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서운 게 없다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2-19
  • 조회수 1,777

사실 여전히 많다. 나는 겁쟁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자세를 취할 수 있어 좋다. 그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지만 반갑게 맞이할 수 있어 기쁘다.

전에는 어떤 방송에서 웹툰 작가가 새해 맞이하는 거 보면서 내심 찔렸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블로그에서도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청춘과 그로부터 따라 나오는 어떤 것들을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 삼던 작가의 이야기다. 이제 더는 청춘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를 갖게 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 새해가 되어서 눈물 흘리다 잠 드는 모습 보면서 패널들하고 우리 엄만 웃었는데 난 어쩐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작년 캠프에서 합평할 때만 해도 이런 걱정 할 필요 없었는데. 너무 교실의 시만 쓰는 거 아닐까요 묻자 합평 진행하는 시인이 그랬다. 여세실 시인보고 <분홍이 끓어오를 때> 같은 시 다시 쓰라고 하면 못 쓸 걸요? 지금을 즐기세요. 맞는 말이었다. <후숙>도 진짜 명작인데, 그때만 쓸 수 있는 그때의 시가 있으니까. 그러나 막상 지금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얼마 가지 않아서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드는 생각 '어 이상하다'. 나는 언제까지나 학생이고 혁명을 기다리고 교실을 부수고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그곳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아니었나, 정말로 언제까지나? 대답은 X였고 늘 그렇듯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 시의 시작부터 매번 갱신되는 마지막 지점까지 학교로 가득 차 있는데 난 이제 무슨 이야길 해야 하나.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잘린 사람, 재취업도 불가한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

1월 내내 이번 일 년을 진짜 잘 보내야 한다. 그런 강박감에 휩싸인데다 주변에 잘 쓰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깨닫기까지 해서, 솔직히 힘들었다. 잘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건 좋다. '잘 쓴다' 는 건 우선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글을 사랑한다는 전제 하에 탄생하니까. 그런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동시에 자꾸 나를 저울질하게 되어서, '걔는 걔고 나는 나다'라고 되뇌어도 잘난 사람들 사이에 동네 바보 한 명 낀 것 같아서 불안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예전에 그림 그리는 친구랑 이런 이야기 했는데, 수용도와 나이는 비례한다고. 나이가 많을수록 잘 그려도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쉽게 든다는 이야기. 단 한 살이라도 나보다 연상이라면 잘 포용할 수 있는데, 그 반대라면 자꾸만 나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 그때야 취미로 미술하는 나야 공감하며 웃고 넘어갔지만 문학에도 이 법칙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깨닫고 알고 웃지 못했다. 나는 작년에 뭐하고 있었지? 그 제작년에는? 공부 덜 해도 되는 시간에는... 아, 완전히 놀고 있었구나. 나름대로 생산적인 걸 해볼 걸. 하는 후회가 가득했다. 진짜로 인생 잘못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 모든 단추가 이상하게 끼워진 듯한 기분.

결론적으로 내 나이가 부끄러웠다. 앞으로 가기엔 아직 붙잡아두고 싶은 게 많지만 또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이 많은 거 잡아둬서 뭐 하게, 싶으면서도 미련이 남았고 그렇게 2월이 와서 끔찍했다. 소재 고갈로 썼던 시 털어내고 나도 만족도 0%인 상태로 여기저기 투고하는 웃긴 상황까지 연출하다가, 운 좋게 한 시인이 진행하는 시 창작 수업을 듣게 되었다. 거기 가서도 잘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수업 5분 전에 들어갔다. 어쩐지 나이순으로는 중간 쯤에 오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난 엄청난 막내였다. 막내의 당돌함으로 망년우 언급하고 인스타그램 아이디 주고 받으면서 한참 연상인 사람들이랑 친구 먹었다. 그리고 인스타 안 할 정도로 연상인 사람들이랑도 이야기 나눴다. 전부 목표가 등단인 것부터 시에 관한 여러 고민이 있단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생 때 등단해서 졸업 전에 첫 시집 안 내도 안 죽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오래 전부터 그러고 싶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한층 풀어지는 느낌. 다른 공부를 하다가 시가 눈에 밟혀서 문창과에 편입한 뒤에도 대산문학상 본심까지 올라갈 수 있고, 다른 업계에 일하면서도 독립 출판사를 통해 책 내도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내 인생은 20대가 되면 게임 오버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구나. 세계라는 리그에서, 시라는 리그에서 연장전은 언제까지나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지독한 독감 기운에 고열을 앓으며 썼던 시 <LA PUTA>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멋진 감상평을 남겨 준 시일뿐만 아니라 내 창작에도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가슴 파인 옷을 입'고 '껌을 씹으며' 교회에 간 뒤 '십일조는 꼬박꼬박' 내는 화자의 캐릭터성, 어떤 불량함과 당돌함이 인상 깊다는 이야기를 감상평으로부터 공통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걸 듣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평생 못할 것만 같은 걸 해냈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기존의 틀을 깨고 싶어하면서도 그 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궤도 밖의 사람을 그리려고 해도 잘 안 되었다. 내가 봐도 우습고 뻔한 이야기 투성이, 박상수의 시 <매일매일 birthday!>의 화자들처럼 혈관 사이로 나쁜 몽상가의 호르몬이 흐른다던가 김승일의 시 <옥상>처럼 급식을 거르고 옥상에 가서 담배를 피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이들을 데려온 시는 재밌을 것 같았고, 내내 원했던 세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꿈꿔왔던 이미지가 연출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잘 쓰는 게 우선이었으므로 내가 서툰 것들은 영영 제쳐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평생 그런 거 못 할 거야.

