이었다. 결국, 소율 씨에게 한눈을 팔다 나는 두 세 번 공을 놓쳤다.

"아, 또 제가 졌네요."

"열심히 하자!"

나에게 '소율'이라는 세상이 생겼다. 운 좋게도 그녀는 평일마다 마음 치유 활동을 이끌었다. 나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난,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환우들보다 더 많은 활동지를 얻게 되었다. 그 외에도 그녀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다. 2월 중순, 보호병동 내에서 그림대회가 열렸고 다행히도 내 그림이 우승하였다. 그 4절 도화지 안에, 긴 머리의 여자애가 수줍게 벚나무 옆에 서 있었다. 그림 대회의 진행자인 소율 씨는 내게 초콜릿을 주며 웃음꽃을 피웠다. 주말이 더 지겨워질 무렵, 보호병동에 입원한 지 한 달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면담실로 불렀다.

"주원아, 이젠 날 만날 수 없을 거야. 이 병동에서 떠난다는 이야기야. 대신 다른 새로운 분이 오실 테니 그분과 잘 어울리기를 바라."

"……."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사회복지사는 병동에서야 자주 바뀌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그녀와 헤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이 토끼 인형을 너에게 줄게. 조그만 쪽지도 종이가방에 따로 넣었으니 나중에 퇴원하면 읽어보렴."

나는 토끼 인형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인형의 배를 쓸었다. 온기가 손끝에서 전율을 타고 올라왔다. 분명 토끼인데 짧고 뭉뚝한 귀는, 손가락으로 집어서 쭉 늘리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였다. 인형을 쓰다듬으며 나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저 토끼 인형 이름 지었어요!"

"무엇으로?"

"앞으로 이 인형을 소율 씨라 부를 거예요."

그녀는 손뼉을 치며 고맙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데. 나는 미리 색칠해둔 제비꽃 그림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수십 개의 유성우가 떨어지는 풍경처럼 반짝였다. 우리는 이별 앞에서 하나가 되었다. 제비꽃의 꽃말은 '순진한 사랑'이다. 소율 씨는 한 송이의 잊지 못할 소망이었다. 나는 온종일 그녀만을 떠올리며 헤벌쭉 웃었다. 2월 상반기까지 소율 씨도 해람 언니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똑같이 기대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릴 적 나를 포옹했던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방향 잃은 여린 삶을 잠시 보호했었다.

지독하게도 소율 씨의 말 한마디와 손길 한 번은, 나를 사랑이란 열병에 앓게 하였다. 소율 씨도 평생 날 기억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유치하게도 발표를 하거나 관심받으려 손을 번쩍 들고 기다리는 초등학생보다 훨씬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혼자 설레 하다 홀로 떠나보내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끝을 맺은 것이다.

소율 씨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새로운 사회복지사와 어울리지 못했다. 그 사회복지사의 이름조차 외우려 들지 않았고, 그녀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서로 고개를 돌렸고 아는 채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딱딱하게 굴었을 텐데. 당시에는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나는 서서히 무너지는 '소율'이란 세상을 끊임없이 재건했다. 시간에 자비란 없었다. 여러 번 그 세상을 고치기에 너무 큰 힘이 들었다. 난 결국 소율 씨의 얼굴을 회상하지도 못해, 뼈대만 남은 터를 추억이라 불렀다. 나는 그 자리를 두고 머나먼 평야로 향했다. 땅에 핀 민들레, 코스모스와 다른 제비꽃들. 발자국이 사라져도 돌아오는 길이 끊겨도 나아가리라, 귀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속삭였다.

걷겠다고, 또 걷겠다고…….

 

8. 그리고 넌 자랄 테니까.

'나 언제부터 이 짓거리를 했던 거야?'

