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보고서
- 작성자 녹두
- 작성일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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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들었으면 하는 곡 - 조성모 가시나무
[극작전공은 인간 삶에 언제나 새로운 형식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발상능력과 존재의 조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예민한 통찰력 그리고 자기만의 개성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극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성능력을 지닌 극작가 양성을 교육목표로 한다.
예술사 과정은 인문학 및 예술일반에 대한 기초교양교육과 극작가가 되기 위한 전공교육을 실시한다. 전문사 과정은 작가가 되기 위한 심화교육을 실시하며, 독립된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자율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연극현장을 선도해 갈 자기 기획성 그리고 개성과 독창성을 지닌 자기 작품세계를 구축하는데 교육의 중점을 둔다.]
6년간 대안교육을 받아오며 주류와 다른 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고독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글로 옮기면, 보잘것 없어 보이는 나의 삶도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주는 후기와, 자신의 삶과 연관지어 말해주는 경험담은 스스로에게도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모 대학 자기소개서 중 발췌-
조제는 그만 눈물을 흘린다. 그런 조제의 뒤편에서 호제가 손짓한다. 영감님, 그리던 날이 찾아왔는데 왜 울고 계시나요? 호제가 손을 내민다. 조제는 꺽꺽대며 숨이 넘어갈 듯 흐느낀다. 호제의 손을 잡는 조제의 손은 늙고, 바랬고, 말랐다. 유리 벽 너머로 찬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오전의 빛이 앞서 걷기 시작한 호제와 조제를 비춘다. 모든 광경을 허탈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제제. 마침내 조제는 뛰어가고, 호제는 걸어가고, 제제는 멈춰 서 있다. 모순은 제제 앞에 남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가장 길다는 것이다. 조금 더 멈춰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겨도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0917 서울예대 입시글 습작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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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맘때쯤 나는 처음으로 소라껍질을 통해 바다 소리 듣는 걸 해 봤다. 한 달 전쯤 휴양지에서 주워 온 소라껍질이었다. 장소는 다른 소음이 없는 잔잔한 기류가 흐르는 곳. 껍질 귀퉁이를 귓구멍에 힘껏 욱여넣고, 눈을 감으면 마침내 싸아아 싸아아 작은 파도소리가 울린다. , 많은 시인들은 소라껍질을 작은 바다에 빗대 노래해 왔으나, 그 새벽, 홀로 난 그런 시들을 반대했다. 꼭 죽은 바다를 화장하고 피어오르는 연기를 담아둔 것 같아서. 낭만의 유효성이란. 생명이 다 한 추억ㅡ 그러나 나는 제법 많은 소라껍질들을 거느리고 있지 않나. 나는 생각한다. 더는 안부조차 묻지 않게 된 스승으로 칭할 수 있을거라 단정했단 선생들이며, 거실에 여전히 놓여 있는 오년쯤 죽은 햄스터의 빈 케이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얼글조차 가물한 짝궁에게 받은 색종이 편지, 휴대전화를 옮길 때 자의적으로 전화번호부에 부러 옮기지 않았던 수 많은 친구들의 이름, 여행 사진, 그런 것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기억에 한계가 있는 것은, 그 체취가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만, 미, 련, 을, 방, 생, 시, 켜, 새, 것, 에, 건, 강, 히, 열, 중, 하라는 암묵적인 배려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무엇이든 예술로 쓰려고 하는 나는 쓰임새가 없겠지? *나는 자주, 흐느끼는 어깨를 감싸 쥐기는 커녕, 또 다른 *비유를 찾아내며 위로를 보류하곤 하는데. 성가실 뿐이겠지. 여전히 한 가지 언어만을 고집하는 나의 사랑은. 나도 그런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던 때가 있었다. *싸아아 싸아아. *1) 연출된 그리움, 그리워한다는 착각에 빠져 현실의 행복을 부정하기. 보란 듯이 잘 산다는 말은 슬프다. *2) 멋대로 뮤즈를 선정해 마음에 드는 글을 써 놓고는, 무례한 창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갈등이 생겨 공유하지 않았다. *3) 너의 속눈썹 그늘에는 그 날 해일이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 비가 다 그치는 동안 자리를 지켰고 그게 다였다. *4) 네가 물리적인 파도였다면. 불친절한 여름 밤바다는 종용되지 않을 한기를 품곤. 나는 그 싸늘한 한기가 내 발을 훑는 걸 꽤 좋아했다.