이제 '잘' 쓰는 것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즐겁게 쓸 결심을 한 이 상황에서, 처음으로 쓴 게 <LA PUTA>다. 얼마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나, 얼마나 재미를 향해서 끝까지 달려나갈 수 있나. 힘껏 썼지만, 그렇게 써놓고도 자신이 없었다. 이때 나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보아왔던 지인들이 그저 잘 썼다는 말 대신 '가장 너 다운 시'라는 말을 하니, 성공했다고 느꼈다. 나도 솔직해질 수 있구나. 동시에 궤도 밖을 돌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지루하지 않게 써볼 수 있구나.

어제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주하림 시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주하림 시인은 2010년 초 첫 시집을 낸 다음 9년간의 공백을 깨고 작년에 두 번째 시집을 냈다. 그 공백기 동안 나이를 차근차근 먹어가며 이것저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국적인 정취를 담아내는 달인인데 실은 20대 후반까지 해외 여행을 가본 적 없다는, 그런데 지금은 외국이 한국보다 편하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그것들을 들으며 문뜩 나는 내가 바뀌어갈 미래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나는 교실의 시와는 멀어지게 되는 대신, 더 많은 사람과 나라를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겠지. 학교를 벗어나는 대신 그 궤도 밖을 더욱 실컷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학생 티를 벗어내고 성인이 되어서 더 성숙한 마음으로 시를, 그리고 세계를 대할 수 있겠지. 나는 <LA PUTA>를 씀으로써 아주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던 패를 O로 뒤집으며 즐거움을 맛 보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일들로 하루하루가 물들어 갈 것을 생각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산뜻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아직 독감이 낫지 않았는데도 일을 벌였다. 지인의 지인이 주최하는 춘계 문학 웹진에 두 편의 시를 투고하기로 했다. 마감 기한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더는 남들이 보기에 '멋있다'고 느껴질 시를 계산해서 쓰거나 교실의 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마감 기한까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부터 튀어나오는 화자들로 무한히 달리는 이미지를 연출해야지. 일본의 4인조 밴드 세카오와는 世界の終わり, 세상의 끝이라는 풀네임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리더 FUKASE가 "세상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던 좌절의 순간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의미로 명명한 것이다. 본인이 병으로 굉장히 힘들어할 때 '아, 여기까지 떨어졌으면 뭐든 할 수 있겠지'하고 '무언가를 시작해보자'라고 생각해 시작한 것이 밴드라고 한다. 정말로 나는 십대의 끝에서, 리-스타트를 했다.

나는 여전히 나이를 먹는 게 무섭다. 나는 겁쟁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자세를 취할 수 있어 좋다. 나이 먹기를 피할 수는 없지만, 새로이 오는 내일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어 기쁘다.

