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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주 주장원 & 굿바이 레터

  • 작성자 꽃피는돌
  • 작성일 2013-06-03
  • 조회수 627

버려진 도깨비들의 도시

-小浪

 

이 도시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잊혀진 채 방구석에 몇 십 년 굴러다니는 물건같은 건 전설이 되어버린

물건마저 바쁜 오래된 도깨비들이 죽어버린 바쁜 너희의 도시에서

우리는 부활한다

우리는 낯선 도깨비다

우리는 버려진 도깨비다

우리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눈물을 머금지 못한 곳에서 자라난다

우리는 충분히 슬퍼해주지 않은 것들에게서 온다

술취한 자동차가 토해낸 어느 순수했던 이의 싸늘한 얼굴에서

눈 먼 욕설이 마디마디 박힌 외로운 소년이 사라진 자리에 놓인 슬리퍼 한켤레에게서

박스를 줍다 박스처럼 구겨진 채 아무도 모르게 썩어가는 노인의 주름살에게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자궁을 빼앗긴 소녀의 눈망울에게서

잘린 손과 빈 지갑을 든 어두운 피부의 이방인에게서 그리고 너무나도 바쁜 너희에게서

 

너희들 도시의 틈 사이사이 겹쳐

우리가 세운 또 다른 도시가 있다

너희들 머무는 곳 사이사이

우리가 굳어버린 슬픔으로 쌓아올린 건물들이 있다

우리들 건물이 위태로이 쌓이고 쌓여 무너지는 순간

너희들 집도 무너지리라

우리 굳어버린 슬픔의 벽돌이

너희 눈물 젖은 적 없는 보드라운 베게 위에 던져지리라

이 도시에선 다신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우리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너희는 여전히 바빠 슬퍼해줄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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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마지막 잎새

-붉은하늘

 

겨우내

심장이 시리도록 매서웠던 북풍을,

온몸 멎도록 차가웠던 눈발을,

이 악물고 견뎌낸 당신이지만

 

사월

남녘에서 불어온 훈풍을,

민둥가지에서 돋아는 진달래를,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당신입니다.

 

이제는 오무라든 손을 펴고

움키고 있던 손을 놓아야 할 때입니다.

 

돋아나는 파릇한 잎들이

잘 가라 당신을 배웅하면

당신은 돌아갑니다.

 

사월은

흙이 된 잎들이 잎이 되는 달.

 

당신이 돌아간 사월은 갔지마는

돌아간 당신을 위한 당신만의 사월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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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평>

