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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 작성자 데카당
  • 작성일 2024-04-29
  • 조회수 192

띵 울리는 머리, 꿈떡이는 혈류가 팽팽 돌아 황조롱이의 발톱 사이로 내린다

가지에 비벼지는 부리 사이로 미처 닦이지 않은 혈전이 툭 떨어지면 입을 벌린 채 지저귀는 나는 손가락 마디마디 핥아가며 깨끗이 해치운다

바닥에 빌빌대는 나는 이제 바구미와 쌀자루에서 노니며 혈전을 먹은 쌀 위에서 바구미를 끌어안고, 바구미와 뒹굴고, 바구미의 림프를 맛보고

바구미가 나를 보면 나는 바구미의 겹눈 사이에 겹쳐 쌀겨로 목을 동여매고 바구미는 피부를 질근질근 돌려가며 쏠아낸다

껍질 벗은 매파는 뜨끈한 혈전과 바구미를 주선하고 이들은 곧 백년해로ㅡ 


황조롱이가 다시 날아오를 때, 혈로를 들이킨 쌀이 바닥을 보일 때, 바구미와 함께 나아갈 논과 밭이 갈아져 있어야 한다

바구미가 혈전을 뿌리고, 가짜 피를 솎아내고, 배고픈 계절이 돌아올 때, 혈전이 자란 햇벼엔 내 머리가 주렁주렁 고개를 숙이고 있을테지만

노랗게 익어가기 전에는 피가 오르지 않을 것이기에, 황조롱이의 총배설강으로 나가는 것은 스스로 뜯어먹은 요산 뿐, 쌀겨 하나 보이지 않는구나

하얀 들판을 기다려야 하리라, 황조롱이의 발톱마다 혈전이 주렁주렁 걸려 각질이 마를 틈이 없고, 쏠아낸 가죽을 덮어 예민해진 바구미를 보기 위해서

하얀 들판을 들추면 돌돌 말려 단단히 묶인 햇벼들이 부둥켜 안은 꼴이며, 머리만 떼이고 나뒹구는 살덩이며, 아직도 얼지 않은 혈로며..

누렇게 뜬 혈로에 후ㅡ불어라, 불어서 덥히고 그 위를 뒹굴어라, 바구미에게


들판 사이사이 검게 늘어붙은 혈전 많기도 많으니, 황조롱이야

이리로 와보렴, 할 일이 있으니, 거기 전봇대를 박차고 떨어져보렴, 어서

바구미 숨소리 쉭쉭거리는 들판으로 내려와 너가 흘린 것들 좀 닦아보렴

이 모든 점들이 내 머리에서 나왔다니, 이 모든 것을 흘렸다니, 뛰어내리렴

뛰어내리렴, 나는 것보다 빨리 올 수 있잖니, 뛰어내리렴, 뛰어내려야지

아니, 아니

내가 가는게 맞겠지

같이 돌아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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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의 나무

달 없는 하늘, 좁은 천이 흐르는 길에 돌이 서있다 천에서 빗겨나가 무릎으로 기어온 돌이 서있다 천이 흘러나오는 까진 무릎 위로 돌이 서있다 땅을 짚은 무릎에 아침놀이 비쳐온다 무릎을 잡고 데굴데굴 굴러 다시 천으로 들어가자 흙탕물로 상처를 씻어내자, 딱지를 뜯어내자 천에 앉은 딱지가 쌓여 투명한 혈장이 방울방울 내린다 천에 부러 내려앉은 자갈은 천이 부럽다 분쇄기에 몸을 던진 자갈은 갈라지는 몸에서 나무를 본다 나무는, 천의 발원지에서, 잘도 뿌리를 내렸더랬다 돌은 달을 가린 나무를 들이박았더랬다 돌의 무릎에서 천이 솟아 쓰러진 둥치 위로 흘러갔더랬다 박살난 돌은 자갈로, 흩어진 자갈은 모래로, 모래는 바닥에 찢어진 십자인대에 조의를 표하는 눈을 모래가 찌른다 찔끔 나온 눈물만큼의 조의가 무릎에 살포시 내려온다 웃다가 웃다가 나온 눈물도 웃는 낯을 가졌다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눈을 하염없이 비벼 벌겋게 만들어야지 그래서, 누구를 위한 조의란 말이야? 나무 둥치를 위한거야, 네 무릎을 위한거야, 모래를 위한거야? 어느 쪽이든 웃겨 죽을 것 같은 꼴에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 아니, 뭐, 무릎은 조금 아파 보이긴 하지만, 소독이나 하면 뭐 둥치는 빨리 치웠으면 좋겠다, 길을 언제까지 막을거야 여기 공도 아니야? 담당자 나오라 그래! 이거 언제 치워! 모래도 이게 뭐하자는 거야? 모래라고 써있기는 한데, 언제부터 돌이 깨져서 나온 걸 모래라고 한건데? 웃기려고 했으면 잘했어, 아니라고? 네가 놀리는 입이랑 돌중에 뭐가 더 빠를까? 사고실험 검증하기 전에 그만두는게 좋을걸 그리고 넌 뭐야? 왜 여기서 계속 알짱거려? 헛소리 할거면 저기 천에 다이빙이나 한번 해 광대에게 조리를 요구하는 짓은 끝날줄을 모른다 헛소리와 지성이 투닥대면 비웃음이 이길 수밖에 날아온 돌을 맞고 쓰러진 방해꾼에게는 야유가 쏟아지고 당황한 광대는 주춤주춤 떠나가다 자갈을 조심조심 챙긴다 하!

