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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끝자락

  • 작성자 위다윗
  • 작성일 2024-03-28
  • 조회수 255



이 이불은 나를 덮기에는 조금 작은 것 같아

가장 가리고 싶은 얼굴을 가리면 나의 악취나는 발가락이 보이거든


그들이 나의 미래 그들의 미래 우리의 미래에 대해 대화하는 걸 듣고 싶지 않아

끝도 없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너가 이렇게 말해서 내가 짜증나잖아

어제 내가 세탁 부탁한 옷을 아직도 않 맡긴 거야?

여보, 거기까지 가려면 언덕을 넘어야되요


이제 그만

볼 거 다 봤고

웃어볼만큼 웃어봤고

울어볼만큼 울어봤어


연필이 부러지도록 시도 써보았고

사랑이 도망가도록 사랑을 쫓아봤어


무릎에 상처가 나도록 꿇어보았고

거울에 구멍이 나도록 내 얼굴앞에 서봤고

오늘은 작년 일기에 담겨진 나의 모습과 판박이인데


다만 친구들을 피해다닐 뿐이야

선생님들의 발걸음이 들리면 복도의 건너편으로 내 걸음을 옮기고

부모님이 방 문을 여실때면 내게 익숙한 이불속으로 들어가지


아 따뜻하다

오늘 공부는 잘했니?

학교는 별일 없었고?

별일 없이 힘들었는데

그런 걸 누구한테 말한담


십대들은 시를 쓰기보단

담배를 씹는 게 좋을지도 몰라

책속에 묻히기보단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게 좋을지도 몰라


그래도 울지마

우리에겐 꿈이 있잖아

두 눈을 감아봐

의식을 멈추어봐

잠시만이라도

너의 얼굴을 감추고

몸을 덮어봐


그때 우리는 고래와 상어와 돌고래와 물뱀과

우리가 끌어안고 내뱉었던 모든 생명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의 동이 트는 것을 보게 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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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속 연기처럼 부르는 너의 이름은 위스키, 내 혀 끝에 몇초를 쪼갠 시간의 조각이라도 좀 더 흘러줄래? 너의 듬직한 등을 향해화살을 겨냥한다쏘지 못한채로 사슴은 도망갔다 우리의 퍼즐조각들을 하나 둘 씩 모아봤어백일몽같기도 하고 한편의 사랑영화같기도 하고 내가 몰래 마신 막걸리 맛 같기도 하고 잊어버린 어린시절 노래 같기도 하고종이에 베인 살점같기도 하고유령이 된 내 친구야아무튼 너의 달콤씁슬한 미소가 보여세상도 우리 인생도계절이 바뀌듯 색을 바꿀텐데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영원한 겨울,오염된 첫눈의 색이야별이 없는 어두운 방의 천장을 보았어너라는 벽을 넘고 싶었지만 난 덮여있더라 의미를 놓친 인싸의 농담처럼 절반이 잘려진 장편소설처럼 사랑이라는 이야기속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우리 집 앞 편의점 직원이 내게 스스럼없이 건네준 위스키, 내 혀에 닿기 전에 다 쏟았어

  • 위다윗
  • 2024-05-08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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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 2024-04-30
쌍욕

핸드폰 연락처에서 찾은 너의 이름너에게 전화할수 없어 너에게 욕을 한다넌 그 욕을 듣고 다시 나에게 욕을 한다그렇게 우리의 이름은 서로에게 욕설이 된다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위다윗이에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황진훈이에요. 너가 많이 보고 싶어 하늘을 자주 본다너가 나에게 욕해주기를 기다린다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도대체 너는 얼마나 사악하길래날 이렇게 젠틀하게 죽일수 있는지욕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욕을 찾을 수 없다그저 너의 이름을 다시 불러 보는 수밖에

  • 위다윗
  •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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