오월 마지막 주에는 두 학생을 으뜸으로 올렸다. 우선 '小浪' 의 <버려진 도깨비들의 도시>는 사물이나 풍경을 보는 남다른 시선이 있고 그걸 나름의 시적 분위기로 얼러내려는 시도가 좋았다. 여느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거나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을 눈여겨 보고 거기서 나름의 시적 공간을 착안하고 엮어내는 시도는 나름 소중한 덕목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코 없다고 할 수 없는 마음의 대상들을 시의 공간으로 불러내는 이런 늡늡하고 활달한 시선은 도깨비라는 퇴물을 현대적인 공간으로 불러내는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도깨비의 출현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잊혀진 존재의 슬픔에서 나온다는 시선 또한 아주 귀중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런 도깨비의 출현 배경과 구체적인 인상들이 너무 개략적으로 혹은 발상 차원에서만 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목이 지시하는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이면 속에 존재하는 도깨비들의 활약상을 인상적으로 끌어내면 더 좋을 것이다. '붉은하늘' 군의 <사월, 마지막 잎새>는 해를 넘겨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화자의 다수굿한 웅숭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시편이다. 보통 그 해의 잎새들은 그 해 가을이나 초겨울 들어 대부분이 낙엽이 되는데 비해, 모진 겨울을 견디고 이른 봄까지 가지에 남는 경우를 화자는 세심하게 살핀 듯 보인다. 이런 사물들 나름의 독특한 현상이랄까 인상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 보는 시선은 당장은 아니지만 시를 깊이있고 독특하게 얼러내는 소중한 바탕이 될 수가 있다. 한 해가 아닌 두 해를 견딘 마른 나뭇잎을 통해 그 순수한 견딤과 새 봄 앞에서의 담담한 조락을 보는 화자의 눈길은 늡늡하다. 그리고 그 져버린 낙엽이 끝내 다시 돌아올 것을 예감하는 웅숭깊은 눈길 또한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는 나름의 생각의 깊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4월의 잎새가 갖는 보다 색다른 분위기를 좀 더 이끌어낼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모진 추위와 그걸 견디는 인내의 마른 나뭇잎의 이유가 화자에게서 좀 더 새롭게 드러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이밖에 눈길을 끈 시편들로는, '덕수' 의 <이자리에떨어진나는>이다. 낙엽이 떨어지듯 시간의 순리에 따라 엮여가는 화자의 정서가 나름 엿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단순하게 그려져서 좀 더 구체적인 장면들과 함께 보여지면 좀 더 공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권택석' 의 <앙코르와트>는 유명한 고대 사원에서 구걸하는 소년들과 그 거대한 사원의 건축배경을 더듬는 화자의 시선이 나름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전반부의 구걸하는 가난한 소년과 앙코리와트의 건축에 얽힌 사연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느낌이다. 그 두 인상적인 장면의 의미를 조화롭게 꾀해보기 바란다. '누삼' 의 <복숭아의 밤>은 복숭아가 가진 이미지를 화자가 그리는 대상과의 관계 속으로 이끌어 들이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다만 그것이 구체적인 발단이 아닌 주변부적인 느낌으로 그친 것이 아쉬웠다. '느시' 의 <여름날의 초상>은 여름날의 흰 국화를 끌어들여 죽음이라는 뜻밖의 정황을 이채롭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국화 그 자체의 이채로움에만 매달려 전체적인 죽음의 의미나 감각이 잘 드러나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여름날의 흰 국화가 갖는 뉘앙스를 뜻밖의 죽음이라는 상황과 좀 더 구체적으로 조화시켜 보기 바란다. '문학황제' 의 <어른과 아이>는 개성적인 삶의 주관을 상실케 하는 기성사회의 폭력성을 나름 비판적으로 드러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설명적인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 구체적인 장면이나 상황을 통해 드러내면 더 좋을 것이다. '광첨' 의 <살아>는 삶에 대한 직정적인 열망과 그 권유가 나름의 간명하고 진솔한 언술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다만 삶에의 의지를 제시하는 언술이 너무 크고 막연한 구절이 종종 있다. 멋있게 말하는 것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말하는 것이 더 공감을 이끌어낼 수가 있다. '캄호' 의 <숨바꼭질>은 자연 속에서의 순정한 놀이의 분위기가 부드럽고 따스하게 엿보인다. 그러나 시적 공간 안에서의 불분명한 주체들로 인해 좀 모호해진 분위기이다. 숨바꼭질하는 대상이나 주체를 특정하고 그 구체적인 장면을 그려보기 바란다. '비나띵' 군의 <오로지 누군가만을 위하여>는 어떤 대상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이 정말 옳은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통해 자아회복을 그려보이고 있다. 화자의 전언처럼 그런 나름의 메시지가 이뤄지는 구체적인 과정을 그려 보여주면 좋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 결코 자아를 상실하거나 마모시키지도 않은 그런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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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예비 시인 학생 여러분.

시창작 코너에 열심으로 글을 올려준 여러분을 만난지도 어언 세 해가 넘었습니다.

주장원에서 월장원 연장원이라는 뽑힘이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 속하지 않아 늘 실망하고 자신을 적잖이 책망했을 수도 있는

학생들도 많을 겁니다. 내 얘기를 하자면 나도 여러분과 같은 시절에는

탁월한 재주도 없어 그런 안 뽑히는 측에 속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좋아하지만 재주가 없다고 생각될 때는 그 자기소외감과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재주가 없다고 좋아하고 추구하는 마음까지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추구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걸 추구함에 있어

실패나 착오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걸 품고 그걸 바탕으로 삼아

자기 동력으로 나아가면 좋을 듯 합니다. 지금의 재주나 성과가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을 이모저모 돌아보며 다각도로 모색하는 여러분의

궁구와 노력이 더 큰 자산과 자양분으로 여러분을 키울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글쓰기와 관련된 어려움과 고민을 사랑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열등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의 징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발전과 충만한 기대의 조짐으로

생각하고 꾸준히 도전하는 마음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열정이 재주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과 온라인과 오프라인 캠프에서 했던 시간을

쉽게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여러분의 쉽지 않은 학창시절이 그래도 기껍고 환한 들판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늘 궁구하고 노력하고 스스로 애쓰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니다.