나는 벌겋게 부어오른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덮었다. 평소처럼 내가 먼저 저녁 식사를 마쳤고, 이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 몸에서 나는 건지, 침대에서 나는 건지.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두 번 접은 종이 한 조각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고는 오른팔로 두 눈을 가렸다. 보랏빛 잔상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일부러 나의 신체에 지워지지 않는 낙서를 한다. 오직 나만 이런 것인가. 창밖에 순수한 밤하늘에도 얼룩이 좀 묻어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당신의 몸도 말끔할까. 자기 합리화를 한다. 하긴 나처럼 더럽기도 힘들 거야. 웃기지만 나는 피부에 끔찍한 직선들을 새기며 죄를 용서받으려 했다. 엄마의 중우울증, 아빠의 자살시도를 떠올리면 내 기분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햇볕 없는 그림자에 숨어 홀로 시간을 날렸다. 동시에 내 몸도 파괴했는데, 외박이나 외출을 하면 남들 몰래 자해했다. 심지어 보호병동에서도 날카로운 종이로 악습을 유지하였다. 이런 조그만 종이 쪼가리가 내 피부를 갉아먹는다는 게 신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도 긋다 보니 종아리의 곡선을 따라 피가 나고 멍울이 졌다. 줄무늬가 도배되어 매우 흉했다. 그만하고 싶어서, 나는 간호사에게 종아리를 보여주었다. 다시는 자해를 안 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그 다짐은 처참히 무너졌다. 접어놓은 종이는 내게 깝죽였다. '더 안 해? 열 번만 더 그어봐.' 악에 받친 나는 스무 번을 긋다가 횟수가 서른 번도 훌쩍 넘어섰다. 내 몸은 언제나 찢고 자를 수 있는 종이로 전락하였다. 스스로 웃겼다. 종이가 종이를 해친다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처를 내는 부위가 팔과 손목 등으로 넓어졌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취침을 앞둔 시각, 박수아 간호사는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호출했다.

"주원, 나를 따라나오세요."

나는 일이 잘못됨을 직감했다. 잠시 도망칠까 싶었는데, 보호병동은 탁 트였고 화장실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슬리퍼를 질질 끌고 그녀를 따랐다. 수아 씨의 뒷모습이 복도 바닥에 비쳤다. 좌우로 흔들리는 그녀의 어깨는 불안정했다. 자괴감의 색채가 내 심장에 묻었다. 그녀는 보호병동 구석에 있는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아 씨는 단호했다.

"손, 손 내놔요. 두 손 전부다."

"……."

비밀을 들켰다. 내 뺨은 붉어지고 양쪽 귀는 뜨거워졌다. 난 떨리는 두 손을 내밀었다. 두 손바닥에는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른 곳은 없나요? 저번에는 다리에 했잖아."

"네…… 없어요."

"또, 왜 그랬어요?"

나는 글썽이는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약해지기 싫었던 난 삐딱하게 굴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다 싫어요."

"저번에도 내가 말했잖아요. 주원이 나중에 성인 되면 하고 싶은 거 많아질 거예요. 옷도 마음껏 입어야 하는데 예쁜 몸 이렇게 만들면 나중에 어떡하려고."

"제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

"살아야죠. 주원이 없으면 나는 어떡해."

와중에 그녀는 내 손을 꼼꼼히 살피고 나를 달랬다.

"아파요. 아픈 거 알아요, 주원."

"이런 세상을 버티는 게 과연 중요할까요?"

"가장 중요하죠."

울컥 치미는 설움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잠시 기다리라 했다. 나는 맥이 풀린 다리를 이끌고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강동규 보호사가 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주원찡."

그가 흔히 부르는 나의 애칭이다.

"손을 그었어요?"

"네. 심하게는 아니고요."

동규 씨는 한숨을 뱉고 무심한 듯 말했다.

"나중에 크면 알아요.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나 자신을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배를 채우긴커녕 서서히 죽어가게 되는 거죠."

"……."

"어쨌든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나는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입만 아프니까. 처음으로 그가 나를 어색하게 대했다. 밝은 목소리가 특히 부러웠던 보호사였다. 처음으로 나에게 애칭을 붙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유쾌한 사람. 나는 한참을 자책의 늪에 빠져있었다. 동규 씨는 고개를 숙였다. 당신들은 틀림없이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붙잡았겠지. 그러다 얼마나 놓쳤을까.

'그렇다면 나라도…… 아니 나는 살아야지.'

주말 밤이라 오규호 담당의 대신, 다른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였다. 누가 등을 툭 건드리면 목놓아 울 것 같았다. 우여곡절 상담이 끝나고 터덜터덜 침대에 드러누웠다. 수아 씨는 내게 안정제를 주사하였다. 바로 잠들 거라는 그녀의 말과 달리 나는 한 시간을 뒤척였다. 이불 밑에 완전히 숨어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3월이 되었다. 부모님께 이번 달 중순까지 보호병동에 더 있겠다고 이야기했으나,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날이 개학이었다. 병동 내에서는 학교의 수행평가나 과제를 해낼 수 없었다. 부모님은 수화기 너머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병동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터놓고 있었다. 늘 당당한 형욱, 친근한 경하, 활기찬 재환, 미소가 고운 채빈…… 없다. 그들은 전부 무거운 철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아무래도 떠나야겠네. 나는 규호 담당의와 마지막 상담을 했다.