- 녹두
- 2020-07-05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의 논지를 입증하듯, 나는 자주 전의 사진이나 기록을 꺼내보며 회상하곤 한다. 그때 그 장면의 감정, 감동, 환경이 주는 아득함이며 함께 있던 인물들을 향한 그리움, 그런 류의 향수. 흔히 “추억팔이”라 불리는 이 행위를 반복하며 나는 “아, 나는 과거에 잘 머무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았다. 전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이 현실에 사는 것보다 즐겁고 기꺼운 이유는, 과거의 기억은 꼭 초콜렛 상자 같기 때문이다. 상자 속에 있는 초콜렛들은 언뜻 보면 다양하고 폭 넓은 종류라서, 복합적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초콜렛”이라는 대분류 하에 같아서, 달큰하고, 단단하고, 혀에 살근살근 녹아 유희를 줄 뿐이다. 다시 말해 ‘그 때의 현재’와는 다르게 말끔하게 정제되고 가공되어 의식에 자리잡아 있다. 적당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고통과 실패담, 좌충우돌은 증발시킨 “함께”의 기억, 멋대로 맛대로 꾸며낸 감상. 이들은 전시하기에도 간편하고 알맞다. 기억이 “썰”로 전락하는 순간. 회한은 외면되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양질을 선호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욕구다. 나는 온건함과 타인 본위적이 아닌 진심을 추구하고 그 가치를 높게 산다. 고로 살근 살근, 정립하여 보는 나의 추억하기 요령. 첫 번째, 들려주기 용 “영웅담”과 실제 감상을 분리시키지 않기. 그 당시 하고 싶었던 말과 의식 차원에 머문 생각들을 기억에 포함시키기. 과장, 생략된 추억은 동기부여는 커녕 혼란함과 이질감만을 선사하더라. 두 번째, 지나치게 미련ㅡ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는 과거의 줄기들을 끊어내기 위해, 혹은 수습하기 위해 과도하게 애쓰는 것 ㅡ 하게 굴지 않기.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움직일 것. 과거의 판단을 고집하지 말 것. 또한 간단하고 피상적인 공감을 얻기 위해 순간을 공유했던 누군가들에게 기억 조각을 들이밀지 말 것. 같은 날 모두 다른 일기를 쓰는 우리들에게, 그 날 좋았지, 하고 뒤에서 뻗는 손은, 주로 “일회성 감정 공유”를 원하는 외롭고 고독한 손일 수가 있다. 고독을 맘껏 누리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매번 안 진심인 이야기로 안 진심인 위로를 받으며 안 진심으로 나아진 척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수다를 떨다 보면, “넌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 때로 돌아갈래?” 하고 시시덕거릴 때가 잦고. “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중얼거리게 하는 기억 편린들도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러나 이것은 회상하는 자의 레토릭이어야지, 우러나온 진심이어서는 너무 슬프다.
- 녹두
- 2020-06-25
비닐하우스는 온화를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그 장벽에 구멍이 나고, 찬 바람이 새어들어오기 전까지 한 포기 풀에 불과하였던 나는 밖의 세상을 알지 못했다. 비닐은 서서히 찢겨나갔다. 사랑으로 착각했던 어리광들은 녹아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의 성장은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주위에는 무엇이 있는지, 뿌리는 얼마나 깊어졌는지, 야생 바람에 어떻게 해야 버텨낼 수 있게 될 것인지, 의식할 필요도 없었던 것들이 필수적이게 되었다. 이것은 죽음인가? 혈관 속을 타고 들어온 본질적인 공포는 살을 뜯어냈다. 구멍 난 가슴과 몸에는 온 기운이 줄줄 새는 것처럼 전신에 힘아리가 들지 않았다. 형태를 앗아가는 신체의 변화, 마비와 분리. 그러나 기이하게도 해방감이 들었다. 아리따운 모습은 가라, 귀하게 커 간 흠 없는 잎사귀는 떨구어지고, 내게 남은 건 튼실한 줄기 하나. 2019. 승화 전도되는 것은 물질적인 온도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이, 그리고 시기와 시기 사이에도 전도는 이루어졌다. 이나영 나는 연결을 체험한다. 어떤 기억은 떠나가지 않는다. 삶에 자신의 흔적을 기필코 남기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빙빙 돌다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개중에서는 의식의 영역에서 머무는 기억들도 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간신히 붙잡고 있는, 되뇌이고 되뇌여야만 하는 사연 있는 기억들. 어떤 미련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나는 가지의 일부고 내가 포함된 나무는 집은 고향은 따로 있다는 것처럼. 그 미련 탓에 장소를 공유하고 있지 않아도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 놓고 그리워 할 수 있을 만큼 유의미한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작년은 내 올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눈이 트인 기분이었다. 평생 작년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직감은 과연 운명이 되었다. 유아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던 나는, 어떤 삶의 형태가 옳고 그른 지 상기해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실은 알고 있다. 삶의 원리는 지나치게 단순하니까. 우리가 자꾸 복잡하게 사고하고 지쳐야 하는 이유 역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러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믿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맹신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상적인 내 모습을 향한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 나가기 시작한 계기가 작년 한 해였다. 작년의 모든 깨달음과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만든 관계들도. 두려웠다, 다시 모든 것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까 봐.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다시 진심 없는 칭찬과 격려에 나를 의지시켜야 할까 봐. 뜨거움을 알게 되자 그렇지 않은 순간의 나는 미적지근하고, 때로는 차갑게까지 느껴졌다. 익숙해지려면 순식간에 익숙해질 수 있을 터였다. 괜찮아지려면 순식간에 괜찮아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프기 싫었다. 숨가쁜 삼켜내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던 2018년
- 녹두
- 20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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