여러분들 앞날에 건강과 꺼지지 않는 희망의 동력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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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혈전   -공동체주의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기름을 튀기는 이 돼지는 누구에게는 한 밑천이었을 것이다   꿀꿀거리는 소리를 트럭에 싣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초승달 위로 홀뚝한 자식들을 그려보고 마누라 주름처럼 자글거리는 각다귀떼를 한 손으로 쫓으며 비포장도로 위를 덜컹이던 그에게는 아무 죄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차에 치여 죽었다   돼지같이 퍼주는 인생을 살다가 돼지 차한테 치여 죽었다고 엄마는 계속 우는데 난 거기서 그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고 처먹기만 하는 돼지라고 할 수가 없어 뛰쳐나와 돼지를 구웠다   돼지를 구우면서 나는 세상의 마누라와 자식들을 굶긴 이들이 잘못했고 그래서 돼지를 키운 사람들이 잘못했고 그날 초승달은 어찌 그리 아름다웠는지 결국 아버지가 꼴깍거렸을 때 달보며 합창하는 돼지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기름을 튀기는지 눈물을 튀기는지 돼지를 입에 넣어 씹는데   -------------------------------------------------------------------------------------------------------------------- <선정평> 오월 셋째주에는 '공동체주의자' 군의 <복수혈전>을 주장원의 자리로 올렸다. 이 시편은 돼지라는 매개를 통해 묘한 뉘앙스를 거느리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런 매력만을 지니는 것만은 아니라서 어딘가 능숙하게 시적 상황을 잘 소화하지 못한 채 발언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돼지라는 매개를 중의적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는 좋으나, 그런 중복적인 시선이 각각의 문장에서 나름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표현하는데 미숙한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의 기묘한 정황을 나름 이해하고 깊이 개성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여실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제목이 도대체 무엇을 함의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숙고해 보기 바란다. 제목은 그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언술인데 이 시의 제목은 강렬하기는 하지만 뭔가 내용과 동떨어져 있거나 겉돌고 있는 느낌 또한 여실하다. 이 점을 다시 들여다보기 바란다. 또 시 전체에서 돼지에 대한 언술이 반복되는 만큼, 보다 구체적인 돼지의 특성이나 이미지를 시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상황에 적용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이밖에 눈길을 끈 시편들로는, '새벽별' 의 <차안에서>이다. 말 그대로 차 안에서 창밖 풍경의 이채로움을 바라보는 눈길의 새로움에 대해 언술하고 있다. 주로 서술어로 쓰이는 '달린다' 와 '휘어진다' '솟는다' 같은 용언들의 활용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런 동사나 형용사의 활용을 좀 더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차원에서 다시 활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단순히 달린다거나 휘어진다거나 솟는다라는 표현 말고 그것이 무엇으로 무엇 때문에 어떤 인상으로 그렇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밟힌 뱀'의 <그녀는>은 도시적 일상에 매몰돼

  • 꽃피는돌
  • 201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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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피는돌
  •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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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피는돌
  • 201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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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첫 선생님이신데, 이렇게 가시네요ㅠㅠ

    • 2013-06-06 00:01: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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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1500
  • 공동체주의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2013-06-04 17:37:23
    공동체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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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굿바이 레터라는 말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아직도 너무 놀라고 아쉽네요. 왜 다들 떠나가시나요?ㅠㅠ. 그래도 정말 지금까지 너무 감사했어요. 정성스럽게 달아주신 코멘트들 하나하나가 제가 글을 계속 쓸 수 있게 하고 제 글이 발전할 수 있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 2013-06-04 16:23:2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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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택석

    지금까지 너무 감사했습니다. 허접한 글 올릴 때마다 정성스레 달아주신 코멘트들 모두 스크랩해놓고 보관하고 있어요. 너무 감사하구 아쉽고 그러네요. 안녕히가세요 ~

    • 2013-06-03 22:30:49
    권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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