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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 작성자 사즈
  • 작성일 2021-09-02
  • 조회수 606

드라마라곤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왔다 장보리 보던 게 다였던 내가 본편은 물론 유튜브에 올라오는 촬영 비하인드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리즈. 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의대 동기 다섯 명이 사람 냄새 풍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뭐라고 줄거리를 쓰고 싶지만, 딱히 줄거리도 없다. 큼직한 흐름만 있다 할 뿐, 매화가 다섯 명이 자들을 보듬어주고 밴드 연습하는 내용이다. 별다른 줄거리도 없어 보이는 이 드라마에 내가 빠진 이유는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전개 없이 순하고 부드러운, '힐링' 요소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중 재벌도 한 명 있지만 유산을 갖고 가족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지도 않고, 환자들이 '진상'을 피워도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하는 의사들이 나오는 게 이 드라마다. 이십 년 지기 의사 친구들이 옛날 노래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밴드를 한다는 것만 봐도 어떤 결의 드라마인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얼마 전 왓챠피디아(영화 리뷰도 보여주고 내가 본 영화에 별점을 주면 그걸 토대로 내 취향 영화까지 추천해주는 아주 좋은 앱이다)어플에 들어가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평점을 보았다. 예전에 블로그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보았을 때는 호평이 꽤 많아서,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지루하고 오글거린다는 평도 많았다. 신기한 게 작위적이고 오글거린다는 평이 받은 좋아요 개수와 이 드라마가 삶의 낙이라는 평이 받은 좋아요 개수가 비슷했다. 나는 자극적인 전개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여줘 힐링이 된다는 이유로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매화 힐링을 강조하고 너무 도덕적으로 완벽한 등장인물들이 나와 힐링은커녕 오글거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나는 드라마 마지막에 항상 주인공 오인 방이 밴드 공연을 하는 장면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의사들이 밴드할 시간이 어딨냐고, 너무 현실성 없고 시청률 높이려고 일부러 그런 설정을 끼워 넣은 것 같다고 싫어했다. 시청률도 꽤 높고 호평도 많은 드라마라 당연히 모든 사람이 이 드라마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런 부정적인 평가를 보고 사실 좀 놀라고 이해도 안 됐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평가가 엇갈린 적은 종종 있었다. 포르투갈 펜팔 친구는 닭똥집을 좋아해서 즐겨 먹는다고 했는데, 나는 닭똥집 특유의 식감 때문에 닭똥집을 싫어하는 데다 즐겨 먹지도 않는다. 또 한번은 내가 재밌게 읽고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냐고 감탄을 하며 친구에게 책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후에 그 친구가 책을 돌려주며 내가 좋다고 한 바로 그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엄마에게 세심한 문체로 쓰인 설명이 많이 붙은 글과 간결한 문체로 쓰인 별다른 설명 없이 핵심만 간결하게 쓰인 글을 보여주며 어느 게 더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이 싫다며 놀랍게도 간결한 글을 골랐다. 나는 묘사가 섬세한 글을 좋아해서 엄마의 대답을 듣고 굉장히 놀랐었다. 아니, 이 글을 왜 싫어하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물론 머리로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끔 그걸 직접 목도하게 될 때마다 놀라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완벽해서 흠잡을만한 부분이 없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흠이 보이니까 신기하기도 하다.

가끔 나에게 정말 와닿는 작품들이 있다. 마음속의 무언가를 건드려서 온몸에 온기가 퍼지게 해주거나, 아리고 슬퍼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만들어 주거나 하는 작품들. 사람마다 그런 작품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게 오 헨리 단편 선과 세 얼간이, 베어타운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고, 기뻐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따뜻한 일인 것 같아서다. 또 굳이 그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이거 진짜 개노잼, 이걸 본다고 허비한 내 시간이 아까워' 식의 혹평을 들으면 속상하니까. 머리로는 그런 평들이 나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감동적이고 본다고 쓴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식의 좋은 평을 듣는 게 기분은 더 좋지 않은가? 그런 이유 때문에 난 모든 사람이 좋아해 할만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민트초코 호불호(나는 민초단이다. 반대로 친구는 반민초단이라 내가 공차에 갈 때마다 민트초코 음료수를 주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나 탕수육 부먹 찍먹 같은 식습관에서까지 사람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데, 어떻게 관심사나 가치관, 취향처럼 내면과 더 밀접한 부분이 판단하는 글에서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비단 글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음악 같은 다른 예술의 영역 등에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나는 비단 글이 아니더라도, 여러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만 듣고 싶었다. 좀 유치한 생각이긴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했다. 그래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억에 남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저 즐겁게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가끔 실제로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혹은 내 마음속에 들어있던 생각들을 모조리 꺼내서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면, 어김없이 그 사람에게서 '이거 쓸 때 되게 즐거웠나 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가끔 글을 읽을 때 아, 이걸 쓰며 작가가 정말 즐거워했구나, 글 쓰는걸 즐겼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니 그저 즐겁게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고전들도 호불호가 갈리는 마당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소년이 쓴 글이 어떻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겠는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다 보면 누군가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 내 글을 좋아해 줄 것이다. 글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공부 같은 영역에서도 내가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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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의 무게

