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추상과 옛날의 세계에서의 기상학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4-04-20
  • 조회수 179






빨간 수성펜이 찍-그어지고

빨간 비가 내린다

하얀 숲에 깊은 상처를 내며

검은 악마들이 사는 흰 숲에


빨간 비는 나의 자화상

검은 악마는 내 바짓단을 잡는 빚쟁이

직선과 곡선으로 직조된 자그마한 창살

검과 흰이 겹쳐진 양복들


찍- 찍- 수성펜이 그어지면

검은 악마들이 했던 말이 사실이 되고

날카로운 검은 곡선이 나를 찌른다


단단한 양복에 몸을 기워 넣는 삶


아파, 아파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

서서히 빨간 비를 지운다

눈물이란 헛된 진로에 취해


빨간 비는 눈물에 터져 

흰 숲에 번져나가고


검은 양복을 입은 검은 악마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의 간언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펑펑 울었다


물에 약한 수성펜의 씁쓸한 진실이여

악마들은 탐욕적일지언정 진실이고

눈물은 행복일지언정 거짓이다


울지마라, 그리고 유성펜을 들어라 

약해진 마음에 검은 양복을 덮고

울음을 그쳐라 나의 아들아


푸른 눈물이 뚝- 떨어지고

지워진 빨간비 사이에 더욱더 진한 유성펜을 

찍-그은다

악마는 날 보며 웃고 

지워진 빨간비들을 유성펜으로 고치고

눈물은 뚝- 그치고

그래 이만 거울을 보자 


추천 콘텐츠

성병과 농구의 상관관계

막이 내린 농구코트 위로 갈대 바람이 분다농구화의 삑삑거림과 바다가 된 땀들갈색 바닥 그러진 흰 선떨어진 한 떨기의 털머리털, 다리털, 겨털잠수탄 애인처럼 보이지 않는 너나는 농구공을 꽉 쥐고 손을 뻗어, 손톱을 긁어 농구공은 포물선을 그리고 부르튼 사타구니움직이지 않는 정강이너는 뒤로 돌아 빈강당을 떠나고구는 원을 통과하고 그물은 흔들리고점수는 2점이 올라간다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너희들은 나를 떠나는구나피멍이 눈물 자국처럼 생기고 쪼그려 앉아 심호흡과 땀을 닦는다한 방울 두 방울 강당에 떨어지고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내가 너를 만나서 그렇구나빈공간, 빈강당, 빈코트골대와 공, 공과 나사실 빈공간이란 말이 잘못되었듯 공과 나는 붙을 수 없다아직도 흔들리는 그물 아직도 떠나지 않는 너 코트의 왼쪽 모서리 문 뒤에 너가 등을 기대고 나를 기다리는 것을나를 꼴리게 한 그 머리털 하나 안 남긴 것을 뻔히 알면서땀내, 암내, 다한증 두 손, 어긋난 사시퉁 퉁 계속해서 튀겨지는 공온몸을 바닥에 엎드려 닿은 코끝, 닿은 발끝아프게 뭉개지는 두 알과 개불 하나

  • 백석
  • 2024-05-19
너를 기다리며

새벽 세시 사십분지나가는 바람소리편의점 문이 딸랑하며 울리는 소리가스가 동난 라이터의 부싯돌 소리학생이 까는 핫식스의 병따개 소리한집안의 가장의 취한 발걸음 소리그리고 쓰디쓴 한숨달디단 하품꿀꺽꿀꺽 마셨던 핫식스꺼이꺼이 들이킨 참이슬사각사각 푸는 문제지타박타박 걷는 아버지띠리링 울리는 전화 벨소리사람이 없는 고독한 길거리사랑이 있는 뜨거운 목소리어디야 언제와 일찍와 걱정돼 위험해 조심해 말로 하지 않는 사랑은천천히 마중 나오는 발걸음은어느새 찾아와 어깨를 주무름은 누구를 위해서검은 하늘, 검은 콘크리트, 검은 편의점, 검은 담배, 검은 아스팔트, 검은 핫식스, 검은 별온통 검은 것들 뿐인데그리고 너는 너, 나는 나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너와하얀 메리야스를 입은 너가그녀는 그를 안고그는 그녀를 안고정장입은 사람은 살고교복입은 사람도 살고새벽 네시 반잠에 들 시간곧 동이 틀 시간 모두 잘자 사랑해

  • 백석
  • 2024-04-27
옛날 옛날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

갈색 흙에 파뭍혀 있던 수컷 딱정벌레를 잡아 잡아돌위에 올려 놓고 찍어 찍어 죽여녹색 피로 돌을 적시고 그걸 핥는다녹색피가 회색과 검은 색 그리고 은색이 살짝 뭍은 돌에 슬슬 사라질 때쯤 사라질 때주먹과 돌, 계란과 바위, 머리와 돌 뭐가 더 강하지 장난을 한다주먹을 찍고 계란을 찍고 머리를 찍는다희어져 버린 머리 생각 없는 머리동공이 확장되어 확장되어 떨어지는 나뭇잎과 꽃들이 보이고 보이고나는 나는 나는 흰색과 흰색과 흰색과 뭐였지 암튼 돌에 뭍은 녹색피 아니 빨간피 아니 계란의 흰 흰 흰 흰자와 노란 노란 노른자 아 그리고 딱정벌레어디갔지갈색 갈색의 흙과 그사이의 초록 초록한 나뭇잎푸른 푸른 구름 구름 하얀 하얀 하늘 하늘흙을 꽉 잡아 돌고나뭇잎도 돌고하늘도 돌고구름도 돌고 나도 돌고 딱정벌레도 돌고 우리 다같이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백석
  • 2024-04-1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