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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수필쓰기

  • 작성자 화자
  • 작성일 2023-08-10
  • 조회수 438

어느 적날 피천득 선생님께서는 수필을 이리 말씀하셨다.

'수필은 청자 연적 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문득이 글틴 누리집을 뒤적이다가 스친 생각이다. 그냥 내 짐작컨데 요번 7월 간 소설은 스무편이 넘게 투고되었고 시는 백편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은 이 수필은 채 열편에 간당간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에 어느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고 어느 시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어느 수필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나 역시 이 수필이란 것을 쓰려고 해본 것이 두어번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쓸수록 백이면 백 십중팔구로 소년감성의 오글거리는 마요네즈가 수필이라는 것으로 식탁에 오르니 밥상을 엎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다른 학생들 같은 경우도 나와 마찬가지의 까닭으로 수필을 접은 것을 여럿 보았다. 글틴에 수필의 양이 적은 것 또한 그 것과 맥락이 같을테다. 결국 수필의 차이는 필시 피천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십대는 절대로 쓸쑤없는 감수성의 서술 내지는 그에 준하는 경험의 차이에 있다. 

하기야 요즈음 들어서는 TV 프로그램에서 바닷가 여행은 보여줘도 등산하는 것은 본 적이 오래고 정열의 십대로서 학우들이 깨끗하고 조용한 주택가는 일절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안타깝기만하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썼다. 나는 글자가 입혀진 옷을 입지 않았다. 나는 화사한 것들을 피했다. 누군가 화장을 하면 지저분하다했다. 허구한 날 요즈음 청년들의 몸에 그려진 타투를 보면 괜스레 구역질을 하고는 했다. 개량한복을 입고 다녔다. 일부러 이제는 단종된 충무공이 그려진 백원 지폐를 수집하여 마트에 지불하고서 쫒겨난 적도 있다. 나는 새 것들이 싫었다. 그래서 오기로 수필을 썼다. 정열이 아닌 인조의 것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나의 수필은 어디까지나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보았자 주변으로 듣는 말은 ‘애어른이네’라는 말 뿐이고 나는 속된 말로는 젊은 틀딱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내 수필의 미래를 안다. 

고작 14번 내지는 15번의 가을과 겨울과 여름과 봄을 보았음에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그 중 5번의 가을은 수난의 시대를 또 다른 5번의 가을은 촛불의 시대를 살게된 까닭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비롯 코로나 시대에서 수필은 거의 멸종했다. 언제까지나 이 정열의 시대에서 마음 놓고 중년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터였다. 근 5년 사이에 30%를 앞다투어 찍던 TV프로그램들의 평균 시청률은 3% 안 팎이라고 한다. 

이제는 바닷가를 보여주거나 등산 프로그램을 보여줘도 볼 사람이 없다. 정열의 시대에 더 이상의 쉼은 무용하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들게되고 티머니 카드를 얻었다. 

조용한 길가나 공원을 걸을 여유는 더 이상 없었다. 냐는 수필이 무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개량한복을 입는 것도 그만 두었다. 그렇게 살아가니 그래도 살아는 지더랬다. 

나는 한동안 그림자 없는 귀신 처럼 여느 학생들이 무릇 그러하듯 대치동 학원가 돌림뱅이와 기말,중간고사 대비에 그 몇 달을 보냈다. 그러다가는 어느 밤 버스 창가에 기대어 서울 시내를 지나는데에 문득이 학이 머리를 훑고 지났다. 청조하면서 매마른 여인이 떠올랐다. 도심의 빛들이 창 문을 넘어 나의 두 뺨을 빛추었다. 이 정열의 시대에 나라도 살아있어야지. 모두가 죽었어도 나는 그러면 안되었지하며 어느새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버스 정거장을 내리며 주변으로 핸드폰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 무리에서 홀로 고개를 치켜 들었다. 어지간히 고개가 선 것이 무덤에서 일어난 것만 같다. 그리고 난 이제 수필을 쓰고 싶다는 일념으로 모두가 잠든 새벽녘 이 글을 써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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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자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이런 허투의 글 하나라도 위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자신만의 수필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 맞춤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 멘토님의 말씀 덕분에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멘토님께서는 어느 적날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주셨는데요, 위 글에서 어느 적날이란 의미는 적적한 날, 어느 날, 옛날이란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한 의미로서 사용하게 된 단어였습니다. 적적한 날을 하자니 그 본연의 맛이 살지 않고, 어느 날 또는 옛날이란 말을 쓰자면 헤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여 어느 적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네요. 혹여 이와 같이 적날이란 표현이 걸리신 분들이 계시지 않기를 소원하며 이렇게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2023-09-15 10:20:16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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