  • 데카당
  • 2024-05-15
봉우리의 시선

구르고 굴러 도착한 봉에 텅 빈 눈들이 돌과 나무 사이 빼곡히 자랐다 구름 위로 솟은 봉의 빛이 들지 않는 험지에서도 눈들은 잘도 자라난다 여기저기 흘깃대는 눈 탓에 일찍이 등반을 포기한 바람이 끌려왔다 시선에 얼어붙은 바람이 엉금엉금 소나무 위로 도망가니 친구를 잃어버린 자갈이 강판에 갈려 뾰족한 얼굴을 쳐들고 엉엉 우는구나 얼굴을 갈아버린 친구가 끌려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에게 버려져 우는 꼴을 보고 오랜만에 피가 도는 눈들은 누구의 몸에서 떨어졌기에 이러는 것인지 덜덜 떠는 눈들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휙 돌아본 구멍들에 시선을 뺏기고 덜덜 떠는 것은 우는 것에 가까운 것이겠지 피가 발바닥에 모여 아우성치는 심정을 느끼지 못하는 눈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는데, 비쩍 마른 심장의 근섬유들이 비명을 지르며 수축한다 알았다, 저 눈들도 여기에 굴러 도착한 몸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쓰러진 몸, 관성으로 굴러나온 눈들이 태양을 피해 그늘까지 질척댄다 부끄러운 심정이 마를까 두려워 서둘러 도망가지만 이미 빛에 닿았다 후회가 하늘로 솟아 해를 가리고, 텅 비어버린 눈에 빛이 담길 일은 없겠지 아, 아직 후회로 가득 찬 몸이 보인다, 출렁거리는 후회로 피부호흡하는 몸이 어느 한 구석이라도 후회가 꽉 막고 있는데 눈이 있을 부분에 돌이 박혀 있다 빛을 쬐니 돌에서는 연기가 나고, 아까까지 잠들었던 혈관이 헐떡인다 도저히 해내지 못한 일을 하는 돌을 보니 떨어지길 잘 했다고 자축하고 기우는 해를 따라 자리를 옮기려고 하다 꿈틀거리는 눈들의 행군에 휘말렸다 이미 말라버렸는데 무엇을 두려워 하길래 빛을 피하는 것인가 너희들의 후회가 이미 햇빛을 납치했다는 것도 모르고, 저 빛은 누군가 던진 발열전구에서 나온 줄도 모르고 겁에 질려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희들의 시선은 고삐를 벗겨 날뛰게 두고 조금의 시선도 받지 않으려는지 일정하게 꿈틀대는 행군에 계속해서 휘말리니 바보라도 된 기분이다 돌고, 밀쳐지고, 돌고, 도망가고, 어째서인지 그림자에서 맴돈다 ㆍ돌아라, 돌아라! 버러지들, 도망친 버러지들! 나를 버렸겠다, 나만 여기에? 용서하지 않아, 버러지들, 현명하게도 도망쳤겠다! 나는 때를 놓쳤는데!

  • 데카당
  •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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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카당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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