"아직 환각 증상이 남아있는데 퇴원한다는 게 불안해요. 여기서는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는데. 집에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동안 제 몸에 상처 내고 그런 건, 스스로 지치고 우울해서 그랬어요. 그래도 앞으로 괜찮으리라 믿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주원 씨, 또 울어요?"

서른 번의 상담이 종료되고 나는 외박을 나갔다. 두꺼운 겉옷을 입었는데 역시 추웠다. 늘 따뜻했던 보호병동과 달리 칼바람에 얼어붙는 바깥이었다. 차 안에서 부모님은 별말씀이 없었다. 엄마는 서리가 낀 차창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며칠은 아주 추울 테니 꼭 따스하게 입고 다니자. 꽃샘추위니까."

"그럼 곧 꽃이 피겠네."

가로등의 주황 불빛은 차례대로 내 무릎을 밟고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보호병동에서 당신은 하나의 태양이 아닌 집집이 널린 전등이었다. 우리의 만남을 일일이 저장하기에 세상은 너무 넓다. 새 인연을 마주할 날도 충분히 남아있다. 물론 당신은 나의 일부이다. 그러나 당신이 내 품에서 빠져나가도, 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찮은 젠가 놀이나 다름없는 인간관계에는 휘둘릴 수 없다.

3월 2일, 나는 자주색 넥타이를 매고 체크무늬가 있는 동복 치마를 입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학년 부장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강당에서 입학식을 진행했고, 수업 시간에 바로 이어지는 자기소개 시간을 마쳤다. 학교가 끝나고 부모님은 나를 보호병동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짐을 미리 챙겼다. 왜 이리도 미련이 남는지. 해람 언니가 남긴 48색 사인펜, 환우들의 글씨가 남은 롤링 페이퍼……

3월 3일 나른한 오후, 나는 환자복을 벗고 연두색의 후드티를 입었다. 빼곡한 십자 무늬의 압박에서 해방되어 후련했다. 당시 수아 씨는 병동에 보이질 않았다. 작별 인사도 못했는데. 동규 씨는 나의 짐을 문 앞까지 옮겼다.

"주원찡, 잘 지내야 해요."

"네!"

그는 흠이 곳곳에 난 열쇠 하나를 꺼냈다. 동규 씨가 손잡이 구멍에 열쇠를 넣고 시계방향으로 돌리자, 현실 세계와 병동 내부를 이어주는 문이 열렸다. 엄마는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아빠는 정신과 약 부작용에 대하여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정신과 교수는 외래 진료를 위해 아빌리파이정과 프로작 등 일주일 치 약물을 처방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난 소율 씨가 남겼던 작은 쪽지를 펼쳤다. 그녀의 아담한 손글씨.

'응원해, 네가 더 빛나도록.'

신기하게도 한가득 쐬는 햇볕 속에서 당신의 체온을 느꼈다. 생각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나 보다, 당신은. 한 달의 짧은 기간 동안, 현재 차디찬 겨울이 아닌 곧 찾아올 봄을 떠올리기를 반복. 어느덧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9. 끝없이, 앞으로. (에필로그)

지금은 다른 병원에 다니지만, 지금도 새사람 병원의 정신과 교수께서 마지막 외래 진료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좀 보세요! 지금 얘가 살아있는 게 기적입니다. 불안과 우울 그리고 환각 증세도 있어요. 곧 있으면 뛰어내릴 게 뻔한데 겨우겨우 참고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병동 생활을 끝내고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으니까. 때로는 내가 보호병동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오히려 부인하고 싶었다. 그 추억을 아끼며 보살피지 못했다. 후회스럽게도 나는 보호병동에서 물려받은 것들을 소중히 다루지 않았다. 해람 언니의 48색 사인펜 중 반을 잃어버렸고, 소율 씨의 쪽지와 활동지들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자신을 스스로 질타하기에 바빴다. 약 9개월이란 세월을 정신질환 치료에 투자했다, 절망으로 가득한 나날이었다. 9월 12일, 나는 아파트 2층에서 판단력이 흐려진 채 뛰어내렸다. 타박상을 입고 코피를 사흘 동안 흘리면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듯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2018년 9월 12일에서 2년을 더 버텼다. 살아보니까 정말 힘들더라. 도망치고 싶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니 수능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성적 좀 올리겠다고 재수학원에 갔지만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난 아직 살아있다. 지각할까 봐 학원까지 뛰어가면 늘 들을 수 있는 심장 소리가 나는 새롭다. 사람은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삶을 알아가는 중이다. 살고 싶지 않은 당신을 억지로 절벽에서 끌어내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절벽에서 텐트를 설치하고 당신과 삶의 끝에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보호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지금도 살아있을 거란 상상. 그들이 원 없이 이 세상을 누린다면 난 행복할 것이다. 물론 당신도 다를 바 없다.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기나긴 여로를 맨발로 걸어오느라 수고했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한 마디.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소율씨가 주었던 토끼 인형을 그린 그림)

