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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불어

  • 작성자 별무리
  • 작성일 2024-05-04
  • 조회수 153

너에게 여름이 불었다.
피곤한 얼굴에 습기가 어렸다.
새벽이슬은 숨을 몰아쉬었다.

여름의 향기를 그러쥐었다.
거친 하늘에 희미한 어스름이,
습기에 번진 캔버스는 꽃을 피웠다.

향기가 파랑이 되어 철썩였다.
별빛은 사그라들었고, 눈은 먼 곳을 향해 까마득했지만,
지평선에 가라앉은 태양은 까만 새벽을 노려보았지만,
아직 꿈의 품에 가라앉은 나는, 옅은 어스름에 물들어,
거리의 고즈넉한 그림자에게는 빛을,
길목마다 화읍스름한 꽃들에게는 비를,
벽돌과 벽돌 사이의 틈새에는 시름을,
빗물이 고여 웅덩이진 도로 위에는 잎새를,
우산을 타고 부유하는 빗방울들은 부디 원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를,
또 젖어 들어가는 여름의 활기와 다투는 나의 소란스러운 글씨는,
향기를 몇 자 써내려,
저 동틀 녘은 해변이요, 어슬 녘은 굽이치고 너울지니,
파도에 휘저어, 또 기어코 녹아들어 온 하늘에 퍼졌다.

하늘에 여름이 불었다.
무기력한 오늘은 더욱이 눅눅해지고,
피곤한 이슬은 새벽을 몰아쉬며,
너에게 어린 습기를 그러쥐고,
희미한 어스름이 향기를 피웠으며,
캔버스에 번진 꽃은 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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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무리
  • 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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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무리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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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무리
  •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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