얼마 전, 중학교 성적 산출이 끝났다. 3학년 여름방학 날에 받았던 꼬리표에 적힌 나의 전교 등수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성적에 자만했기 때문인지, 나는 차츰 공부를 손에 놓기 시작했고 중학교 내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시험 전 날까지도 친구랑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도, 시험 망칠까 봐 두려워서 물 한 그릇 떠놓고 돌아가신 조상님께 빌었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물 떠놓고 이번 시험 잘 치게 해주세요, 앞으론 벼락치기 안 할게요, 간절하게 빌었다. 엄마는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했지만, 성적 강박증은 있어 미칠 듯이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성적 낮아도 뭐라 안 할게. 그냥 네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해.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공부에 미련이 남으면, 그게 정말 평생 가." 솔직히 그때는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내가 그런 실패를 정말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그때는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했어서 모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을 믿어서 그렇기도 했다.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이번에도 잘하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겠네, 근데 공부하기 싫다. 이런 생각이나 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망했다. 특히 기말고사 중 몇몇 과목은 88점, 89점이 나와 몇 점 차이로 A를 받지 못했다. 내가 공부하지 않아 떨어진 성적이니 수긍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속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공부를 안 했다지만 수학만큼은 놓지 않았는데 성적이 너무 안 나와 기말고사 치고 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울었던 것 같다. 다른 과목도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아 몇 주간 굉장히 우울했다. 3학년 2학기 내신 성적을 합한 결과, 내 등수는 이제 두 사람 손을 빌려야 셀 수 있을 정도로 떨어졌다. 계속 전교권에 들다 갑자기 십 등 가까이 성적이 떨어지니 주변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담임 선생님은 슬럼프가 온 것이 아닌지 걱정하시며 진로 캠프를 권유하셨고, 학원 선생님은 아예 그 일로 상담까지 해주셨다. 학교 수학 선생님은 잘하는 애들이 이럴 때가 있다며, 하지만 중학교 시험 끝났다고 인생 끝난 거 아니라고 위로해 주셨다. 그런 말들을 듣고 아무리 지나간 일 바꿀 수 없으니 후회하지 않을 거라 다짐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그만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시험 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라 그 정도 후회는 친구랑 어디로 놀러 갈 건지 계획을 짜거나,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빌릴 건지 고민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가 언제 하는지 생각하는 일로 덮어둘 수 있었다.  어제 일이었다. 시험도 다 끝났겠다, 어제는 토요일인데다 김장과 대회 준비를 다 끝내고 나니 완전 늦은 밤이 되어 공부하기도 애매하겠다, 침대에 누워