사랑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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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늦겠지만

버스에 타면 늘 단골 자리가 있다. 교통카드를 찍고 한 계단 올라가서야 탈 수 있는, 기사님의 운전석 바로 뒤 위치한 자리이다. 눈이 오지 않았는데 나는 늘 미끄러질 생각만 했다. 몸을 뒤로 넘어뜨리고 나서야 의자 등받이가 내 뒤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참 다행이지. 버스 문이 피식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퀴가 굴러갔다. 처음에는 한 발짝 정도 슬슬 나아가다, 본래의 속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버스가 1단지에서 출발했어. 뒤에 있는 아주머니께서 전화하시는데. 그분의 따님일지 반갑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이셨다. 머지않아 나의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발신자명이 떴으나 눈앞이 희뿌옇기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화면을 내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세희 언니였다. 전화를 받은 후, 정말 간단한 대화였다. 세희 언니는 오늘 낮에도 크리스마스 잘 보냈는지, 오늘 애들과 함께 저녁 먹으려 미리 모여있는데 몇 시까지 올 수 있을지 물었다. 이후로 버스 내 전광판을 지켜보았다. 몇 분씩은 꼭 어긋나있는 시계였다.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고 오른손으로 전원 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댔다. 일정하게 바뀌는 시간 속 숫자들에 압박감을 느꼈다. 창가로 서리가 눌어붙었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투명해지는 자국을 보았다. 버스는 좌회전해서 여느 대형마트 앞 정류장에 섰다. 그런 식으로 버스에 탄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버스는 계속 왼쪽으로 돌았다. 때로는 덜컹거리고, 때로는 급정차했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보니 동네 중학교 벽면에 붙여진 메시지들이 눈에 밟혔다. 때마침 버스 바닥 부분에서 히터를 틀어서인지 발목이 따뜻했다. 물론 가슴 한구석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어느덧 번화가 쪽으로 회전하는 버스. 나는 멍하니 다시 하얘진 창가를 보았다. 버스용 신호등에 초록빛이 켜지니 금방 목적지였다. 하차하며 카드를 찍었다. 매서운 공기에 눈물이 고였다. 눈이 완전히 없어진 광장은 몹시 차가웠고 메말랐다. 기나긴 바람과 함께하는 성탄절이다. 나는 광장의 트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 트리는 수백의 전등이 달려있었다. 모든 전등의 얼굴은 파랗다가 다시 하얗게 빛을 뿜었다. 인파 속에서도 아는 얼굴이 하나 보였다. 나를 포함한 넷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서연 언니였다. 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기에. 아마도 이 날씨에 짜증 나지 않았을까. 나는 머쓱하게 언니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언니도 이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우리는 별말 하지 않았다. 내가 “날씨가 너무 추운데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 언니는 “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온 지도 얼마 안 되어서.”라고 앞장설 뿐이다. 서연 언니는 같은 무리였지만 그렇게 자주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니까, 어색한 게 당연하겠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성탄절 캐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각자 대열을 바꾸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황홀한 사람들은 셔터가 터지는 작은 소리에도 웃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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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매미보다 금방 뒤집히곤 했지만