추천 콘텐츠

세상의 끝, 세상의 시작 - sekai now owari의 노래를 중심으로 훑어보는 한 해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하나의 의식처럼 행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편지를 쓴다거나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시집을 준다거나 연말 보고서를 쓴다거나. 그렇지만 그건 일들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단단한 결심히 필요하고, 올해도 부지런히 용기를 내었다. 열 통이 조금 넘는 편지를 십 일 정도에 걸쳐 배달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구제 옷가게에서 구매한 크리스마스 스웨터들을 입어가며. 그리고 나의 영원한 -그러니까 영원한 건 없는데 영원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마녀 Y에게 편지를 준 것을 마지막으로, 12월 25일에 모든 배달이 끝났다. 집으로 오는 길부터 잠들기 직전까지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앨범 'tree'를 반복해서 들었고 나는 이런 기분들이 문득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다 끝낼 수 있겠다는 감정, 안심해도 좋다는 감각. 환한 불빛들 사이에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tree 앨범을 들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편지가 되었건 보고서가 되었건 그런 활자로 이루어진 고백들 외에도, 내가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었다는 게 존재했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세카이노 오와리의 노래를 듣는 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겠다는 것도. 한 해를 떠나 보내기 위한 내 일련의 의식儀式 중 유일하게 의식意識하지 않은 게 있었다는 걸. 이건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이어폰을 가지게 된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 계속해서 행해온 일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어린 겨울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나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tree의 반복 재생 횟수와 함께 자라났음이 틀림없고,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여러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무려 tree의 수록곡 중 3곡이나 내 시의 제목이 되어주었으므로. 내 사고의 토대가 되어 은연 중에 나의 가장 큰 시적 특징이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환상성; 그래서 김희준과 이민하 시인을 정말 사랑한다...- 되어준 건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炎と森のカー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 ミイラ男も踊ってる미라 남자도 춤을 춰 今宵、僕が招かれたカーニバル오늘밤 내가 초대받은 카니발 魔法使いは僕に言ったんだ마법사가 내게 말했어 「この恋は秘密にしておくんだよ、“이 사랑은 비밀로 해둘게, さもなければこの子の命が危ない」と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해져.” 나는 아주 오랫동안 부끄럽게도 그리고 우습게도 나의 생이 초록보다는 회색빛 재가 가득한 숲이라고 생각했고, 그 숲은 섬에 있다고도 믿었다. 재가 되어버린 마음은 모두 내가 가졌던 과도한 사랑들, 불꽃에서 왔다고도. 그러니까 불꽃이라거나 숲이 춤을 추는 그런 노래가 좋았다. 이런 노래로 시작하는 앨범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종소리가 짧막하게 삽입된 the bell이 실질적으로 첫 번째 트랙이기는 하다.- 내가 늘 꿈결같은 사랑을 쌓아 왔던 장소인 유원지를 배경으로 하는 노래인 것도 좋았다. 짝사랑하던, 함께 사랑하던, 한때 사랑했던, 그 모든 사람들과 갔던 곳이 유원지였으니까. 사랑이 있는 그곳에서는 마법사든 카니발이든 무엇이든 믿을 수 있었다. 눈 앞에 있

  • 모모코
  • 2023-12-31
초능력자의 메일링 –메일링 서비스를 하며 느낀 것

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딘가에 올려서,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 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 그런데 언제 하지? 언젠가는 해 보겠지. 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 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 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 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 그런 시인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 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中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 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 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 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 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 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 그런 마음들로. 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 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 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 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밤, 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 모모코
  • 2023-12-31
어떤 풍경은 흐르지 않고 고인다 –제주 4.3을 다루는 나의 시 리뷰하기

1.어리고 이상하고 외로웠던 나를 품어준 서울, 그리고 생의 대부분을 보낸 부산을 제외하고서 좋아하는 도시를 골라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아마도 제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제주는 내게, 단순히 아름다운 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놀랍게도 대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 한 번도 제주에서 살아본 적은 없으나 아주 사랑스럽게 바라보곤 한다. 나와 꽤 오랜 기간 마음을 나누었던 상대 또한 제주 출생이었는데, 그는 제주 4.3에 대해 목소리를, 꽤 큰 목소리를 자주 내곤 했다. 이전까지 나는 좋아하는 문우 언니들의 어깨 너머로 4.3을 바라보았다. 잘 알지도 못해 말하지도 못했으나, 그를 알고 나서 나 또한 제주 4.3에 분노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와 내가 더는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된 지금까지도. 단순히 그를 사랑했기에 제주까지 사랑하며 목소리를 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동안에, 진심으로 제주의 역사와 그 아픔에 공감하게 되며 깊은 곳까지 빠져들게 되었다. 그 깊은 곳의 씁쓸하고 아릿한 맛을 본 뒤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으나 유난히 제주 4.3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 역사 선생님께서 제주 4.3에 대한 영상을 틀어주셨을 때 남몰래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랑의 역사, 그리고 그 사랑들이 지녀온 역사에 관하여 수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평화기념관을 가는 버스에서, 내내 많은 감정들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와 보냈던 시간들, 그가 분노하던 얼굴과 매년 4월마다 sns에 게시글을 올리던 모습, 그가 아니더라도 문우 언니가 이따금 말하던 것들. 그리고 나는 기념관에서 마주했다. ‘백비’를. 백비는 아주 커다랗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비석이다. 처음 백비를 마주하였을 땐 단순히 그 크기에 압도당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 비석이 지닌 의미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 4.3이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지닐 때까지 기다리며, 여전히 백지의 상태로 있을 ‘백비’.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이고 머물러 있었다.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아주 작은 단어로서 무척이나 큰 세계를 직조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인을 꿈꾸는 나로서 이 세계는 어떤 단어로 명명할 수 있을지,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건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대답하지 못했으므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11월 9일, 한강 작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평화기념관에 이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 않아 무척 아쉬워했을 만큼 좋아하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제주 4.3을 세 명의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한강 작가가 이야기한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작가는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 물었을

  • 모모코
  • 2023-12-2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모모코

    글에서 언급된 저의 글 는 시 게시판에 올려두었다고 해요. 제가 쓴 대부분의 글을 글틴에 올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약간은 부끄러워졌지만, 역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감상을 듣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다시금 느꼈네요.

    • 2023-02-19 19:57:02
    모모코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