  • 사즈
  • 2021-11-28
보석이 되려고 그렇게 아팠나 봐

내가 항상 바닷가에 가면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특이한 조약돌이나 조개껍질 찾기다. 당장 오늘도 오랜만에 바닷가에 놀러 가서 바닷가에서 보물찾기를 했다. 고작 조개 껍데기가 무슨 보물이냐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사실 부모님도 내가 자꾸만 바닷가에서 뭔갈 주워오는 걸 탐탁지 않아 하시니까. 조개구이 먹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게 껍데기 아니니? 하면서. 하지만 바닷가의 조개 껍질은 그런 것들과는 다르다. 파도에 풍화되어 모난 구석 없이 매끄러운 데다 색도 크기도 모양도 저마다 달라 수집하는 보람이 있다. 돌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독특한 색을 가진 온전한(껍데기가 약해서 거센 파도를 여러 차례 맞으면 잘 부스러진다) 조개 껍데기를 발견하면 그 순간만큼은 길 가다 만 원 주운 사람 부럽지 않다! 그런 연유로 모래사장에서 눈에 불을 켜고 보물을 찾다가, 특이한 색의 돌을 하나 발견했다. 모래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았기에 바닷물에 모래를 씻고 보니 에메랄드 색에 반투명한 것이 예뻤다. 처음에는 보석이나 독특한 색의 돌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소주병 파편이 파도에 풍화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소주병 파편이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파도에 밀려온 스티로폼 조각들은 바람에 날려 법석을 떨고 있었고,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담배꽁초는 누가 발로 비벼 끈 자국이 선명했다. 심지어 폭죽도 한 개 있었으니 소주병 파편쯤이야 뭐. 다른 쓰레기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파편은 다른 쓰레기들과 달리 해를 '끼쳤었다'는 점일 것이다. 술에 잔뜩 취한 누군가가 소주병을 돌에 내리쳐 깨뜨리며 파편이 탄생했겠지. 산산조각 난 소주병은 모래사장과 돌무더기에 지뢰처럼 숨어 사람들의 맨 발을 노렸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소주병 파편을 밟고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해변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커다란 조각을 주워 담으며 시골 밤하늘의 별처럼 흩뿌려진 작은 파편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렇듯 처음에 깨진 소주병은 해를 끼치기만 하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난 구석 많고 쓸모없던 유리병 조각은 작은 보석이 되었다. 고작 한 번 두 번 파도가 쳤다면 파편은 절대 둥글둥글해지지 않았을 거다. 파도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모래사장을 집어삼키면서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파도는 뾰족하던 파편을 매끈하게 다듬어 돌려주었던 것이다. 바닷물로 깨끗이 헹궈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소주병 파편을 보는데, 문득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오랜 시간 힘들게 하던 사건을 찾으러 굳이 오래 거슬러 갈 필요도 없었다. 작년에 왜곡된 역사적 사실과 본인의 개인적 정치적 의견을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시고, 다름과 틀림을 인정하지 않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수업 시간에 마스크를 제대로 쓰시지 않으셔서 크게 다툰 적도 있었다. 예전에 많이 존경하던 분이셨던 데다 선생님이 개인의 정치적 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한동안 많

  • 사즈
  • 2021-06-05
너무 빨리 달리는 사람

도서관에서 시간을 예상보다 너무 많이 허비해 병원 가는 걸음을 빨리했다. 시계를 보니 3시 50분, 5분 거리 병원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었고 병원 건물 일 층 약국을 흘끗 보니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진료와 약 처방까지 십 분 안에 끝마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최고층에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입한 병원은, 세상에, 만원이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내 앞에 대기 중이었다. 6시면 학원을 가야하고 최소한 5시 4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숙제도 덜했기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계획이 전부 어긋나고 있었다. 다급히 엄마에게 전화해 내일 병원에 들르면 안 되겠냐 물었지만, 엄마는 단호했고, 하는 수 없이 이십 분 동안 덜 끝낸 영어 숙제를 했다. 프런트에서 돈을 낼 때는 너무 서두른 나머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해 간호사 선생님이 잡아주시기도 했다. 진단서를 받고 가방 지퍼를 잠그며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엘리베이터에는 할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이 타고 계셨다. 입구 자리에 내가 타고 있었기에, 아마 내가 먼저 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문이 열렸고, 내 옆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에 서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먼저 내리셨다. 할머니가 내리시고 내가 뒤이어 내리려 했으나 앞서 내리신 할머니 뒤에 계신 할머니가 따라 내리려 하셔서 할머니와 나는 엘리베이터 문에 끼이고 말았다. 상황 자체로도 참 민망한 상황이었으나, 할머니 뒤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할머니를 잡으시며 '좀 이따 가도 될 것을….'하고 작게 말씀하셔서 더 민망해졌다. 귀가 확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황급히 약국으로 향했고 약을 받아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한참 어린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가려고 하다 자기와 끼인 것도 황당하실 텐데, 사과조차 안 하고 도망가 버려 할머니는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또 '고작' 좀 이따 가라는 말을 들은 것뿐이었지만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나쁜 짓을 했다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그게 잘못한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고 할머니에게도 잘못이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누가 나갈 건지 눈치만 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상황을 겪은 적 있기에 그걸 피하려 한 것이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기분이 더 나빠졌다. 집에 오는 길을 걸 때만 해도, 나는 오늘 하루가 최악의 하루라고 생각했다. 멎지 않는 콧물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고 점심을 먹은 직후엔 식곤증 때문에 졸음이 와 손등을 꼬집으며 잠을 참은데 다, 병원에서 시간을 그렇게 썼고 서두르다 면박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하루를 되짚어보니 그렇게 나쁜 하루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서두름은 항상 실수를 만든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학교에 늦었다고 깜빡이는 신호일 때 횡단보도를 뛰다 트럭에 치이는 순간 '서두름은 실수를 낳

  • 사즈
  •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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