배를 보이고 죽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다. 우린 반드시 엎드린 채 죽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등을 드러내며 숨이 멎는다는 것은 평범한 임종이 아니다. 등줄기가 공중에 훤히 드러난 채로 잠들어버린 이들이 늘어난다 해도 가슴에 묵직하게 놓인 서러움이 풀려야지. 우린 그걸 제대로 된 죽음이라 부른다. 자꾸만 떠오르는 숨들은 파도를 마신 후 주마등에 덮인다. 점점 뭍으로 다가오는 운동화들을 본 적 없겠지만, 그중 한 켤레는 분명 주인의 발보다 치수가 크겠지. 신발끈 매듭은 늘 단단해야 보기 좋아 보이던데. 급하게 떠나는 여행이라서 대충 묶었을 것이다. 혼자 한강 다리에 가서 철로 된 난간의 차가움을 쓸어내고 싶었다. 검게 그을린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모르는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 별을 밟는 것에 죄책감이 들곤 한다. 우리의 운동화도 너무 더러워서. 턱까지 차오르는 뜨겁고 싸한 기운을 이겨내려고 자기 전 약 봉투를 뜯을 때마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건 너무 짧아 한정판 상품을 대량 구매하는 것처럼. 한 번이라도 더 숨 쉬는 것을 의식해봐야지.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어렵사리 세상을 떠나 다른 별로 옮겨 간 이들을 떠올린다. 약의 둥근 모서리가 손바닥의 손금을 타고 구를 때. 너무 쉽게 떨어지는 몸들을 생각하면 자꾸 우리가 떠오른다. 수면등을 키고 얇은 이불을 덮어도 나의 입속에 털어놓았던 모진 말들의 몸집이 커져 숨통이 막히게 된다. 병든 사람들의 신음이 위 속에 녹을 때까지. 부작용이 없길 소망하는 기도를 중얼거린다. 부작용, 배를 감싸 쥐다가 밤을 지새우고. 간혹 열린 베란다 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별 알갱이들처럼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아파하고, 아파도 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 높은 다리 주변에는 잡초가 많다. 홀로 남은 사람들은 나방의 날갯짓 소리에도 나처럼 복통을 느꼈을 것이다. 야밤에 서성이던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화제 몇 알과 사람의 목소리였다. 은은한 새벽달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순간, 네가 있는 메신저 방에 알림이 뜬다. '다들 자는 거야?' 친한 언니에게서 온 메시지. 지금은 새벽 다섯 시잖아. 나는 피식 웃음을 낸다. 그런데 여름엔 이른 다섯 시에도 해가 뜨긴 하는구나. 그렇게 낮이 오면 우리는 늦잠에 들고 한층 느린 꿈을 꾼다. 나의 잠버릇은 좀 고약한 편인데 주변의 이불을 끌어모았다가 다시 풀어헤치고 완전히 두 손발 벌리며 잔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낮에 일어나 볶음밥을 한다. 약 먹은 빈속에 배고프면 잠이 안 오지. 식사를 마친 후 싱크대에 그릇을 넣고 물을 받아둔다. 지금 나는 그럭저럭 살 만하다, 너도 그렇니. 글을 쓰면 입술을 닫고 있는 근육이 이완되는 것처럼 뭐든지 편히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도 오늘 새벽에 깨어있었지. 널 만나면 나의 걱정이 솟는다. 과연 우리 모습을 이 용지에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너에게 손을 제대로 뻗는 중일까. 최대한 오랫동안 숨결을 지어낼 수 있길 바라며 내게 있어, 애원하듯이 적어 내린 극복 서사는 질리지 않는다. 몇 번

