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며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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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68
새벽 세시 사십분
지나가는 바람소리
편의점 문이 딸랑하며 울리는 소리
가스가 동난 라이터의 부싯돌 소리
학생이 까는 핫식스의 병따개 소리
한집안의 가장의 취한 발걸음 소리
그리고 쓰디쓴 한숨
달디단 하품
꿀꺽꿀꺽 마셨던 핫식스
꺼이꺼이 들이킨 참이슬
사각사각 푸는 문제지
타박타박 걷는 아버지
띠리링 울리는 전화 벨소리
사람이 없는 고독한 길거리
사랑이 있는 뜨거운 목소리
어디야 언제와 일찍와 걱정돼 위험해 조심해
말로 하지 않는 사랑은
천천히 마중 나오는 발걸음은
어느새 찾아와 어깨를 주무름은
누구를 위해서
검은 하늘, 검은 콘크리트, 검은 편의점, 검은 담배, 검은 아스팔트, 검은 핫식스, 검은 별
온통 검은 것들 뿐인데
그리고 너는 너, 나는 나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너와
하얀 메리야스를 입은 너가
그녀는 그를 안고
그는 그녀를 안고
정장입은 사람은 살고
교복입은 사람도 살고
새벽 네시 반
잠에 들 시간
곧 동이 틀 시간
모두 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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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
- 2024-04-20
갈색 흙에 파뭍혀 있던 수컷 딱정벌레를 잡아 잡아돌위에 올려 놓고 찍어 찍어 죽여녹색 피로 돌을 적시고 그걸 핥는다녹색피가 회색과 검은 색 그리고 은색이 살짝 뭍은 돌에 슬슬 사라질 때쯤 사라질 때주먹과 돌, 계란과 바위, 머리와 돌 뭐가 더 강하지 장난을 한다주먹을 찍고 계란을 찍고 머리를 찍는다희어져 버린 머리 생각 없는 머리동공이 확장되어 확장되어 떨어지는 나뭇잎과 꽃들이 보이고 보이고나는 나는 나는 흰색과 흰색과 흰색과 뭐였지 암튼 돌에 뭍은 녹색피 아니 빨간피 아니 계란의 흰 흰 흰 흰자와 노란 노란 노른자 아 그리고 딱정벌레어디갔지갈색 갈색의 흙과 그사이의 초록 초록한 나뭇잎푸른 푸른 구름 구름 하얀 하얀 하늘 하늘흙을 꽉 잡아 돌고나뭇잎도 돌고하늘도 돌고구름도 돌고 나도 돌고 딱정벌레도 돌고 우리 다같이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백석
- 2024-04-12
개를 복날에 먹으리눈이 눈을 가리던 겨울에 주어,암캐 냄새를 벚꽃이 가려,봄날에 사랑하고,아스팔트를 녹이는 불지옥여름에 잡아먹자그 개는 태초에 들개였으나내가 너무나 사랑해서낡은 가죽끈으로 정성스레묶은 들개개는 나를 보면 혓바닥을 빼놓고 꼬리를 흔들지만 나는 분명히 안다내 한숨까지 잡아먹을 여름날 들개는 나의 목을 물것이다 오늘은 봄청춘과 봄과 벚꽃은 눈과 코를 가리고호시탐탐 내 목을 노리는 개의 눈을 무시하게 하는구나 그러니 언젠가의 여름날 개의 누런 이빨을 보기 전에 너를 잡아먹으리
- 백석
-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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