  • 사랑하마
  • 2021-09-14
표류하는 한계를 뚫고

노력과 재능 모두 한계가 있다. 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능이 없으면 얼마나 초조한지 잘 안다. 이번 주 내내, 몸도 정신도 지쳐있었다. 텅 빈 용지 위에 쓸 수 있는 문장은 없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어, 숨이 턱턱 막혀와서 가만히 엎드렸다. 팔뚝에 눈물을 다 묻혔다. 종이 한 장을 꺼내 간단한 그림을 그렸는데 자꾸 입술이 말랐다. 그림도 그릴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는 이 무력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입술을 뜯었다. 뜯은 딱지가 으깨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과물이 없어도 과연 상관없을까. 다른 농도의 의견들이 머릿속에서 섞였다. 그러다 드는 생각, 나 정말 노력하고 있나. 과연 재능이 있을까. 어느 분야에서든 한계를 마주한다는 것에 너무 미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넓은 도화지의 맛을 처음 알았다. 그 텅 빈 바닥은 나에게 점을 찍어보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연필을 잡고 몇 시간 동안 그린 작품이 있었다. 물론 그전에 무언가를 제대로 그려본 적은 없었다. 비뚤게 튀어나온 선들을 겨우 덧칠했던, 크기도 손가락만 한 그림은 정말 허접했다. 마음에는 이미 그림을 향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후로 새벽 6시에 기상했다. 학교 가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버릇이 되었다. 좋은 습관도 아니고 조금 까다로운 버릇이었다. 잠이 많아서 학교와 학원의 쉬는 시간에 선잠을 자야 했으나. 그것도 거부했다. 틈이 날 때마다 색연필을 들었다. 가방 안을 주섬거리다 한 뼘짜리 스케치북을 꺼내고. 꾸벅꾸벅 졸며 선을 그었다. 몸이 약해져서 링거를 자주 맞았는데. 일단 한 손도 못 쓰고, 입에서는 마늘 향과 비슷한 약 냄새가 났다. 오른손잡이답게 링거를 맞을 땐 항상 왼팔을 들이밀었다. 왼팔 중앙부의 혈관을 못 찾는다면 손, 혹은 팔목이라도 맞아야 했다. 오른손으로 그림의 구도를 짜며 알사탕을 깨물던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림을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말주변이 없었다. 거절 표현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눈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나를 여러 방식으로 찢어버릴 것 같았다. 체육 시간에는 짝이 없었다. 짝이 생기더라도 그 애는 어설프게 3인조 팀을 만들거나, 몇 번 릴레이를 하다 어딘가로 달아나는 것이다. 나는 반에서 며칠 결석을 하더라도 모를 아이였다. 그렇지만 생판 모르는 애들도 내 그림만 보면 늘 기대 이상의 칭찬을 해주었다. 예고를 목표로 하며 입시를 하던 친구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나를 잘 알았다. 교내 그림대회에 세 번 나가서, 두 번 1등을 거머쥐고 왔다. 체육대회 현수막을 그릴 땐 언제나 내가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숙덕일 때, 전시된 그림을 비교하는 내용이 다수였지만 그곳에서도 실력으로 밀린 기억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미술 관련 진로를 찾아보라며 권유하셨고. 드디어 맨몸으로 뛰어든 도화지에서 성공적인 잠수를 해냈다. 더 깊게 잠수할 의지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가며 입시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는 내 그림을 선생님

  • 사랑하마
  •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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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마

    소설인지 수필인지 구별하느라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도 제가 겪은 현실이니까 일단 수필 쪽에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충동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썼기에 많이 모자란 글이에요. 그럼에도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이젠 시간도 용기도 남지 않았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보이지 않아요. 정말 삶이 절벽에서 보이는 경치와 같다면 차라리 좋겠는데. 가슴까지 차오른 이 물결을 보면, 제가 죽어가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모르겠네요. 왠지 숨이 조금 막혀요. 언제까지 저의 정신이 익사하기 직전의 상태를 유지할지 모르겠어요. 분명 제 몸은 헤엄치기 좋은 바닷가에 있으며, 저의 두 눈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고 있어요. 밤이 찾아오고 물살이 거칠어지면 드디어 끝이 오는 걸까요. 모르겠네요. 멘토님께서 제가 스스로 삶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학교에 다녔을 땐 부모의 날에 편지를 썼거든요. 그때는 형식적으로 사랑한다는 글을 쓰기야 했죠. 근데 부모님은 그만큼의 표현도 하지 않았어요. 저를 말 잘 듣게 뜯어고치고 싶어서 발악하는 마지막 수단이 '사랑한다'라는 그 말 한마디에요. 그래서 저는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너무 낯설어요. 뭐라고 해야지. 이 두통은 저를 미치게 만들어요. 정신과 약을 먹는데 요즘 환각이 불어나는 거 있죠. 이 글을 보면 막 비웃을 수도 있어요. 별거 아닌 일에 집착한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저보다 더 힘든 사람 많은 거 아니까. 그렇지만 솔직히 버티기 어려운 구석이 있어요. 보호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싶어요. 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가족들에게 미안하고요. 그래도 겁은 많아서 당분간은 살아갈 것 같아요. 감정에 휘둘려서 멀찍이 저 자신을 살펴보지 못했죠. 이런 글밖에 쓰지 못해서 스스로가 안타깝지만 더는 기대 안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성인이 되는 것은 아직 꿈꾸지 않아요. 너무 큰 기대니까요. 지금은 심장이 서늘해지고 있지만, 언젠가 약간의 힘을 얻어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면요. 그건 큰 축복이겠죠. 죽음도 삶도 목적으로 두지 않고, 혼자가 되어 조용히 기다려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걸요.

    • 2020-10-25 21:26:45
    사랑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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